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도검을 만난 것은 이 세계에서의 생활에 슬슬 적응되어 가고 있을 무렵이었다.





그전까지 카네는 나름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녀는 놀러 온 것이 아니다. 니시조노 카네라는 이름 앞에 붙게 된 '사니와'라는 칭호는 불려질 때마다 그 사실을 카네에게 상기시키는 역할을 했다. 엄연히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서 이 세계에 보내졌고, 비록 눈앞에서 제약하는 이는 없을지라도 그를 위해 움직여야만 했다. 세상에 대가 없는 이득은 없는 법이니. 그렇게 익숙하지 않은 세계에서 나름 열심히 돌아다닌 결과 하치스카 빼고 인적 없이 썰렁하기만 하던 혼마루 저택에 어느샌가 온기가 돌기 시작했다.

첫 전투에서 하치스카를 반 죽일 뻔한 상황이 벌어져 엉엉 울면서 귀가했던 때가 엊그제건만, 이어진 몇 번의 출전에서 어느 정도 적응하게 된 카네는 앞으로 그녀의 손발이 되어 줄 존재인 도검들을 얻었다. 작고 귀여워 어린 동생 같은 토시로 단도들과 먼저 만남이 이루어졌고, 이후 그들을 챙기면서 돌아다니는 일에 좀 익숙해질 무렵 등장한 타도(打刀)들 ─ 야스사다와 카슈, 야만바기리 등과 부대끼던 무렵 좀 더 강한 검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없는 자원을 들이부어 제작에 힘을 쏟았더랬다.

비록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일이라 몇 번의 실패를 거듭했지만 그 덕에 첫 태도(太刀) 야마부시를 얻는 쾌거를 이루었다. 그게 첫 등장부터 다짜고짜 카카캇~! 하고 커다랗게 웃어제끼는 통에 화들짝 놀라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말이다. 그래도 괴랄한 웃음소리만 뺀다면 꽤 단순하고도 우직한 성격에, 역시 태도는 태도라는 것인지 이후의 전투에서 확실하게 제 몫을 해주는 터에 한시름 놓았다.

종종 역사수정주의자들과의 전투에서 떨어진 도검을 줍는 일이 있었다. 역사수정주의자들의 도검남사들은 사니와에 의해 탄생한 도검남사들과는 달리, 형태가 몹시 기괴하게 비틀리고 음침하고 사악한 분위기를 풍기는 것들뿐이었다. 이쪽이나 저쪽이나 똑같은 검에서 츠쿠모가미를 소환해 내는 것은 마찬가지일 텐데 형태의 차이가 발생하는 것은 어째서인가. 카네는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겉모습만 따진다면 마치 저쪽이 악(惡)임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것 같음에 한편으로는 재미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쨌든 생긴 것이 흉측하고 괴물에 가까우니 저들을 베는 데 있어 양심의 가책은 덜 들었던 것이다.

그런 그들이 떨어뜨린 ─ 정정하자. 떨어뜨렸다기보다는 역사수정주의자들의 도검남사들을 베고 나면 흉칙한 겉모습은 사라지고 그 형태를 유지하는 일종의 핵처럼 존재하던 도검만 달랑 남게 되는 것이었다. 여러 개가 나오는 경우는 전혀 없었다. 오로지 한 개씩만, 때로는 전혀 나오지 않는 때도 있었다. 의외로 깨끗한 경우도 있었으나 대부분 뭔가 얼룩덜룩한 그림자 같은 것 ─ 후일 합류한 '이시키리마루'의 말에 의하면 사기(邪氣)라고 했다 ─ 이 감싸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나마도 카네의 손이 닿으면 금세 신기루처럼 증발하여 사라졌지만.
 
처음에는 카네의 손이 닿는 것을 질색하여 주위 도검남사들이 말렸지만, 그 손이 닿은 도검이 정화되듯 환한 빛을 내뿜음과 동시에 그들과 똑같은 정상적인 모습을 한 도검남사가 나타나자 하나같이 경악한 표정을 지었더랬다. 이후로는 카네의 손에 닿아도 그녀에게 별다른 해를 미치지 못하는 것을 알고는 그냥 내버려뒀지만(나중에는 너무 무심해져서 카네가 "너네, 아무리 유능한 사니와라지만 나를 너무 방치해두는 거 아니야?" 하는 농담을 던지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날도 여느 때와 같은, 그러나 약간은 달랐던 날이었다. 비교적 안전하고 강한 적들이 쉬이 나타나지 않는 곳에서 전투를 치렀는데, 평소와는 달리 적들이 꽤나 끈질겨서 조금 고전을 했었다. 태도인 야마부시마저 상급 장비구슬을 하나 잃었고, 하치스카와 나중에 합류한 오오쿠리카라도 장비구슬의 내구도가 상당히 닳아 있는 상태였다. 그래도 다들 다치기 전에 끝내서 다행이라고 카네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평소처럼 멀쩡히 끝낼 줄 알았는데 방심한 탓이었을까. 어찌나 긴장했던지 주먹 쥔 손을 펴고 나니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다들 수고했어. 어디 다치거나 한 데는? 없지?"

─ 있으면 지금 말해. 나중에 뒤져서 발견하면 한 대씩이야. 험악한 말투였지만 그 안에 담긴 걱정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는 아니라 다들 미소 혹은 쓴웃음이나 한숨(하치스카가 나직이 "저 얌전하지 못한 말투 하곤." 하고 투덜거렸다)으로 답했다. 모두들 지친 기색이 역력한 터라 얼른 혼마루로 귀환하여 쉬게 해 줘야겠구나 하고 카네가 생각하던 차였다.

"주인 씨, 저기 도검이요."

예의 바르게 말을 걸어오는 예쁘장한 소년의 이름은 호리카와 쿠니히로. 단도보다 좀 더 검신이 긴 협차로, 태도와 한 쌍으로 들고 다니는 경우가 많은 검에서 태어난 츠쿠모가미였다. 아…… 가볍게 신음을 흘린 카네가 돌아보았다. 저만치 바닥에 떨어진 채 초라하게 나뒹굴고 있는 검이 보였다.

도검남사가 사니와에게 검을 가져다 주지 않는 ─ 못하는 ─ 이유가 있었다. 역사수정주의자들이 남기고 간 도검에 먼저 손을 댈 수 있는 것은 사니와뿐이다. 사니와의 손에 금세 정화된다지만 꽤나 진득한 악기로 넘실거리고 있는 사기가 신성한 기운을 띤 도검남사들에게 닿았다간 어찌 될지 모르는 위험성이 있는 탓이었다. 사니와가 품은 신기(神氣)에 의해 태어난 일종의 선한 신에 가까운 존재들이니 조금이라도 부정한 것에 닿는 것이 좋을 리 없음은 명백했다.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카네였기에 사소한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설사 도검남사들이 남겨진 검에 손대는 게 가능하다 한들, 다들 싸우느라 지친 상황에서 혼자 편히 뒤쪽에 있던 저한테 검 하나 가져다 주지 않는다고 투덜거릴 만큼 개념이 없지도 않았다. 발랄한 걸음걸이로 검 앞에 도착한 카네가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어두운 기운이 넘실거리는 검 위에 손을 뻗은 카네가 조용히 눈을 감았다. 우선은 정화부터 하고, 츠쿠모가미를 불러내는 것은 혼마루에 돌아가서…….

그 순간, 몸에 머물고 있던 신력이 한꺼번에 쑥 빠져나가는 것을 느낀 카네가 눈을 떴다. 뭐지? 늘 하던 정화 의식인데 평소보다 상당히 많은 양의 신력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양 손을 기점으로 환하게 밝은 빛이 가루처럼 고운 입자를 이루어 소용돌이치며 검을 휘감았다. 이미 검에 얼룩처럼 끈적거리며 남아 있던 사기는 흩어져 없어진 지 오래였다. 설마─?!

"주인?"

"주인 씨?!"

"야이 망할─!"

저도 모르게 험한 말을 뱉어 버린 카네가 황급히 눈을 감았다. 정화 의식은 몰라도 츠쿠모가미 소환은 갑절의 신기가 들어가는 터라 빠지는 기력도 기력이지만 눈이 몹시 부셨기 때문이었다. 결코 폼내고자 눈을 감는 게 아니다. 자신이 의도하지 않은, 그러나 반 강제적으로 이미 시작되어 버린 츠쿠모가미 소환에 카네는 속으로 이를 갈았다. 그야 전투에 직접 참여하지 않았으니 기력은 남아 있다지만, 남의 허락도 없이 이게 무슨 짓이야!

대체 이 검은 뭐하는 녀석이기에!

휘오오─ 만약 소리가 난다면 이런 효과음이 날 것만 같은 모습으로 카네의 몸을 휘감은 빛이 순식간에 검 전체를 덮으며 위로 올라갔다. 갑작스레 시작된 츠쿠모가미 소환에 다른 도검남사들도 놀란 눈으로 추이를 지켜보았다. 그들 중에 카네가 의도치 않게 의식을 시작했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없었다. 다만 처음을 제외하고는 항상 혼마루 저택으로 가서 의식을 진행하던 사니와가 오늘은 뭔가 급했나 하고 생각하는 것이 전부였다.

휘르르 올라가던 빛이 이내 산산히 부서지며 색 고운 꽃잎을 연상시키는 빛가루 입자가 되어 주위로 흩뿌려졌다. 그 아래 반딧불이처럼 은은한 빛에 감싸인 형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서로 아는 사이가 아닌 이상 ─ 설령 알고 있다 하더라도 데면데면하거나 혹은 적대 관계인 경우가 많은 ─ 도검남사들은 새로운 남사의 출현에 동요하지 않았다. 무덤덤한 분위기 속에서 급격히 빠져나간 신력 탓에 기력이 달려 헐떡이는 카네에게 시선이 향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자신들을 유지하는 것이 사니와의 신력인 만큼 무슨 일이 생긴다면 무엇보다도 사니와의 보호가 우선이기에.

그런 상황에서 터져나온 목소리는 의외일 정도의 감정을 담고 있었다.

"카, 카네 상?!!"

카네는 천천히 눈을 떴다. 제 몸에서 나온 신력임에도 불구하고 시력 상하게 하기에 딱 좋은 빛의 잔여에서 눈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이었다(어째서 현대에서 떨어질 때 선글라스를 챙겨오지 않았던가 하고 후회한 적도 있었다). 그때 그녀 또한 등 뒤에서 터져나온 외침을 들었다. 카네 상이라니, 오랜만에 이름으로 불려보네 하는 것이 그녀의 감상이었다. ─ 허나 그것이 제 이름이 아님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힘없이 숙인 눈앞에 바로 자리한 검은 가죽 구두를 보았을 때. 흠칫 놀라 고개를 든 시야에 펄럭이는 아사기색 옷자락과 길게 흘러내린 검은 머리카락이 화사하게 흩날리는 꽃잎 속에 은은하게 형체를 드러내는 것을 보며, 그녀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잠자듯 감겨 있던 눈동자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 것은 그 뒤였다. 마치 각인하듯, 시선이 마주친 뒤에야 카네는 깨달았다.

이것이, 말문이 막힌다는 거로구나 하고.

"나는 이즈미노카미 카네사다."

옅은 복숭앗빛을 띤 입술 사이에서 흘러나온 목소리는 남성적이면서도 의외로 가벼웠다. 살짝 건들거리는 인상도 있었으나 그럼에도 그의 분위기를 해치지 않고 어울린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말 내용과는 별개로. 제 스스로 멋있고 강하다며 자랑하듯 말을 이었을 때 카네는 반쯤 넋이 나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맛살을 찌푸릴 뻔했다. 이건 뭐 애도 아니고.

자기애가 상당히 강한 검이구나 싶었는데, 문득 검이 그녀를 내려다보며 눈매를 접었다. 살짝 끝이 치올라간 날렵한 눈매가 애교있게 가늘어지며 치는 눈웃음에 카네는 순간 심장이 철렁했다. ……잠깐, 뭐야 이거.

"요즘 유행하는 검이라네."

"……하?"

"날 만난 것을 행운으로 여겨도 좋아, 주인."

만나서 반갑군 하는 말은 이내 터져나온 카네 상! 하는 비명에 묻혔다. 그리고 이내 옆을 스치듯 달려나와 새로운 도검남사의 품에 매달리는, 평소 예뻐했던 익숙한 미소년의 뒤통수를 바라보며 카네는 황당함에 이어 은근한 배신감을 맛보아야만 했다.






이후 카네는 이즈미노카미 카네사다와의 첫 만남 때 잠깐 넋이 나간 듯 보였던 것은 자신이 갑작스런 츠쿠모가미 소환에 기력이 빨려서였다고 주장했으나, 그 말에 관심을 갖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아니, 어쩌면 알면서도 저 혼자 부끄러워하는 사니와의 모습을 보는 재미에 침묵했는지도 모른다.

……떠들썩하나 어딘가 살짝 냉기가 감돌던 혼마루 저택에 훈훈한 봄바람이 불게 된 것은 그로부터 좀 더 후의 일.






>>백설두의 한마디
사니와 놀리는 재미에 이구동성으로 입 다물고 있는 느아쁜 도검이들.

이것저것 내키는 대로 쓰고 그리는 멀티러. 절대고수를 향해 노력중입니다. 근데 달성까지가 너무 멀어…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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