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덜덜 떨리는 손은 땀범벅이라서 자꾸만 미끄러지는 총을 수십 번 고쳐 잡았다. 딱딱 소리를 내며 이가 부딪히는 바람에 계속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제발, 한 번만. 땀이 비 오듯 흘렀다. 긴 속눈썹 끝에도 땀방울이 매달려 눈을 깜빡일 때마다 따가웠다. 마침내 눈을 질끈 감고 있는 힘을 다해 방아쇠를 당겼다. 총을 쓰는 것은 처음이었다. 이 손에 평생의 시간이 잡혀있었다. 살면서 이처럼 무거운 물건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이 작은 물건은 너무 차가웠고 무서웠다. 더 이상 망설였다가는 결국 이번에도 실패할 것이 분명했다. 눈을 뜨지 않을 생각이었다. 총에 맞은 사람이 어떻게 되는지 몰랐다. 보게 된다면 그대로 주저앉을 게 분명했다. 총알은 하나뿐이었다. 사람을 죽인 주제에 그것을 보고 덩달아 죽고 싶어 하는 마음을 실현시킬 방법이 없었다. 그러니 보지 말아야 했다. 스프링이 억셌다. 지금껏 무엇을 죽여본 적이 있나 떠올려 봐도 생각나는 것이 없었다. 꽃이라도 한 송이 꺾어볼 걸. 늘 그늘진 곳만 골라 걷던 삶에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힘이 있을 리가 없었다. 방아쇠에 걸린 손가락에 힘을 줬다. 눌러. 제발, 한 번만. 쥐가 날 지경이었다. 손목이 저릿했다. 너무 떨어서 총구가 올바른 곳을 겨누고 있기는 한지 걱정이 됐다. 할 거야. 해야 해. 할 거야. 그런데 잠시만… 마침내 저도 모르게 방아쇠를 모두 당겼을 때, 반사적으로 눈이 떠졌다. 그리고,


틱.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 아. 아….”


힘없이 철컥거리는 소리와 함께 언제부터 눈을 뜨고 있었던 건지 모를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지금껏 억지로 씹어 삼켰던 두려움이 비로소 파도처럼 밀려왔다. 어, 어, 어, 귀신을 본 사람처럼 억억거리며 손을 끌어 당겼다. 손바닥이 하얘질 정도로 꽉 쥐고 있어서 굳어버린 손가락이 풀리지 않았다. 뜨겁게 달궈진 쇳덩이를 집은 것처럼 손이 아팠다. 털어내려 해도 떨어지지 않았다. 아니야, 아니에요. 당신은, 언제부터. 그는 죽지 않았지만 죽을 만큼 상처 받은 사람의 눈을 하고 있었다. 애써 고르던 숨소리는 이제 상관없다는 듯 거칠어졌다. 눈물과 땀으로 범벅된 얼굴로 눈을 감았다. 아니에요, 아니에요.


“…크레덴스….”


아니에요, 아니에요. 아니야, 아니에요. 소금기 가득한 목소리로 그가 입을 열자 나락으로 떨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악! 비명을 지르며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는 벌게진 얼굴로 울고 있었다. 크레덴스… 네가, 정말, 나를. 아니야, 아니에요. 아니에요, 아니에요.


“오늘은 성공했어야지.”

“아, 아….”

“오늘만큼은, 날 죽였어야지.”

“아니야, 아니에요. 아니에요. 아니에요….”

“크레덴스… 제발….”


그는 이미 울고 있었다. 두 손에 얼굴을 묻은 채 나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지만 나는 더 이상 그를 안아줄 수 없었다. 손가락 사이로 흘러나오는 억눌린 울음소리를 들으며 정신이 아득해졌다. 나에게 밀려온 파도는 어느새 이 공간을 가득 채워 그의 어깨에까지 닿았다. 정신없이 들썩이며 아픈 소리를 냈다. 헉, 허억, 헉, 하고 자꾸만 헛숨을 쉬었다. 폐에 물이 차는 기분이었다. 나는 수영을 할 줄 몰랐다. 힘주었던 팔에 피가 돌고 땀이 흐르자 방아쇠에 감겨있던 손가락이 풀렸다. 그것은 빈약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 나는 벌을 기다리는 아이처럼 그 자리에 서서 손을 끌어안은 채 울었다. 그는 한 손으로 아무렇게나 눈물을 닦고 자리에서 일어나 그것을 주웠다.


“크레덴스, 이번에는 날 죽여줬어야지.”

“헉, 허억, 아니야, 아니에요.”

“넌 아무 것도 몰라.”

“아, 아, 아…!”

“총을 받은 날 탄창부터 확인했어야지.”


코앞까지 다가와 울며 말하는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두 손을 모아 비는 것밖에 없었다. 나는 그 말들을 듣고 싶지 않았지만 그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 것 같았다. 나는 총을 써본 적이 없었다. 내 손바닥보다 조금 더 큰 이 물건의 무게는 내 이성을 마비시켰고 처음부터 의심할 여지 같은 것은 내게 없었다.


“빈총이야.”

“어, 아, 아.”

“빈총이라고! 크레덴스.”


그는 일그러진 표정으로 아프게 말을 이었다. 제발요. 그만 해요. 아니에요, 안 들을래요.


“빈총이라고…, 크레덴스. 처음부터 총알은 없었어….”


들려? 그는 내 가슴에 손을 얹고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옷자락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아팠다. 마침내 엉엉 소리 내서 우는 그에게 손을 댈 수가 없었다. 아팠다. 아악, 갈라진 목소리로 불규칙하게 소리를 지르는 그를 보며 함께 울었다. 널 사랑해. 사레가 들려 한바탕 기침을 한 그가 말했다. 아니에요, 아니에요. 미안해요, 저는, 아니에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열두 번이야.”

“미안해요, 미안해요….”

“네가 나를… 죽이려 한 게, 열두 번이고, 응? 크레덴스….”

“미안해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아니, 아니에요.”


말하지 말아요, 그만 해요, 아니에요. 제발요. 아니야, 듣기 싫어요, 그만 해요. 아파요. 미안해요. 울지 말아요, 아니에요. 아니야, 울지 말아요. 눈을 감고 계속 입속말로 중얼거렸다. 미안해요, 미안해요. 그는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을 어루만지며 말을 이었다.


“오늘이 처음이야.”

“스캐맨더 씨, 미안…, 미안해요, 미안해요.”


그동안 열두 장의 달력을 찢었다. 시간을 챙기는 것은 내 몫이었다. 네 번의 계절을 함께 보냈다. 그가 어딘가에서 얻어온 씨앗을 함께 심었고 때가 되면 물을 주었다. 제법 그럴듯하게 자라난 가지를 함께 쳐냈다. 그와 있으면 행복했으나 나는 그런 감정을 느끼면 안 되었다. 매달 말일이 되면 나는 두 가지 생각을 했다. 그리고 번번이 잠든 그의 방에 들어가 달빛을 피해 서서 지금처럼 총을 들고 서있었다. 열두 번이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잊어본 적이 없었다. 달력을 한 장씩 찢을 때마다 종이에 베였다. 1, 2, 3, 4, … 하나씩 늘어가는 숫자를 보는 것이 두려웠다. 손가락은 열 개였다. 나중에는 손가락이 부족했다. 한 번만, 다섯 번만, 정말로 열 번만. 미루고 미루었던 것들은 내가 담을 수 없을 만큼 몸집을 불려 커졌다. 말도 안 되는 변명거리들로 허둥지둥 피해갔던 것들은 결국 꼬박 열두 번의 달을 보게 해줬다. 오늘이 처음이었다. 이제껏 하지 못했던 일을, 더 이상 미루지 못하는 그 일을, 오늘 정말로 했다. 하려고 했다. 1년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처음부터 총알은 없었다. 그 누구도 죽지 않아도 됐었다. 하지만 나는 이미 그를 죽였다.


“나는 지금 이렇게 살아있는데.”

“…말하지 말아요…, 제발….”

“…왜… 죽은 것 같지, 크레덴스?”


그가 고개를 들어 눈을 마주쳤다. 지척에서 얽히는 시선이 너무 아팠다. 고개를 돌리고 싶었으나 그와 마주친 시선을 끊어낼 수가 없었다. 마음으로 말하는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미안해요, 미안해요. 할 말이 그것밖에 없었다. 헛헛한 가슴을 쥐어짜내고 싶었다. 그동안 나만 달빛을 피해 숨은 것이 아니었다. 그 또한 달빛이 비추는 자리를 피해 고개를 돌리고 몸을 웅크렸다. 지나온 많은 밤들에 잠들지 못했던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이제 됐어, 크레덴스.”

“미안, 미안해요, 미안해요.”

“모르겠어? 크레덴스. …다 끝났어….”


그는 여전히 울고 있었지만 인연을 잘라내는 목소리는 단호했다. 죄스러운 마음이 들어 더 이상은 울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주변의 공기가 눅눅했다. 바다 냄새가 났다. 미안해요, 미안해요. 안녕히 지내라는 인사말을 건넬 용기가 없었다. 눈물로 사죄할 마음은 더더욱 없었으나 이 순간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이제는 정말 등을 돌려야 하는데, 그와 함께 심은 나무처럼 다리가 박혀 움직일 수 없었다. 마음속에 단단히 뿌리 내리고 있는 그의 존재를 억지로 뽑아냈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입술을 깨물어도 울음소리가 새어나왔다. 나중에는 혀를 깨물었다. 피 맛이 났다. 고장 난 기계처럼 뻣뻣한 몸짓으로 문을 열고 나와 한참을 울었다. 나무로 된 문 뒤에서 내 것과 같은 울음소리가 들렸다. 더 이상 함께일 수 없었다.


탕-!


흐느낌이 멈추고 잠깐의 정적이 흐른 뒤 들어본 적 없는 소리가 들렸다. 아니야, 아니야. 그 뒤로 이어지는 둔탁한 소리에 눈물이 멎었다.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제발. 당황한 탓에 자꾸만 헛손질을 했다. 수천 번 열어본 문인데 열리지가 않았다. 그는 문을 잠그는 일이 없었다. 언제든 와도 돼. 내 방을 따로 내주면서도 그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알겠다고 했지만 한 번도 그의 방을 찾은 적이 없었다. 오로지 지난 열두 번의 밤에만 나는 이 문을 열었다. 그가 모를 줄 알았다. 몇 번이고 내게 기꺼이 목숨을 내주려던 나의 연인은 처음으로 문을 잠갔다.


열두 번의 죽음과, 열세 번째 죽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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