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혹시나 너는 달이되고, 나는 태양이 되어 다시는 만날 수 없는 건 아닐까. 나는 그렇게 죽어가는 제 몸보다 너를 보지 못함에 떠오르는 구슬픈 목소리가 먼저였다. 목이 날아가, 흘러나오는 제 생명줄과 마주하고도 지르지 못하며 비명속에서, 내가 가장 울부짖고 싶었던 것은 죽음을 거부하는 목소리가 아닌 너를 향한 미련이었다. 

 너는 다 죽어가는 마른 잿더미만 가득한 내 삶속에서 유일하게 살아숨쉬는 미련으로 남았다.

-

 눈을 뜨고 가장 먼저 마주하는 것이 죽은 자신의 모습일 줄 알았다면 조금만 더 고운 모습으로 죽을걸 그랬나. 그런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죽으며 아팠던 것은 기억도 나지 않고 만져지지 않는 몸뚱어리와 무엇이 아쉬워 승천조차 하지 못한 건지. 이유를 알 수 없는 영혼조각만이 남아있다. 주위를 둘러봐도 보이는 것이라고는 영 재수없는 양반들의 상판떼기와 차디찬 달빛. 그리고 차라리 죽음을 택하게 만들만큼 잔혹하게 차가운 달빛과 춤을 추는 외로움만이 남아있었다. 주마등이 스쳐지나간다는 것은 다 거짓말이었다. 내 인생은 주마등조차 볼 수 없을 만큼 한 순간의 진득함도 주지 않고 흩어졌다.

너무하다. 너무해.

세상은 그 말 외엔 떠올리지 못할 만큼이나 참으로 허무한 마지막을 선사했다. 더 이상 흐르지 않는 피를 보니 그 생각이 점점 더 짙어지는 듯했다. 자리에 쪼그려 앉는다 라는 표현이 과연 귀신에게 가당키나 할까, 싶었지만 나는 그 자리에 쪼그려 앉아 잘려버린 제 목더미를 시선으로 훑었다. 너무 깔끔하게 잘렸다. 단 한 번도 깔끔한 적 없었던 인생이었건만 마지막은 이리도 깔끔하다. 자리에 고여 서서히 식어가는 피를 만져라도 보고싶은 심경이었다. 아직은 따뜻하려나. 아직은 살아있는 사람의 살덩이같으려나. 의미도 없는 생각들을 입밖으로 지껄이려했으나 울리지 않는 성대덕에 더 이상 목소리조차 낼 자격없는 존재가 됐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자각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시체에 대고 묵념을 하는 기분나쁜 짓은 하지 않았다. 이렇게 죽을 줄은 몰랐지만, 적어도 아프다라는 느낌이 목구멍을 타고 들어옴과 동시에 세상과 등을 져버린 것은 감사하게 생각했다. 가족들처럼 아프다라는 말을 살려달라는 말에 빗대어 구질구질하게 연명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의 마지막이 그 사람들과 똑같아진다면 홀로 더 살아온 이유가 없어진다는 마음으로 살아온 나에게 참으로 걸맞는 최후구나. 그렇게 자신을 위로하며, 자신에게서 눈을 뗐다. 

불편하게 앉아있던 다리가 저려올 리 없었지만, 살아생전의 버릇이 남아있었던 덕에 그냥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주저앉았으나 사물이 신체에 닿는 느낌이 없어 참으로 이상하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으나 새까만 밤하늘에 홀로 두둥실 떠다니는 달빛이 시야에 잠겨 넋을 잃었다. 아름다웠다. 죽기 전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밤 하늘을 온통 자신의 것으로 삼고 떠다니는 저 모습이 죽음을 먹고 자라는 불길한 기운처럼 느껴져 쳐다도보지 않았건만, 오랜만에 마주한 달빛은 평안하고, 아름다워서 온몸이 시렸다. 어쩌면 나는 좋아할 수 있었던 것을 억지로 싫어하며 살아왔던 것일지도 모르겠구나. 그런 생각도 들었다. 죽어서도 여전히 머릿속을 파고드는 잡념들은 나를 놓아주지 않는다는 점이 참으로 기묘했지만, 평소라면 삶에 쫓겨 느끼지 못했을 기분좋은 잔잔함들이 만드는 여울은 꽤나 달가웠다.

좋다.

오랜만에 느끼는 감동 중이었다. 좋다라는 말을 입밖으로 내뱉은 지 얼마나 오래됐던지. 이제는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아마 그 날 이후로는 거의 처음이겠지. 그냥 그렇게 어림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오랜만이었다. 그래서 그 여운을 조금 더 오래 느끼다 가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세상은 살아있는 사람에게도, 죽은 사람에게도 야박하다는 것을 나는 어렴풋이 알고 있다. 때문에 이것이 곧이어 들려오는 요란스런 사람들의 발소리에 깨져버린 것은 전혀 아쉽지도, 슬프지도 않았다.

반가워해도 되는 얼굴들인지. 제멋대로 판단할 수 없을 만큼 만난지 그다지 오래되지 않은 이들이었으므로 자신의 죽음에 슬퍼해줄 것은 기대하지 않았다. 되려 들어오자마자 제 흉한 사체에 놀라 쓰러지는 이가 있으면 어쩌나. 그런 쓸데없는 걱정을 더 하고 있었다. 진심은 바라지 않았다. 제 죽음에 진심으로 울어줄 수 있는 사람은 적어도 이곳에는 없다. 

아, 어쩌면 하나 있으려나.

혹시나 울어주고 있을까. 너는 어딨을까. 유일하게 스쳐지나가는 그녀와 했던 대화에 저절로 몸이 두둥실 떠올랐다. 몸이 마음을 따라 움직인다니. 살아있는 사람들이 모두 자신의 감정에 따라 떠오르고, 가라앉는 몸뚱어리를 가졌다면 세상은 분명 어느 한 곳에 밀집되어 있으리라는 어린아이 같은 발상을 하는 제 모습에 입술사이로 작은 미소가 번졌다. 하나터면 그녀의 얼굴을 보기도 전에 세상에서 완전히 하직할 뻔 했으므로 겨우 마음을 가라앉혔다. 적어도 그 사람 얼굴만 보고가자. 자신을 위해 울어주는 모습을 본다면 분명 지금 당장 다음 생으로, 어쩌면 이번 생의 죗값을 치르러 가도 상관없겠다 싶었다. 나는 온전히 낯선 이들만 존재하는 이 곳에서, 그 사람의 다음날을 위해 목숨을 버린 것과 다를 바 없었으므로.

하나, 둘 사람이 모여들수록 긴장감과 기대감이 커졌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모든 이들이 모여 내 사체를 수습할 때까지 그녀는 나에게 돌아오지 않았다. 왜지? 어째서지? 이제는 제 기능을 잃어버리고, 의미조차 상실해버린 심장이 제멋대로 쿵쿵 날뛰기 시작했다. 마찬가지로 의미가 상실하여 흐르지 못하고 고여버린 혈액들이 머릿속으로 몰려들고 식어버린 손발이 더욱 차갑게 식었다. 너는 어딨는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하늘 위로 떠올랐다. 아무리 위에서, 위에서, 천장 위에서 내려다 사람들의 얼굴을 살펴도 너는 군중 사이에 섞여있지 않았다. 불안감이 목끝을 스쳐지나간 칼날을 따라 다시 한 번 스쳐지나갔다. 불안감은 사실이 되어 내게로 돌아오는 건 한 문단으로 충분했다.

"이걸로 두번째인가."

그 말이 귓가를 스치기도 전에 자리에서 일어나 방문을 뛰쳐나왔다. 손잡이도 채 잡지 못하고 몸부터 들이박아버린 벽을 보기좋게 통과한 덕에 몇 초 정도 벙쪄있었으나 이내 다시 달렸다. 죽은 이후로 가장 먼저 찾아낸 좋은 점이 폐의 존재가 의미를 갖지 못해 달려도 숨이 멎지 않는다는 것이 될 줄은 아마 그 누구도 몰랐으리라. 

시간의 개념이 사라져 얼마만큼의 시간이 지났는지는 체감할 수 없었다. 그냥 뛰다보니 건물 안을 거의 다 돌았구나, 싶을 때쯤에 눈에 익은 누군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 정도의 설명만이 가능한 시간이 흘렀다. 너는 다행스럽게도 내 눈앞에서, 다른 이들과 섞여 서 있었다. 이름을 부르고 싶어졌다. 그러나 아까 이미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버렸기 때문에 굳이 무모한 짓거리를 반복하지는 않았다. 두 눈으로, 살아있어야 하는 이가 살아있는 것을 확인하고나니 다리에 힘이 풀렸다. 호랑이를 보고 놀란 사슴이 그 자리에 굳어 주저앉아버리는 것처럼 맥아리 없이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울고 있지 않은 네 모습은 약간의 서글픔을 불러일으켰다. 자신이 죽었다는 방송을 분명 들었음에도 가지 않았던 이유는 자신의 그런 험한 모습을 볼 용기가 나지 않아 그랬겠지. 제멋대로 그리 생각하기로 하며 나는 긴 숨을 내뱉었다. 내 목구멍으로 유일하게 낼 수 있는 소리라고는 요란하게 공기가 들어갔다, 빠져나가는 소리구나. 이에 다시 한 번 서글픔을 느끼며 천장을 올려다봤다. 평소라면 참았을 눈물이 뺨을 타고 저 아래 목, 쇄골까지 이어져 흘렀다. 서러웠다. 왜 살아서도 흘리지 못한 눈물을 죽어서야 흘릴 수 있게 만든건지. 비통함에 되도않는 욕설들을 내뱉었다. 아까는 분명 목구멍에 막혀 나오지 못하는 것 같았던 말들이 이번에는 정말로 흘러나오는 듯한 느낌이 들어 나는 더 크게 소리 질렀다. 신새끼 개새끼.

평소였음 하지도 못했을 소란을 피우고 난 뒤, 한 번만 더 보고 가자는 마음으로 다시 그녀에게로 시선을 돌렸을 때 나는 한 번 더 신을 욕해야만 했다. 그 시끄러운 요란에도 그 누구도 돌아보지 않았으나, 너는 유일하게 나를 보고 돌아서 있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감정을 읽을 수 없는 얼굴을 하고 있던 그녀는 어느새 나를 쳐다보고 놀라움과 슬픔이 뒤섞인 얼굴을 하고 명확히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 저절로 헛웃음이 번졌다. 

"... ... 당신이 나를 왜 쳐다봐."

 심봉사가 눈이 떠졌을 때의 기분은 어땠을까. 적어도 지금, 목청이 터진 나는 기분이 더러워 세상에 존재하는 말로는 차마 모두 설명할 수 없었다. 단 하나 남은 소망이 죽어 내 눈 앞에서 얼룩져버린 모습을 직면한 기분은, 그 어떤 말로도 설명할 수 없었다. 신조차 욕할 수 없고, 그 사람조차 욕할 수 없지만 결국에는 사람이기에. 못난 마음이 원망의 대상을 제멋대로 구원해주기로 다짐한 이로 정하고 있었다.

 왜 나를 보냐고. 살아 생전에는 눈도 한 번 제대로 마주한 적 없는 사람이 왜 지금은 이리도 꼿꼿하게 나를 바라보며 서 있느냐고. 어린아이가 떼를 쓰듯 그녀에게 화를 내었다. 자신의 몫까지 살아달란 말은 하지도 않았는데, 왜 자신이 살았으면 했던 몫을 그녀의 생에서 차감해버린 것인가. 그저 이곳에서 벗어나기를 바란 것만으로도 나는 벌을 받아야했나. 

내 죽음은 이제 어디로 가는가. 내 미련은 이제 어디로 가는가. 허탈함에 목이라도 죄어 다시 한 번 죽고 싶었다. 눈물이 흐르는 감각이 자꾸만 연속되어 차가운 옷소매로 얼어버린 눈물자국을 벅벅 닦았다. 난 그저 늙어서, 이 이상 추해질 수 없을 만큼 삶을 갈망하다 죽어버린 그녀를 품에 안기를 원했을 뿐이건만. 이래서는 안아줄 수도, 안길 수도 없게 되어버려서,

"당신이 왜 나를 쳐다보냐고."

수면 위에 퍼져버린 꽃잎처럼 마음이 그녀의 눈 앞에서 완전히 찢어져버려서, 고장난 컴퓨터처럼 같은 문자만 반복하고, 반복하고.

찬희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