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박소은 - 눈을 맞춰 술잔을 채워

*야식 타입-마블 드림 5,584자.

**신청자분의 요청에 따라 드림주의 이름은 이니셜로 치환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일부 수정된 문장이 있습니다.



Let's get weird



발걸음은 무료했다. 시가지의 불빛은 노오랗고, 붉고, 푸르르고. 사람들은 저마다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게 당연한 듯 굴고. 길바닥에 모로 누워 헤롱거리는 중년의 남성들. 넥타이는 반쯤 풀려있었다. 그들과 설핏 눈이라도 마주치자면 마시지도 않은 알코올의 쓴내가 훅 풍겨오는 듯 했다. 인간은 나약해. 화학물질 몇 그람이 들어가면 사족을 가누지 못할 만큼 흐려지고야 만다. G는 개가 되어 바닥을 나뒹구는 취객을 보고 혀를 찼다. 쯧.

어쩜 저리 멍청할까. G는 생각했다. 어른이 되어서도 기껏 하는 일이라는 게 몇 가지 서류 작성인 직장인들. 퇴근하고서 한다는 건 겨우 술잔을 기울이며 인생의 푸념을 주고받기. 인사불성이 되면 비틀대며 집으로 향해 아내의 잔소리를 듣거나, 아이들에게 몇 푼 용돈을 쥐여 주겠지. 그렇게 지나가는 인생은 너무 시시했다. 평범했다. 하찮았다.

그는 힘을 가진 자였다. 너무도 큰 힘을 가져 인간이라는 생물을 무력으로 줄 세우면 손가락 안에도 꼽을지 몰랐다. 그는 대단한 자였고, 가능성 있고, 전도유망했다. 그러나 세상은 때로 비범한 사람을 알아채지 못하는 법. 혹은 두려워하거나. 

뭐가 됐든 그는 아류였다. 빛나는 조명 아래 환호와 박수갈채를 받으며 사람들을 구해낼 영웅은 못되었다. 그 누구도 그를 영웅으로 부르지 않았으니까. 타의로 인해 정의 내려지는 이름이란 참 덧없다는 것을 되새기며 그는 걸었다. 네온사인이 일렁이는 시가지를 벗어났다.

현관문을 열자 보인 것은 그가 방금 전까지 그토록 한심하게 여긴 모습, 알코올에 취해 불그스름해진 인사불성의 취객이었다.

“너어 왔구나.”

“으……. 술 냄새.” 

“괜찮아. 우우린 어차피 다 죽을 거야.”

제법 시니컬한 대사를 내뱉는 것과는 대조되게, 그녀는 무척이나 기뻐 보였다. 책상 위에 놓인 글라스에는 잘 깎은 얼음이 둥그런 모양을 유지한 채 녹아내리고 있었다. 뚜껑이 열린 보드카는 이미 절반쯤 사라져있었다. 거실은 엉망이었고, 어디서 사온건지 모를 외국의 마른안주들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대체 뭐가 괜찮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테이블에 엎드려 천장에 떠다니는 별의 개수를 세고 있을 여자는 와중에도 그의 방문을 반기며 손을 휘휘 내저었다.

“내애가, 오늘 좀 기분이 그래서어. 마셨네. 미이이안.”

“뭐가.”

“너어어 술 마시는 거어 싫어하잖아아.”

잘 알면서 그랬다. 웃는 건지 우는 건지 모를 얇은 눈매가 그를 스쳤다.

“그걸 알면서도 마셔?”

“…생각이 나서어어.”

“뭐?”

“동새앵. 생각이 나서어어. 그래도 마시며언 기분이 좋아아.”

그러고서 애써 픽 웃었다. S의 동생에 대한 이야기는 조각난 정보들로 들은 적이 있다. 괴인 손에 무참히 죽었다던가. G는 뭐라고 대답해야 좋을지 몰라서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결국 적절한 위로의 말은 찾지 못하고, 그녀의 손에 들린 보드카 병을 빼앗는 것으로 대신했다. 그녀는 순순히 병을 놓았다.

“취했으면 씻고 자라?”

“으응.”

그는 너저분한 거실을 돌아보았다. 별로 넓지도 않은 한켠에 참 많이 어지르기도 했다. 대체 언제부터 마신 건지 짐작하기도 난감할 정도로 엉망이었다.

S가 술을 마시는 것이 놀랄만한 일은 아니었다. 그녀는 법적으로 성인이었고, 문제될 것은 없다. 그러나 그녀가 술병을 꺼내드는 이유가 문제라면 문제였다. 떠나간 가족. 고통스럽게 죽어가다 싸늘하게 굳었을 세 명의 혈육 –특히나 어린 동생을 생각하는 것을 견딜 수 없어 알코올을 찾게 되는 일들. 트라우마를 가진 사람들이 술에 의존한다는 이야기는 온갖 뉴스에서 접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건 늘 이해할 수 없는 멀고 먼 이야기였다. 그에게는 해당되지도 않았고.

하지만 그녀는 달랐다. S는 세상에 홀로 된 슬픔과 괴로움을 견디기에는 가족을 너무도 사랑했다. 사랑이 커서 스스로 견딜 수 없자 모든 걸 잊어버리고, 즐겨버리고, 바람에 날려버리려고 술을 마시게 되었다는 걸 그가 모를 리 없었다.

“내일 아침에 머리 아프다고 하기만 해봐라.”

식탁 위에 쓰러진 S의 한쪽 팔을 익숙하게 어깨에 두르고 그녀를 들쳐 메자 쌉싸래한 입김이 훅 밀려왔다. 입김은 그의 목과 어깨를 타고 넘어 사라졌다. 뒤따라오는 약간의 단내와 축축함. 창문을 열고 환기를 해도 어지러운 기운은 가시지를 않았다. G의 어깨에 기댄 S는 아무것도 모른 채 알 수도 없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리듬을 탔다.

“우린 다아아~ 죽을거야아~”

“가만히 좀 있어봐!”

“하지마안~ 좋은 일들도 있을 거야아~”

음정도 박자도 엉망인 노래에 신나서 그녀의 목소리는 점점 커졌다. 버둥대는 그녀를 대충 끌고 가자니 훨씬 귀찮은 일이어서 하는 수 없이 G는 S를 번쩍 들어올렸다. 비틀대면서도 용케 바닥은 짚고 있던 하얀 두 발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가뿐했다. 

“어맛.”

“꼭 이렇게까지 하게 만들어야 돼?”

“너.”

“……?”

“기운이 좋네에에. 젊어서 그런가아~?”

그의 품에 안긴 채 그녀는 까르륵대며 아이처럼 웃었다. 웃으면 웃는 걸로 곱게 끝낼 것이지, 뭐가 좋은지 그의 가슴도 마구 내리쳤다. 그에 비하자면 충분히 여린 손이지만 오래간 무공을 단련한 손길은 매서웠다. 아팠다.

“아, 아프다고!”

“미이이안.”


그녀를 침대로 옮기는 내내 그런 식이었다. 저번 주도. 저번 달에도. 취해서 자기 몸 하나도 가누지를 못하는 그녀를 데려다가 침대에 뉘여 주고, 이불도 덮어주고, 엉망이 된 거실도 툴툴대며 정리하고. 괴팍한 그가 군말 없이 귀찮은 일을 하는 까닭은 그 스스로도 묘연했다. 그녀가 먹여주고 재워주기 때문에? 아니, 그건 아니었다. 단순히 집주인에 대한 호의라기엔 이상한 감정이 뒤따라 붙었다.

걱정. 연민. 나약한 자들이 신경 쓰는 것들. 

그렇다고 그녀가 싫다는 건 아니었다. 형제 분파의 도장에서 대련을 했던 시절이라든지. 그녀에 대한 좋은 기억은 얼마든지 있었고, 또 그의 무분별한 방황을 알면서도 눈감아주는 모습이라든지. 남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그의 면을 내심 알아봐주는 자상한 모습이라든지. 굳이 따지자면 G는 그녀가 좋았다.

하지만 그 이상일까? 그는 때때로 자신의 감정에 대한 정의를 내리지 못해 혼란스러웠다. 그녀가 능숙한 솜씨로 차려주는 아침밥을 본다든지, 퇴근길에 사온 간식이라든지, 그의 상처 위 붕대를 새로 갈아주며 스치는 손길이라든지. 가족도 연인도 아닌 두 남녀가 동거하는 상황에 벌어지는 온갖 일들에서 그는 혼란스러웠다. 대체 이 무방비한 여자는 뭐지? 

-갈 곳이 없어?

비 내리는 날. -너무도 뻔했다- 그늘진 골목에 쓰러진 행인. 그는 계산적이었다. 헛된 꿈에 젖어 낭만만 좇는 바보가 아니었다. 그는 원하는 것이 있으면 반드시 쟁취하는 사람이었고, 그것을 위해 머리를 굴릴 줄도 알았다.

-그럼 우리 집에서 살래?

단순히 나이가 조금 더 많다는 이유로 키가 멀대만한 남고생을 책임지겠다는 멍청한 판단. 그녀의 호의가 불러온 제안임을 알면서도 거절하지 못했다. 일단은 그도 머물 곳이 필요했었으니까. 더 큰 야망과 원대한 계획을 위해서는 자원도 물자도 필수불가결한 법이니까. 

G는 그녀가 내민 손을 잡았다. 그게 그의 대답이었다.


그것도 벌써 몇 개월 전의 일. 같이 살게 된 그녀의 모습은 심플했다. 낮에는 일을 했고, 저녁이면 퇴근을 해 집에 돌아왔고, 가끔 수련을 했다. 아주 가끔 그와 대련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넌 대체 뭘 하고 싶은 거냐고 묻지는 못했다. 그건 스스로도 찾아내지 못한 정답이었기 때문에.

어쨌든 그녀는 그를 아꼈다. 사라진 동생의 대체품 정도로 생각하는지, 아니면 그냥 정을 줄 사람이 필요했는지. 필요에 의해 만나게 된 두 사람은 제법 알맞았다. 대화가 즐거웠고, 마주 앉는 게 편했다.

편한 관계란 참으로 오래간만이라 어색했다.

“혼자서 해?”

침대에 눕혀둔 게 좀 전인데, 어느새 되돌아 나온 S가 문간에 기대 말을 걸었다. 발음이 좀 정확해진걸 보자니 술이 깬 모양이었다. 그녀는 그가 널브러진 물건들을 정리하는 걸 내려다보다가 말했다.

“…같이 할까?”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자세히 보니 목은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고 있었다. 얼굴도 붉었다. 여전히 알딸딸한 채로 뭘 도와주겠다는 건지. 

“됐어.”

“그래?”

“거기서 구경이라도 하라고.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거니까.”

“나 엉망이구나.”

“알면 거기 서 있어.”

G는 바닥을 굴러다니는 잡동사니며 접시들을 마저 주웠다. 여기저기 많기도 했다. 집기들을 테이블 위 대충 옹송그려놓자 벽에 기대 쓰러지기 직전의 S가 자분자분 속삭였다.

“……아이 착하다.”

“뭐?”

“착하다고. 잠깐만, 거기 그러고 서 있어봐.”

“내가 왜.”

“그냥. 이 순간을 기억하고 싶어서 그래. 너 되게 귀엽게 보여서.”

나른하게 반쯤 떠진 두 눈동자는 오묘한 색을 뿜어냈다. 바라보고 있자니 기분이 이상해졌다. 그래도 그는 울렁거리는 그녀의 눈을 꽤나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순간 G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생각 없는 여자 같으니. 대체 그를 얼마나 어리게 봤으면 술에 취해 저런단 말인가. 나른하게. 흐물거리게. 저런 눈빛으로 내려다보면서…….

“…너 술 마시면 다른 남자들한테도 귀엽다고 해?”

“뭐라고? 잘 안 들렸는데.”

“……아냐. 됐어.”

그건 그만이 알아볼 수 있는 색. 다른 남자들은 절대 몰랐으면 하는 색. 취해서 비틀거리지만, 두 뺨은 불그스름하지만, 술 냄새도 풍기지만. 그래도 G는 그녀가 싫지 않았다. 

그는 생각했다. 아마 별다른 일이 없다면 당분간은 계속 이러고 살겠지. 철없는 어른의 뒤치다꺼리를 하다가 잠에 들 수 있는 단칸방에서 사는 것도 나쁘지는 않아. 하지만 언제까지 그럴 수 있을까? 

그는 어리지만은 않다. 멍청하지도 않다. 평화롭고 달콤한 일상은 드물고, 괴롭고 외로운 나날이 절대적으로 많은 게 인생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니까 이 험한 삶을 헤쳐나가려면 대책이 필요했다. 언제까지고 이 집에서 머물 수도 없는 노릇이고. 언제까지고 이 사람과 이런 관계일 지도 모를 일이고. 언젠가는 달라질 것이다. …그러면 그 다음에는?


유달리 주변이 조용했다. 복잡한 그의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그를 내려다보며 조잘거리던 S는 어느 샌가 스르륵 흘러내려 바닥에서 잠들어 있었다. 어이가 없었다. 이럴 거면 왜 침대에서 나온 건지 핀잔을 잔뜩 쏟아 붓고 싶었다. 그걸 들어줄 사람은 이미 꿈나라에 가있는데도 말이다.

그는 축 늘어진 그녀를 들어올렸다. 

“곧 죽을 거라고 노래하던 사람이 많이도 마셨네.”

곤히 잠들어버린 그녀를 침대로까지 옮기는 동안 왠지 그녀가 흥얼거렸던 이상한 노래가 떠올랐다. 우린 다 죽을 거야. 하지만 좋은 일들도 있을 거야.

그녀의 말따나마 우리는 언젠가 다 죽겠지만. 만약에 이 세상에도 좋은 일들이 많아진다면. 더 이상 그가 어두운 길을 홀로 걷지 않아도 된다면. 눈이 펑펑 내리는 날 손이 시리지 않아진다면. 그건 이 사람 때문이면 좋겠어. 알코올에 취해 인사불성이 사람. 요리를 잘하는 사람. 필요한 건 묻고, 불필요한 건 물어보지 않는 이 사람이면 좋겠어. 따위의 감상적인 생각을 하며 그녀를 침대에 내려놓았다.

“…내가 왜 그런 생각을 했지?”

이건 다 알코올, 빌어먹을 화학물질 때문이야. 분명 취한 거야. 그는 당치도 않은 이유를 찾아내 확신하며 머쓱하게 뒤통수를 긁었다. 그리고 거실로 되돌아갔다. 정리할 것들이 산더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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