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 시간은 아직 멀었는데, 웬일로 이사장님이 일찍 출근하셨다. 비상근인데다가 판공비도 적어서 그럴 필요 없는데도 이사장님은 누구보다 열심인 분이다. 그래서 내가 끌려 들어왔긴 했지만.

새학기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학생들이며 학교 행사며 학교 일로 바빠서 치어 죽을 지경이라며 한탄을 늘어놓던 이사장님은 시간이 흐르자 결국 내 옆구리를 찔렀다. 아마도 다른 신세 한탄은 본론을 들어가기 전의 아이스 브레이크 같은 것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대표한테 전화 없었어?”

“남차장님한테도 없었어요.”

“저번에 왔을 때, 남차장이 꼼꼼하게 열심히 사진 찍더라고 안 했어?”

“그랬죠. 제가 찍어서 보낸 것까지 따지면 사진만 수백 장은 될 걸요?”

“근데 왜 전화도 없대?”

“그러게요. 우리 이번에는 해성 건축에 기대하지 말고 부분적인 리모델링으로 계획을 수정하는 게 어떨까요?”

 

이사장님이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작년 내내 해성의 도움으로 성과가 많았고 이사회에서 좋은 평가도 받았지만, 올해도 해성이 꼭 작년처럼 나오리라는 법은 없었다.

재단에 들어오는 후원은 늘 들쭉날쭉했고, 여러 가지 사회적인 상황에도 영향을 많이 받았다. 최근 경기 악화로 인해서 개인 후원이 줄고 있던 참에 해성이 구세주가 되었던 터라 예산 계획에서 해성이 빠지면 리모델링 계획은 전면적인 수정이 불가피했다. 그러나 우리는 위기가 아닐 때보다 위기일 때가 더 많았고, 어려움을 버티고 돌파하는 것은 늘 익숙한 일이었다.

 

“지난번 장례식장에서 만났을 때 김대표가 쉼터 리모델링 계획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회사에서도 논의 중이라고 했는데….”

“논의한 결과가 별로 안 좋았나 보죠.”

“네가 장례식에 안 가서 김대표가 빈정 상해서 그러는 거 아니야?”


가자미 눈을 뜨는 이사장님의 표정에 헛웃음이 나왔다. 빈정은 내가 상했거든요. 김대표가 오지 말라고 했다구요.


“훗, 저 따위가 무슨….”

“김대표도 널 엄청 챙겼잖아.”

“저를요? 작년에 수업 때마다 거의 사람 취급도 못 받았는걸요?”

이어지는 내용이 궁금하세요? 포스트를 구매하고 이어지는 내용을 감상해보세요.

  • 텍스트 3,034 공백 제외
  • 이미지 5
300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