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뜩이나 일하는 것도 버거운데, 생각할 것도 많아진다는 것은 상당히 고역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지민은 어제 대낮부터 시름시름 앓다가 오늘 아침까지도 골골거렸다. 오후로 넘어갔다고 해서 뭐 별반 다른 상태는 아니었다. 어느덧 점심을 먹기 위해 교대할 시간이 되었는데도, 지민은 같이 식당 다녀오자고 권유하는 동료들을 물렸다. 입맛이 별로 없었다. 출근했을 때만 해도 폭풍처럼 휘몰아쳤던 게 무색하게 한산해진 응급실 내부를 한 번 둘러보다가 눈앞의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마음이 심란해서 연거푸 한숨이 터져 나온다. 영어로 잔뜩 뭐라뭐라 적혀있는 의학용어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고 다른 생각들이 머릿속을 빙글빙글 어지럽히는 이유였다.  

    맞선. 결혼할 수도 있는 당사자들이 직접 만나서 얼굴을 마주 보고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는 것. 이십 대라면 모를까 이제 서른 중반을 달려가고 있는 지민에게도, 태형에게도 그리 낯선 단어가 아니었다. 경제적 불황기가 끊이지 않고 있는 요즘 같은 시대에는 다들 결혼을 물리거나 물리지는 않더라도 최대한 늦게 하자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물론, 그것은 요즘 시대를 살아가는 청장년에게만 해당되는 소리였다. 먼 옛날부터 이제 막 사회에 발을 내딛기 시작하는 나이에 혼인을 올리던 관습에 익숙해져 있는 중년들에게는 서른 살에 결혼하는 것도 상당히 늦은 시기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그래서 서른이 넘어서도 임자 하나 제대로 잡고 입지 않으면, 그 나이 먹고도 왜 가정 하나 이루지 못했냐며 잔소리를 퍼부어대기 바빴다. 지민의 주변만 해도 부모님의 억센 등쌀에 떠밀려 억지로 맞선을 보러 나가는 제 친구들이 결코 적지 않았다. 그러니까, 어제 태형이 그런 자리에 앉아있던 상황을 이해할 수는 있다는 뜻이었다. 속이 상하는 것과는 별개로. 우리 나이대에는 워낙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일이니까. 


    “......”


    다만, 제 연인의 맞선 상대가 태형과는 전혀 일면식이 없는 인물이 아니라는 것은 좀 문제였다. 게다가 그 상대가 일전에 태형의 집을 돌아다니다 우연히 발견한 사진첩에서 목격한 얼굴과 똑같다는 점은 더더욱 문제였다. 신경이 예민하게 돋아나는 건 정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때는 겨울이었다. 태형은 여느 때처럼 아침 일찍 출근하러 나갔고, 저는 오프라서 태형의 집에 눌러 붙어있던 날이었다. 간밤에 격렬하고 과격한 정사를 치른 탓에 몸 여기저기가 욱신거리는 터라 겨우겨우 눈만 떠서 잘 다녀오라고 태형을 배웅해주고는 다시 곯아 떨어졌다. 실컷 늦장을 부리다가 일어났을 때는 해가 중천이었다. 주인 없는 집에서 멀뚱히 누워 있기를 30분, 하도 오래 누워있어서 저린 허리를 다독이며 앉아 있기를 30분, 커다란 창문을 통해 화창한 날씨를 또 몇 분 동안 바라보다가 심심해지기 시작해서 드디어 무거운 엉덩이를 일으켰다. 전반적으로 집 내부가 깔끔하게 정리 정돈되어 있는 편이라서 별로 손댈 것들이 없었지만, 뻐근해진 몸을 움직일 겸 청소를 했다. 설거지나 뭐 이런 것들을. 무엇보다 새벽 내리도록 온갖 난장판을 피우고 잠든 태형의 침실도 환기시켜야 했고.    

    그러다가 우연히 서재에 들어왔다. 청소를 한다고 해도 뭐 그게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걸리는 일이겠는 가. 마땅히 할 게 없어지니 심심해져서 문득 태형은 무슨 책을 읽을까 궁금했다. 큼지막한 고동색 책장 두 개를 의학 서적들이 빼곡하게 차지하고 있었다. 하여튼 누가 의사 아니랄까 봐. 가끔씩 무료한 시간을 때우기에 안성맞춤인 교양 서적도 사이사이로 꽂혀있었다. 이것저것 분류별로 나란히 세워져있는 책등을 손가락으로 훑어보다가 발견한 것이었다. 각종 상장, 졸업장, 그리고 태형의 유년 시절부터 근래의 모습까지 고이 담겨 있을 사진첩을.


    「......봐도 되겠지? 괜찮겠지?」 


    제 연인의 성장기가 궁금하지 않을 리가. 

    쏟아지는 햇살 아래로 잔망스럽게 웃은 지민이었고, 망설임 없이 발꿈치를 들어 제일 높은 선반에 꽂혀있는 사진첩을 꺼냈다. 그리고 바로 옆에 있는 테이블에 몸을 기대고 서서 한 장씩 넘겨보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발가벗은 채 뽀얀 이불 위에 드러누워서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는 갓난아기가 보였다. 오동통한 볼살이 사랑스러웠다. 귀여워. 아기 곰 같아. 천재적인 소질이나 재능은 뭔들 떡잎부터 다르다고, 겨우 두 살이 될까 말까 한 이때부터 이목구비가 아주 뚜렷했다. 얼굴로만 따지자면 그 어떤 연예인을 옆에 세워놔도 태형보다 쉽게 눈에 띄이기는 어려울 것이었다. 한참을 그렇게 소소하게 웃으며 넘겨보다가 마지막 장에 다다르던 순간이었다.   


    「......」     


    지민의 손이 멈추었다. 그리고 잠시 눈도 멈추었다. 시선이 꽤 오랫동안 머물렀다. 맨 아래 투명 비닐에 끼워져 있던 어떤 사진 한 장에게로.

    무슨 사진이었는지는 정확하게 추측하기 어려웠다. 그저 새하얀 벽지 아래로 멋들어지게 남색 정장을 입은 태형과 마찬가지로 남색 원피스를 입은 여자의 사진이었으니까. 다만, 풍겨지는 분위기가 꼭 결혼 사진을 찍을 때의 그것과 비슷해서 저도 모르게 입술이 잘근 깨물렸다. 크고 작은 어깨가 맞닿을 정도로 가깝게 붙어 앉은 상태에서 서로를 마주 보고 있는 사진. 싱그러운 웃음을 띠고 있지는 않았으나, 두 사람 모두 입꼬리를 곱게 올리고 있었다. 누가 봐도 연인이거나 그 이상의 존재였을 게 분명한 그녀가 태형에게 어떤 사람이었을지 너무너무 궁금했다. 수만 가지의 의문증이 급격하게 날아오르는 열기구처럼 증폭했다. 당장이라도 전화해서 이것저것 묻고 싶어 입술이 근질거렸지만, 과거의 연인에게 연연하는 모습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지민이었다. 괜한 불의를 일으켜서 다툼으로 번지기 십상이니까. 애시당초 과거가 뭐가 중요한 가. 현재가 중요하지. 그래서 그냥, 묻어두고 넘겼던 일이었는데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후회가 되었다.    

    설마 과거의 연인이 다시 나타날 줄은 꿈에도 몰랐으니까. 


    “무슨 사이였을까.”


    단순히 그저 그런 식상한 연인 사이는 아니었을 거라는 확신이 솟구쳤다. 무어라 말로 설명하기 힘든 분위기가 뿜어져 나오는 것도 그렇고, 결정적으로 태형의 표정이 그저 그런 연인 옆에 앉아 있는 표정이 아니었다. 현재 태형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지민이라 확고하게 장담할 수 있었다. 


    “...엄청 오래 사귀었거나, 오래 사귀어서 약혼까지 갔거나. 둘 중 하나는 분명한데.”


    거기까지 결론 내려지니 우울함이 아주 심해 끝까지 파고들었다. 두 눈 서슬 퍼렇게 뜨고 있는 상태에서 가로채일 마음은 추호도 없지만, 과연...... 승산이 있을까 자신감이 드높지는 않은 이유였다. 스스로를 믿지 못해서도, 언제 어디서든 진솔하게 다가오던 태형의 마음을 거짓으로 치부하며 배신감에 치를 떨어서도 아니었다. 아마 그런 자리를 나가겠다고 마음먹었다면, 거짓말을 못하고 또 할 생각도 없는 태형이 제게 언질을 주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지민이 아는 태형은 그런 사람이었다. 그럼 십중팔구 영문도 모르고 불려나갔다가 대뜸 그런 상황에 놓였다는 건데, 어떻게 보면 이게 더 큰일이 아닌가 노파심이 솟구쳤다. 그 자리를 주선하고 태형에게 푸시를 한 누군가가 있다는 소리였으니까. 그 주선자가 누구인지도 지민은 어렵지 않게 유추해볼 수 있었다. 조금 현실성 떨어지는 이야기지만, 태형과 같은 재벌들에게는 정략결혼이 마냥 현실성 없지도 않을 것 같았다. 태형이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웬만한 대학병원들보다도 입지를 단단하게 굳힌 병원의 병원장님 손자라는 것을 처음 알았을 때부터 지민이 은연중에 걱정하던 고민거리였다. 정략결혼. 맞선. 기어이 걱정하던 폭죽이 현실로 팡 터졌다. 더군다나 맞선 상대는 생각보다 만만치도 않았고, 힘을 실어주는 조력자까지 있었다. 

    갑자기 성질이 확 뻗쳤다.

    제 연애사는 왜 이렇게 가는 길마다 가시덤불이 쭉쭉 뻗어져 있는지. 줄기조차 굵어서 잡초 같은 생명력으로 잘 뽑아지지도 않았다.   

    비단 작년만 해도 비슷한 경험을 해서 끙끙 앓았는데. 그때는 속 시원하게 확 뒤집어 엎어버리기라도 할 수 있었으나 이번에는 차마 그럴 용기가 나지 않았다.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태형을 믿으면서도 원망하고, 미워하면서도 믿는 것 밖에는 없어 통탄스럽다. 작년에는 뭐 안 믿어서 그 난리를 쳤겠는 가. 그래서 태형의 얼굴을 마주 보고 싶지 않았다. 아니, 정정한다. 사무치게 그리워서 보고 싶기는 한데 그 사랑해 마지않는 입술로부터 무슨 말이 튀어나올지, 혹시라도 제가 바라는 말이 쏟아지지 않을까 봐 두려웠다. 이게 뭐야, 정말. 보고 싶어도 못 보고. 현대판 로미오와 줄리엣이야?

    남들보다 험난했던 인생사가 이제 좀 순탄하게 펴질 기미가 보이는가 싶더니, 이제는 연애사가 창창한 앞날을 훼방놓았다. 지민이 제 꼬인 연애사를 회의하며 잔뜩 툴툴거리고 있을 때, 앙칼진 목소리가 들렸다.


    “아, 정말! 아까부터 계속 뭐 하시는 거예요?!”
    “아니, 왜 소리를 지르고 그런데.”
    “은근슬쩍 손 만지고 훑어보는 거 제가 모를 줄 아세요!”
    “아프니까 좀 살살하라고 만진 거였지! 이 의사, 이거. 사람을 이상한 놈으로 몰아가네. 내가 그랬다는 증거 있어?!”


    무슨 상황인지 굳이 설명을 듣지 않아도 딱 그려졌다. 하루에 한 명씩은 꼭 있었다. 병원에 치료받으러 와서는 몹쓸 추파 던지는 진상 날파리들이. 연차 좀 있어 보이는 의사들은 노련하게 대처하는데 도가 텄으니 어린 인턴이나 낮은 연차의 레지던트들, 특히 여자들이 곧잘 목표물이 되고는 했다. 저런 날파리들은 어떻게 박멸이 안 되나. 걸러야 할 환자 리스트 같은 거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아무도 치료해주지 않아서 된통 아파보고 굴러봐야 정신 차리지. 가뜩이나 조용할 날이 없는 응급실이 이런저런 실랑이로 더 소란스러워지는 것은 사양이었던 지민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엇보다 아직 저런 환자들을 감당하기 버거운 제 식구들이 마냥 당하고 있는 꼴을 용납할 수 없었다.

    지민이 씩씩거리고 있는 레지던트 1년 차, 수연의 어깨를 짚었다. 


    “지금부터는 제가 치료해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그녀에게만 들릴 수 있도록 고개를 돌리고 조고조곤 말했다. 


    “수연아, 넌 다른 구역 환자 보고 있어.”
    “...선생님.”
    “죄송해할 거 없고. 화상 환자 같던데, 드레싱만 해주면 돼?”
    “...네. 감사합니다. ...그리고 죄송해요.”
    “진료할 때 저런 식으로 불편하게 하면 억지로 안 봐도 돼. 다음부터는 그냥 다른 선생님이랑 교대해.”


    수연이 목례하며 자리를 벗어났고, 지민이 일회용 퍼셉(집게)으로 드레싱 Set 안에 들어있는 소독솜을 집어올렸다. 치근덕거리던 환자는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가 곧 지민을 보고는 목표물을 변경했다. 다만 수연보다는 누가 봐도 노련해보이는 기색이라 방금처럼 대놓고 손을 올리지는 못했다.


    “여기는 참, 아리따운 선생님들이 많네요.”
    “되도록이면 화상 입은 부위에 물 닿지 않게 조심하시고, 몇 가지 약 처방해드릴 테니 1층에 있는 약국 들리셔서 받아 가세요.” 
    “선생님은 결혼하셨어요?”
    “입원하실 정도는 아니니까 내일 오전 중으로 성형외과 예약 잡으셔서 외래 진료 보시고요.”


    날파리들은 한시라도 빨리 쫓아내버리는 게 답이었다. 논리와 상식이 통하지 않고, 그런 태도가 부끄러운지 모르는 것들을 일일이 상대해주다가는 제 명에 못 살았다. 다만, 왱왱거리는 소음이 여간 거슬리는 게 아니라서 지민은 일부로 화상 부위를 소독솜으로 꾹꾹 짓눌렀다. 말이 누른 거지 거의 뭉개듯이 비볐다. 악! 살살, 살살 좀 해요! 비명 소리가 튀어나왔지만 모른 척 넘어가고, 손상된 피부 위로 스며나오는 진물을 흡수해주고 고정시켜줄 여러 가지 반창고를 부착했다. 

    악악거리다가 이제 좀 살맛이 나는지 또다시 추파가 튀어나온다. 


    “곱상하게 생긴 선생님이 참...... 생긴 거랑 다르게 섬세하지 못하시네.” 
    “......”
    “그래서 결혼은 안 하신 거예요?”


    마음 같아서는 드레싱이고 뭐고 반창고를 갈기갈기 찢어버려서 얼굴에 확 내던지고 싶었지만, 하릴없는 체력 낭비였다. 응급실에서의 체면을 따져서도 그럴 수 없었다.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몇인데 보는 눈만 수십, 수백 개였다. 


    “치료 끝났습니다. 조심히 가세요.”
    “아까부터 왜 대꾸를 안 해줘요? 내 말 안 들려요?”
    “제가 좀 바빠서요. 대기하는 환자들이 많거든요. 그럼, 안녕히 가세요.”
    “아니! 이봐요!” 


    사용한 드레싱 Set 를 들고 이동하려던 지민의 가운을 추태남이 덥썩 잡아당겼다. 갑작스럽게 뒤로 휙 끌려가는 바람에 지민의 손에 들려 있던 물품들이 와르르 떨어졌다. 쨍그랑. 순식간에 이목이 집중되는 건 당연했고, 손바닥으로 이마를 짚은 지민이었다. 내 남자가 지금, 전 애인인지 전 약혼자인지 모를 짜증나는 여자와 맞선을 본 신파극을 찍고 있는 이 심각한 와중에 나는 추파나 당하다니. 서럽다 못해 열받았다. 지민이 이제 조금 화가 난 얼굴로 돌아섰다. 


    “병원 정책상 치료 외의 목적으로는 의료인이 환자와 사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건 금지되어 있습니다.”
    “뭐라고요?”
    “더 소란 일으키시면 시큐리티 팀을 부를 수밖에 없네요.”
    “아니, 내가 뭘 잘못했다고! 그냥 호감 좀 보였을 뿐인데 아까 그 여자 선생도 그렇고 당신도 사람을 왜 변태 자식 보듯......!”


    그때였다. 여전히 가운을 움켜쥐고 있는 고집불통 손을 누군가가 탁 쳐냈다. 그리고 그 누군가에 의해 지민은 오른쪽 어깨가 감싸지면서 한 발자국 뒤로 부드럽게 물러났다. 동시에 따스한 온기가 가득 번져나오는 품으로 확 갇혀버린다. 아득하게 스며드는 스킨 향이 코끝을 배회한다. 안심이 되는 그런 향.


    “호감이랑 추파는 구분하시죠. 싫다는데 왜 못 알아듣고 멋대로 손을 댑니까.”


    지금 이 순간 가장 고달팠던 사람. 태형이었다. 지민이 눈동자만 굴려 힐끔 태형을 보았다. 


    “당신은 뭐야?! 누군데 참견하고 난리야!”
    “참견할 권리...... 권리라, 있죠.”


    잠시간의 침묵 후, 태형은 어느 누가 봐도 근사한 미소를 내보이며 웃었다.  


    “내가 이 사람 남편이라서요.” 
    “......”
    “뭐 합니까. 이제라도 창피한 거 알았으면 빨리 나가시죠. 남의 귀한 사람한테 치근덕대지 말고.”


    전세가 뒤바뀌었다. 얼굴이 확 달아오른 남자가 뭐라고 반박하려다 태형의 기세에 완전히 제압 당해 입을 다물었다. 헐레벌떡 옷을 추스리고 응급실 밖으로 부리나케 뛰어나간다. 끝까지 지지리도 못나게 이 병원 환자 대우가 왜 이딴 식이냐며, 인터넷에 소문 파다하게 낼 거라고 막 구시렁거렸다. 저 진상 진짜, 앞에서는 그러지도 못하는 게. 어지간히도 정신 못 차리네.

    지민이 고개를 저었고, 태형은 약간 신경질이 돋아난 것 같은 한숨을 터뜨렸다. 곧바로 그 기색을 갈무리하긴 했지만. 


    “......”
    “......”


    태형이 조심스럽게 지민을 놓아주었다. 두 사람 모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피한다고 해서 다 피해지면 세상 살기가 그렇게 험난하겠나. 결국 이 시간이 오고야 말았다. 지민이 한숨 대신 눈을 감았다. 기다란 속눈썹이 파들거렸다. 머뭇거리던 태형이 저를 돌아보지 않는 지민의 새끼손가락을 톡 건드렸다. 기운 없는 목소리가 조곤조곤 흘러 나온다. 


    “화난 거 알아요.”
    “......”
    “지금 나 보기 꺼려지는 것도, 무슨 말을 해도 변명처럼 들리는 것도 알아요.”
    “......”


    새끼손가락이 얽힌다. 태형이 조심스럽게 잡았다. 


    “그런데 이대로 또 아무것도 못하고 보내기는 싫어요.”


    결국 서로 똑같았던 거다. 똑같이 괴로워하고, 똑같이 미워하고, 그러면서도 그리워하고, 걱정하고. 그래서 지민은 또다시 태형을 외면할 수 없었다. 불가능한 일이었다. 마찬가지로 머뭇거리던 지민이 천천히 발을 돌렸고,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 올렸을 때는 태형이 안심하듯 눈꼬리를 휘었다. 그리고 나지막이 말했다.    


    “나한테 만회할 기회를 주세요.”


    확실히 두 번은 못할 짓이었다. 진심으로 호소하는 이런 남자를 홀로 내버려 두고 달아나는 것은. 태형의 연인이 꼭 봤어야 했다며 호석이 안타까워하던 게 무색하게, 지민은 온몸으로 그 표정을 보고 목소리를 들었다. 지민이 대답 대신 눈꺼풀을 내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줄게요, 기회. 

    그러니까 그런 얼굴 하지 말아요.










Falling In Love
쓸쓸해진 봄이 따뜻한 기류를 타는 순간










제가 시즌 2 프롤로그에 적는 것을 깜박했는데, 뷔민은 작년 여름에 만나서 교제하고 그다음 해의 새로운 봄을 맞이하고 있는 시기입니다. 일 년이 조금 안 되는 공백기에 있었던 일들은 시즌 1 외전에서 다뤘습니다 ㅎㅎ

연재 주기 텀은 (특별한 일이 없다면) 일주일 전후입니다. 제가 보통 글을 올린 후에 한 삼일은 쳐다보지도 않고ㅋㅋㅋㅋ 나머지 삼일 동안 새 글을 쓴 다음 또 하루 동안 첨삭을 거치거든요 ㅎㅎ 이게 그냥 평범한 로맨스 픽션이면 금방 쓸 텐데 아무래도 메디컬이다 보니 쓰기 까다롭네요ㅠㅠㅋㅋㅋㅋ 힘 팍팍 주세요!!

VM / KM ※ 트위터 @SUHWA_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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