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바람꽃 - 아이유 들으며 읽으면 좋습니다.


 ‘****’ 부분 학교폭력 트리거 주의


 *

 다성이와 친해지고 난 후에도 박한영 무리는 나를 끈질기게 괴롭혔다. 나와 다성이가 함께 있을 때를 피해 몰래 내게 다가와 얼굴을 툭툭 치고 돈을 뺏어가려 위협했다. 하지만 다성이가 언제나 나와 있으려고 했기 때문에 그 빈도는 현격히 줄어들었다. 다성이는 당하고 있는 나를 볼 때면 늘 자신이 나서려고 했지만 난 일이 커지는 걸 원하지 않았다. 나보다 더 내 일에 흥분하고 나서는 아이가 다성이였다. 안 그런 척하더니 강연수도 여우였다는 소문과 이제 와 친하게 지내자는 아이들의 가식적인 웃음소리가 그런 다성이의 귀에 들어가지 않기만을 바랐다.


 “남다성, 너 안 가?”

 “이거 맛있다, 나 하나만 더 주라.”

 “안 가냐니까? 왜 내 말 일부러 모른 척해?”

 “뭐라고? 잘 안 들리는데?”


 다성이가 생글생글 웃으며 두 손에 얼굴을 괴고 나를 올려다보았다. 다성이는 종종 내가 알바 하는 카페에 들어와 몇 시간을 앉아 있곤 했다. 저녁시간이 되어도 나한테서 눈을 뗄 줄 모르는 저 바보 때문에 얼굴이 따가웠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다성이는 애써 보내는 무관심에 지치지도 않고 한 시간마다 음료와 케이크를 새로 사 먹었다.


 “어머니께서 걱정하셔. 연락은 드렸어?”

 “그런 건 걱정하지 마. 네가 걱정할 일은 나도 안 해.”

 “어차피 끝나도 너랑 같이 못 있어. 빨리 할머니 보러 가야 돼.”

 “...지금도 할머니 걱정돼?”

 “그렇지 뭐. 밖에 혼자 나가지 마시라고 신신당부해 놨지만 또 모르잖아.”


 내 말을 들은 다성이가 내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나와 눈을 맞추고 있기는 했지만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맞히기가 어려웠다. 묘한 시선이 얼굴을 타고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알겠어. 나 갈게.”

 “...어, 어어.”


 내가 말을 꺼내긴 했지만 이렇게 웃으며 순순히 물러나는 다성이 때문에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지금까지는 가라고 하는 내 말에 한 번도 진짜로 간 적이 없었다. 알바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우리 집까지 데려다 주곤 했는데 이렇게 쉽게 자리에서 일어나니 왠지 모르게 섭섭한 것 같기도 했다. 막무가내인 남다성한테 적응이 된 건지....

 다성이는 문을 열고 나가기 직전까지 나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가 입을 쭉 내밀었다가 눈썹을 찡그리는 등 익살스러운 표정을 보여주며 내게 웃음을 주었다. 처음 만났을 때의 남다성 모습은 어디 갔는지 이제는 눈 씻고 찾아봐도 저 아이에게서 무서운 면을 볼 수가 없었다. 나는 다성이에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고 다시 일을 하기 시작했다.


- - -


 **

 오늘따라 내 다음 파트를 맡으시는 언니가 카페에 늦게 오시는 바람에 퇴근 시간도 덩달아 늦어졌다. 안 그래도 요즘 할머니의 증세가 심해져서 걱정이 많은데 집을 비우는 시간이 길어지니 버스를 타고 가는 내내 떨리는 다리를 가만둘 수가 없었다.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올라가는 계단도 최대한 다리를 벌려 두 칸씩 뛰어 올라갔다.

 골목의 은은한 주황빛 가로등이 비춰주는 길을 따라 급히 걸음을 옮겼다. 빠르게 열쇠를 찾아 낡은 대문을 열고 할머니를 불렀다. 평소라면 내 목소리를 듣고 바로 웃는 얼굴로 미닫이문을 열었을 할머니가 오래 보이지 않았다. 가슴이 철렁했다. 좁은 마당을 빠르게 가로지르려 할 때 문을 열고 나온 사람은 나를 깜짝 놀라게 했다.


 “왔어?”


 할머니를 부축하듯 팔짱을 끼고 싱긋 웃는 미소로 나를 맞은 사람은 다성이였다. 시원히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다성이의 짧은 머리와 할머니의 하얀 머리가 푸르르 날렸다. 가슴이 이상했다.


 “어멈 왔어? 난 선생님이랑 놀고 있었어.”

 “할머니....”

 “선생님 엄청 재밌어. 선생님 나중에 또 와요.”

 “당연하죠. 저 자주 올 거예요. 오지 말라고 하셔도 올 거예요.”

 “나 선생님 엄청 좋아.”


 할머니의 말씀에 다성이가 하얀 이를 보이며 크게 웃었다. 다성이의 환한 얼굴이 나는 왜 그렇게 찡했을까. 아무도 나를 알아봐 주지 않는 곳에서 유일하게 내가 나임을 알려주는 지표 같았다.


 “할머니 이제 어멈 오는 것도 봤으니까 주무셔야 돼요. 그래야 착한 사람이죠?”

 “응, 맞어. 선생님 말이 맞어. 나 이제 잘 거여. 어멈이랑 선생님도 빨리 자-”

 “...네. 금방 들어갈게요.”


 할머니는 다성이의 말을 따라 스스로 방 안으로 들어가셨다. 가끔 잠투정이 심해지기도 하시는데 다성이가 얼마나 할머니의 마음을 크게 샀으면 그 한마디에 고분고분 들어가시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다성이가 마당에 우두커니 서 있는 나에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좁디좁은 마당이어서 세 걸음 만에 다성이가 코앞까지 다가왔다. 다성이의 볼이 방긋방긋 솟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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