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할까, 고민하긴 했는데 말이지. 이렇게 빨리 오게 될 줄은 몰랐네.”


 아직 다 풀지 않은 짐이 그대로 바닥과 탁자 위에 올려져 있다. 짙은 갈색의 나무로 이루어진 바닥과 청록색의 벽지로 도배된 벽과의 매치된 색감은 묵직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아직 덜 들여보낸 상자를 안아 들어 묵묵히 나르고 있는 벨은 구석진 곳을 살피며 짐 풀기 전에 청소부터 해야겠다는 짧은 말과 함께 어디론 가 나가버렸다. 문 밖으로 나가는 벨을 잠깐 바라보다가 웃으면서 들어온 더운은 순식간에 표정을 굳히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 어느 쪽이 찾아온 건지 안 거야?”


 더운의 말에 고개를 작게 흔들며 아직 알아낸 사실은 없다고 뜻을 표현했다. 갑자기 본거지 주위에 깔린 경찰이라니, 평소에 비밀 아지트처럼 오로지 조직원만 알고 있는 장소가 밖으로 새어나갔다는 뜻이었다. 과연 누가 그랬는지에 대해 알 수 없지만 이 자리에 있는 모두를 의심해야 한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차차 정체가 드러나겠지, 하는 짧은 말을 건네오는 그를 보며 어쩔 수 없이 자리를 비켜줘야 한다는 걸 알아차린 더운은 어깨를 살짝 들썩이다 이내 돌아 나왔다. 그는 자리에 가만히 앉아있다 무언가 고민하는 듯 허공을 바라보다 이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미안해― 도와줘야 할 일이 있는데 말이지.”



*  *  *




 시끄러운 술집, 아직 해는 떨어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알코올 향과 담배연기가 짙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하나의 배지를 수트에 단 사람, 혹은 소매 끝에 단 사람,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은 소속을 나타내는 걸 몸에 지니고 있었다. 자잘한 일화나 별 볼일 없는 농담까지 나누는 이들은 이따금 서로에게 시비를 걸며 싸움질도 했지만 어찌되었든 그들도 한 패밀리였다. 그 안에 타인이 들어온다면 언제든 합세하여 그들을 없애려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그런 곳에 문이 굉음을 내며 열렸고, 거친 행동을 하느라 흐트러진 옷깃을 정리하며 나타난 붉은 머리칼의 더운이었다. 그 뒤에 따라나선 백금발의 남자는 입을 가리며 웃었다. 순식간에 존재감을 뿜어대며 나타난 이들은 이 중에 가장 별나고, 외부인 같았다. 당연하게도 처음 보는 얼굴에 그 장소에 있던 이들은 모두 더운과 텐야를 향해 총구를 겨눴다. 더운은 양 손을 살짝 들어올리며 손님 대우가 왜이리 예의가 없는 건지 혀를 차며 농담을 했고, 자신들을 농락하는 듯한 말투에 누군가 나서 방아쇠를 당기려 했다. 텐야는 작게 바람을 뱉으며 웃음을 또 한번 쳤고 일촉즉발의 순간에 누군가가 유리잔을 탁자 위에 강하게 내려놓고 총을 내리라고 지시했다.

 

 “말이 통하는 사람이 저기에 있네.”


 들어올렸던 손을 곧바로 내리며 지시를 내린 남자에게 다가가는 더운과 그 뒤를 따르는 텐야, 더운에게 살살 하는 게 어떻겠냐며 말하며 실례하겠다고 하는 그는 자연스럽게 의자에 앉았다. 텐야를 향해 다가오며 어디에 앉는 거냐고 곧바로 한대 칠 거 같이 나오는 타인을 막아서 멱살을 붙잡는 더운을 남자는 붙잡아야 했다. 텐야는 그나마 지성인을 만난 거 같아 반갑다는 듯이 두 손을 포개어 턱을 괸 채로 입을 열었다.


 “그래서 무슨 일 때문에 남의 구역을 함부로 찾아온 거지?”

 “그게 아무래도 당신네 아랫사람이 이쪽에 먼저 침범한 거 같아서 말이죠.”


 남자는 들고 있던 잔에 남아있는 술을 모조리 입에 털어 넣고 냉소적인 웃음을 흘리며 그런 증거가 어디에 있냐고 물었다. 시끄러웠던 분위기는 온데간데 사라지고, 모두들 더운과 텐야를 지켜보는 와중에 그들은 입가에 미소를 잃지 않았다. 텐야는 이미 예상했다는 듯이 바로 다음 말을 이어나갔다. 녹스 패밀리는 가만히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확실히 구 본거지를 잃게 된 건 예상하지 못했기에 대처하지 못했다. 그 뿐이었다. 정보가 손에 들어온 이상 확실하게 되돌려 줘야 한다, 그것이 녹스 패밀리의 뜻이었다.

 텐야는 차분히 주도권을 잡기 위해 숨겨놓았던 수를 내놓았다.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텐야와 더운과 다른 방에 인질을 데리고 대기하고 있던 만티아가 그 놈만 던져 놓고 방을 나갔다. 인질로 잡혀있는 상대 패밀리의 조직원, 숨어 들어 정보를 훔쳐간 이었다. 정보를 불게 만들기 위해 약간의 폭력을 쓴 참이라 그의 입술은 터져있었고, 한쪽 눈도 뜨기 힘들어 보였다. 다친 그를 걱정하고, 돌려받기 위해 거래를 해올 것이라 생각한 텐야와 달리 방 안에 있는 이들은 웃음을 터트렸다. 인질로 잡힌 녀석에게 침을 뱉으며 비난을 했다. 텐야는 그들을 보며 믿을 수 없었지만 평정심을 유지하기 위해 그 장면에 눈을 돌렸다. 남자는 흔들리지 않는 텐야를 보며 입을 열었다.


 “붙잡혔으면 죽어야지. 패밀리에게 폐를 끼치다니, 그런 녀석은 우리 패밀리가 아니라고. 어이! 알, 저 녀석 죽여.”

 “잠―!”


 죽이라는 말에 바로 눈동자가 흔들리며 그들을 막기 위해 다른 수를 내놓으려 했던 텐야는 자신이 말리기도 전에 뒤따라오는 총성에 어깨를 살짝 떨었다. 가차 없이 동료를 죽이는 이 놈들은, 아니 동료라고 칭할 자격도 없는 이들이었다. 텐야는 주도권을 잡는 것에 실패했다. 마피아가 피도 눈물도 없는 놈들이라고 농담으로 하는 말을 들었지만 이 정도로 자신의 사람에게 가차없을 줄은 몰랐다. 애초에 이런 삶을 살아온 지 얼마 안된 햇병아리가 이들을 상대하겠다고 생각한 게 어리석은 짓이 아니었는지. 텐야의 머릿속은 혼란으로 가득 차 올랐다. 더운은 그런 텐야의 분위기를 눈치 챘기 때문에 가볍게 그의 등을 터치했고, 더운의 행동에 정신을 차린 텐야는 여유롭게 상황을 이어가야 했다. 란이 그러라고 부탁을 했으니 말이다.



*  *  *



 “두 녀석인데?”

 “뭐?”

 “두 명이라고, 한 놈이 아니라니까.”


 분홍 양갈래, 로나는 씹고 있던 풍선 껌을 불었다 터트리며 키보드를 두들기다 옆에서 기다리고 있던 란을 향해 말을 걸었다. 란은 외부에서 온 이가 한 사람인 줄 알고 있었는데 한 명 더 있다는 말에 놀랐다. 사진을 들여다 보니 하나는 이미 녹스에게 붙잡혀 어떤 패밀리인지에 대해 불었던 놈이었다. 란은 로나에게 자신을 대신해 전 패밀리에게 사진을 보내달라고 얘기하려던 참에 혹시 더 있을 지 모르는 스파이에 주먹을 강하게 쥐었다. 의심해서 좋을 건 없지만 이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 고민하고 있는 란의 표정이 평소의 그 답지 않게 어둡자 그걸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로나는 가볍게 말 한마디를 던졌다.


 “일단 보내. 보내고 나서 남은 한 자식이 도망쳤다. 어쨌든 어떤 패밀리에서 온 놈인지는 알아냈으니 붙잡으면 되는 거고, 도망쳤다고 하면 누군가 정보를 흘렸단 거니까 이 안에 아직 녹스 패밀리가 아닌 사람이 있다는 거잖아. 자신이 안 들켰다고 믿고 있을 테니까. 그 녀석부터 잡는 거야.”

 “도박을 하란 말이야?”

 “뭐, 짧게 말하면 그런 거지.”


 컴퓨터 의자를 빙 돌리며 남은 자료를 해킹하는 로나를 말 없이 보던 란은 그녀의 말대로 걸어야 했다. 란은 로나에게 그 사진을 임무 중에 있는 조직원에게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총과 칼, 단순한 걸로만 싸울 수 없는 요즘은 머리 또한 잘 굴려야 하는데 그것보다 더 있어야 하는 건 일명 깡이었다. 모두를 의심하고 있는 란이었지만 동시에 모두를 믿고 있었다. 그렇기에 걸 수 있는 도박, 내놓은 건 녹스 패밀리라는 칩이다.




*  *  *


 

 ‘엔소테는 건물 옥상 위에서 대기, 신호가 오기 전까지는 발포를 삼가주세요.’

 

 아라의 지시대로 발포 명령이 떨어 질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 실로프는 조준경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한 순간을 놓치면 다시는 오지 않는 기회인 만큼 긴장을 한시도 풀 수가 없었다. 조준경에 보이는 타 패밀리의 조직원, 텐야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사람에게 조준을 맞추고 다음 지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라는 텐야와 더운이 착용한 도청장치와 망원경을 통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지 확인하고 있었다. 여유로운 상황이 지속될 줄로 알았던 아라, 텐야의 화술은 매번 잘 통했기 때문이다. 거래는 지속되어야 하는데 고막을 찌르는 총성에 아라는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터졌다는 걸을 들었다. 거래의 대상이었던 인질을 죽이고 만 것이었다. 이렇게 되면 당연히 거래를 하려고 했던 녹스 쪽이 기울게 된다. 아라는 자칫하다 정말로 상대 패밀리를 죽여야 한다는 걸 느꼈다. 아무런 수도 없이 적진에 들어가 있는 이상 무사히 나올 수 없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하던 차에 도착한 란으로부터의 메시지. 아라는 즉시 모두에게 알렸다.


 “스파이가 한 명 더 있다는 로드의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모두에게 전달 되었겠지만 보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제가 알려드리고 있어요. 인페르노, 즉시 이 한 명이 어디에 있는지 찾아주세요. 같은 건물에 있다고 GPS에 떴다고 합니다.”


 아라의 지시를 들은 만티아는 알겠다는 말과 함께 텐야와 더운이 있는 쪽을 나와 다른 방으로 향했다. 이 순간에 텐야와 더운이 위험한 것은 사실이나 또 다른 이를 먼저 잡는 게 우선이었다. 그 역시 이 대화를 듣고 있을 것, 그러니 조금이라도 빨리 그를 처분하는 게 맞는 거였다. 정보가 빠져나가면 빠져나갈수록 위험해지는 건 녹스였다. 텐야의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아라는 결국 입을 뗐다.


 “츠쿠요미와 켈베로스 들어주세요. 자칫하다 잘못되는 경우를 위해 엔소테를 배치한 겁니다. 그들에게 이 무리 중 우두머리가 죽을 수 있다는 걸 알려주세요. 엔소테는 그를 저격하고 있습니다.”


 텐야는 다음 수를 내놓았다. 아라의 말대로 목숨값을 거래로 이용하는 거였다. 상대나 자신이나 위험한 건 마찬가지고, 이쪽이 절대 열세가 아니라는 점을 알려주는 거였다. 더운은 언제든 싸울 준비가 되어있다는 자신만만한 표정이었고, 그런 모습에 텐야는 이 안에 있는 무리가 덤벼도 이길 수 없다고 거들었다. 결국 남자는 무엇을 원하냐고 물었다. 드디어 나온 말, 텐야는 간단한 이야기라고 하며 말을 이어나갔다.


 “누구와 거래했는지 거래 대상을 알려. 당신네 패밀리와 충돌은 없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어째서 우리에게 손을 댄 거지?”

 “그걸 알려줄 리가 없잖아?”

 “그럼 다 죽을 수 밖에.”

 “어디서 건방진 소리를!”


 적대적인 자세가 극명하게 보이자 아라는 바로 실로프를 향해 얘기했다. 붉은 조준점이 남자의 가슴팍에 꽂히고 이내 모두의 행동이 시간이 멈춘 듯 움직이지 않는다. 더운은 나이스 타이밍이라고 작게 속삭였다. 텐야는 안도의 한숨을 살짝 내뱉고 원하는 정보가 나오지 않으면 이곳 사람들이 당신을 포함해 살아서 나갈 수 없다고 말했다. 남자는 그 말을 듣고 양손을 들며 다 죽인다 해도 녹스 패밀리의 적수를 더 늘리는 꼴 밖에 되지 않는다 말했다. 텐야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으나 뒤에 숨겨져 있는 걸 알아야 했다. 위험이 되는 이들을 알아야 대처를 할 수 있으니 말이다. 텐야는 남자의 말에 고민하다 하나의 의문점이 생겼다. 동료가 아닌 단순한 거래자인데 오히려 이렇게 녹스온과 대치 중이라면 거래자를 팔고 녹스와 거래를 하는 게 더 지금 상황에서는 이로울 거였다. 텐야는 몸을 앞으로 기울어 양손을 들어올린 남자를 향해 가까이 갔다. 둘 사이에서 들릴 법한 목소리로 속삭이는 그에 남자는 몸을 뒤로 내빼려 했지만 의자 탓에 막히고 말았다.


 “누구길래 그리 겁먹은 거지? 우리와 거래하는 게 지금에서는 더 현명한 방법이 아닌가?”

 “…흥, 쪽수도 얼마 안 되는 놈들이랑 손을 잡아봤자 오히려 우리가 손해인 법이라고.”

 “그래? 아쉽게 됐네. 나랑 좀 친하게 지낼 수 없나 했더니.”


 검은 시스루 셔츠를 입은 텐야가 가까이 다가가자 보이지 않던 그의 새하얀 피부가 검은색에 뒤덮여도 돋보였다. 하네스를 입은 터라 그의 누구든 홀릴 듯한 자태는 더욱 금기에 손을 대는 듯한 분위기를 풍겼다. 더운은 그를 보며 또 임무 중에 장난을 친다고 생각해 말릴까 했던 참에 바깥에서 총성이 들려왔다. 어떻게 된 것인지 상황파악을 위해 그녀는 이어마이크를 통해 아라에게 말을 걸었다. 바깥 상황이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물어오는 더운의 목소리에 아라 역시 이미 총성이 들려온 곳이 어디인지 찾으려 했다. 외부는 아니었다. 내부 안에서 난 총소리였다.

 란에게 도착한 메시지의 이미지 속 인물을 찾으려 했던 만티아는 녀석의 뒤꽁무니를 밟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어째서인지 상황이 꼬여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뒤편에 도착해 있는 또 다른 패밀리였다. 만티아는 그 모습을 보며 이제야 알았다는 듯 중얼거렸다.


 “이중 스파이였네. 아, 여기는 인페르노 타깃을 확인했으나 제 3의 패밀리가 이곳에 모습을 드러냈어.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총격전이 시작된 듯 하네. 이 순간 녀석을 잡는 건 불가능 한 것으로 판단, 다음 지시를 기다릴게.”


 아라는 만티아의 전달을 들은 후에 고민도 하지 않고 지시를 내렸다. 중요한 건 모두의 안전이다. 누가 어떻게 된 것인지 모르는 데 이 자리에 오래 있어 봤자 좋을 거 없다는 걸 알았다. 배후가 누구인지에 대해 알아보는 건 이후에 어떻게 하면 된다고 생각한 아라는 모두에게 상황 속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면 무사히 복귀하는 걸로, 철수하는 것으로 정했다.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벨이 차를 타고 대기하는 중이니 주변을 빙빙 돌아 한 명씩 먼저 나오는 사람대로 태우는 걸로 정했다.

 만티아는 이제 조용히 나가면 되겠구나, 창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려던 찰나에 누군가 그녀의 발목을 붙잡았다. 그녀는 후, 하고 숨을 한번 내뱉고 장전된 권총과 지니고 있던 단검을 꺼내 들었다. 우연하고 빠른 몸놀림, 그것이야 말로 그녀가 가진 강점이었다. 상대는 셋이었음에도 만티아는 주저하지 않고 권총으로는 위협사격을 가해 빈틈을 발견해 상대의 품을 파고들어 단검으로 가차없이 급소를 찔렀다. 식은 죽 먹기일 정도로 가벼운 상대에 만티아는 그대로 돌아보지도 돌아보지도 않고 건물을 빠져 나왔다.


 더운과 텐야는 총격전에 안에 갇힌 상황이었다. 총을 갖고 있긴 했으나 둘 다 총을 사용하지 않는 이라 있어도 권총뿐이었다. 상대가 적었으면 어떻게든 돌파하고 나갔을 테지만 둘이서 상대해야 할 수가 많은, 거의 난전 수준이었다. 더운은 달려드는 놈들 위주로 얼굴에 주먹을 내리 꽂아 나가떨어지게 만들었다. 텐야는 단도로 다리 위주로 공격해 상대가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만 공격했다. 이어지는 난전 속에 정신이 없을 정도였다. 더운은 시끄럽게 울리는 총소리에 귀아파 죽겠다는 욕 아닌 욕을 내뱉으며 가장 가까이에 있는 문이 어딘지 확인했다. 가까운 건 카운터 뒤에 있는 문이었다. 더운은 텐야와 함께 나가려 했지만 어째서인지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더운은 어떻게 된 것인지 혹시 이 난전 속에 싸우고 있는 건가 주변을 둘러봤지만 한 눈에 보여야 하는 그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여기는 켈베로스, 츠쿠요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일단 건물을 빠져나가면서 어디에 있는지 찾아볼까?”

 ‘판도라입니다. 츠쿠요미가 응답이 없습니다. 찾아보면 좋을 거 같지만….’

 “…그 자식도 이곳에 없잖아. 이 순간에 납치해갔다는 거야?”


 불찰이었다. 난전 속에 빠져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그를 신경 쓰지, 아니 정확히는 그들을 얕본 거였다. 아무리 사람 사는 일이라지만 이번에는 예상하지 못한 일이 많았다. 인질을 죽이고, 제 3자의 난입, 그리고 텐야의 납치까지. 더운은 이 일을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에 벌써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아라 역시 텐야가 사라졌다는 얘기를 전해 듣고 텐야에게 응답을 원한다고 통신을 했지만 답이 없었다.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진 게 분명했다. 어쩌면 좋을 지 고민하던 차에 아라는 텐야에게는 도청장치가 아직 남아있다는 걸 깨달았다. 이 도청장치가 끝까지 들키지 않고 갈 수 있다면 텐야가 어디에 잡혀있는지는 손쉽게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실로프의 사격으로 더운은 많은 적수를 돌파하고 나올 수 있었다. 완벽한 백업 덕에 더운은 한껏 웃으며 싸우는 와중에도 실로프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그를 흔들리게 하지 말라고 만티아가 거들었지만 말이다. 갑작스런 일에도 최악의 수는 넘겼다. 텐야를 제외한 모두들 벨과 함께 합류해 란이 있는 곳으로 복귀했다.



*  *  *




 텐야의 얼굴이 비치지 않는 모두가 모인 지금 다들 웃고 있지만 상황이 좋다는 뜻은 아니었다. 로나의 도움 덕에 텐야가 있는 위치는 알아냈지만 문제는 그가 무사하냐는 점이었다. 통신이 두절된 상태, 장소를 보아 하면 중간에 난입한 패밀리가 납치해간 거였다. 하지만 이유는 모르는 상태이다. 그들은 왜 텐야를 납치해 간 것인지, 단순하게 생각하면 녹스 패밀리과 접촉을 위한 것일 텐데 그렇다면 그들이 배후인 것일까? 모든 얘기가 복잡하게 꼬여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구하러 갈 거잖아.”


 무거운 침묵을 깨고 더운이 먼저 입을 열었다. 란은 그런 말에 당연하다고 대답했다. 다만 고민을 하고 있는 이유는 배후 탓이었다. 난입한 제 3자가 배후라고 단정짓기엔 묘하게 엇갈린 느낌이었다. 자신들이 직접 찾아올 거라면 타 패밀리를 끌어들인 건 왜인지, 복잡했다. 뒤에서 벽에 기댄 채 지켜보기만 하던 만티아가 결국 뒤를 이어 입을 열었다.


 “숨은 붙어있겠지. 하지만 멀쩡하진 않을 거야. 분명 우리 쪽 정보를 빼내기 위해 입에 담지도 못할 방법을 썼을 수도 있어. 말했듯이 멀쩡할 거야, 우리와 유일하게 거래할 수 있는 건 텐야 목숨뿐이니까.”


 그러니 조금이라도 더 빨리 구하러 가야 하지 않겠어, 뒷말을 잇진 않았지만 만티아의 뜻은 충분히 전달되었다. 모두가 위험해질 수 있는 상황이나 지금이나 앞으로나 다를 바가 없다는 걸 깨달은 란은 바로 텐야를 구할 채비를 하자 말했다. 더운은 란 역시 같이 가는 거냐 걱정스런 말투로 물었고, 란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료가 붙잡혀 있는 이상 가만히 앉아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게다가 교섭 담당인 텐야가 없는 이상 자신이 직접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더운과 벨은 직접 나서는 란의 곁을 지키기로 하고, 아라는 진입로와 퇴로를 열어 놓기로 했다. 만티아는 그들과 교섭하는 중 잡혀있는 텐야를 구하기로, 실로프는 타 건물에서 저격으로 백업하기로 했다.



*  *  *




 협상 테이블에 앉아있는 란과 그리고 제 3자 패밀리일줄 알았지만 자신은 마피아가 아니며 이름은 아마테라스라고 부르라고 하는 남자였다. 어쩐지 텐야와 분위기가 묘하게 닮은 남자, 그러나 새까만 머리칼은 그가 아님을 분명하게 알리고 있었다. 란은 무엇을 원하냐고 그에게 물었다. 그는 눈빛은 변함없이 입가만 미소를 짓더니 텐야, 라고 말했다. 란은 그가 어째서 그의 본명을 알고 있는 것인지 물었지만 아마테라스는 대답할 의지가 없어 보이는 듯 했다. 그저 앞으로 알게 될 것이라며 대답을 회피하는 그, 란은 이 자가 배후와 가장 관련이 깊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았다.


 “그를 데려갈 거라면 데려가. 어차피 우리 앞으로 징그러울 정도로 봐야 할 사이니까. 이번 건 솔직히 내 개인 욕심으로 그랬던 거라서 말이지. 거래할 생각으로 왔겠지만 아쉬웠겠네. 우리 보스가 바라는 건 녹스 패밀리의 몰락이거든.”

 “…인페르노, 츠쿠요미 확보에 성공했나?”

 ‘응, 로드. 그는 무사해. 정신을 잃은 거 같지만.’


 녹스 패밀리의 파멸을 원한다면서 이렇게 쉽게 텐야를 돌려주고, 의심이 갈 정도로 그냥 보내주는 모습을 란은 의심했지만 그들은 되돌아 갈 때까지 손끝 하나 건드리지 않았다. 그 상황에 더운 역시 나오면서 누군지 이상하다고 얘기 했다. 본명까지 알고 있는 그들, 누구인지 알 수 없지만 앞으로 그들과 싸움이 지속된다는 건 확실했다.


 “여기는 로드, 츠쿠요미 확보에 성공했다. 하티와 켈베로스, 함께 복귀한다. 복귀 지점에서 모이도록 하자.”


 벨은 만티아가 텐야를 들쳐 없고 있는 모습을 보고 달려갔다. 만티아는 그를 조심이 내려놓으며 정신을 잃었지만 맥박은 정상이라 덧붙였다. 외상이 많아 보이나 자세한 건 검사 해야겠다는 만티아의 말에 벨은 아무 말 없이 텐야를 안아 들었다. 텐야는 잠깐 정신이 들었는지 만티아와 벨을 보다가 다들 온 거냐며 실실 웃다 금방 잠들고 말았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한 녹스의 따분한 일상을 바라보던 란은 아마테라스라고 하는 작자와 나눴던 대화를 다시 떠올렸다. 누구인지는 모르나 앞으로 지겹도록 싸워야 할 이들, 란은 조금이라도 더 그들의 정보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오유x한니발 (크오) 외에 잡다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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