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까.

너는 해변의 볕에 일렁이며, 내게 손짓했다. 이리 와.

우리의 오프닝 타이틀은 한시도 잊지 않았다.

그 얼마나, 유독한 해변이었나. 바위에 앉아 과거의 너를 멀찍이 떨어져서 쳐다보는 내 슬픔이여.

네 손짓은 아지랑이의 하혈.

봄날은 미쳐가고 있었다.


텅 빈 구름을 쪼아먹는 새. 우리는 그 정경 속에 갇힌 지저분한 남자처럼…… 구조의 흰 천이 펄럭이면 반짝이는 별들이 숨어 있는 곳을 헤아렸다.

이곳은 너무 밝고, 그늘 하나 없네. 바닷속으로 투신하고 싶은 심정이야. 그늘의 찬물에 발목이 잠기면, 이 시린 듯 돌연 귓속에 끼치는 섬광.  


…… 정말 가버렸구나. 젖은 옷만 남기고 도망 쳐버린 날, 잘 가,라고 화답의 손짓을 했던.

하늘을 가로지르는 흰 새의 앙상한  발바닥은

낱낱이…… 모든 걸 고했다.

나의 간절함의 뼈대여, 바다 바람에 미쳐가는 숲의 나무들의 이파리.

그늘은 없어.

어둠만이 있을 뿐이야.


내가 정말 투신하지 않았다고 믿는 너의 서정의 막이 올랐다.
  


가물가물한 새의 까만 동공. 
옥돌을 쥐려고 우리는 자주 시냇가를 거슬러 올라갔지. 그날, 참 밝았었어. 우리의 멍든 눈꺼풀은, 따뜻하고 쓰라렸지.

우리는 왜 맞았는 지도 모르고, 아파서 울었었어. 이해할 범주는 삭막했고, 숨은 별이 우리의 울음을 듣고 있다고, 믿고 싶었던 우리의 간절함. 부은 눈꺼풀에 소주를 붓듯이 울어대면, 우리는 울음에 취할 수 있었지.

우리는 손깍지를 꼈고. 시린 뼈들이 맞닿음.

네 살결은 앞장서고, 내 살결은 뒤따랐어. 네 앞장서는 뒷모습이

일렁인다면 


우리의 사랑은 밝은 대낮,

잠 못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는 잠. 의붓아버지가 날 구석으로 몰곤 병째 들이부었던 그 녹슨 술맛에 대해서. 함부로 꿈 이야기는 하지 않을게,


가엽고 현명한 나의 경수야.

어여쁜 돌을 구해줄게. 네가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면, 이 돌로 나를 쳐.


가엽고 현명했던 나의 박찬열.
가닿으려, 손 내밀면 버석거렸던 너의 등. 고통의 정경은 아름다움에 속했고 녹음이 진 이파리는, 투명하게 일렁이며 우리를 축복했어.

지난겨울 달밤, 마지막 순간은 너와 함께 일 거라고. 1월 12일의 끝자락에. 촛불에 불 피웠던 너의 손의 서정. 흰 눈 내리는 소리와 같이 움직였던. 너의 그림자. 
너는 두 손을 뻗어 내 볼을 감싸주곤 말했어. 경수야, 난 널 절대 못 떠나. 날 버리면 안 돼.

…… 산짐승이 악몽을 꾸고 있는 깊은 골짜기. 너는 핏발이 선 내 눈가를 가려주고, 자장가를 불러주었다. 

하지만 고통은 반복되었고, 변주는 기어이 부음을 속삭인다.

함부로, 꿈 이야기를 하면 안 돼. 너의 자장가는

경수야, 난 널 절대 못 떠나. 날 버리면 안 돼.

애원했다. 

난 나를 믿지 못하며, 넌 사랑을 믿었지.

고통은 반복되었고,

질긴 천으로 내 손목을 묶고, 돌을 쥐고 넌 어디에 갔었니. 

변주는 기어이 부음을 속삭였다. 


 …… 산짐승이 쉬고 있던 깊은 골짜기.



사랑을 믿는 넌, 어디서 나를 잊었니. 끝장내고 싶었겠지. 너라고 안 그랬을까?

고통은 반복되고, 데자부처럼 내 손목 부근의 멍은 가시지 않고
사랑은 너를 닮은 한 남자의 손을 잡고 거닐던 한 해변가의 모래 한 줌.

그 새어나가는 감촉. 아찔할 정도로 오금이 저릴 정도로 아스라한 느낌. 

수면제를 너무 많이 먹진 마. 내 침으로 한 알만 녹여줄게. 별은 알약이 아니야. 너무 별을 많이 삼키면 우리는 궤도처럼 이렇게 차근차근 헤어지고 말 거야.

동굴 같은 그 독방에서 혀를 깨물 듯. 마지막 언약을 하지 않았더라면. 왜, 날 그때 잠재웠니? 사랑은 아마, 전염병. 현명하고 가여운 나의 박찬열아, 지금에야 생각해보면, 너라고 안 그랬을까? 내가 아늑하게 잠들었을 때, 너는 그 타오르는 촛불을 바라보며 촛농 같은 눈물을 흘렸구…나. 아스라한 우리의 사랑을 꼭 쥐고, 밤길을 걷기 위해 걸었겠구나. 새어나가는 우리의 추억을 흘리며 가버렸구나.


사고 현장의 구경하는 사람들은 울타리를 치고 나는 버스 차창 너머를 보지 못하고

나는 고작 너의 부재를 감당했었지. 


거울을 보며 머리를 빗으면 서까래 같은, 하늘을 향한 틈. 내 비인 눈구멍, 내 귀의

동굴. 너의 꽉 찬 달뜬 신음. 술을 한 병 연거푸 들이붓고 누웠어. 거추장스러운 내 몸뚱이. 그 기나긴 원망에 대하여.

칼을 쥐려 했지만 칼날을 쥐고 말았던. 내 망각. 

난 다시 꿈으로 널 초대해.

나는 정말 내가 그러지 않았으면 했어. 너 말곤 …… 다 싫어. 누가 우리를 몰아댔었나.

벼랑 끝까지 몰아대곤, 선심 쓰듯 선택을 종용했던 그 가증스러운 잡것. 사랑.

날개 죽지로 비벼댄 썩은 고기들. 그 죄책감. 악몽처럼 다시 일어나는, 피의 그을림. 더 이상 해 질 녘이 아름답지 않아. 다시 한번 말해볼까? 나의 새로운 연인은, 매일 밤. 유서를 써. 꿈에서 타오르는 그 편지 말이야.


너의 달뜬 신음, 그 자장가……. 나는 그 잿더미를 헤적여. 아직도 뜨거워. 흔적은 내상이고, 우리의 이야기는 끝나지 못 해. 너무 씹어서 죽이 된 껌처럼. 되새기다 형체가 사라지고, 찬열이 네가 사라졌지만, 무엇이 남았느냐는 절박한 되물음. 사랑,이라고 발음할 수 있을까?

난 또 혀를 깨물고야, 말았어.

내 사랑, 이 피 맛. 일시적인 과장의 변주. 착란의 몰매. 또 와주었다…… 는 달뜬 한숨. 현기증의 정적. 하늘을 보며 기도하는 심정. 


거스르는, 시냇가. 해변. 
내가 정말 투신하지 않았다고 믿는 너의 서정.

현재와 미래를 가로질러 가는 한 이의 옷소매. 단추는 내 손에 있는데,  넌 내 뒤에서 숨죽여 울고 있으며…….  
뒤돌아보면 너는 항상 없었지. 


머물다가, 얼굴 붉어진 채로 떠난 이. 그 잔영은 우리의 사랑. 이 피 맛. 


아, 이젠 정말 가버렸구나. …… 가버렸어. 한 다리가 움직이면 한 다리가 지탱하고 있었던 것처럼. 어긋나는, 저 가로지른 이가, 너라고 믿고 싶은. 

지탱하는 주저앉음. 뜯긴 옷소매의 펄럭임. 
…… 다시, 외딴섬의 깃발.





됴른을 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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