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도조사 연성 초창기에 풀었던 썰이라 캐해석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 퇴고 및 오탈자 수정 없이 백업합니다.

- 2차 창작썰은 창작썰일 뿐 원작과 혼동하지 맙시다🤗🤗






고소 수학시절 망기무선으로 후회공 남망기 보고 싶다.. 

익숙함에 속아 그것이 사랑인 줄 몰랐다가 잃고 나서야 상실에 이름을 붙이는.. 





열 다섯 위무선, 당위처럼 함광군 남망기에게 반해서 남잠남잠 수백 수천번 부르며 따라다니는데 남망기는 그 애가 필연처럼 마음에 들지 않았겠지.


친해지려해도 맞는 구석이 이렇게 없어서야. 당시의 망기는 남과 자신을 비교해 성찰할 수 있을 정도로 성숙했지만 또한 아직 극과 극은 끌리기 마련이란 이치는 모를만큼 어렸더랬다. 그렇게 위무선은 치대고 남망기는 철벽치기를 한참, 평소처럼 위무선 밀어내려다 그만 해서는 안될 말까지 해버리고 넌 어찌 그리 매사에 가볍고 천박하게 구냔 말 들은 무선이 표정 미묘하게 변한다. 


매일 보았던 미소인만큼 망기는 저 얼굴이 실은 웃지 않고 있음을 쉽게 눈치채겠지. 오늘따라 자기 말이 날카로웠단 걸 알기에 사과를 해야할 것 같은데 어쩐지 차게 식은 것 같은 무선이의 모습에 말이 잘 안 나와. 


그리고 그 몇 초간의 간격이 무선이가 제게 주었던 마지막 기회란 것도 알지 못했지. 끝내 열리지 않는 망기 입술 가만히 쳐다보던 무선이가 느릿하게 좀전에 망기가 했던 말 반복해. 



- 가볍고 천박하다... 


하긴. 그럴 줄 알았어. 

그저 네가 그럴 줄 몰랐던 것 뿐이야.



 그리고는 아직 해도 지지 않은 훤한 대낮에 엉뚱하게 '잘자, 남망기.' 하고 뒤돌아 가버림. 망기는 일생 잘못을 저질러 본 적이 없다보니 누구에게 진심으로 사과해 본 적도 없었어. 고소 남씨의 둘째 공자로 태어난 이래 처음으로 그 나이대의 소년처럼 굴겠지. 당황스럽고, 초조하고, 불안하고. 


잘못으로부터도 교훈을 얻을 수 있단 말이 무슨 뜻인지 이제야 깨달았을거야. 하지만 해 본 적 없는 일이라도 어떻게 해야하는지 이론은 머릿속에 있으니 자연히 무선이에게 사과해야겠다고 마음 먹어. 그리고 한편으로는 조금 의아하겠지. 사실 여태 무선이를 거절하며 했던 말 중엔 저것보다 훨씬 심한 말도 있었거든. 왜 하필 저 말에 상처를 받았는가, 그 이유를 망기가 알 턱이 없지. 그렇게 오랫동안 무선이가 하는 말을 들었으면서 정작 자기는 무선이에게 아무것도 물어본 적 없었으니까. 


그리고 생에 걸릴 것 없었던 우리의 함광군, 그 이후로 아는 것을 실천하는 게 이토록 힘겨운 일이었나 넋 나가게 된다. 잘못을 저질렀다. 그러니 사과한다. 이 간단하고 쉬운 두 문장 사이에 얼마만큼의 현실이 함축되어 있었는지 까맣게 몰랐으니. 


그렇다. 책만으로는 인생을 배울 수 없었다. 


당장에 사과받을 대상을 찾는 것부터가 난관이었다. 위무선은 그동안 어떻게 그렇게 자신을 잘 찾아왔는지 모를 정도로 운심부지처는 결코 좁은 곳이 아니었고 비록 일시적 객으로 찾아온 수련생들의 출입이 허락된 곳은 한정되어 있다 해도 그 역시 넓었다. 


위무선은 한시도 제자리에 가만히 있지 못하는 사람이었고 그렇다하여 남망기는 그처럼 하루종일 누군가를 찾아 헤맬 수 있을 처지도 못 되었다. 위무선에게 사과하는 것만이 그가 해내야 할 업무인 게 아니었으므로. 다행히 난실에서 가르침을 받을 땐 나란히 앉을 수 있었지만 위무선은 더이상 남망기를 돌아보지 않았다. 인사를 하지도, 이름을 부르지도, 말을 걸지도, 수업시간에 종이쪽지 따윌 던지며 장난을 치지도 않았다. 수업이 끝난 이후 문밖에서 기다릴 생각을 안 해 본 것은 아니나 남망기는 문이 아닌 창으로 뛰어내리는 사람을 뒤따라 갈 수도 없었다.


그 변화는 하루가 채 지나기 전에 모든 사람이 알게 될 정도로 급작스런 것이었으나 본래 웃던 이가 미소를 거두면 가장 무섭다 했던가. 칼로 잘라낸 듯 달라진 태도에 강징도 차마 '이제 철 들었냐' 소리 외엔 별말을 할 수 없었다. 많은 질문이 함축된 걸 알면서도 위무선은 '응!' 한 마디로 답했다.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떠들썩하게 웃는 것은 여전했으나 멀리서 바라보던 남망기가 한참 고심하다 평소처럼 '운심부지처 내 소란 금지'라는 말이라도 하려 한 발 내딛으면 아주 유려하고도 자연스럽게 주변인을 이끌고 그 자리를 떠났다. 


남망기는 소란의 근원을 쫓아다니며 훈계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눈이 마주쳤다. 남망기는 순간 '남잠!' 이라 외치는 밝은 목소리를 들은 것 같았으나 실상은 눈 한 번 깜박이기도 전에 시선은 다시 어긋났음이라. 


남망기는 한 번도 먼저 소리 높여 상대의 이름을 불러본 적이 없었다.


야간순찰을 돌았다. 

담을 넘는 수련생은 없었다. 


수련생들의 숙제를 검사했다. 

빠진 이는 없었다. 


수업을 들었다. 

굳은 얼굴로 지적해야 할 정도로 가규를 어기는 이는 없었다. 


정실에서 조금 먼 곳까지 산책했다. 

익숙한 목소리는 더 먼 곳에서 들려왔다. 


돌아올 때까지. 

누구도 마주치지 않았다.


처음, 미안하다. 경솔했다. 단 두 마디였던 할 말은 이제 눈덩이처럼 불어나 당장이라도 토해내지 않으면 강제로 목구멍 밖으로 쏟아질 것만 같은데 나 아직 이름조차 불러보지 못했다. 웃는 얼굴이 아닌 흔들리는 붉은 머리끈만 바라보며 고개 돌려주기만을 기다릴 때면, 문득, 지난날의 네가, 너도, 


이렇게 내 뒷모습만 보았겠구나 하여. 그럼에도 불구하고 염치와 수치가 내 발목 붙잡으니. 언젠가 이 모든 것들을 칼이라도 들어 잘라내어야만. 그래야만 나 네게 닿을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러다 어느 날 난릉 금씨인지 기산 온씨인지 위세 대단하다 자부하는 어느 가문 수련생과 위무선이 시비 붙은 이후에야 남망기 마침내 그 날의 진상을 알게 된다. 


상대가 내뱉은 '천박한 놈이!' 하는 모욕에 눈 내리깔고 서책만 들여다보던 망기가 도리어 가슴 속이 서늘하여 벌떡 일어서는데 정작 위무선은 상처 받은 기색도 없이 웃고 있겠지. 그 때와는 다른 반응에 안심하려는 찰나, 마음 놓기엔 아직 일렀으니. 일찍부터 소란했던 싸움 구경하러 몰려든 사람들 가운데 홀로 뒷배없이 선 위무선이 태연하게 받아치기를, 



- 내가 하인의 자식인 거 모르는 사람도 있나.


게다가 그 말은 얼마 전에 이미 들어서 새롭지도 않다고. 

좀 더 참신한 건 없어? 전부터 말했지만 너 지루하고 재미없어서 놀아줄 맛도 안 난다니까. 



그 말에 분을 참지 못한 상대가 검을 뽑아드는 바람에 더이상 위무선의 목소리를 들을 순 없었지만 남망기는 눈앞이 아찔해 추락하는 것만 같았다.


남망기는, 위무선이 하인의 자식인 것을 몰랐다. 그는 본디 타인에게 관심이 없었고 또 설령 들었다 해도 남 험담 깊이 기억하는 성품 아니었으니. 위무선에게 얼마 전 천박하다 꾸중한 것은 그다. 지루하고 재미없다는 말 역시 위무선이 한참 그를 따라다닐 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위무선의 말은 전부 남망기를 향한 게 아니었으나 기이하게도 구절 구절이 죄다 엉뚱한 이의 마음을 도륙내어 놓았다. 


나는 네가 하인의 자식인 것을 알아 그리 모욕한 게 아니야. 



나 그 때 네게 가볍고 천박하다 했었나. 

무엇이 천하고 무엇이 귀한 줄도 제대로 분간 못하는 주제에.


너 내게 귀한 사람이었던 줄도 모르고, 감히. 

나도 알지못했던 내 오만이 너를 상처입혔는데 나는 그 사실조차 여태껏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그럼, 너 이제 더이상 내게 오지 않는 것은 내가 지루하고 재미없는 사람이라서, 

네 흥미 끌지 못하여, 

그래서, 


나 더는 네게 가치 없는 이라 그러는지.



귀를 쨍 울리는 파열음에 간신히 정신 차리고 창 너머로 눈 돌린 순간, 위무선의 머리 위로 내리쳐지는 검에 하얗게 질린 얼굴로 앞뒤 가릴 것 없이 피진부터 날려 걷어내는데 그 푸르고 맑은 검광 못 알아볼 이 아니건만 위무선은 끝내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남망기는 그 날 처음으로 창을 넘었다.  






운심부지처 내 소란 금지. 

운심부지처 내 사적인 싸움 금지. 

운심부지처 내... 


수십만 번을 읽어 한치의 어긋남도 없을 가규를 기계적으로 읊으면서도 남망기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싸움 났단 소리에 달려온 남계인이 호통을 치는 와중에도 충격에 넋을 반쯤 빼놓고 있었다.


형장, 택무군이 있었더라면 그 모습에 놀라 괜찮으냐 걱정해주었겠지만 지금 이 자리의 누구도 남망기의 얼굴엔 관심을 두지 않았다. 남계인 앞에 얌전히 고개 숙인 이의 모습이, 익숙해지고 싶지 않았으나 익숙해져버린 뒷모습이, 눈 안에 콱 틀어박혀 영영 지워지지 않을 듯 싶었다. 


그러다 갑작스레 현실로 끌려와 멍한 눈빛 제대로 수습도 못한 채로 남망기는 일단 '네' 하고 재빨리 대답했다. 뒤늦게 남계인의 목소리가 문장으로 정리되어 머릿속에 차근히 새겨지고 있었다. 



- 위무선은 장서각에서 아정집 예칙편을 열 번 필사하거라. 망기, 네가 감독하고.



남망기는 말의 어떤 점이 저를 현실로 이끌었는지 곧장 깨달았다. 위무선과 남망기. 그 이름이 나란히 불렸다. 단지 그 사실 하나로. 벌을 감독하게 되었으니 같은 공간에 나란히 앉을 구실이 생겼단 기쁨은 그것보다는 조금 느리게 찾아와, 남망기는 어쩐지 울 것만 같았다. 심장이 불온하게 떨렸다. 


그러나 현실은 언제나 상상보다 혹독하여. 


남망기는 건너편에 펼쳐진 종이 대신 양 끝이 습관처럼 휘어 마치 웃고 있는 것 같은 위무선의 입술만 한참 바라보았고 조금 위로 올린 시선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기 어린 눈동자는 결코 웃지 않고 있는 것을 또한 보았다.


이전, 남망기의 그림자나 휘날리는 옷자락만 보아도 만면에 웃음을 머금고 좋아했던 위무선은 더이상 남망기로 인해 웃지 않는다. 위무선이 아정집을 필사하는 벌을 받은 건 한 두 번이 아니었고 그 때마다 감독을 했던 것도 남망기였기에 그는 그 때와 지금의 차이를 하나하나 죄 꼽을 수 있었다. 


처벌 중 사적인 대화 금지. 아마 지금 위무선이 적고 있는 예칙편에도 이와 같은 구절이 적혀있으리라. 그러나 이미 더 삼킬 구석 없을만치 누르고 누르고 눌러참은 말은 이 이상 버텼다간 눈물로 흐를 것만 같으니. 



- ...위영. 



돌아온 것은 대답이 아닌 '남잠' 하고 제 이름 부르는 환청일 뿐.


무릎 위에 곱게 얹어둔 주먹에 힘이 실렸다. 심장이 손 안에서 맥박치는 듯 자꾸만 떨려 그리 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말을 어떻게 해야하는지 잊은 사람처럼 입 속에서 한참을 고르고 골랐는데 결국 두 번째로 벌린 입도 간신히 위영, 하고 이름만 부르고 말았다. 


남망기는 조용히 기다렸다. 

위무선은 잡았던 붓 내려두고 새로운 종이를 펼쳤다. 

다시 붓을 잡았다. 

유려한 글씨가 망설임이라곤 없이 종이 위를 수놓는다. 

다 쓴 종이를 옆으로 밀어둔다. 

다시 새로운 종이를, 

다시 붓을, 

다시, 

다시, 

다시, 



그 모든 기다림의 끝에 

남망기는 목소리를 잃었다.  



깊이 침잠하여 사방이 어두워지는 것이 해가 지고 응당 찾아오는 어둠인지 제 속에서 번져 나간 그을음인지도 알 수 없었다. 백 번도 적어본 사람에게 열 번이란 숫자는 우습다. 위무선은 그 날을 넘기지 않고 벌을 해치울 요량인지 끼니도 걸렀고 남망기는 그 앞에 어떠한 당위처럼 함께 앉아 있었다. 


펼쳐놓고 한 번도 보지 않았던 아정집을 덮는 것으로 제 할 일 마쳤단 사실을 알려왔다. 남망기는 어느새 제 앞에 수북히 쌓인 종이더미를 보면서도 이제 돌아가도 좋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돌아가다니. 그것 참 이상한 말이 아닌가. 

네 갈 곳 네 옆이 아니라 달리 있단 뜻 같으니. 


실상은 내가 내 옆 내어주지 않았던 것임에도.



- 함광군. 



그리 부르는 소리에 웃어야 하는지, 틀렸다 고개 저어야 하는지. 그러나 이제와서 네 부름을 내가 거절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남망기는 할 수만 있다면 억지로 빼앗긴 것이나 다름없었던 제 이름, 이번엔 스스로 위무선의 손에 쥐여주고 싶었다. 할 수만 있다면.


내려다보는 얼굴은 고요했다. 올려다보는 얼굴에 어떠한 처참이 서린 것을 알면서도 이미 거두어진 다정이 다시 돌아오는 일은 없었다. 



- 나는 수백, 수천, 수만번을 너를 불렀었는데. 


너는 고작 단 두 번 만에 포기하는구나. 












- 2019년 12월 23일자 썰

잔불의 기사 / 마도조사 (프로필 사진 - 배추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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