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귤러스 블랙이 그 자신의 죽음을 기억해내기까지는 40일의 시간이 걸렸다. 마법사들의 세계에서 유령과 영혼의 존재라는 것은 통념적이지만, 점점 퇴락해가는 무언가에 불과했고, 레귤러스는 스러져가는 것에 관심을 갖기엔 너무나 정점에서 살아가는 인간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유령’이라는 것에 대한 지식이라곤 매우 상식적인 것들밖에 알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그의 궁금증은 그 상식적인 한에서 충분히 해결 가능했다. 바로 유령이 되기 위해서는 사람이 죽어야 한다는 것이고, 그렇기에 지금 유령인 자신은 죽었음을 말이다.

죽음에서부터 깨어나 유령으로서 산 자의 세계에 돌아온다는 것은 무척이나 아침잠을 깨어나는 것과 비슷하다. 다만, 모두들 저마다의 시간에 깨어나 하루를 살아가고 있을 때, 죽은 자만이 홀로 남아 새벽의 시간에 멈춰있다는 것만이 조금 다른 점이었을까.

우리가 아침에 일어나 점차 잠을 깨며 어제와 오늘을 회상하듯이, 유령 또한 점차 깨어나 생과 사의 기억을 되살린다. 다만, 사자들의 시간은 살아있는 자들의 그것보다는 느리기에, 무척이나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이 유일한 차이점이다.

그는 어렸을 적부터 가문의 기품을 교육 받아왔기에, 그의 형제와는 달리 언제나 조용하고, 어른스러운 성격이었다. 사실 그 자신은 크게 그렇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지만, 그와 얼굴이라도 알고 지내는 그 누구라도 이 의견에 동의했을 것이다. 레귤러스 블랙의 유일하게 어린아이다운 점을 안달 힘을 내서 생각해낸다면, 아마 그가 그 누구보다도 퀴디치와 빗자루를 사랑했다는 것이 아닐까. 물론, 그의 형제나 그의 주변에서 항상 왁자지껄 떠들어대던 이들은 이에 대해 눈살을 찌푸리며, ‘그래도 역시 제임스가 최고지.’라고 달리 말했을 테지만.

하지만, 이제는 레귤러스 블랙이 진정으로 퀴디치와 바람, 하늘을 사랑했다고 단언할 수 있었다. 그가 유령이 된 후 처음으로 기억해낸 것이 바로 바람과 빗자루 위에 올라타서야 비로소 서서히 퍼져나가는 그의 순수한 즐거움이었기 때문이다. 하늘에서의 레귤러스의 표정을 볼 수 있었다면, 그의 형제도 그가 간악한 순혈 슬리데린이라는 것을 잠시 잊고, 어릴 적의 추억을 회상해보지 않았을까.



40일이 지나 자신에 대한 것을 하나 하나 떠올려내던 레귤러스 블랙은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그 자신의 죽음이 와 닿지 않았던 이유에서일까? 아니면 그야말로 죽음이 그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어쩌면 모든 사람은 자신이 죽었다는 것을 마지막에 가서야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온전한 존재를 인식하고 나서야 비로소 그 존재의 죽음을 인정할 수 있다는 것일까? 어떤 이유에서든 간에, 결론은 변함 없다. 레귤러스 블랙은 죽었다.


어두운 런던의 밤에 비가 거리를 잠식해갔다. 겨울 밤과는 어울리지 못하는 소나기 같은 비였다. 시리우스 블랙은 그리몰드 광장 12번지의 부엌에 앉아 창 밖을 내다보며 이렇게 비 오는 어두운 날 조차에도 두문불출해야 하는 자신의 처지를 원망했다. 만약 제임스, 그의 친우가 살아있었더라면 이런 억울한 신세를 같이 한탄해주지 않았을까. 아니, 오히려 그라면 꼴 좋다며 비웃고 있을지도 모를 터였다. 시리우스 블랙은 들고 있던 머그를 탁자에 내려놓으며 한숨을 쉬었다. 실은 그는 자신의 망상에 대한 답을 알고 있었다. 만약, 제임스가 살아있었더라면, 그는 애초에 밖에 못 나갈 신세에 내려앉지 않았을 것이다.

단 한 사람의 비틀린 신념과 악행 때문에 그러한 끝없는 비극이 벌어졌던 것일까. 모든 것이 과연 볼드모트의 탓이라고 할 수 있을까. 어떤 학자들은 악행이 한 인간 개인만의 죄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시리우스는 단언할 수 있었다, 그런 주장을 하는 이들은 결코 그런 비극을 겪어본 적이 없는 것이라고. 끝없는 불행의 구덩이에 빠져본 이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누군가, 신이든, 사람이든, 악마든 누군가를 죽을 듯이 탓하고 미워해, 자기 자신을 구원하고자 하는 본능이 있다는 것을 안다. 단지, 시리우스 블랙은 순혈주의 사회나 소수 가문들의 권력 독점, 세뇌 교육을 등한시하고 볼드모트라는 개인을 원망의 대상으로 삼았을 뿐이었다.


스스로를 꽤나 합리적인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그가 그와 같이 비합리적으로 보일 법한 이야기를 굳게 믿고 있는 것은, 아마 그의 형제가 그 이유일 것이다. 시리우스 블랙 자신이 순혈주의 가족에 태어나 교육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데스 이터가 되지 않았다고 자만한다면, 그 핍박의 화살을 받는 건 다름 아닌 그의 동생, 레귤러스 블랙이었다. 그리고 시리우스는 동생이 구원받지 못한 이유가 자신이 도망자이고 비겁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인지하고 있었기에 그는 자신의 형제를 기억 저편으로 지워버린 지 오래였다.


하지만 이 세상의 운명이란 것, 어쩌면 어떤 이들은 신이라 부를 무언가는 시리우스 블랙의 그런 도피를 방관할 생각이 없었는지, 그런 비 오는 런던의 하룻밤 그리몰드 광장에 찾아온 슬픈 푸른빛의 한 영혼이 있었다.




툭. 투둑.

머그컵 속의 커피에 원인을 모를 투명한 물방울이 섞여 들어갔다.

문득, 시리우스는 생각했다. 유령이 되어도 어찌하면 이렇게 레귤러스 같을 수가 있을까. 본래 유령 같던 남자라서 죽음에서는 이토록 생과 같은 것일까.

어리석은 마음에 그는 주머니 속에서 굴러다니던 볼펜 한 자루를 꺼내 자신의 눈 앞에서 물을 뚝뚝 흘리며 나무바닥을 적시고 있는 그에게 건넸다.

 서 있는 그의 형제 또한 어리석은 생각에 어울려준다는 듯이, 건넨 볼펜을 향해 손을 뻗었고, 잡는 시늉을 했다. 오직 시늉만이 가능하다는 것이 확인되자, 그는 쓸쓸하게 웃었다. 어떤 이유에선가 그는 말을 전할 수 없는 듯했다.

시리우스는 자신의 형제가 유령의 길을 선택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그런 레귤러스의 행동에 의문을 품지 않았다. 이는 모두 어떤 신비한 힘이 그들의 마음 깊은 곳의 찢어지는 후회를 깨달아 만들어준 기회라 생각할 뿐이었다.

창문 밖의 어두운 구름이 걷혀 햇살이 부엌 안으로 조금씩 기어들어오자, 우뚝 서있던 레귤러스 블랙의 선형이 햇빛에 바래듯 서서히 지워져 갔다. 시리우스가 조급한 마음에 창문 쪽으로 달려가 커튼을 쳤지만, 그가 뒤를 돌았을 때는, 부엌에 남아 있는 것은 단지 자기 자신과 바닥에 고여 있는 얕은 물웅덩이 뿐이었다.



그 순간, 탁자 위에 내팽개쳐져 있던 볼펜이 몸을 떨며 서서히 일어났다.

시리우스는 마치 광인처럼 눈을 번뜩이며 공중을 응시했다.

“레귤러스? 아직 남아 있는 거야? 어서 대답해!”

하지만 대답이 돌아올 리가 없었다. 그랬을 터였다.


그러나,

흔들리던 볼펜이 점차 힘을 갖춰가며 움직이더니, 이내 탁자 위에 무언가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너무나 긴 몇 초가 흐른 후에, 기력이 다했다는 듯이 볼펜이 툭 떨어졌다.


  비 오는 겨울날, 런던의 그리몰드 광장 12번지에 남은 것은 세 가지였다.

어리석은 한 사내와, 점차 말라가는 물 웅덩이와, 볼펜 한 자루.


하지만 아주 유심히 보면, 탁자에 새겨진 희미하게 일렁이는 한 단어 또한 볼 수 있었다. 

Fare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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