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CU CA 기반 스티브 로저스 x 버키 반즈
◈ B6/98p/19세 미만 구독 불가
◈ 8,000원
◈ 2018.5.4. 동네 쩜오디 P9b
◈  수량조사 폼 : naver.me/5eVgVTED


SAMPLE 

프롤로그

16세의 스티브 로저스는 추위로 새파래진 입술을 하고 집으로 비틀비틀 돌아왔다. 그는 발을 동동 구르며 또래의 여자 아이를 기다려 고백한 다음 막 차인 참이었다. 하나뿐인 가족인 사라 로저스는 나이트 타임 간호사 일 때문에 집에 없었고, 대신 버키 반즈가 그 안에 있었다.

“야, 너 입술 진짜 파래.”

문이 열리고 스티브의 얼굴을 보자마자 버키가 대뜸 손가락질하며 소리쳤다. 스티브는 대꾸하지 않고 모자를 벗고 모자걸이에 걸었다. 스티브는 자신의 손이 닿기 편한 자리보다 한 칸 위에 버키의 모자가 걸려있는 것을 문득 깨달았다. 평소라면 버키와의 키 차이를 실감하는 순간 따위는 별 일 아니었겠지만 바로 방금 전에 ‘……네가?’라고 내려다보며 경멸 어린 대답을 듣고 온 후에는 그 사실의 절감이 뼈아팠다. 스티브는 금세 사춘기 소년다운 격렬한 비관적인 감정에 빠졌다. 난 저 모자걸이의 끝까지 절대로 못 쓸 거야. 그리고 우리 집에 걸리는 여자 모자는 엄마 것밖에 없겠지…….
마치 자신의 집에 온 손님을 챙기는 것처럼 버키는 바지란히 일어나 난로 위의 주전자에서 끓고 있는 물을 법랑컵에 따라 스티브에게 건넸다.

“뜨거우니까 조심해서 마시고 코트는 벗어서 걸어놔.”

무참하게 깨진 부드러운 감정을 뒤로 하고 고맙다는 말을 하기엔 스티브는 너무 어렸다. 스티브는 덜걱거리는 식탁 위에 쏟아지듯 두 팔을 묻고 엎드렸다.

“난 결혼 못할 거야. 스크루지처럼 혼자 늙어갈 거라구…….”
“야, 우리 졸업까지는 한참 남았거든? 그 사이 연애라도 해 보고 그런 얘길 해.”

버키는 한없이 느긋한 태도로 어깨를 으쓱했다.

“일단 몸부터 녹이자고.”

버키의 따뜻한 손이 차가운 등에 닿았다. 고개만 조금 들자 딱 손을 뻗으면 닿을 곳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컵이 있었다. 이런 식의 배려를 받을수록 스티브는 더 비관적이 되었다.

“그래, 연애도 못해봤는데 결혼은 무슨……. 난 연애도 못할 거야.”
“오늘따라 왜 이렇게 삐뚤어졌냐? 거절당했다고 해도, 걔만 여자야?”
“딴 애들도 마찬가지일 테니까. 난 혼자 살 운명일 지도 몰라. 스크루지처럼 삐뚤어지고 후회하면서 살 운명일 게 틀림없어. 혼자 쓸쓸한 방에 앉아 다른 누군가의 크리스마스 파티를 부러워하면서 부러워하는 걸 숨기려고 외롭지 않은 척 할 거라구.”

버키는 갸웃거리며 고뇌하는 스티브를 내려다보았다. 스티브가 이러는 것은 물론 차이고 돌아왔기 때문이었지만, 그렇다, 버키 반즈로서는 그다지 겪어보지 못한 경험의 축적이었기 때문에 명확하게 이해하긴 힘들었다. 차거나 차이면 앞으로 어떻게 마주칠 것인가, 공통의 친구가 있다면 그 관계는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한 적은 있지만, 믿지도 않던 운명론을 갑자기 믿으며 비관한 적은 없었다. 버키는 스티브의 더티 블론드를 헝클였다.

“너하고 결혼하고 싶어서 안달 날 사람 분명히 생기니까 걱정하지 마. 그리고 크리스마스 파티에 부러워하지 말고 뛰어들라고! 우리 친척 아저씨도 그래서 사십이나 되어서야 운명적 사람을 만났다던 걸.”
“사십이 되어도 못 만나면?”

막상 지금까지 그들이 살아온 두 배의 세월을 생각하기란 까마득한 일이었다. 버키는 말 그대로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나잇대의 이야기라 할 말을 잃었다. 버키가 어물거리자 스티브는 다시 뺨을 차가운 식탁에 붙였다.

“아무도 없는 집에 돌아와서 전등 켜고, 난로에 불붙이고 살겠지……. 누가 그 뒤에 들어와서 기뻐하리라는 희망도 없이.”

그 후로도 스티브의 기분은 내내 저조했다. 반 년간 바라보기만 했던 상대에게 냉정하게 차였기 때문이고, 이 역시도 몇 번째 반복된 일이었다. 한 번도 달콤한 기류가 생겨난 적이 없었다. 마침내 버키가 뭔가를 생각해내고 노트 한 장을 조심스럽게 접어 찢어내기 전까지 스티브의 저조한 기분은 나아지지 않았다.

“스티브, 일어나 봐.”
“왜.”
“야, 우리 사십이 되어도 결혼을 둘 다 못했으면 혼자 살지 말고 혼인증명서 시청에 내고 같이 살자.”

이건 또 어떤 헛소리인가 하며 스티브도 간신히 고개를 들었다. 버키는 반대편의 의자에 심지어 연필도 아닌 펜을 들고 비장한 얼굴로 앉았다.

“무슨 소리야?”
“나도 혼자 살기 싫거든. 그렇다고 가족하고 계속 살지도 않을 거 아냐. 그러니까 둘 다 열심히 파트너를 찾아보다가 사십이 넘어서도 없다면 혼인증명서 내고 같이 살자.”
“그건 그냥 같은 하숙인 같은 건데 굳이 혼인증명서를 낼 필요가 있어?”

스티브가 콧방귀를 뀌며 대꾸했지만, 이미 그런 식으로 진지하게 생각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버키에게 말린 셈이었다. 버키는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당연하지! 만약에 혼인증명서를 내지 않는 그냥 같은 하숙인이면, 그래, 평소엔 쪼끔 괜찮을 지도 모르지. 그런데 각자 친척이나 친구가 크리스마스 때나 추수감사절 같을 때 초대한다고 생각해 보라고. 그냥 같은 하숙인이면 가족이 있다고 거절할 수 없잖아! 한 명이 그렇게 가 버리면 남은 사람은 또 혼자 있어야 한다구.”

말렸다. 스티브 로저스는 그 소리에 확실하게 말려들었다. 1934년, 아직 동성 결혼이 법으로 제정되기엔 아직 먼 시기, 그래서 스티브 로저스는 오히려 다른 생각 없이 순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네?”

버키는 진지하게 노트에 칸을 나누고 쓰기 시작했다. 자신의 이름과 성, 생년월일 따위의 인적사항을 적은 버키가 이제는 스티브에게 묻기 시작했다. “어머니 이름은? 아버지 이름은? 출생지? 이전 혼인경험은?” “제대로 짝을 만났는데 이혼하고 너하고 결혼을 또 하라고?” “사별도 있을 수 있거든?!” “지금 저주하는 거야?”
그리고 버키가 거침없이 공증인 진술 부분까지 흥얼거리며 써내려가자 스티브는 이제 약간 의심했고, 결혼 후 이름은 굳이 안 바꿔도 되겠지만 적어야지 하는 식의 말까지 나오자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런데 넌 어떻게 혼인증명서에 뭘 써야 하는지 그렇게 잘 알아?”
“그러니까 어…….”

버키가 처음으로 어물거렸다. 스티브는 팔짱을 끼고 의자에 등을 기댔다. 낡은 의자는 가벼운 스티브 로저스를 싣고서도 삐걱거렸다.

“많이 써봤냐? 그렇게 많이 써보셨는데 사십 될 때까지 내 차례가 있을지 모르겠네?”
“뭐 공증인 없으면 무효니까 장난삼아.”
“흐… 음….”

마뜩찮다는 듯이 스티브 로저스는 버키를 노려보았다.

“이건 꼭 지킬 테니까 걱정 말라고. 자, 서명 해, 서명.”

버키가 넉살좋게 웃으며 재빠르게 무언가 덧붙여 쓰고 펜과 종이를 넘겼다. 스티브는 볼이 부어 받아들어 읽었다.

“스티브 그랜트 로저스와 제임스 뷰캐넌 반즈는 사십 세가 되어도 혼인을 이루지 않았을 때 결혼하기로 이 자리에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공증합니다……. 어휴, 거창하군.”
“하나님이라는 공증인 있으니까 이건 괜찮지?”

버키가 그렇지? 라고 말하는 강아지처럼 고개를 갸웃하며 귀엽게 웃었다. 스티브는 저런 부분이 여자 아이들이 버키를 좋아해서 안달내게 되는 부분이라고 알 수 있었다. 스티브는 마침내 아직 상상하기 힘든 미래의 언젠가까지 버키와 함께 있다면 자신도 썩 그렇게 에비니저 스크루지처럼 늙진 않겠다고 생각하며 혼인증명서에 사인했다.


a
n
d


이어지는 라떼 파트

▷▶▷ “오늘 저녁 같이 먹을래?”


이어지는 란비 파트

▷▶▷ 버키 반즈는 자신의 실종 통보 편지를 처음으로 손에 넣었다.


MCU:CA STUC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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