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D : Hannibal x Phantom (현대 AU)

BGM :  Hannibal OST - Virtue (들으면서 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W. DD







지금까지의 모든 기억들에 묻어있는 대화와 행동들이 그가 범인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었다. 나디르는 그의 집 앞에 도착하면서 단단히 잡은 총을 좀 더 손에 힘을 주었다. 이곳까지 오는 내내 그는 머릿속으로 어떤 상황이 그려질 것인지에 대해 상상해왔다. 아무도 상처받지 않고 끝이 나는 상황으로 자신이 멍청해져도 좋으니 이 모든 게 거짓이었으면 차라리 자신이 착각한 거였으면 하는 어리석은 그였다. 그러나 무참한 진실은 언제라도 그의 희망에 불을 지를 생각이었다.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고양이의 발걸음 마냥 구두소리 하나 내지 않고 안으로 들어가는 나디르는 자신을 맞이하는 목소리를 듣고 총을 든 자세를 풀어 그와 정면으로 마주했다. 언제나처럼 투명한 유리에 살짝 비춘 그림마냥 미소를 지으며 기다리고 있을 줄만 알았던 그가 조금은 냉담한 말투로 나디르를 반겼다.

 

 “오셨군요, 요원님. 기다리고 있었어요.”

 “…렉터박사님.”

 

 총을 힘껏 잡은 탓에 새하얗게 질린 손끝과 파르르 떨리는 눈꺼풀이 렉터의 시선에 닿자 그는 혀로 체리꼭지를 묶는 것처럼 살며시 말을 꺼냈다. 언제나 같은 차분하고 다정스러운 목소리와 달리 그 안에 담겨있는 말은 장미의 가시 같았다. 나디르는 어찌할 생각이 없었다. 막상 그를 눈 앞에 마주하자니 눈 앞이 새카매져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았다. 어떻게 해야 옳은 것인지, 분명 단 하나의 답만 있을텐데도 그의 마음속 응어리로 남아있는 감정이 그의 두 눈을 멀게 만들어 버린다. 그는 고개를 떨굴 수 밖에 없었다. 너무나도 겁이 나기에, 누군가를 진정으로 좋아하며 존경한 그 마음이 산산조각이 나버려 더 이상 껴안을 수도 없다는 사실이 두려웠던 것이다.

 

 안돼, 나디르의 스스로에게 다그치며 두 눈을 똑바로 치켜 뜨며 렉터를 바라보았다. 그는 두어번 깊이 숨을 들이 쉬다가 내뱉는걸 반복하고 나서야 떨리지 않는 목소리로 입을 열 수가 있었다.

 

 “정말 당신인가요.”

 “제가 굳이 답해드리지 않아도 이미 당신은 정답을 보았습니다.”

 “아뇨, 전 대답을 들어야겠어요.”

 “당신의 눈 앞에 정답이 있습니다, 나디르.”

 

 나디르는 입술을 꽉 깨물며 터져나올 거 같은 분노를 이로 잘근거리며 씹어버려야 했다. 렉터는 그의 손에 들린 총을 한번 바라보고 자신을 보지 않고 창문으로 돌린 고개 너머에 그의 눈동자를 바라봐야 했다. 어떤 감정으로 휩싸였는지 알기 위해, 나디르의 모든 것을 읽어야 그는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가 있다. 렉터는 그를 도발할 생각은 없다. 총으로 자신을 쏴버리면 도망치는데 더욱 힘들어질 테니 말이다. 어떻게든 그의 감정에 큰 상처를 주지 않고 돌아설 수 있을까에 대해 조용히 고민하던 렉터는 궁금해졌다. 그는 자신을 죽일 수 있을까.

 

 “나디르, 이제 당신은 어떻게 하고 싶은가요?”

 “당신을 잡아 돌아갈 겁니다. 그게 제가 해야 되는 일이니까요.”

 “제가 여기서 당장 도망간다고 말한다면요?”

 

 러시안 룰렛 같은 도박인 셈이다. 그는 정의감으로 넘친 사람이며 정이 많은 사람, 렉터를 잡아야 하는 것은 그의 정의에 옳은 행동이지만 반대로 렉터에게 많은 정을 쏟아 부은 탓에 자신의 정의에 대해 후회라는 이물질을 남기게 될 것이다. 렉터는 이 사실마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상황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법, 그는 조심스럽게 총구를 조금씩 당기기 시작했다.

 

 “당신은 아직 절 쏠 생각을 갖고 계시지 않아요, 그렇죠?”

 “…렉터, 반항하지 않고 가만히 의자에 앉아만 계셔주신다면 전 당신을 쏠 생각이 없습니다. 반대로 제 말과 달리 움직이신다면 어디든 쏠 자신이 있습니다.”

 “정말인가요?

 

 그의 혀가 뱀처럼 움직이기 시작하자 나디르의 온몸은 뻣뻣하게 굳기 시작했다. 자신의 마음에 의문을 던지자 전염병처럼 그 말은 나디르 역시 스스로에게 불신을 낳게 만들었다. 정말 그를 쏠 생각이었나, 아무리 그래도 그는 자신이 존경하던 사람. 그가 범죄자라고 해도―

 

 그는 여전히 좋아하는 사람들 중 일부였다.

 

 “절 잡으실 생각이라면 차라리 죽이는 편이 더 나을 겁니다.”

 “박사…, 아니 렉터. 전 당신을 죽일 생각 따위 없습니다. 그러니 순순히 자백해주세요.”

 “당신이 저를 향해 총을 쏜다면 생각해보죠. 꼭 저를 맞추실 필요는 없습니다.”

 

 러시안 룰렛은 시작되었고, 나디르는 방아쇠를 당기기 위해 손가락을 움찔거렸다. 렉터는 그에게 언제나 지어주었던 상냥한 미소를 띄우며 나디르의 눈을 피하지 않고 그의 속까지 꿰뚫어보았다. 나디르는 그런 적갈색의 눈동자에 숨통이 조이는 거 같았고, 방아쇠 위에 올려진 손가락은 칼에 베인 듯이 따가웠다. 도박이었지만 확실한 승자와 패자가 나뉘는 게임에서 이미 결과는 나왔다. 나디르는 총을 든 손을 바닥을 향해 내릴 수 밖에 없었다. 그는 아직까지도 렉터가 범인이라는 사실 조차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거였다.

 

 “나디르, 저 역시 당신과 싸울 생각이 없습니다. 한때 정말로 친한 친구였으니까요.”

 “말해주세요 박사님. 정말 당신이 그런 거예요?”

 “이런 상황에 와버린 것에 대해 저도 정말 유감이라고 생각해요.”

 “…에릭도 언젠가 죽일 생각이셨습니까?”

 “……”

 

 에릭이라는 이름에 렉터는 차갑게 식어버리며 입을 닫아버렸다. 나디르는 그런 렉터의 반응에 놀라며 내려놓았던 총구를 다시 한번 힘겹게 끌어올려 그의 몸을 향했다. 렉터는 반대로 나디르의 행동을 이해하며 살짝 낮아진 톤으로 목소리를 냈다.

 

  “이런 상황에서도 에릭을 걱정하시네요. 꽤 많은 정을 나누셨나 봅니다, 제가 없는 틈에 말이죠.”

“이렇게 위험한 사람 곁에 두고 싶지 않아서 그런 겁니다.”

 

나디르는 더 이상 양보할 생각이 없었다. 에릭이 위험하다면 그를 포기하는 것이 옳다는 게 그이 마지막 정착지였다. 한숨을 토해내던 나디르는 눈가에 힘주어 렉터를 눈을 피하지 않고 다시 입을 열었다.

 

“에릭은 제가 데리고 가겠습니다. 부디 자백해주세요, 늦지 않았습니다.”

“…아뇨, 너무 늦어버렸습니다.”

“당신이 제 말에 따라주지 않는다면 총을 쏠 수 밖에 없습니다.”

“저는 에릭과 함께 떠날 거예요, 나디르.”

“아니면 제가 당신을 죽이려고 할 거예요, 그러니 제발.”

 

제발 이라는 말에 렉터는 냉소하게 대답했다.

 

“나디르, 이미 제발이라고 말씀하신 것에서 당신은 절 죽일 마음이 없으신 겁니다.”

 

 렉터는 등을 돌려 밖으로 나가려고 했고, 나디르는 자신에게서 등을 보인 렉터를 향해 멈추라고 소리쳤다. 하지만 렉터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고, 결국 나디르는 울분을 대신하여 차가운 소음으로 그를 붙잡았다. 렉터는 오른쪽 종아리를 스친 총알에 그대로 무릎을 꿇을 수 밖에 없었다. 나디르는 저 멀리 주저 앉은 그의 모습에 놀라 총을 떨구었지만 곧바로 들려오는 목소리에 더욱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에릭은 방 밖으로 나오지 말라는 렉터의 말에 기다리고 있다가 큰 소리가 들려 뛰쳐나왔을 때에 상처를 부여잡고 있는 렉터와 다리에 힘이 풀려 앉아있는 나디르의 모습이 동시에 눈에 들어왔다. 에릭은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 것인지 파악해야 했지만 다친 렉터의 모습이 우선이라 그의 옷에 있던 손수건을 빼내어 상처부위를 지혈했다. 나디르는 그런 에릭의 모습을 보며 넋을 놓고 있다가 렉터가 에릭의 어깨에 손을 얹자마자 크게 소리쳤다.

 

 “에릭, 그에게서 떨어지세요!”

 “…다로가, 자네가 쏜건가?”

 “―그건.”

 “어째서 그를 쏜 거지?”

 

 음의 높이가 떨리는 에릭의 목소리에 나디르는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지 못했고, 렉터는 에릭을 향해 웃어주며 그는 자신이 생각한 옳은 행동을 한 것뿐이라고 말해주었다. 에릭은 그래도 상처를 내지 않았냐며 화를 냈다. 나디르는 그런 둘의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이미 좋아하는 이 한 명을 잃었는데 당신까지 잃는 것은 너무 잔혹한 일이다. 나디르는 옆에 떨어진 총을 주워 잡으며 에릭을 향해 낮게 으르렁거렸다.

 

 “이리로 와요, 에릭. 그자는 당신을 죽이려고 한 사람이야. 위험해요, 그러니까 제 옆으로 와줘요.”

 “위험하다고…?”

 “그 자는 사람을 죽이는 범죄자예요. 그러니까 저도, 당신도 그런 사람과 함께해서는 안 돼요.”

 

 함께 해서는 안 되는 자, 에릭은 나디르의 말에 몸을 움찔 떨고 말았고, 렉터는 이 이야기의 엔딩은 정해졌다는 걸 깨달았다. 에릭은 렉터의 상처에 손을 떼고 자리에서 일어나 나디르를 향해 걸어갔다. 나디르는 에릭이라도 자신의 곁에 와줬다는 사실에 기뻐 웃으며 손을 내밀었지만 에릭은 중간에 멈춰 서서 고개를 바닥으로 돌려버렸다. 그의 머릿속에서 지나가는 많은 기억들이 괴롭게만 만들었다. 인정해야 할 사실을 지금까지 부정한 게 지금에서야 자신에게 벌을 주는 건가. 에릭은 고개를 들지 않은 상태로 입을 열었다.

 

 “저와 함께 가요, 에릭. 저 역시 당신을 외롭게 두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까―”

 “다로가, …아니 나디르라고 부르는 게 맞는 거겠지.”

 “…에릭.”

 “아마 자네와 있어도 난 계속 외로울 거야. 자네를 볼 때마다 과거의 친구 얼굴이 떠오른다네. 그러면 자연스럽게 깨어나기 전의 기억들이 날 붙잡아. …그런 고독 속에 꺼내준 건 렉터네. 그러니… 난 그를 떠날 수 없소."


 나디르는 그의 말이 믿기지가 않았다. 어째서 일까, 자신이 부족한 것인가. 이대로 모두를 잃은 채 끝이 나는 건가. 그는 또 한번 무너져 내릴 수 밖에 없었다. 에릭은 조심히 고개를 들어 그의 얼굴을 바라보다 초점을 잃은 다로가의 눈빛에 더 이상 해야 할 말도, 하고 싶은 말도 꺼낼 수가 없어 무거운 몸을 돌려 렉터에게 향해 그대로 그 둘은 나디르를 혼자 남기고 밖으로 나와버렸다. 나디르는 자신의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진 두 사람을 지금까지 온 상황 속에도 좋아하는 감정이 남아있어 가슴이 찢어질 듯 괴로웠다. 온 몸을 부둥켜 안고 자리에서 숨이 넘어갈 듯 울음을 토해내며 나디르는 이 결말을 인정해야 했다.

 

 차에 올라탔지만 들려오는 울음소리에 에릭은 무릎을 끌어 안고, 고개를 파묻었다. 렉터는 차를 돌리며 집안을 들여다보았고, 그의 울음소리와 집이 더 이상 보이지 않을 때쯤 에릭을 향해 물었다.

 

 “후회 안 하실 건가요?”

 “후회?”

 “그를 친구로 여기지 않았습니까, 다로가 라고 부르면서요.”

 “그저 과거에 취해있어 그런 거야. 그가 에릭이 아는 다로가가 아니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네. 아무리 그와 대화를 나눠도 더 이상 내가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니야. 다로가는 … 오로지 에릭의 기억 속에만 살아있소.”

 “그렇군요. …에릭의 기억 속에서만 살아있군요.”




오유x한니발 (크오) 외에 잡다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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