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간다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야. 금일의 기록이다. 낮은 음성과 갈라진 이음새. 안드로이드는 단지 녹음한다. 달에 남은 우리들은 무엇을 꿈꾸면 좋지? 왈츠 수업에서 고철 나부랭이들과 감정적 교류를 나누는 척 하며, 내가 나아진 것처럼 굴면서, 무엇을 얻어내고 있지? 떨리는 목소리가 기침을 뱉어냈다. 마른 기침이 오래 이어진다. 가만 듣고 있기 힘들 정도로 쉰 소리가 난다. 재활치료라니, 당치도 않은 소리. 이 다리를 못 쓰게 된 바로 그 시점에서 난 죽었어야 했어. 정적. 사실은 완벽하지 않다. 오래된 기계음이 그 자리를 메워주고 있다. 그렇게 말해주길 바라는 걸까? 30초 초과. 추가 녹음을 원하신다면 요금 버튼을, 원하지 않으신다면. 안드로이드의 듣기 좋은 음성이 끊긴다. 달에서는… 내가 원하는 걸 절대 얻어가지 못할 거야. 어떻게 살아야 할 지 모르겠어. 사람이든 뭐든, 어떤 감정이든 간에 달에는 없어. 그렇다고 화성에 있을 것 같지도 않아. 있잖아, 내 다리가 정말로….

귀국이시군요.

네.

모친께서 073-n 채널로 브로커를 연결해 두셨는데, 확인해드릴까요?

알아요. 저는 다른 정거장에서 탈 거에요.

어제 발견된 사체에서, 두 다리는 너무나도 멀쩡했다. 괴생명체의 공격으로 생긴 원인불명의 마비. 감각은 존재하지만 도저히 두 다리가 느껴지지 않는. 시각적으로는 존재하는데 아무것도 없는. 그 때문에 미쳐간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고, 그렇다면, 거기서 대체 뭘 위해…….

생각은 길어질수록 나쁩니다. 별 도움이 되지 않죠.

화성은 어떨까요?

고향이지 않으신가요?

그런 줄 알았는데, 여기에 머무르다 보니 거기가 어땠었는지 기억이 안 나네요.

아름답죠.

여기만큼은 아니겠죠. 펼쳐진 공간은 너무나도 아름답다. 자연은 왜 아름다울까. 자연으로 가득한 곳을 왜 아름답다고 말하는 걸까. 우리 모두에게 원시적인 향수병이라도 있는 걸까? 우리는 왜 자연으로 '돌아간다.'라고 말하는 걸까. 시험관 속에서 유전자 재결합을 통해 인공수정으로 태어난 인간들이, 단 한 번도 진짜 흙은 밟아본 적 없는 인간들이, 도대체 무엇을 알고 돌아가고 싶어 하는 걸까?

하지만 진짜는 아닌걸요. 홀로그램들이 서서히 사라진다. 검게 물들어 벽으로 뒤바뀐다.

의미를 가진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의 언어는 모양의 조합일 뿐이죠. 우리끼리나 그 의미를 가진 것처럼 연극하는 것이고요. 하지만 어떤 형태이든, 언어 없이는 아무것도 '말'할 수 없다는 게 참 이상한 일입니다. 생각도 말이에요. 의식적인 생각은 언어의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우린 가끔 생각을 '이미지'처럼 인식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 생각 역시도 언어일 겁니다.

왜일까요? 그럼 언어를 이미지로 사용하고 있는 사람들의 생각은? 그 사람들의 생각은 이미지라고 할 수 있나요? 그보다는 움직임이라고 말해야 하겠지만, 움직임을 위해서는 이미지가 있어야 하니, 또 독특한 일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뭐가 정답인지, 정답이랄 게 있는 문제인지, 저는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어쨌든 지금 눈에 보이는 것은, 제가 혼자 있다는 사실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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