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4. 포기하는 순간]

"저, 전하!"


그녀가 미는 힘에 그는 가볍게 물러 섰다.


"형님, 지금 뭘 하시는 겁니까."

"왜, 나의 아우와 제수씨에게 내 정인을 소개하고 있지 않나."

"형님!"


프리가 큰 소리를 냈다.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얼굴도 험악했다. 저런 표정을 지을 수 있는 줄은 몰랐는데...


"프리, 됐어요. 괜찮아요..."

"하임..."

"전하, 그간, 강녕하셨던 것 같아 마음이 놓입니다."

"허...!"

"오늘은, 날이 아닌 듯하니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다음에 다시 소개해 주세요."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할 때마다 비참해졌다. 내가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도 생각할 수 없었다.


"실례가 많았습니다."


그렇게 나는 몸을 돌렸다.


"하임, 하임!"


프리가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나는 뒤돌아볼 수 없었다. 지금 뒤를 돌아보았다가는 비참한 이 심정을 전부 들켜버릴 것 같았다.


그렇게 한참을 정신 없이 걸었다. 도중에 별궁은 반대 방향이라는 사실이 떠올랐지만 그 사실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저 걷고 걸어서, 그곳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고 싶었다.


고개를 들고 주변을 둘러보았을 때에는 낯선 숲으로 들어와 있었다.


"여, 여기가 어디지...?"


고개를 돌려 이곳저곳을 살펴보는데 어디쯤인지조차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리고 해가 서서히 지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누군가가 나를 찾으러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할까? 아니, 나를 찾으러 올 사람이 있을까? 생각이 거기에 다다르자 덜컥 겁이 났다. 날은 따뜻해 졌다고는 하나 아직 추웠고, 정말로 이런 곳에서 추위에 떨다가 외로이 눈을 감게 되는 것이 아닌가 걱정이 되었다.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 희미한 기억을 더듬으며 왔던 길을 되돌아 걸어갔다. 그러나 숲은 끝이 보이지 않았고, 점점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고 있는 것만 같았다.


"아..!"


결국 다리에 힘이 풀려 자리에 주저앉았다. 해는 이제 다 지고, 해의 온기를 잃은 밤은 더욱 추워만 졌다.


"후..."


어두운 밤에 움직여 봤자 위험하기만 할 것이라 판단한 나는, 근처에 쉴 만한 곳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러나 자리에서 일어나기 위해 다리에 힘을 주는 순간, 나는 자리에 다시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통증이 느껴지는 오른 발목에 손을 가져다 대니 부어올라 열기가 느껴졌다.


"정말, 되는 게 하나도 없네..."


자리에서 이동하는 것도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자, 참아왔던 눈물이 조금씩 흘러 나왔다. 한 번 나온 눈물은 멈출 수가 없었다.


"흐, 흑.."


눈물을 얼마나 쏟아냈을까. 기력이 모두 빠져 몸에 힘이 전혀 들어가지 않았다.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지금 눈을 감으면 위험하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나는 서서히 감기는 눈을 거부할 수 없었다. 평안한 안온을 바라며, 그렇게 나는 눈을 감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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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도대체 언제 눈을 뜬단 말이냐. 금방 눈을 뜰 수 있을 것이라 말한 지 며칠이 지난 지 알고는 있는 것이냐."

"그, 그것이... 이전에도 이미 기력을 많이 소진하셨던 것으로 보입니다. 분명 머지않아 눈을 뜨실 수 있을 것입니다."

"하... 알았으니 나가 보거라. 이번에는 의원으로서 네 명예 전부를 걸어야 할 것이야."

"예..."


희미한 두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듣기 좋은 무거운 목소리와 겁에 질린 듯한 목소리. 그 중 겁에 질린 사람이 대답을 하고 자리에서 떠나자, 다른 목소리의 주인이 말했다.


"일어나십시오... 제발, 제발..."


방금 전까지만 해도 듣기 좋다고 생각했던 목소리는 혼자가 되자 금세 볼품없이 떨렸다. 그 떨리는 목소리는 마치 방금 전까지 자리에 있던 사람의 것과 닮아 있었다. 도대체 왜? 무엇을 그렇게 무서워 하는 것일까? 그런 생각을 마지막으로 다시 내 의식은 멀어져 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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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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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불어왔다. 형체는 없지만 소리로, 그 온기로, 내 머리카락을 쓰다듬는 장난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그 감촉이 기분이 좋아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렇게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눈을 뜨니 잠을 아주 푹 잔 것처럼 상쾌했다. 이 정신이면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평소처럼 도서관에 갈 생각으로 종을 쳐 란을 부르려 했다.


-턱


"저, 전하...!"


그러나 내가 종을 치기도 전에 란이 방에 들어왔다.


"란, 오랜만이야."


오랜만? 내가 왜 오랜만이라는 단어를 꺼냈을까? 알 수 없었지만 왠지 그런 기분이었다.


"전하.. 전하... 전하....."


란은 계속 나를 부르며 내게로 다가왔다.


"응, 란. 왜 그래?"


그런 란의 태도에 의문이 들었지만, 그 목소리가 절박하게 들려 이유를 물을 수 없었다.


란은 기어코 내 침대 앞까지 와 나를 껴안았다. 그래, 이번에는 정말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품이었다.


"전하, 정말 다행입니다. 제가, 저는... 전하가 정말 어떻게 되시는 줄 알고... 흐,.."

"응, 괜찮아, 란. 나 여기 있잖아. 괜찮아, 괜찮아."


나를 위로해 주는 건 언제나 란의 몫이었는데, 이번에는 내가 란을 위로해 주었다. 참 묘한 기분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란을 토닥이며 침대에서 시간을 보냈다.





하하... 맞습니다. 오늘은 좀 짧지요...? 요즘 공부를 미룬 역풍을 제대로 맞고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습니다... 너무 열심히 놀아버린 제 탓이지요... 다음에는 분량을 꽉 채워 와 보도록 최대한 노오오오력은 해보겠습니다 ㅎㅎ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하고, 금요일도 파이팅!

귀차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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