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죠죠/로장露仗] 5일, 그리고 5분.






 만화는 현실이 아니었다. 누구나 한 번쯤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결말은 만화 속에서는 쉬운 일이었다. 그저 만화이기에 가능할 거라. 그렇게 생각한 상황은 로한의 펜을 멈추게 했다. 뜬금없는 이야기지만 로한 당신이 나를 쏴야 지구가 멸망하지 않아. 죠스케의 표정은 덤덤했다. 죽여달라는 말이 이렇게도 쉬운 말이었나? 의문을 가질 새도 없이 손에 펜 대신 총이 쥐어졌다. 망설임 없이 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허무맹랑한 이야기지만, 그렇게 친다면 우리라는 존재가 판타지일 테니까. 시간이 흘러가는 만큼 초조해진다. 죠스케의 표정도 점점 흔들려갔다. 빨리 죽이란 말임다. 원하던바 아니야? 나 같은 거 죽어버리라고 했었고.

 아. 로한은 마침내 결론을 냈다. 히가시카타 죠스케는 내가 끔찍이도 싫어하는 사람이야. 보이지 않는 카운트다운이 들려왔다. 총구를 겨눈다. ……내 마지막 당신에 대한 배려는, 그 손으로 나를 죽이게 했다는 검다. 키시베 로한. 지옥이건 천국이건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게.


 쓰러지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오지만 기쁘지 않다. 시체를 어떻게 처리했느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죠스케라는 한 사람을 죽임으로써 지구가 멸망하지 않았다는 거에 만족할 뿐이었다.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금 만화 원고를 시작하는 손이 떨렸다. 아무런 일도 없었다고. 무언가 잊지는 않았나. 이제 자신을 방해할 이는 없다.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남자가, 꼴도 보기 싫은 남자가 존재하지도 않는다. 현실은 현실이다. 증오했던 남자가 자신에게 남긴 말을 곱씹어 본다. 분명 놓친 게 있는데. 스스로 지워버린 말. 지금 중요한 건 원고다. 로한의 손이 곧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사각이는 소리가 방안을 채웠다. 좀 더 작업이 잘 되는 거 같았다. 예정된 분량을 한참 뛰어넘어 펜을 놓았을 즈음 무의식적으로 커피잔을 들어 올렸다. 언제나 들어있던 커피가 없다.


 식었어도 나름 입맛에 맞았던 커피. 익숙한 위화감이 존재하지 않아. 왜 그랬는지는 모른다. 홀린 듯 잘 정돈되어있는 원고용지를 펼쳐보고 울컥하게 올라오는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자신이 그려나가던 내용은 만화다. 그 만화의 내용은 온통 죠스케 뿐이다. 커피를 타서 가져다주는 모습, 먼저 앞서나가던 불퉁한 표정의 그. 마지막까지 웃어 보이던 사랑하는 남자. 죽여야 한다는 위기감에 잊어버린 사랑한다는 감정이 매섭게 자신을 때려왔다. 증오는 틀리지 않았다. 그러나 사랑도 틀리지 않았다. 분명히 로한은 죠스케를 사랑하고 있었다. 내일이면 헤븐즈 도어에 의해 모두에게서 지워질 남자를 사랑했다. 두려움에 멋대로 잊어버린 죄책감이 영원히도 자신을 괴롭힐 것이다. 만화는 현실이 아니었다. 지울 수 있다. 그릴 수도 있다. 사랑한다, 히가시카타 죠스케.




***




 죠스케는 마법이란 단어를 믿지 않았다. 허무맹랑한 능력을 갖춘 자신이 정작 제대로 상상의 날개를 펼치지 않는다는 것이 우스운 일이기도 했다. 스탠드가 자연스럽게 나타났다면, 이 또한 자연스러운 현상일 것이었다. 앞에 놓인 총과 쪽지. [네가 죽어야 모두가 살아] 라는 두서없는 말이 쓰여있었다.  그저 장난이라 넘길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수단을 마련해도 느껴지는 강한 스탠드의 힘이 쪽지가 거짓이 아니라는 걸 알려주고 있다. 이대로 죽어버리는 건가— 아쉬울지도 모름다. 죠스케는 노력했다. 어떻게든 피해 보고자 했다. 바보처럼 죽기는 어찌됐건 싫은 일이었으니 말이다. 적어도 의미 없는, 그런 죽음이 아니기를 바라며 돌아다니기를 며칠. 결국 결론은 살 수 없다 라 이어지고 있었다.  점점 나빠지는 현 마을의 상태가 증명하는 멸망의 징조. 거짓말이 아닌 출구는 없었다. 그리고 쪽지 뒤에 작게 써진 디데이. 자신이 마지막으로 보고 싶은 사람을 찾아가자. 5분이 남은 시간 즈음, 익숙하고도 보고 싶을 얼굴을 맞댔다. 당신이라면 나를 망설임 없이 죽여줄 거라고 믿었어. 사랑하는 사람이지만 사랑하는 만큼 우리는 증오했잖아. 그가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마음이 편해졌다. 아마도 그의 작은 배려로 고통을 느낄 수 없다는 문구가 어딘가에 적혀있었을 거다. 연인의 손에 맞는 최후. 그리고 구할 수 있는 모두. 사랑했슴다, 키시베 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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