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둘이 언제 사귄다고?"



"얘는!"









아니, 얼굴도 안 비추고 슥 사라졌다가 기념 공연 시간도 겨우 맞춰왔잖아.


약간은 퉁명스러운 말투로 투덜대는 준은 말없이 고기를 뒤집는 이안을 쉴 새 없이 힐끔댔다. 안 만날 것도 아닌데 질질 끄나 싶어서 안 그래도 조금 망설여졌는데, 대놓고 저런 말을 하는 게 부끄럽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했다.









"이거 먹어, 뜨거우니까 조금 있다가"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는 건지 나한테 부담을 안 주려는 건지 다정한 팀장님은 제일 먼저 익은 고기를 내 접시에 덜어주기 바빴다. 하지만 이 사람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도 없는걸..... 회사에서 만난 사람이다 보니 직급이나 능력, 이렇게 알게 된 성격을 제외하면 정보는 전무하다. 좋은 사람인 건 분명하지만, 말하는 거나 나이로 볼 때 이 연애는 결혼으로 이어질 확률이 높다. 보다 신중하고 싶다.











"그냥 사귀어, 형님 정도면 내가 만나고 싶다 그냥"



"난 사양할게요"



".. 아니 말이 그렇다는 거죠"











누가 진심인 줄 아나.... 꿍얼대는 게 오늘따라 동생 티가 많이 나서 준이 너무 귀여웠다. 쿡쿡 웃자 팀장님은 조금 못마땅한 얼굴이 되었지만, 준과 팀장님에 대한 감정은 애초에 다른 종류의 것이었기에 굳이 해명하지 않았다. 거기다 준이 귀여운 건(본인에게) 사실이니까!







"여기서 또 보네?"



"..........."










하긴, 여기 밥 먹을 데가 마땅치 않지.



이게 여기 또 있네... 뒤돌아봤는데 웬 부른 배가 보여서 놀랐잖아. 표정을 숨기지 않고 여전히 앉은 채 그를 흘끗 올려다보자 피식 웃은 놈이 준에게 시선을 돌리며 잔뜩 비꼬는 말투를 했다.







"팀 해체시키고 자기는 컴백하고, 낯짝도 두꺼워"



"... 형님도 하지 그래요, 할 수 있으면"











내내 순하던 준도 이 앞에서는 삐딱한 말을 내뱉지 않을 수가 없었다. 비꼬냐? 한 마디에 싸늘해진 분위기 속 눈빛 싸움이 이어졌다. 아까의 헐렁한 모습은 어디 가고 단호히 굳은 표정으로 준이 소원과 눈이 마주치자 자리를 옮기려 했으나 놈은 준을 말로 이길 자신이 없는지 앞에 앉은 내 어깨를 툭 잡았고, 그 손은 팀장님에 의해 바로 떨어졌다.







"뭐야, 얘 애인인가 보지?"



"왜 쓸데없는 시비를 거시는 건지 잘 모르겠는데, 이쯤 하시죠"



"싸가지 없는 게 이놈이나 저놈이나 똑같구먼?"










발끈한 놈이 이안에게 한 발짝 다가가던 순간, 그 틈을 비집고 제이가 나타났다.







"아 형~ 취했나 봐, 왜 이래?"



"나와 봐. 이놈들이 자꾸 나를 무시..."



"그랬어? 나중에 형 안 보이는 데서 내가 처리할게"



"............."














"가자고"










빙글빙글 웃는 낯이었지만 제이가 손으로 놈의 어깨를 세게 움켜쥐는 것이 보였다. 적어도 오늘은 우리를 괴롭히지 않으리라는 생각에 잠시 이어지던 식사 자리는 결국 흐지부지하게 마무리되어야만 했다.



기분 나빠야 할 사람이 누군데. 어린 나이에 저런 놈을 데리고 팀 생활을 했을 준에게 괜스레 미안한 마음마저 들었다. 이렇게 가까워질 수 없었다면 몰랐겠지. 너의 빛나는 모습만 보고 좋아한 건 아닌데.... 어쩌면 그랬었나 싶은 생각이 든다.


























"형제는요?"



"없어"



"정말? 누나 있을 것 같았는데"



"왜?"



"눈치 빨라서"










분위기를 애써 바꿔보고자 집에 가는 차 안에서 질문 공세를 퍼부었다. 사실 알고 싶은 마음이 더 컸지만, 자신에 대해 궁금해하니 팀장님은 어딘가 뿌듯한 반응을 보였다. 그래서 나도 더더욱 '이렇게 다가가고 있어요ㅡ' 하는 분위기를 솔솔 풍기며 계속해서 웃어 보였다.







"강아지 키워요?"



"키웠었어, 너 같은 말티즈"



"에에 뭐야!"



"닮았는데"














"그럼 부모님, 서울 사세요?"



"없어"











훈훈하던 분위기도 잠시, 예상한 듯 무심하게 대꾸한 그 때문에 나만 동공 지진이 났다. 아뿔싸, 당연히 사랑 많이 받고 자란 금수저 집안일 거라 생각했는데.... 또 한 번 선입견에 대한 상실감을 온몸으로 통감한 채 그렇게 굳어있자 운전하며 흘끗 얼굴을 살핀 그가 다시 말을 이었다.







"재단 출신이야, 반테가 내 후원자"



"네에?!!"












그간 대체 어떻게 알게 된 사이일까 궁금했는데 이런 식의 답변이라니. 당황스러움에 그만 큰 소리를 내자 이안이 되려 소리 내어 웃었다.







"그렇게까지 놀랄 일이야?"



"아니 안 어울린다는 생각은 했지만, 후원?"



"응, 내가 어렸을 때부터 눈치가 빨라서"










까다로운 도련님 마음에 들어버렸지. 너도 알겠지만 워낙 특이한 성격이라 회장님이랑 사모님이 애먹었는데, 나를 마음에 들어 해서.








"어렸을 때 그 집에서 자랐어. 호적상으로는 형제지"



".... 그럼 부모님 있는 거 아녜요?"



"음.. 그렇게 생각하면 또 그렇네"









분위기가 그렇진 않지만, 나름대로 잘 해주셔.


어느새 도착해버린 차 안에서, 잠시 차를 주차시킨 채 소원을 바라보는 눈빛이 따뜻했다. 충분히 사랑받지 못하고 자랐음에도 사랑을 줄 줄 아는 이. 소원의 머릿속에서 이제 이안의 입지는 지나치게 선명했다.









"팀장님"



"응?"



"우리 사귈래요?"








마침내 입 밖으로 나온 그 말. 순간 아찔해지는 기분에 이안이 눈을 꾸욱 감았다 떴다. 얼른 나오지 않은 대답에 시무룩해진 표정을 짓는 이의 손을 조심스레 잡은 그가, 반대 손으로 연신 마른 세수를 하며 두근댐을 진정시키려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다.






"아 왜 대답 안 해요! 민망하게!"



"예상 못 했어. 잠시만"



"딴 생각 하는 거 아니죠? 아니죠? 이렇게 꼬셔놓고"



"그 입 좀..... 잠깐만.."







발칙하게 당연히 예스를 예상했을 소원이 귀여워 이안이 소리 내어 웃기 시작했다. 입양아라는 걸 실토한 뒤에 어떻게 고백으로 상황이 이어지는지, 오롯이 저만 보고 선택했다는 게 가슴 뛰도록 이상한 감정이라 자꾸만 웃음이 났다.















"괜찮겠어? 나 너랑 결혼 생각도 있는데"



"까짓것 나도 생각해 보죠 뭐"



"신랑 부모님 안 계신다고 속닥거려도?"



"오히려 좋은데, 시집살이 없지, 제사 없지"








명절에 우리 집에만 가면 되니까, 엄마 아빠도 좋아하실 것 같은데? 진심이라는 걸 증명하듯 총명하게 빛나는 눈에 살짝 감동까지 받아 버리게 된 이안이 다시금 심장을 옥죄는 기분을 느꼈다. 그냥 당장 결혼하고 싶다. 나직이 중얼거리자 고백은 제가 했으니 프러포즈 제대로 받을 거라는 말이 돌아온다.






웃겨 정말.


사실 네가 뭘 해도 웃겨. 허파에 바람 든 사람처럼 웃음만 나고, 행복한 것 같아.

어릴 적 모자라게 받은 사랑, 우리끼리 실컷 하면 되지 않을까 싶어.










"안 되겠다, 집에 못 가. 기념해야 돼"



"엥?"



"벨트 다시 매"



"뭐야 정말!"











네가 날 선택해 줬으니, 나는 네게 좋은 것만 줄게.


 

foul10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