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흡양도

3. 다정한 죽음을 바라는 이들(3)




기지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최초의 <개>를 제압하는 과정에서 수 번의 번식이 추가로 일어났다. <개들>의 확산 속도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서 이제 누가 사람이고 누가 <개>인지 분간조차 되지 않았다. 그저 누가 사람이고 누가 <개>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무작정 <개>로 보이는 인간들을 살해하는 게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이자 유일한 것이었다. 의무실에서 발생한 <개>가 다른 층에까지 퍼지지 않도록 계단을 통제하러 가는데 위층에서 사람들이 개미 떼처럼 도망쳐 내려왔다.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쫓기기라도 하듯 패닉 상태가 된 채 앞다투어 도망쳤다. 그 꽁무니에는 생존자들을 쫓는 <개들>이 나타났다.

그때 아수라장이 된 의무실에서 총 소리가 났다.

위층에서 내려오는 <개들>을 죽이며 나는 그 총에 맞은 <개>가 걔만 아니기를 빌었다.





“옛날에······ 식수통에 <개>가 빠져 죽은 적이 있었어.” 

“······.”

“처음엔 믿을 수가 없었지. 사람들이 눈앞에서 <개>가 되어가니까······ 그러다가 나중엔 믿을 수밖에 없었어.”

이안의 눈동자가 아주 흐리다. 그가 새카만 아스팔트 위로 무슨 장면을 그리고 있을지 너무도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누구의 것인지 모를 숨이 마구잡이로 흘러나와 이안의 입술 끝에 달라붙는다.

이안을 위로하고 싶었지만 방법을 잊었다. 그래서 그저 현저하게 느려진 그의 발걸음에 맞추어 더디게 발을 내디뎠다.

내가 한참 만에 이안을 바라보았을 때, 그의 왼 얼굴은 아까와 거의 비슷했다. 과거를 회상하는 듯 탁한 눈과 말을 고르는 듯 뻐끔거리는 입술, 그리고 그를 향해 뻗어오는······

“이안!”

퍼뜩 정신이 들었다. 지금은 절망스러운 과거에 매여 있을 시간이 없다. 언제부터 거기에 있었는지 모를 <개>가 이안을 향해 손을 뻗었으나 내가 그를 끌어당기는 게 간발의 차로 더 빨랐다. 덕분에 그가 어정쩡한 자세로 내 어깨에 뒤통수를 묻은 꼴이 됐지만, 그런 걸 일일이 관찰하거나 따지고 있을 시간이나 여유 같은 게 있을 리 없었다.

나는 무작정 이안의 소맷자락을 붙들었고, 그대로 달렸다.

주춤거리며 엇박으로 발을 구르던 이안도 이제 정신이 들었는지 자의로 달리기 시작했다. 달리는 와중에 길목을 막고 있는 <개들>을 피해 왔던 길이 아닌 곳으로 걸음을 틀었다. 민! 두 켤레의 신발이 바닥을 차는 소리, <개들>이 우리를 보고 침을 흘리는 적나라한 소리, 귀를 강타하는 바람이 부는 소리 가운데 있는 이안의 목소리가 파묻힌다. 귓가에 맴도는 <개들>의 신음이 정신까지 파먹기 전에, 일 초라도 빨리 귀를 틀어막아야겠단 생각이 들었지만, 왼손에 든 식량과 오른손에 쥔 이안의 소매 중 놓을 수 있는 것이 없어서 그 모든 소리를 온몸으로 부닥치며 계속해서 달리기만 했다. 

“더 뛸 수 있어?”

“야, 앞에!”

다시 정면을 보는 순간 나에게 돌진한 <개>의 몸으로 시야가 덮인다. 때늦은 후회와 함께 눈이 감기고 큰 숨이 들이쉬어진다.

으아아아악!

다시 눈을 뜬 순간 눈앞을 메운 것은 볼품없이 나무에서 떨어진 <개>와 아스팔트 바닥을 서서히 적시는 <개>의 피,

“괜찮아?”

그리고 이안의 오른손에 들린······

“괜찮냐고.”

“아······ 괜찮아.”

······칼이다. 분명 아까 들른 정육점에 있던.

가판대 너머 도마 한 켠에 놓여 있던 모습이 떠올랐다. 주인의 오랜 부재로 날이 녹슬긴 했지만 정육점보다는 푸줏간이라는 어감에 어울릴 정도로 원체 날카로운 칼이라 그런대로 쓸 만해 보였다. 그 칼에 어깨를 찔린 <개>가 어깨를 감싸 쥐고 입에서 투명한 액체를 쏟아내며 쿨럭인다. 

으아아아아악!

적나라한 신음이 귓전을 때린다. 그 비명이 길어지기 전에 <개>의 입에 신발을 쑤셔넣은 이안이 다시 칼을 높이 빼들고 <개>의 등을 향해 조준했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쓰러진 <개>의 등에 칼을 내리꽂는다.

“고개 돌려.”

멍한 정신에 그 말을 이해하고 실행하기도 전에 이안이 등에 꽂힌 칼을 빼내었다. 상흔에서 피가 분수처럼 솟구치자 되직했던 땅이 <개>의 피를 빨아들이듯 흡수한다. 사태가 시작되고 얼마 안 되어 알아낸 것 중 하나는 <개>의 타액이 인간의 것보다 훨씬 묽다는 것이었다. 농도뿐 아니라 응고되는 속도도 인간의 것보다 몇 배는 느리다. 그러니까 방금 신발코에 튄 <개>의 피는 오래도록, 오래도록 마르지 않을 것이다.

이안이 내게서 식량이 든 비닐봉투를 가져가고 손목을 잡아온다. 내가 그의 소매를 붙들고 달리던 아까와는 완전히 반전된 상황이었다. 

또다시 달린다. 

폐가 짓눌려 숨을 쉬는데도 숨이 막힌다. 기도로 침입한 만큼 배출되지 못한 숨이 쌓이고 쌓여 목구멍을 틀어막는다. 입을 벌리면 터졌거나 녹아내린 심장이 튀어나올 거란 착각이 들었다.

이안과 나는 기지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그대로 주저앉았다. 하, 하아, 하······ 서로의 입에서 터져나온 숨이 뒤섞인다.

“이안, 괜찮아?”

“보다시피.”

숨을 고르던 이안이 오른손에 든 비닐을 흔들었다.

“아니, 당신 말이야.”

비닐을 흔들던 오른손이 떨어진다.

푹 수그러진 고개가 한 박자 늦게 끄덕거렸다.





그러나 괜찮다던 이안은 의무실에 한 발을 내딛자마자 졸도했다. 상황을 묻는 이들에게 모든 것을 설명했다. 정육점에서 돌아오는 길에 마주친 <개들>과 그 <개들>을 이 안이 어떻게 살해했는지, 우리가 얼마나 달려야만 했는지를 설명하자 이들은 다들 납득한 얼굴을 했다. 하지만 추측하건대 이안을 괴롭힌 것은 <개들> 그 자체가 아니라······ 오래 전 기지에서 일어났던 사건을 상기한 채로 <개들>을 죽이는 행동이었을 것이다.

자연스럽게 정육점에서 털어 온 식량을 창고에 갖다 두는 것은 내 일이 됐다.

창고는 5층에 있는 체력단련실에서 관장한다.

5층 중앙에는 의무실처럼 문 위에 낡은 팻말이 붙어 있는 체력단련실이 있었다. 이름은 체력단련실이지만 체력을 단련하기 위한 기구는 모두 뺐는지 내부는 공터처럼 한적하기만 했다.

앞장선 창우의 왼 어깨 너머로는 담요를 덮고 자는 사람 무리가, 창우의 오른 어깨 너머로는 주 자매와 제임스처럼 판을 깔아놓고 눈짓과 손짓만으로 게임을 즐기는 사람 무리가 있다. 그런데 자는 사람도 게임하는 사람도 모두······ 산 사람 같지가 않았다. 이 시대에서 사람들에게 생기가 넘치는 걸 기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퇴행하지 않은 <개들>이라고 하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 퇴행하지 않은 <개들>이 우리의 인기척을 느낀 순간 일제히 우리를 쏘아봤다. 얼굴을 훑는 시선은 좀처럼 떠나가지를 않았다. 이상하게도 누구 하나 다가오는 사람 없이 모두가 눈으로만 우리를 경계한다.

“1층 애들이야.”

그 말에 얼굴을 훑던 시선이 일제히 돌아간다. 깨어 있는 사람들은 다시 눈과 손만을 동원해 게임을 했다. 그제야 중앙에 앉아 있는 남자가 시야에 들어온다. 얼마 전 의무실을 찾아왔던 그 남자다.

“왜?”

“이거 창고에 가져다 두라고 해서요.”

남자가 내 손에 들린 식량과 나와 내 앞에 선 창우를 번갈아 훑는다.

“앞에는 같이 담 넘었다던? 이안은?”

“자고 있어서 대신 왔어요.”

“별일이네······.”

그렇게 중얼거리던 남자가 누군가를 부르자 게임판에 있던 사람 중 하나가 이쪽을 바라봤다. 눈꼬리가 무서울 만큼 위로 째진 것이 남자와는 정반대의 인상을 가진 여자였다.

 


창고 열쇠를 가지고 있다는 여자와 함께 체단실에서 나와 창고로 걷고, 창고 문고리에 열쇠를 집어넣고 돌리고, 내 손에서 식량을 낚아채듯 가져가 창고로 들어가기까지 고작 일 분 남짓이었다. 나는 굳게 닫힌 창고 문을 멍청하게 바라보다가 말없이 창우에게 눈을 돌렸다. 창우 역시 나를 보고 있었다. 그가 느리게 고개를 저음과 동시에 여자가 다시 나왔다. 마찬가지로 일 분 남짓 만에 빈손으로 나온 여자는 또다시 아무런 말 없이 우리를 지나쳐갔다. <개들>의 후각만 어떻게 마비시킨다면 저 여자는 절대로 <개>가 되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날 밤 우리는 또 한 번의 밀회를 가졌다. 이번 밀회의 목적은 5층 사람들이었다.

창우가 할리갈리와 부루마블을 하며 자매와 제임스로부터 캐낸 정보에 의하면 그 선한 인상을 가진 남자의 이름은 진이었다. 5층의 우두머리 격이지만 특이하게도 그 사건 이후에 기지로 왔고, 그때 이란성 쌍둥이라는 여자와 함께 왔다고. 아까 보기로 체력단련실에 여자는 한 명뿐이었으니 아마 그 여자가 진의 이란성 쌍둥이일 것이다. 이상할 만큼 흰자가 넓게 보이던 여자의 눈이 어른거리자 오싹해진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 사람들 좀 이상해.“

무언가를 골몰히 생각하는 듯 땅끝을 바라보던 창우가 한참 만에 고개를 들었다. 

“진이 사람들을 이끄는 것도 좀 걸려.”

“······.”

“이안이 그 사건 이후로 의무실에 온 게 우리가 처음이라고 했다며. 그럼 거기도 상황이 별반 다르지 않을 텐데······.”

“그들은 누가 자기네들을 이끌든 별로 상관 안 해.”

둘만의 밀회에 낯선 목소리가 난입한다. 무어라 더 말을 이으려던 창우의 입술이 굳게 다물린다. 우리는 동시에 목소리의 발생지를 바라봤다. 침입자가 서 있는 데까지 달빛이 미치지 않아 어둠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그가 누구인지는 나도 창우도 짐작하고 있었다.

“이안.”

“오늘 불침번은 나인 줄 알았는데.”

“내가 대신하겠다고 했어.”

“그럼 이제 들어가. 불침번은 하나로 충분해.”

이안의 말을 따르자는 의미로 창우의 손목을 잡았다. 그러나 쉽게 끌려 올 줄 알았던 창우가 좀처럼 발을 떼지 않았다.

“가기 전에 자세히 알려 주세요. 5층 사람들은 왜 상관을 안 하죠?”

이안이 느릿하게 걸어온다. 그의 콧잔등에 달그림자가 진다.

“그 사람들한테 그런 건 별로 안 중요하니까.”

“······.”

“그들은 살고 싶지 않아 해. 다시 말해, 그들은 모두 죽길 원해.”

“······.”

“다만 그들이 바라는 죽음이 <개>가 아닌 것뿐이지.”

“······.”

“여기는 원래 그런 데야. 다정한 죽음을 바라는 이들이 모인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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