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캐그니가 그걸 받아들인 날이다. 글 쓰는 걸로 돈 못 번다. 나는 조앤 케이 롤링이 아니다. 물론 그 사람을 좋아할 순 있지. 그 사람이 덤블도어가 게이라는 설정을 마지막의 마지막에 독자들을 의식하면서 집어넣었다며 찌질하다고 비난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난 망할 조앤 케이 롤링이 아니다. 

캐그니는 세 시간 전에 아파트 경비 조앤에게서 빌린 담배를 트레이닝 복 주머니에서 꺼냈다. 몇 개월 간 묵은 과자 부스러기와 뒷면에 먼지가 잔뜩 붙은 분홍색 포스트잇이 담뱃개비와 같이 나왔다. 캐그니는 그걸 가만히 바라보다가 담뱃개비에서 떼서 불을 붙이며 베란다로 자리를 옮겼다. 싸구려 담배 냄새가 오줌 자국 가득한 후미진 골목을 채웠다. 실금이 간 3층 창가에서 캐그니는 곰곰히 생각에 잠겼다. 이곳이 아닌 어딘가로 가고 싶다. 잠깐 쥐기만 해도 페인트 껍데기가 묻어나는 쇠창살 베란다가 지긋지긋했다.그녀의 길쭉하고 번쩍거리던 인공 보석 파츠가 달려 있던 네온 핑크색 손톱은 몇 주 동안이나 맨지르르하고 짧게 깎여있었다. 캐그니는 누가 보면 레즈비언이라도 된 줄 알겠어, 하고 생각했다. 그러고는 그 생각을 취소하고 싶었다. 누군가 그 말에 상처를 입으면 어떻게 할 거야, 캐그니. 혀 끝에 칼이라도 달고 다녀? 그게 망할 피터 자식이 마지막으로 한 말이었다. 멀대같은 놈.  

캐그니는 왓패드에 들어갔다. Whom 이랑 Who 도 구분 못하는 얼빠진 자식들이 마구 팬픽을 써 올리는 공간에서 어떤 글들은 6만 조회수가 넘었다. 캐그니에게 따르면, 애인이랑 한번도 손 잡아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써 본 것 같은 말도 안 되는 섹스 장면이 난무하는데 어떻게 해서 그렇게까지 인기가 좋을까 하는 의문이 생기게 되는 건 인지상정이다. 몇 시간 동안 왓패드 인기 시리즈를 탐독한 캐그니는 나름의 교훈을 얻었는데, 서사의 결핍은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함과 동시에 전개 속도를 빠르게 만들기 때문에 집중력이 커진다는 것이 흥행의 비결이었다. 그리고 많은 독자들이 성적인 데 목마른 사람들이라는 것도 한몫하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제 캐그니의 소설을 읽어 줄 만한 주위 사람은 조앤뿐인데, 그는 3개월 전 나 사실 중졸이라서 니 소설 이때까지 읽었다고 한 것 다 거짓말이었다고 솔직하게 고백했다. 울상인 더벅머리 조앤 앞에서 어떻게 더 타박할 수 있있으랴. 그날 캐그니는 알았다고 하고 침실에 들어와서 벌렁 뻗었고 근처 코리안마트에서 터무니없이 덤터기를 씌운 소주를 한 병 사다가 방 안에서 혼자 다 마셨다. 다음 날 옆집에 사는 꼴같잖은 마이키가 누런 런닝만 입은 채 문을 부술 듯이 두드렸다. 캐그니는 문 밖을 내다보고 마뜩찮아하며 문에 걸어잠근 체인을 옆으로 눌렀다. 징그러우리만치 큰 이두박근에 잔뜩 힘을 준 마이키는 치토스 가루가 붙은 겨드랑이 털을 마음껏 뽐내며 어제 네가 노래를 불러대던 다이한이 누구냐고, 외로우면 우리 집에 더블베드가 있는데 같이 눕지 않겠냐는 제안을 해 댔다. 캐그니는 이렇게 쏘아붙이곤 문을 쾅 닫았다. 너 스프링 튀어나온 매트리스 위에서 자잖아. 

다이한은 소설 수업의 TA였다. 외국인이 영문학 수업의 TA라니 정말 희귀하지. 아시안 아메리칸도 아니고 말이지. 캐그니가 호기심에 차서 말하면 피터가 요구르트로 싼 초콜릿을 까 먹으며 웅얼거렸다. 그래. 네가 맞아. 다이한은 뒷머리를 언제나 깔끔하게 하고 다녔다. 묻는 말에 대답만 하는 조용한 사람이었다. 그는 왠지 다른 한국인들-주로 경영학을 공부하는, 포마드 머리를 하거나 뿔테를 쓰는 사람들-과는 멀찍이 떨어져서 지내는 듯 했다. 캐그니는 던롭대학교 한국인 총회 페이스북 페이지에 들어가서 2개월 전에 학교 풀밭에서 찍은 단체사진도 확인해 봤는데, 다이한의 얼굴은 틀림없이 거기 없었다. 조앤한테도 그렇게 말하자 조앤은 니가 아시아인들을 구분한다고? 하며 놀라워했다. 캐그니는 눈을 위로 치켜뜨고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그리고 캐그니는 비밀리에 이루어진 5년간의 방탄소년단 팬질에 공을 돌렸다. 

다이한은 주로 과제의 오타를 지적해 주는 사소한 일에서부터 에세이를 채점하는 조금 덜 사소한 일들을 맡아 했다. 그리고 그가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은 가끔 로웬 교수를 대신해 수업을 맡는 거였다. 그는 조그만 마이크를 착용하고 허리춤엔 핸드백같은 스피커를 단 채로 수업에 들어왔다. 스스로도 목소리가 조금 작다는 걸 알았던 것을까? 그가 문을 들어서면 잔뜩 긴장해 있다는 것이 경직된 어깨에서부터 드러났다. 그렇지만 다이한이 자신 있는 이야기를 하면서 수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 이야기는 평평한 밀가루 빵에 크림 치즈를 바르는 것처럼 아주 부드럽게 진행되었다. 그는 이야기를 격정적으로 끌고 가기도 하고 드라마틱한 부분에서 멈출 줄도 알았다. 역사적으로 불의했던 부분에서는 화낼 줄도 알았고 그걸 해결하려고 노력한 사람들을 묘사한 소설들의 숭고함을 학생들에게 전달할 줄 알았다.그는 모르는 부분은 학생들에게 모른다고 고백했다. 학생들은 가볍게 야유했지만 그들도 다이한을 좋아했기에 그건 농담조에 가까웠다. 

중간고사 날 채점한 페이퍼를 받아들자마자 캐그니는 이번에 다이한이 채점했다는 것을 알았다. 로웬 교수는 멋들어진 필기체를 쓰지만 다이한은 직사각형에 딱 들어갈 것 같은 필체를 쓰기 때문이기다. 또 다이한의 코멘트는 로웬의 것보다 조금 더 섬세하고 다정했다. 여기를 조금 더 강조한다면, 덩컨의 고조되는 감정을 독자들이 파악하기가 쉬울 것 같네요. 캐그니는 방에 도착하자마자 문을 걸어잠그고 외쳤다. 그럼요! 강조할게요! 강조하고 말고요. 그러자 옆 방에서 마이키가 지랄을 하기 시작했다. 입 닥쳐! 캐그니는 벽을 발로 찰까 싶었지만 벽이 무너질까봐 참고 그냥 벽에다가 엿을 날렸다. 캐그니는 다이한의 초록색 펜이 번질까 봐 그걸 벽에다가 압정으로 박아 놨다. 이게 다 뭐야. 다시 중학생이 된 것 같잖아. 캐그니는 왓패드를 읽는 성인의 심정을 그제서야 돈오하며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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