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들해리


4.



“좋은 아침이에요, 교수님.”

좋은 아침, 포터. 해리는 다시 한번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넸다. 갈 곳을 잃은 듯 사방으로 곱슬대는 머리카락. 해리는 샤를루스를 보고 있으면 그와 자신이 분명히 같은 핏줄임을 알 수 있었다.

해리가 덤블도어 교수님의 소개로 처음 포터 부부를 찾아갔을 때, 샤를루스는 무시무시한 속도로 빗자루를 타고 있었다.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해리를 바라보는 샤를루스를 제외하고, 해리는 포터 부부에게 자신의 사정을 털어놓았다. 물론 미래에서 왔다는 이야기는 쏙 빼고 말했지만, 자신이 포터 가의 사람이며, 오러 일하던 중 (생일날 점심시간에 넘어왔지만 상사와의 점심 후였으니 엄밀히 말하면 업무 시간이었다) 어둠의 마법에 당했는데, 눈을 떠 보니 자신이 살던 시대와 다른 시대가 되었다는 것까지.

 설명을 마친 해리는 긴장한 표정으로 포터부부의 반응을 기다렸다.이런 말을 믿을 사람이 있을까. 포터 부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

‘샤를에게 형이 생겼네요.’
‘이제 동생만 생기면 되겠군.’

포터씨가 자신과 닮은 손님에게 과도한 관심을 보여서 다른 방에 격리해 놓은 샤를루스를 불렀다. 샤를루스에게 해리는 ‘포터 가문 방계 사람이 머글과 결혼하여 머글 사회에서 자라다가 뒤늦게 마법사임을 깨닫고 마법사회로 건너온’ 사연이 있는 8촌 형-정도로 소개되었다. 실제로 해리는 머글인 사촌집에서 자랐고, 11살이 되기 전까지 자신이 마법사인 것을 모른 채 자랐으므로, 완전히 거짓인 설명은 아니었다.어찌 됐든 해리는 포터 가의 사람이 되었다.

“어제는 어떻게 된 거예요?”

가족을 갖는 것은 해리가 가장 소원하던 일이었다. 1학년 때, 부모님의 얼굴을 보기 위해 그의 가장 친한 친구인 론조차 따돌리고 소원의 거울이 있는 방을 몇 번이나 찾아갔던 것만큼. 그렇기에 해리는 샤를루스를 대하는 것이 어려웠다.

“컨디션이 좀 안 좋아서..”


“어디 아파요?”

걱정이 섞인 헤이즐 색 눈동자가 해리를 찬찬히 훑었다. 계단 아래, 해리를 발견하고 인사를 하려던 레번클로 학생들이 걸음을 멈췄다. 그들은 해리와 샤를루스쪽을 힐끔거리며 서로 귓속말했다.

곤란한데. 해리는 특정한 학생을 편애한다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다. 딱히 모두에게 공정한 모범 교수가 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스네이프 교수는 슬리데린 학생들에게 대놓고 점수를 주었고, 덤블도어 교장은 해리를 편애하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해리는 그들과 상황이 달랐다. 리들이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고 있는 때, 그가 한 학생을, 그것도 ‘포터’라는 성을 공유하고 있는 샤를루스를 편애한다는 소문이 나는 것은 곤란하다.

해리와 눈이 마주치자 레번클로 학생들은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해리도 그들에게 눈인사를 건넸다. 그때, 샤를루스가 잡고 있던 해리의 망토 자락을 더 세게 쥐었다. 앞으로 끌리는 감각에 해리의 눈동자가 커졌다.

“병동에는 들렀어요?”

병동에는 당연히 들르지 않았다. 자신은 뱀파이어가 되었는데 피를 마시지 않아서 빈혈이 생긴 것이니까.

“이젠 괜찮아.” 복도로 눈길을 돌린 해리의 눈썹이 조금 찌푸러졌다. 레번클로 학생들에 더하여 지나가던 학생들이 이제 대놓고 그들의 모습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들 중에는 초록색과 은색의 넥타이를 학생들도 있었다. 해리는 다시 샤를루스를 바라보았다.

“이만 손을 놔주겠니?”

“하지만 형은..”

“학교에서는 교수님이라고 부르랬지.”

“....”

샤를루스는 입을 다물었다. 헤이즐 색 눈동자가 보내는 무언의 항의를 보냈지만, 해리의 표정 또한 단호했다.

“수업에 가봐야겠는데.”

망토를 쥐고 있던 샤를루스의 손 힘이 조금 느슨해졌다. 선을 긋는 해리의 태도가 불만스러웠지만 샤를루스도 나름대로 눈치가 있었다. 역대 최고의 사고뭉치라는 명성과는 달리, 샤를루스는 의외로 수업을 열심히 듣고-이건 해리의 착각이었다- 교수님들을 존중했다. 해리의 손이 샤를루스의 어깨를 짚고 작게 속삭였다.

“걱정해줘서 고마워.”

해리의 망토 자락을 쥐고 있던 손이 스르르 풀어졌다. 해리는 샤를루스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주고, 그를 지나쳐 큰 보폭으로 걸었다. 수업준비도 못했는데, 지각까지 하면 곤란하다.

저학년 수업이니까 무장해제 마법이면 되겠지?

계단을 오르며 해리는 수업을 구상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샤를루스는 복잡한 표정으로 해리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

말포이 가 사람답게 아브락사스는 유난히 눈치가 빨랐다. 눈치와 빠른 두뇌 회전의 조합으로 말포이 가 사람들은 위기를 모면하기도 했지만 굳이 알 필요가 없는 것을 혼자 알아차려서 곤혹을 겪기도 했다.

호그와트 입학 후 학년이 오르면서 아브락사스, 오리온, 리들은 자연스럽게 어울렸다. 처음으로 셋이 아침을 먹으러 연회장에 등장한 날이었다. 주위가 소란스러웠다. 오리온은 주위가 어떻든 관심이 없어 보였고, 아브락사스는 시선이 모이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아브락시스는 자신의 맞은편에 앉은 리들에게 눈길을 돌렸다. 리들의 인상이 미미하게 찌푸려져 있었다. 그는 연회장 한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였다. 리들의 안광에 붉은빛이 번뜩였다. 그 광경을 목격한 아브락사스의 몸에 전율이 흘렀다. 얼음물을 끼얹은 듯 했다. 옆에 앉아있던 오리온이 “너 감기 걸렸냐?”라고 물었다. 아브락사스는 고개를 저었다.

“다음부터 조금 늦게 나오자.” 아브락시스가 조금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왜?” 오리온이 물었다.

“시끄러워서 입맛떨어져.”

예민하기도 하네. 오리온은 감자를 찍으며 말했다. 네 목숨 살려준거다, 멍청아. 아브락사스는 오리온을 차가운 눈으로 보다가 다시 리들을 보았다. 예고 없이 눈이 마주쳤다. 움찔 몸이 떨자 오리온이 너 진짜 감기냐? 라며 멍청한 질문을 했다.

리들의 검은 눈동자가 아브락사스를 말없이 쳐다보고 있었다.

“다 먹은 거야, 리들?” 아브락사스가 물었다. 붉은빛은 연회장 불빛이 반사된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

리들의 손이 다시 움직였다. 초상화 속 그림 같은 정갈한 움직임이었다. 그는 알려지지 않은 순수혈통 자제인 것이 틀림없다고, 아브락사스는 생각했다.


*


“포터 교수, 아침부터 인기가 좋네.”

포터 교수는 그의 교무실 앞 계단 난간에 종이 더미를 얹어놓고 다소 멍한 표정으로 계단 아래를 보고 있었다.

아브락사스가 미간을 찌푸렸다. 학생들이 그에게 인사를 건넬 때마다, 포터 교수는 손을 가볍게 흔들며 응대하고, 다른 손으로 성의 없이 종이 더미를 지탱했다.

종이를 떨어뜨려도 마법으로 정리할 수 있겠지만, 꼭 저렇게 불안한 자세로 있어야 되나.

“오, 뿔 달린 사슴한테 붙잡혔어.”

오리온은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계단 위의 풍경을 중계했다. 저번 수업시간에 리들이 포터 교수에게 관심이 있다는 것을 확인받고 저러는 것일 터였다. 아브락사스도 리들의 반응이 궁금하긴 했지만 위험을 무릅쓸 정도는 아니었다. 수업이 있으면 수업이나 하러 갈 것이지 왜 저기 서있는 걸까. 아브락사스는 그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리들의 표정을 살폈다. 리들은 입가는 엷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미친, 쟤 뭐하냐 지금? 자기가 진짜 사슴인 줄 아는 거 아냐?”

오리온이 황당하다는 듯 말했다. 샤를루스 포터가 포터 교수의 옷을 붙들고 눈빛 공격을 시전하고 있었다. 포터 교수는 난감한 표정으로 뿔난 사슴을 달랬다.

못 봐주겠네. 아브락시스가 고개 설레설레 저었다.

그러다가 그는 보았다. 리들의 눈썹이 살짝 모아졌다가 풀어지는 것을. 갑자기 몸에 싸늘한 기운이 돌았다. 문득 리들의 눈이 붉은빛으로 번뜩였던-조명이 반사된 것이리 생각하지만- 때가 떠올랐다. 그대로 두면 좋지 않은 일이 생길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아브락사스는 재앙의 씨앗을 머금은 구름이 점점 짙어지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다.

“쓸데없는 중계는 그만둬.” 아브락시스가 말했다. 그러나 오리온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중계에 해설을 덧붙였다.

“크, 저럴 줄 알았지. 부담스러운 눈빛 공격이 역효과를 불러일으켰어. 포터 교수가 사슴을 버리고 가버리는군.”

오리온이 말한 대로였다. 사슴을 상대하다 지쳤는지 포터 교수가 포터를 교무실 앞에 내버려둔 채 혼자 계단을 올라가고 있었다.

“수업에 늦는 건 사양인데.” 리들이 입을 열었다.

“그래, 가자.”

오리온도 흥미를 잃은 듯 발걸음을 옮겼다. 폭풍을 몰고 올듯한 구름은 증식을 멈춘 것처럼 보였다.


*


리들의 하루는 비교적 단순했다. 연회장에서의 식사, 수업, 도서관. 기숙사에서 조차 책을 들고 있지 않을 때가 적었다. 이미 교과서를 통달한 그가 수업을 열심히 듣는 건 질문할 점을 찾기 위해서였다. 딱히 궁금한 점이 없더라도 그 절차는 필수였다. 교수들과 친밀한 관계를 형성해두는 편이 여러모로 학교 생활을 하는데 여러모로 이로웠기 때문이다. 

리들은 입학 때부터 덤블도어를 제외하고 차근차근 교수들의 신뢰를 얻어왔다. 포터 교수마저 자신에게 신뢰의 눈길을 보내왔다. 학년이 오를수록 리들은 다른 중요한 일을 위해 교수들과의 면담 시간을 줄여나갔다. 그래서 눈치채는 것이 늦어졌을지도 모른다.

자신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사뭇 달라졌다는 것을.


*


도서관에 들어선 리들은 익숙한 뒷모습을 보았다. 살짝 벌어진 입술을 검지로 누른 채 책장을 살피고 있는 그는 이상하리만큼 자신의 관심을 끌었다. 리들은 잠시 벽에 비스듬히 기대서서 상대의 모습을 찬찬히 감상했다.

포터 교수는 전날과는 달리 머플러를 두르고 있지 않았다. 대신 니트 가디건을 걸치고 있었는데, 연갈색 가디건은 토끼를 연상시켰다. 팔에는 여러 책들과 함께 실내로 들어오면서 벗은 듯한 재킷이 걸쳐져 있다.

리들의 눈이 가늘어졌다. 타이는 느슨하게, 재킷은 구색을 맞추기 위해 들고 다니다가 이따금 걸치는 정도-가 포터 교수의 드레스 코드였다. 스캔을 끝낸 리들이 긴 다리를 움직였다.

책장으로 간 리들은 그의 시선이 닿은 책을 정확히 골라 빼냈다.

“마법약도 연구하시나요?”

아. 돌아보는 해리의 입술사이로 짧은 감탄사가 나왔다.

“잠깐 찾아볼 게 있어서.”

해리는 몸을 돌려 자신을 내려다보는 리들을 시선을 마주했다. 이번 학기에 확실히 그는 키가 부쩍 자랐다.

그래서일까. 최근 리들의 모습은 해리가가 비밀의 방에서 마주했던 ‘톰 리들’과 겹쳐 보였다. 근거 있는 불안함에 평소보다 빨리 뛰는 심장을 애써 외면하며 해리가 미소를 지었다.

“필요한 책이니? 그럼 가져가도 괜찮단다. 난 다음에 보면 되니까.”

리들의 눈이 자신이 꺼내 든 책 제목을 훑었다. <상급 마법약 연구>. 관심 있던 분야는 아니었지만, 리들은 책을 챙겼다. 리들의 시선이 해리의 팔로 옮겨갔다.

“그 책들 전부 빌리실 건가요?”

“응, 그러려고 하는데.”

해리가 대답했다. 리들은 해리가 들고 있는 책들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혹시 이중에 더 필요한 책이 있니? 5학년 수업 중 참고가 될만한 자료는 없을 것 같은데…”

해리가 고개를 기울이며 묻자 리들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책을 들어다 드릴까 해서요.”

감사의 뜻으로요. 그의 대답에 해리의 눈동자가 커졌다.

먼저, 작은 호의를 보인다. 떠받들어지는 상대가 쓸모없는 우월감을 느끼는 동안, 리들은 그에게서 원하는 정보를 차근차근 빼낸다. 비밀을 공유할수록 상대는 점점 더 리들을 신뢰하며 그의 의도적인 친절에 크게 감동한다.

다소 창백한 안색과 옷차림으로 짐작해보건대, 포터 교수는 아직 몸상태가 좋지 않음이 분명했다. 어제 일로 경계가 삼엄해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일이 쉽게 돌아가는 것 같았다.

“고맙기도 하지...”


해리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리들은 책을 건네받으려 손을 내밀었다. 그런데, 해리가 리들의 도움의 손길을 저지했다.

“이 정도는 괜찮아. 운동하는 샘 치면 되니까.
“하지만...”

리들이 해리 쪽으로 몸을 숙이며 말하자 해리는 반걸음 물러섰다. 경계당하고 있는 건가. 리들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전날 책장 쪽으로 몰아서 피가 흐리는 손을 들이댔으니 그럴 만도 하지만, 피하려고 했다면 인사를 건넬 때 피했을 터였다. 왜 지금?

그때 해리의 시선이 아래로 향했다. 리들도 그의 시선을 따라갔다.

손?

리들이 왼손을 살짝 움직였다.

“손은 괜찮니?”

“....”

해리의 질문에 리들은 잠시 말을 잃었다. 자신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의도적인 낸 상처였고, 상대로 그것을 알고 있었다. 무슨 의도로 물어보는 것인지 짐작할 수가 없었다.

“병동에는 가봤어?” 해리가 다시 물었다.

“....”


여기저기 잘 빠져나가는 작은 뱀 같으면서도 가끔 이렇게 맹탕 같이 구는 때가 있다고, 리들은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아침에도 계단에서 바보같이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던 것 같은데.

“리들?” 해리가 대답 없이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리들을 의아하게 올려보다가, 들고 있던 책을 책장 빈 공간에 내려놓았다. 실례. 그리고 다른 손으로 눈에 밟히던 손을 덥석 잡았다. 움찔 떨리는 손을 수색꾼답게 두 손으로 포박한다. 큰 상처가 아닐 것을 알지만, 해리는 교수로서 학생의 신변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해리는 자신의 손보다 한 마디 정도 큰 손을 들어 올려 꼼꼼히 살폈다. 상처는 깊지 않았다. 마법으로 치료하기보단 약을 발라 두는 편이 좋겠지. 깊지는 않더라도 하얀 손과 대비되는 붉은 선에 마음이 좋지 않았다.

“아프니? 보기엔 괜찮은 것 같은데…”

아끼던 도자기에 흠이 생긴 것 같았다. 해리가 상처 주위의 살을 쓸었다.

“손은 괜찮아요. 하지만 교수님 말대로 병동에 한번 가보는 것이 좋겠네요.”

 리들이 살짝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그러렴.”

해리가 손을 놓자, 리들이 몸을 틀어 길을 내주었다. 해리는 한쪽에 놓아두었던 책들을 들고 통로를 지나갔다. 그는 책을 대여하기 위해 사서 부인에게 가면서 리들 쪽을 한번 되돌아보았다.

 리들은 해리가 서 있던 책장에서 책을 살피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벌써 마법약에 관한 책이 몇 권 들려있었다. 해리의 고개가 살짝 기울어졌다.

‘슬러그혼 교수님 마법약 숙제가 그렇게 많았었나?’

“포터 교수님, 서명이요.”

사서 부인이 해리가 빌릴 책들을 확인하고 양피지를 건넸다.

‘파티와 술을 좋아하는 교수님인 줄 알았는데...’

 슬러그혼 교수님은 의외로 수업에 열정이 있는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해리는 사서 부인이 건넨 양피지 위로 깃펜을 움직였다. 서명을 완료하자 대여 목록이 있던 책들이 빛나면서 첫 번째 페이지에 붙어있는 대출 명단에 해리의 이름이 새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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