대중교통으로 19분, 자동차로 5분, 도보로 32분 거리의 노포 두 곳에서 여러모로 대조적인 간짜장을 맛봤다.

먼저 제기동의 홍콩 중화요리. 제기역에서 도보 10분 거리인데, 가는 동안 길에 사람도 차도 거의 지나다니지를 않는다. 햇살을 받으며 기분 좋은 산책 끝에 가게에 도착해서 보니 매장이 지하에 있다. 가게가 2층이라는 나의 기억은 언제 어디서부터 잘 못 된 것일까. 뭐 중요한 건 아니지. 원래 인간의 기억이라는 게 꽤 제멋대로니.

지하에 내려가 보니 테이블 3개의 엄청나게 단출한 가게다. 검색도 제대로 안 해보고 멋대로 이보다는 더 넓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잘 못 하면 자리가 없을 뻔했다.(나중에 손님이 더 와서 안 건데 따로 방이 두 개 있더라.) 간짜장을 주문하고 기다리고 있는데, 배달 나가셨던 남편분이 가게에 들어오신다. 매장을 부부가 운영하는데 아내분은 주방을 보고 남편분은 배달을 한다. 부부가 운영하는 중식 노포 중에 이런 식으로 배달을 하는 곳들이 있는데, 대부분 원래는 남편분이 주방을 보시다가 배달을 위해 포지션 체인지를 하는 경우라고 한다.

잠시 후 상이 차려지고 주방에서 짜장과 면이 나왔다. 요즘 서울에서는 보기 드물게 계란 반쪽을 올려준다. 간짜장에는 계란 후라이라는 분들도 많지만, 개인적으로 그런 것에 특별히 연연하지 않기에 계란 반쪽이 그저 반갑고 감사할 따름이다.

짜장을 먼저 먹어보니 달지 않고 적당히 고소하다. 불맛이나 눌은 군내 같은 것은 나지 않고 깔끔하고. 짜장 위에 원래 통깨를 뿌리시는데, 주문할 때 깨를 빼달라 말씀드렸다. 몇 알갱이 올라가는 거긴 한데 깨라는 게 워낙 맛이 강하다 보니 짜장 맛을 좀 더 순수하게 느끼고 싶었달까. 면은 딱 기분 좋게 쫄깃하다. 딱딱하지도 않고 퍼지지도 않은 맛이다. 

짜장을 면 위에 올려보니 야채를 제법 잘고 가지런하게 썰어서 볶으셨다. 지금은 없어진 용산 원효로의 용궁 생각이 났다. 요즘 중국집에서는 볼 수 없는, 노포들에서만 볼 수 있는 스타일이다. 비벼서 먹어보니 아작아작 씹는 맛이 좋다. 기름이나 조미료, 설탕, 춘장은 딱 필요한 만큼만 넣으신 것 같다. 맹맛이거나 슴슴할 정도는 아닌, 간짜장으로서의 정체성을 보편타당하게 인정받을 수 있을 딱 그 정도 만큼. 정갈하고 깔끔한 맛이 좋았고, 먹고 나서 속도 상당히 편안했다. 중식 노포라고 하면 뭔가 진하고 강한 맛이 날 것을 예상하게 되는데, 편견을 깨는 맛이었다.

다만 면은 짜장의 열기에 텐션을 살짝 잃어버려 약간 아쉬웠다. 비비기 전의 쫄깃함을 비빈 후의 면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 그렇담 짜장을 면에 올린 후에 비비지 않고 면과 소스를 같이 먹는 건 어떨까? 아니면 보리밥 한 구석에 고추장을 올려 구석부터 비벼 먹듯 짜장을 측면에 조금씩 올려서 공략을 해 본다거나. 좀 요상스럽지만 한 번 시도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아, 계란은 절반은 도중에 먹고 절반은 짜장면을 다 먹고 마무리로 먹었는데, 그 느낌이 꽤 좋았다.

기분 좋게 식사를 마치고 이런저런 볼일을 보니 저녁이 되어 집에 들어가려는데, 마침 있던 곳에서 전농동 동해루가 멀지 않다. 대중교통으로 16분 거리니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가기 아쉬웠다. 안 그래도 전부터 우동을 한 번 먹어봐야지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홍콩은 첫 방문이지만 동해루는 이번이 네 번째 방문이다. 사실 몇 번째인지 좀 헛갈려서 사진첩을 뒤져봤다. 아무렴 불확실한 기억을 더듬는 것보다 확실한 기록을 찾아보는 게 낫지.

이것저것 먹어본 결과 간짜장이 제일이고 짬뽕도 맛있었는데, 우동도 괜찮을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들었었다.(옆 테이블에서 너무 맛있게 먹더라) 짬뽕은 약간 너구리 라면 비슷한 맛인데(아는 분은 아시겠지만 모 유명 중식당도 이런 맛의 짬뽕을 낸다. 지금은 맛이 좀 바뀌었다고 얘기를 듣기는 했는데), 애당초 라면국물/라면스프의 맛이라는 것이 야채+고춧가루+조미료를 불에 볶은 맛이 모티브가 된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여튼 우동이 궁금했지만 간짜장 맛이 기억이 안 나서 다시 한번 먹어보기로 했다. 이래서 그때그때 기록을 해야 하는데...

짜장을 먼저 내주셔서 먹어보니 머릿속에 불이 띵!하고 들어오는 맛이다. 달고 짜고 감칠맛 넘치고. 면은 완전 제대로 탱글하게 쫄깃하다. 홍콩의 면이 얌전하고 모범적으로 쫄깃하다면, 동해루의 면은 통통 튀는 분위기 메이커 같다. 야채를 써는 것도 홍콩은 정갈하게 동해루는 조금 와일드하게 썰었는데, 둘 다 아작아작 씹는 맛이 좋았지만, 씹는 느낌에는 차이가 있었다. 야채 모양처럼 전자는 얌전하고 후자는 좀 더 야성적이랄까.

짜장을 올려 비벼보니 탱글하게 쫄깃한 동해루의 면은 짜장의 열기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았고, 그런 제대로 쫄깃한 면에 설탕과 조미료와 춘장과 기름을 넉넉하게 넣어 만든 존맛이 넘치는 짜장이 만나니 그야말로 짜장면이 입에 쫙쫙 붙었다. 마치 불량미 넘치는 나쁜남자 같은 맛이라고나 할까. 먹고 속이 편하지는 않았지만 먹으면서 도파민이 마구 솟아났다. 더구나 이 맛이 4천원 밖에 안 하다니.(홍콩 중화요리의 간짜장을 먹으면서 나온 호르몬은 아마도 옥시토신이었을 것 같고)

먹으면서 인천 호승짜장 생각도 났다. 서울에 그런 3천원짜리 짜장은 없지만, 그래도 이런 4천원짜리 간짜장은 있다구!

동해루는 배달을 안 하고 홍콩은 하고, 동해루는 현금만 받고 홍콩은 카드도 받는다. 동해루의 주방은 남편분이 보고 홍콩의 주방은 아내분이 보는 것까지 다 다른 게 재미있다. 아, 근데 두 가게 모두 볶음춘장을 구입해 쓰는 게 아닌 생춘장을 볶아서 쓰는 것 같다. 단무지, 양파와 내준 춘장을 찍어 먹어보니 둘 다 짭쪼름 시금털털하다. 이런 생춘장은 단무지보다는 달큰한 생양파와 더 잘 어울린다.

근데 기억 속의 맛보다 (설탕 기름 춘장 등이 좀 더 들어간 건지) 뭔가 좀 더 맛이 부스트된 느낌이긴 하다. 실제로 간이 좀 과해서 면만 따로 먹고 공기밥을 시켜서 남은 짜장에 밥을 비벼 먹었다. 꿀맛이긴 했는데 집에 가는 길에 탄수화물 하이를 느껴버렸고. 이날만 그런 걸 수도 있는데, 찾아가실 분들은 간짜장 소스를 일단 2/3나 3/4 정도만 넣고 비벼보시기를 권해본다.

그리고 면에서 간수 때문에 나는 듯한 쿰쿰한 냄새가 났는데, 기억 속에는 이런 냄새가 없었다. 만약 있었더라도 이날 정도로 심하지는 않았을 거고. 기억 속에서도 그랬지만 검색해보니 예전에는 이렇게까지 면이 쫄깃하지 않았던 것도 같다. 이것도 일단 참고하시기 바란다.

참 맛있고 재밌는 하루였다.

PS : 동해루가 생활의 달인에 나왔다고 해서 전농동 동해루인 줄 알았더니 면목동 동해루였다. 두 가게는 친인척 관계라고 알려져 있고. 매장 가보니 손님이 별로 없길래 이제 방송 영향이 끝났나 했더니 내가 잘 못 알고 있는 거였...

PS2 : 양념통은 어지간하면 만지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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