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일×카산드라, 인어와 인어 사냥꾼 AU

*20.07.20 수정


바람이 드세고 파도가 거친 날이었다. 검게 요동치는 물 위, 작은 어선 하나가 곡예라도 하듯 휘청대며 원을 그렸다. 선상 위에 작은 소란이 일었다. 한 번 파도가 일 때마다 갑판에 빼곡히 들어찬 수조들이 경사면을 따라 움직였다. 수조 안의 작은 바다는 바깥의 물을 따라 소용돌이쳤다. 네모난 유리 안에서 비명과도 같은 노랫소리가 울렸다. 배에 탄 사람들은 그 노래를 음악 삼아 수조에 줄을 동여매고 잡아당겼다. 헤이, 호, 먼 옛날 해적들이 부르던 박자에 맞춰 그들은 줄을 잡고 버텼다. 머리에 눌러 쓴 검은 후드는 거센 바람에 벗겨진지 오래였다. 빗물인지 해수인지 모를 물에 온몸이 쫄딱 젖은 채로 그들은 웃었다. 어지럽게 웅웅대는 메아리를 배경삼아 그들은 노래했다. 고되기 짝이 없는 일이었지만 어느 하나 불평하는 이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날은 수확이 좋은 날이었으니까.


*


인어. 상반신은 인간과 닮았지만 하반신은 수생생물과 같은 구조를 한 생물. 그들의 이야기는 옛날부터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왔지만 인어의 존재를 믿는 이는 드물었다. 뱃사람의 농이거나 어린아이를 위한 동화라고 생각하는 게 고작이었을 뿐. 해가 지나고 해안가에서 그들을 목격했다는 이야기가 나왔을 때도 단순한 해프닝이거나 조잡한 합성 정도로 여겨졌다. 목격담이 쌓이고 쌓여 그들이 일화에 머무르지 못하게 될 즈음에서야 인류는 인어의 실재를 인정했다. 존재가 인정된 이후, 그들은 논쟁의 화두가 되어 도마에 올랐다. 인어를 인간과 같은 지적 생물로 보아야 하는가, 아니면 다른 수생생물과 같이 취급해야 하는가. 그 논의는 쉽사리 막을 내리지 못하고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인어 사냥꾼들은 그 틈을 노리고 생겨났다. 규제는 없고 수요는 넘쳤다. 세상에는 남들과는 다른 것을 소유함으로써 자신의 특별함과 재력을 과시하려는 자들이 있기 마련이었으니까. 더 아름다운 것, 더 희귀한 것을 잡을수록 판매가는 올라갔다. 좋은 것 두 세 마리만 잡으면 영원히 궂은 일 따위는 하지 않아도 될 만큼의 돈이 벌린다고도 했다. 더없이 좋은 기회였다. 하지만 실제로 사냥을 나가는 이들은 드물었다. 인어의 사냥 및 매매는 불법은 아니었지만 합법도 아니었기에 몇몇은 위험 부담을 지기 싫다며 일찌감치 발을 뺐다. 나이가 지긋한 이들은 인어가 영물이라고, 잡으면 화가 닥친다는 둥 말을 하며 사냥꾼들을 만류했다. 이도저도 아닌 이들은 그저 꺼림칙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냥을 피했다. 절반은 인간이나 다름없는 외형을 향해 작살을 겨누는 일이 불편하게 다가왔으리라. 마지막까지 남은 이들은 돈 앞에서는 무엇이든 버릴 각오가 되어 있는 자 뿐이었다. 카산드라 왓슨이 그랬다.


*


배는 안전히 항구로 돌아왔다. 방파제 너머 잔잔한 물에 들어서고 나자 사람들은 긴장이 풀린 듯 왁자지껄하게 떠들어댔다. 하마터면 잡은 놈들을 꼼짝없이 풀어주는 줄 알았다느니, 돈을 그대로 바다에 버리는 줄 알았다느니 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카산드라는 그 대화에 끼지 않은 채 묵묵히 뭍으로 나왔다. 출렁이지 않는 단단한 콘크리트가 낯설었다. 부두에서 기다리던 사람들이 배에 올라 수조들을 뭍으로 옮겼다. 카산드라는 눈앞에서 지나가는 수확을 하나씩 세었다. 하나, 둘, 셋, 끝없이 이어지는 숫자는 배에 탄 이들의 수와 대충 맞았다. 한 사람 당 한 마리. 이런 날은 드물었다.

마지막 수조가 배를 떠난 뒤에도 사람들은 배를 떠나지 않았다. 카산드라는 시답잖은 농담을 하고 때 이른 축배를 드는 이들을 바라봤다. 이야기는 금세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고를 시간은 충분하겠다는 생각을 하며 그녀는 수조 사이로 걸음을 옮겼다. 제 키를 조금 넘는 유리 상자 사이를 걷고 있으니 꼭 수족관 구경을 온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인어를, 인어들은 그녀를 구경했다. 빨간색, 파란색, 색색의 꼬리가 움직일 때마다 좁은 수조에 부딪혀 텅텅거리는 울림을 낳았다. 비인도적이었다. 카산드라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이 광경을 보고서 문제를 느끼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돈이라는 간편한 핑계가 있었다. 돈을 벌려면 어쩔 수 없었다. 쓸데없는 감상에 빠져있을 시간이 없었다. 카산드라는 수조 속에서 둥둥 떠다니는 꼬리를 찬찬히 뜯어봤다. 보라색 꼬리를 가진 인어는 너무 작았다. 금빛 비늘이 인상적인 인어는 너무 말라서 오래 가지 못할 것 같았다. 파란 꼬리는 지느러미 끝이 상했고, 검은 꼬리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색이 아니었다. 다른 인어들에게도 트집을 잡을 구석은 넘쳤다. 최대한 흠이 없는 것을 먼저 차지하기 위해서 카산드라는 신중에 신중을 기해 상품을 골랐다.

‘쟤가 좋겠다.’

저만치에 놓인 수조 속, 제자리를 맴도는 붉은 꼬리의 인어가 눈에 들어왔다. 화려한 색, 보기 좋은 체구, 병들어 보이지 않는 몸, 오밀조밀한 이목구비. 동화 속에 나올 법한 완벽한 모양새였다. 저런 애들이 비싸게 팔리지. 카산드라는 누가 저보다 먼저 도착할세라 걸음을 빠르게 옮겼다.

텅. 유리벽에 무거운 꼬리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걸어가다 말고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체구가 큰 인어 하나가 목에 감긴 밧줄을 붙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카산드라는 잠시 그 모양을 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제 알 바는 아니었다. 어차피 팔아 넘겨지면 두 번 다시 보지도 못할 사이인데 뭣하러 신경을 쓰겠는가. 텅, 텅. 꼬리가 부딪히는 소리가 등 뒤에서 울렸다. 카산드라는 눈을 질끈 감았다. 어둠을 스크린삼아 무식하게 줄을 잡아당기는 인어의 모습이 떠올랐다. 저렇게 당겨봐야 올가미는 조여들기만 할 것이다. 그러다 다치면 어쩌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자가 있는 상품은 값어치가 반 토막 나는데.’

카산드라가 알 바는 아니었다. 그녀의 몫은 저 앞에서 붉은 장미 같은 꼬리를 놀리며 유유히 헤엄치는 중이었으니까. 텅, 텅. 내 알 바는 아니야. 카산드라는 스스로에게 되뇌며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겼다. 텅. 늦게 고르는 사람이 손해 보는 거지. 퉁, 퉁. 이런, 젠장할...

카산드라는 결국 수조로 되돌아갔다. 바삐 걸어가는 와중 주머니 속에서 잭나이프 하나를 꺼낸 카산드라는 접사다리를 끌고 와서 위로 올랐다. 위에서 내려다본 수조는 올려다볼 때보다 더 작아보였다. 한 사람이 웅크려 눕는다면 겨우 들어맞을 정도의 너비의 공간. 그 속에 제 키의 두 배는 될 듯한 생물이 구겨져 들어가 있었다. 카산드라는 벽면에 부딪히며 소리를 내는 인어의 꼬리를 가만히 바라봤다. 흰 점이 은하수처럼 흩뿌려진 푸른 꼬리. 언젠가 항구에서 마주친 고래상어가 떠올랐다. 커다랗고 유순한 생물. 너무도 온건한 성정에 미처 반항조차 못 하고 등에 작살을 받아낸 거대한 포유류. 온 몸에 밧줄을 칭칭 동여맨 채 갑판에서 부두로 쿵, 떨어지던 그 모습이 문득 겹쳐 보였다. 시멘트에 남은 붉은 자국은 며칠이 지나도 선명했었지. 카산드라는 입술을 꾹 다물며 줄의 반대편 끝을 잡아당겼다. 그녀가 온 줄도 모르고 끙끙대던 인어는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가만히 있어봐. 움직이면 더 조이니까.”

그가 알아들을 것이라 생각해서 던진 말이 아니었다. 물고기에게 진심으로 말을 건네는 이가 얼마나 될까. 듣는 이는 안중에도 없이 혼자만의 만족을 위한 일방적인 대화였다. 인어는 불안한 시선으로 카산드라를 훑었다. 떨리는 잿빛 시선이 그녀의 손에 들린 날붙이에 닿자 그는 잔뜩 동요하는 모습을 보였다. 카산드라가 뭘 하기도 전에 인어는 아래로 잠수했다. 줄이 순식간에 손바닥을 쓸고 빠져나갔다. 그녀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손에 든 것을 놓쳤다. 장갑도 없는 맨살에 붉게 쓸린 자국이 선명하게 남았다. 피가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한 손바닥을 주먹을 쥐어 가리며 그녀는 나지막이 욕을 뱉었다. 상처에 해수가 배어들어 손바닥이 따가웠다. 짜증이 일었다. 도망쳐봤자 수조 바닥인데, 어딜 가겠다고 숨는 건지. 그녀는 사다리를 타고 내려와서는 바닥에 쭈그리고 앉았다. 인어는 여전히 목에 감긴 줄과 씨름하고 있었다. 미련한 자식.

“야.”

카산드라는 손을 들어 인어의 눈높이를 탕탕 두드렸다. 화들짝 놀란 눈 한 쌍이 소리가 난 쪽을 돌아봤다. 카산드라는 그가 알아듣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버럭 짜증을 냈다. 혼자만의 화풀이를 위해.

“가만히 있으라고 했잖아. 풀어주겠다는데 왜 도망치고 난리야.”

탕. 화가 난 손바닥이 유리를 다시 두드렸다. 유리에 희미하게 붉은 자국이 남았다. 인어는 물속에서 입을 열었다. 노랫소리 같기도 한 소리가 짧게 울리다 사라졌다. 알아듣지 못할 울림에 카산드라는 불쾌함을 숨기지 않고 표정을 있는 대로 찡그렸다.

“뭐라는 거야.”

험악한 표정이 저를 바라보자 인어는 위축된 듯 뒤로 물러났다. 움직임에 맞춰 잿빛 머리카락이 물 안에서 부드럽게 일렁였다. 카산드라는 인어의 눈을 피하지 않고 한참을 노려봤다. 한참을 흘끔대던 인어는 그새 얼굴을 마주하는 게 익숙해졌는지 목에 감긴 것을 손으로 붙잡으며 다시금 노래했다. 수조 속의 물이 그 소리에 맞춰 일렁였다. 유리에 얹어진 손에도 그 떨림이 전해졌다.

“그래. 내가 그걸 풀어준다고 했잖아.”

카산드라는 어이가 없다는 듯 대답했다. 인어는 아무것도 모르는 말간 표정으로 노래를 이어나갔다. 카산드라는 답답함에 언성을 버럭 높이며 성질을 냈다.

“풀어! 주겠다고!”

백 번 말해봐야 그가 그녀의 말을 알아들을 리 없었다. 카산드라는 손에 든 칼로 보이지 않는 올가미를 끊어내는 시늉을 했다. 조잡한 마임을 열 번 정도 반복했을 무렵, 인어는 알겠다는 표정을 한 뒤 수면 위로 헤엄쳤다. 알겠다는 표정. 카산드라는 코웃음을 쳤다. 정말 뜻이 통했는지 아닌지도 모르면서, 그저 표정이 인간과 닮았다는 이유만으로 그렇게 넘겨짚다니.

“왓슨!”

카산드라가 접사다리의 꼭대기에 앉았을 무렵이었다. 아래에서 동료가 그를 불렀다. 왜. 카산드라는 아래를 내려다보지도 않고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얼른 끝내고 점찍어둔 인어를 가지러 가야 한다는 조급함에 말이 다듬기도 전에 튀어나갔다.

“몫 정하는 게 끝났어. 네 몫은 이거야.”

텅텅. 동료의 손이 고래상어를 닮은 인어의 수조를 두드렸다. 목에 올가미를 두르고 있는 인어는 그 소리에 깜짝 놀랐는지 퍼득 꼬리를 움직였다. 물방울이 카산드라의 얼굴에 튀었다. 놀란 것은 인어만이 아니었다.

“뭐?”

카산드라는 얼굴에 튄 물을 닦을 생각도 않고 아래를 내려다봤다. 동료는 어깨를 으쓱 하며 대답했다.

“끝났다니까. 네가 자리에 없어서 있는 사람들끼리 배분을 끝냈지. 얘가 마음에 들어서 붙어있는 거 아니었어?”

“미쳤어? 이렇게 큰 걸 누가 산다고.”

“하긴. 그래도 어쩔 수 없어. 이거 아니면 저기 저것들뿐이야.”

사다리 아래의 사람은 팔을 쭉 뻗어 작은 수조들을 가리켰다. 카산드라가 어림도 없다며 지나쳐 온 조무래기들이 그쪽에 몰려 있었다.

“그 빨간 건?”

“진작에 누가 가져갔지.”

“이런 젠장할...”

카산드라는 머리를 헝클며 한숨 쉬듯 욕을 내뱉었다. 수면 위로 올라온 인어는 그 행동을 바라보다가 손을 들어 제 머리를 헝클었다. 물에 젖은 머리가 삐죽삐죽 일어났다. 인어의 말간 얼굴을 보자 카산드라의 속에 울컥, 짜증이 치밀었다. 너 때문에- 그녀는 그리 외치려다가 생각을 고쳐먹었다. 알아듣지도 못할 거, 뭐하러 성을 내겠냐 하는 심산에서였다. 그래도 이거나마 건진 게 행운일지 몰랐다.

“...이거라도 가져갈게.”

“그럴 줄 알았어. 어디로 가져갈 거야? 장터로 보내는 거면 나랑 같이 차비 나눠서 내자. 나머지 사람들은 식당으로 보낸대.”

“장터...”

그녀는 말꼬리를 흐리며 생각에 잠겼다. 생각에 잠겼다기보다는 좋은 것을 놓쳤다는 아쉬움을 곱씹는 것에 가까웠다. 작은 칼날이 두꺼운 줄을 자르는 내내 그녀는 선택의 대가에 대해 고민했다. 툭. 줄이 끊어지는 소리가 그녀를 생각의 구덩이에서 끄집어냈다. 붉게 쓸린 자국이 남은 목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젠장할, 결국 상처가 남아 버렸잖아.

“나는 집으로 데려갈게. 이 상태로는 팔리지도 않을 거 아냐.”

“너답지 않은 선택인데. 데리고 있으면 돈을 버리는 거나 마찬가지라는 거 알잖아. 괜찮겠어?”

“오래 데리고 있을 건 아니야. 길어야 일주일이면 낫겠지. 그 안에 설마 죽을까.”

“그래. 네 돈이니까.”

동료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그래, 내 돈이지. 카산드라는 중얼거리며 물에 젖은 밧줄을 아래로 던졌다. 이후로도 시답잖은 이야기가 오고갔다. 차비를 나눠 낼 수 없어서 아쉽네, 오늘은 수확이 좋았으니까 그 정도는 감당할 수 있어. 그리고 다음에 보자는 인사까지. 짧은 수다를 마친 뒤, 카산드라는 수조 윗부분에 팔을 턱 얹어놓고 머리를 쓸어 올렸다. 일렁이는 물의 표면 아래, 아무것도 모른 채 헤엄치는 인어의 모습이 이지러졌다.

“내가 틀린 선택을 하는 건 아니겠지.”

카산드라는 공연히 물을 손으로 튀기며 허공에 대고 넋두리했다.

*

“그건 저쪽, 욕실에 넣어주세요.”

허름하지만 혼자 살기에는 무리가 없는 작은 아파트. 카산드라는 며칠 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들어오자마자 꿉꿉한 공기에 숨이 막혔다. 그녀는 창문을 활짝 열며 제 뒤를 따라 들어온 사람들에게 대충 말했다. 운송 업체의 유니폼을 입은 사람 둘이 관짝 하나 크기의 수조를 들고 어기적어기적 걸음을 옮겼다. 카산드라는 겉옷을 벗어 소파 위에 아무렇게나 얹어놓으며 짐이 옮겨지는 모습을 바라봤다.

‘아, 눈 마주쳤다.’

물장구 한 번 못 칠 만큼 좁은 상자에 담긴 인어가 제 쪽을 보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어쩌라고. 카산드라는 심드렁한 표정을 지으며 팔짱을 꼈다. 욕실로 향하는 길에는 장애물이 많았다. 가뜩이나 집도 좁은데다 카산드라가 깔끔을 떠는 성격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바닥에 널린 것들을 발로 대충 밀어내며 욕실까지 가는 길목을 텄다. 가는 길만이 문제는 아니었다. 카산드라는 제 욕조를 보며 허어, 고민에 찬 소리를 냈다.

“생각보다 작네.”

욕조는 척 보기에도 아담한 크기였다. 아무리 인어의 몸을 구긴대도 그 안에 들어갈 수는 없었다. 작은 것만이 문제는 아니었다. 온통 물때가 끼어 얼룩덜룩한 욕조는 보는 이의 탄식을 자아냈다. 카산드라는 마지막으로 욕조를 썼던 때가 언제인지 떠올리려 애썼다. 기억도 나지 않았다. 그녀는 욕조의 가장자리에 걸터앉아 한숨 쉬었다. 그냥 그 옆에 놔주세요. 욕조를 흘긋 본 배달기사들은 카산드라의 요구에 토를 달지 않았다. 그들은 유리로 된 관을 욕조의 옆에 가로로 놓고는 돌아갔다. 귀찮게 됐네. 카산드라는 옴짝달싹 못하는 인어를 보며 마른세수를 했다. 인어는 눈을 데구룩 굴려 카산드라의 눈치를 보더니 물 아래로 꼬르륵 잠수했다. 상체가 물에 잠기자 꼬리의 일부분이 물 위로 밀려나왔다. 카산드라는 인어가 자맥질하는 양을 가만히 보다가 조용히 혼잣말을 뱉었다.

“나도 목욕이나 할까?”

입 밖으로 내고 나니 괜찮은 생각인 듯 싶어서 그녀는 팔을 걷어붙이고 청소 도구를 한아름 꺼내왔다. 몇 년 간 쌓인 물때는 한참을 닦아내야 겨우 사라질 만큼 끈질긴 놈이었다. 저녁 어스름이 짙어지고, 까만 하늘 위에 창백한 빛이 콕콕 찍혔다. 카산드라는 청소에 몰두한 탓에 시간이 자정을 넘어가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청소는 심야 뉴스의 앵커가 마무리 멘트를 할 때 즈음 끝났다. 그녀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깔끔해진 욕조를 바라보며 기지개를 쭉 켰다. 굳어있던 허리에서 뿌드득, 하는 소리가 났다. 인어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카산드라를 바라봤다. 수조 속에서 꼬리가 한차례 첨벙댔다.

“왜. 너네는 몸에서 이런 소리가 안 나나보지?”

그녀는 목을 이리저리 돌리며 인어에게 쏘아붙였다. 인어가 무어라 노래했지만 카산드라는 알아듣지도 못할 언어에 조금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녀는 후들후들 떨리는 팔로 수도꼭지를 열고 김이 나는 따뜻한 물이 욕조를 채우는 것을 구경했다. 오랜만에 기분이나 내자 싶어서 비누도 잔뜩 풀었다. 거품이 몽글몽글 솟자 공기 중에 따끈한 시트러스 향이 퍼졌다. 카산드라는 물을 잠그고 옷을 벗었다. 인어는 멀뚱히 그녀를 바라봤다. 카산드라는 시선을 의식하지 않았다. 얼굴은 인간과 닮았어도 결국은 다른 종이 아니던가. 강아지나 고양이 앞에서 옷을 벗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누군가는 신경을 쓸 수도 있고, 누군가는 아랑곳 않고 내키는 대로 행동할 것이다. 카산드라는 후자였다. 바다의 짜고 눅눅한 냄새가 밴 옷가지를 벗어내자 흰 살갗이 드러났다. 값싼 형광등 아래에서 언뜻 투명하게도 보이는 살에는 상처도 거의 없었다. 뱃사람으로 지낸 세월이 이 년도 채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앓는 소리를 내며 따뜻한 비누거품 속에 풍덩, 빠졌다. 풍덩. 수조 속의 인어는 꼬리를 퍼덕여 똑같은 소리를 냈다.

“어으으... 좀 살겠다. 치우길 잘 했네.”

카산드라는 물 안으로 미끄러져 내려가며 고개를 뒤로 젖히고 만족스런 숨을 내쉬었다. 경직된 근육에 온기가 닿자 온몸이 노곤해졌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욕조의 모서리에 닿았던 고개는 점점 거품 아래로 미끄러졌다. 따뜻한 물은 가슴을 넘어 어깨를, 목을, 턱 아래를 기분 좋게 간질였다. 의식의 끈이 점점 얇아질 때 즈음, 옆에서 노랫소리가 들렸다. 카산드라는 눈을 반짝, 떴다. 하마터면 이대로 익사할 뻔 했네. 그녀는 다시 몸을 일으키고는 소리가 난 쪽을 돌아봤다. 딱딱한 유리 수조의 모서리에 얹어진 얼굴이 그녀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카산드라와 눈이 마주치자 인어는 흠칫 놀라며 고개를 뒤로 당겼다. 카산드라는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을 지었다.

“네가 불러놓고 놀라긴 왜 놀라?”

인어는 눈치를 보다가 입을 열었다. 수백 개의 유리잔이 공명하는 것 같은 소리였다. 카산드라는 욕조 가장자리에 팔을 턱 얹어서는 들리는 멜로디를 무작정 따라했다.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인어는 살풋 웃었다. 그 미소는 그가 몸을 담고 있는 물 만큼이나 투명하고 맑았다. 카산드라는 인어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요정. 바다의 요정이 있다면 이렇게 생겼겠지. 그녀는 그제야 인어를 신성시하는 사람들을 이해했다. 홀리지 않고는 못 배길 미소였다. 그녀는 그를 향해 손을 뻗었다. 인어는 다가오는 손을 보고서는 물 안으로 고개를 푹 담갔다. 급하게 피한 탓인지 작은 수조 안에 큰 파도가 쳐서 물이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미안.”

카산드라는 머쓱하게 손을 거두며 사과했다. 좁은 사각형 안에 어떻게든 숨어보겠다고 몸을 구긴 모양새가 꽤나 안쓰러웠다. 목에 그어진 붉은 줄도 신경 쓰였다.

‘저 좁은 곳에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갇혀있으면 상처도 덧나겠지.’

카산드라는 따뜻한 물에 몸을 푹 담그며 생각했다. 내일은 수족관을 사야겠다. 저 관짝보다는 큰 수족관을.

돈을 얼마나 들였는지 몰랐다. 카산드라는 공사가 끝난 후 영수증에 찍힌 금액을 보고서는 한참동안 눈을 꿈뻑이며 서있었다. 적어도 두 번은 바다로 나가야 벌 수 있는 돈이 한순간에 빠져나갔다.

‘주말 아침부터 불러서 그랬던 걸까? 아니면 크기가... 너무 큰 수족관을 주문해서 그랬을까?’

그녀는 거실의 절반을 채운 수족관을 바라보며 고민했다. 하지만 열심히 생각한다 해서 빠져나간 돈이 다시 통장으로 들어오지는 않았다. 카산드라는 갑자기 넓어진 물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빙글빙글 헤엄치는 인어를 바라봤다. 얼떨떨하지만 행복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그녀는 유리에 몸을 기대며 물었다.

“좋아?”

그는 한참을 노래했다. 카산드라는 인어의 언어를 몰랐지만, 눈치껏 그 속에 담긴 감정은 읽을 수 있었다. 물을 타고, 유리를 타고 행복에 겨운 떨림이 전해졌다.

“그래야지. 돈이 얼마나 들었는데. 이걸 벌려면-”

너 같은 애들을 몇이나 잡아야 하는지 몰라. 카산드라는 말을 하려다 말고 입을 꾹 다물었다.

“네가 좋아하면 됐지.”

인어는 카산드라의 어두운 낯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수조 속을 맴돌기만 했다. 그날은 저녁까지 노랫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

목에 난 상처가 사라질 때까지만. 그것이 처음에 한 약속이었다. 붉은 올가미는 일주일이 지난 뒤에 사라졌다. 카산드라는 이런저런 트집을 잡으며 기한을 미뤘다. 요즘은 몸이 안 좋으니, 몸이 나아질 때까지만. 날씨가 궂으니 폭풍이 지나갈 때까지만. 일이 바쁘니까 다음 항해를 다녀올 때까지만. 그리고 그 다음 항해까지. 그 다음으로, 또 그 다음으로. 같이 지내는 시간이 늘어갈수록 카산드라는 인어에게 적응했다. 그녀는 그에게 이름까지 붙였다. 케일. 아무렇게나 펼쳐든 책의 첫 문장에 나온 이름. 별다른 의미를 갖지 않던 이름은 어느새 그녀에게 가장 중요한 이름이 되었다.

카산드라가 집에 있는 시간이 점점 늘어났다. 뭍에는 가족도 애인도 없어서 괜찮다며 일주일이 넘는 항해를 밥 먹듯이 하던 사람이 별안간 당일치기 조업만 다니니 동료들은 그녀를 걱정했다. 죽을 때가 된 거 아니야? 그들이 농담 삼아 물으면 카산드라는 부끄러운 듯 웃음을 터트렸다. 죽으면 큰일 나지. 이토록 살아있는 게 기뻤던 때가 없는데. 인어에게 홀렸던 걸까. 카산드라는 가끔 자신에게 질문했다. 홀렸으면 어떻고 아니면 어떻냐는 답이 나왔다. 행복하면 된 거지.

“나 왔어, 케일.”

카산드라는 매일 저녁, 열 명은 족히 먹일 만큼의 고기를 사들고 집으로 돌아갔다. 손이 무거운 만큼 마음은 가벼웠다. 카산드라가 허공에 대고 인사하면 케일은 노래로 그녀를 맞이했다. 하이 톤의 멜로디. 듣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몽환적인 음계에 카산드라는 콧노래로 음조를 따라했다. 현관에 신발을 대충 밟아 벗은 카산드라는 바로 수조 앞으로 달려갔다. 케일은 유리벽에 손을 대고 그녀를 기다렸다. 꼬리가 물결에 따라 살랑이는 게 꼭 강아지 같았다. 아니, 물에서 사는 생물이니 물개라고 해야 할까? 카산드라는 케일의 손 반대편에 제 손을 겹치며 생긋 웃었다.

“잘 있었어?”

노랫소리.

“나도. 보고 싶었어.”

그녀는 구석에 밀어둔 접사다리를 펼치고는 위로 올랐다. 제 키를 살짝 넘는 꼭대기에 걸터앉자 푸른 꼬리가 기다렸다는 듯 물을 박차고 위를 향해 움직였다. 물에 젖은 머리칼이 수면 위로 솟으며 반사된 상을 흔들었다. 케일은 물 위를 둥둥 떠다니며 카산드라를 바라봤다. 정확히는 그녀의 손에 시선을 고정했다. 카산드라는 장바구니에서 고기를 꺼내어 포장을 뜯었다. 덜 빠진 핏물 한 방울이 수면 위로 떨어졌다. 붉은 방울이 미처 흩어지기도 전에 케일은 고깃덩이를 집어삼켰다. 카산드라는 다음 포장을 뜯었다. 그리고 그 다음을. 양손 가득하던 것이 사라지는 데에는 채 반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카산드라는 아름다운 존재의 아름답지 않은 식사를 구경했다. 인어에 관한 사실 한 가지. 그들은 신화 속에 나오는 것처럼 온건한 존재가 아니었다. 그들은 먹이사슬 위쪽에 위치한 포식자였다.

케일은 식사를 마친 후 자맥질을 하며 입가에 묻은 피를 씻어냈다. 물 위에 떠다니는 향이 피비린내인지 물비린내인지 이제는 알 수 없게 되었다. 카산드라는 수조에 팔을 얹고 가만히 턱을 괴었다. 수면의 파동 아래에서 움직이는 케일의 모습을 구경하는 것도 퍽 재밌었다. 케일은 한참을 헤엄치다 몸을 위로 올렸다. 시선이 맞물렸다. 카산드라는 기다렸다는 듯 이야기를 시작했다.

“있잖아, 오늘은 바다로 나갔어.”

노랫소리.

“가서 무슨 일을 했는지는 말하지 않을 거야. 네가 알아서 좋을 건 없으니까. 글쎄, 선장이 날 보더니 왜 장기 출항은 안 가냐고 뭐라 하데? 내가 당일치기만 다닐 수도 있지, 참 나.”

제법 길게 이어지는 노랫소리.

“그런데 있잖아, 선장도 그렇고 다른 사람들도 그렇고, 나만 보면 무슨 일이 있냐고 묻는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어.”

짧은 노래. 케일은 흥미가 떨어진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렇게는 말 못 해. 내가 집에 너를 두고 있다는 게 알려져 봐. 다들 나를 이상하게 볼걸? 그냥 핑계거리를 만드는 게 낫지.”

케일은 이제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물장구를 치고 놀 뿐. 카산드라는 방백 같은 독백을 마치고는 자조적인 웃음을 터트렸다. 내 말 듣고는 있는 거야? 카산드라는 그가 인간의 말을 들을 리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물었다. 케일은 카산드라를 흘끔 보더니 물을 찰박, 튀겼다. 카산드라는 별안간 날아든 물 폭탄에 어푸, 소리를 내며 고개를 흔들었다.

“야!”

그녀는 얼굴에서 뚝뚝 흐르는 물을 닦아내며 그를 흘겨봤다. 케일은 또 한 번 물을 튀겼다. 크기가 다른 유리잔이 서로 부딪히는 소리가 깔깔대는 웃음처럼 흩어졌다. 카산드라는 헛웃음을 지었다. 어디 해보자는 거지. 그녀는 소매를 걷어붙이고 양 손 가득 물을 떠서 케일에게 퍼부었다. 전쟁의 시작이었다. 당연하게도, 카산드라가 졌다. 사람에게 공기를 끼얹는다고 사람이 죽던가? 물에서 사는 인어에게 물싸움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카산드라만이 쫄딱 젖어서는 넋이 나간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항복, 항복!”

그녀는 양손을 번쩍 들고 고개를 저었다. 그 표시를 알아들을 리 없는 케일은 꼬리를 번쩍 들어 크게 첨벙, 파도를 일으켰다. 카산드라는 머리 전체를 적시는 물보라를 맞으며 콜록댔다.

“아- 항복 했잖아!”

깔깔대는 소리가 다시 울렸다. 수면 아래에서 흔들거리는 푸른 꼬리는 잔뜩 신이 나 있었다. 카산드라는 머리카락에서 물을 쭉 짜내며 케일을 흘겨봤다. 그의 웃음에는 확실히 사람을 홀리는 무언가가 있었다. 반쯤 접히며 휘어지는 눈 때문인가? 아니면 부드러운 호선을 그리는 입술? 그것도 아니라면, 수많은 종소리보다도 아름다운 웃음소리 때문인가? 그녀는 즐거워하는 케일을 멍하니 바라보며 제 코가 꿰인 이유를 찾으려 했다.

케일은 가만히 멈춰있는 카산드라의 앞에 고개를 불쑥 들이밀었다. 카산드라는 저도 모르게 숨을 참았다. 귀가 먹먹했다. 안에 물이 들어가서였는지, 다른 이유 때문이었을는지. 둘은 한참동안 서로와 시선을 교환했다. 어지럽게 요동치던 수면은 어느새 잔물결 두엇이 전부일 정도로 차분해졌다. 똑, 똑똑. 젖은 머리칼에서 떨어진 물방울이 내는 소리가 차분한 숨소리 위에 깔렸다. 카산드라는 그야말로 홀린 듯이 손을 뻗어 케일의 볼을 감쌌다. 그는 카산드라의 손을 피하지 않았다. 손가락 끝에 닿는 감촉이 물의 온도만큼이나 서늘해서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새삼 제가 탐하는 이가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이 카산드라를 괴롭혔다. 그럼에도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카산드라는 케일을 제 쪽으로 끌어당기며 입술 대신 이마를 맞댔다. 가까이서 바라본 눈은 잔잔한 겨울 바다 같은 회색빛이었다. 그녀는 속에서 벅차오르는 이끌림이 한층 강해지는 것을 느끼며 한숨을 쉬었다. 이 눈에 내가 홀려서는.

“내가 어쩌다 너를...”

카산드라가 말을 끝맺기도 전에 케일은 물 아래로 잠수했다. 홀로 수면 위에 덩그러니 남아버린 카산드라는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허공에 떠있는 손이 민망했다. 얼굴에 열이 홧홧하게 올라서 그녀는 물에 냅다 고개를 들이밀고는 열기를 식혔다. 민망해라.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그녀는 아래로 내려왔다. 수족관 바닥에 앉아있던 케일은 내려온 카산드라를 보고 수조의 가장자리로 헤엄쳐 왔다. 카산드라는 유리벽에 꿍, 하고 부딪히는 이마를 봤다. 카산드라의 손이 닿았던 모든 부분이 붉게 부어 있었다. 그녀는 증상을 검색했다. 화상이었다. 닿아서는 안 될 것들이 닿아버린 결과였다.

그 뒤로 카산드라는 수조의 아래에서 거리를 두고 그와 대화했다. 거실의 반대편에 놓여있던 소파는 수조의 바로 앞으로 옮겨졌다. 어느 날은 앉아서 한참 동안 넋두리를 했고, 어느 날은 밤이 새도록 누워서 이야기를 하다 잠들었다. 어느 날은 카산드라 혼자 주절주절 얘기했으며, 또 어떤 날은 케일이 혼자 노래했다. 하지만 어떤 날에도 대화의 마지막은 손 인사였다. 유리 위에 손바닥이 얹어지면 반대편에서 손바닥이 겹쳐졌다. 차마 닿을 수 없었던 둘은 유리를 사이에 둔 채 손을 겹치고 이마를 맞댔다. 유리 너머로는 아무것도 전해지지 않았다. 체온도, 감정도. 그래도 둘은 행복했다. 그러니 괜찮았다.


*


여기까지만 본다면 이야기는 해피엔딩으로 끝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오래토록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끝. 그렇게 마무리 되는 뻔하디 뻔한 동화. 하지만 현실은 동화가 아니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인어의 취급에 관한 법이 제정되었다. 몇 년간 질질 끌던 논의가 드디어 마침표를 찍은 것이다. 인어는 보호종으로 지정되어 포획이 금지되었다. 인어를 집에 두는 것 역시 불법이었으며, 인어의 소유주들은 그들을 방생할 것을 명령 받았다. 법이 실제로 집행되기까지 앞으로 6개월. 사람들은 크게 동요했다. 하나의 산업이 통째로 무너질 위기에 처해 있었다. 카산드라 역시 충격을 받은 이 중 하나였다. 한순간에 사라진 일자리도 일자리지만 거실을 가득 메운 수조도 문제였다. 그녀는 뉴스가 나오던 TV를 꺼버렸다. 수조 속을 뱅뱅 돌며 수영하던 케일은 시선을 의식했는지, 헤엄을 치다말고 카산드라를 향해 방긋 미소 지었다. 카산드라는 마주 웃어주지 못했다.

잊고 있던 사실 하나가 공기방울처럼 위로 떠올랐다. 우리는 애초부터 이렇게 만나서는 안 됐다. 카산드라는 수조 구석에 놓인 여과기를 멍하니 바라보며 생각했다. 위로 솟는 거품 하나에 생각이 하나씩 꼬리처럼 따라붙었다. 세상에 사냥감을 사랑하는 사냥꾼이 어디 있는가? 사랑하는 이에게 좋은 것을 주는 대신 제 욕심을 앞세워 잡아만 두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온 바다를 누비며 살아야 할 인어에게 조각난 바다를 안겨주고 사랑을 속삭여봤자 그건 사랑이 아니다. 이기심일 뿐이지. 그 상황에서 사랑이 돌아올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크나큰 착각이 아닌가?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물거품에 질려버린 카산드라는 저벅저벅 걸어가서는 냅다 전원 코드를 뽑아버렸다. 웅웅대던 소리가 잠시 멈췄다.

톡톡. 카산드라는 옆에서 들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케일이 걱정 어린 표정으로 카산드라를 바라봤다. 불안한 시선이 카산드라에게 닿았다가 갑자기 멈춰버린 여과기에 닿았다. 무슨 일이냐고 묻듯 축 늘어진 눈썹. 카산드라는 그가 보이는 감정을 더는 믿을 수 없었다.

그녀는 모든 것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의 반응, 자신의 감정, 둘이 속한 이 상황까지도. 케일이 행복하다고 넘겨짚은 것은 결국 내가 아닌가? 그게 단지 오해였다면? 내가 케일을 사랑한다 생각한 것도 착각이라면? 이 모든 상황이, 내 욕심을 합리화시키기 위한 하나의 장치에 불과했다면?

카산드라는 전원 코드를 물끄러미 내려다봤다. 질문은 많았고 이렇다 할 대답은 없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이 처음은 아니었다. 잠에 들기 직전, 집을 나선 직후, 선원들의 말을 듣는 순간. 그 순간들에 그녀는 스스로에게 비슷한 질문을 수도 없이 던졌다. 그녀는 대답을 피했다. 찰나의 행복을 최대한 오래 즐기고 싶어서였다. 카산드라는 부글대며 솟아오르는 거품을 손바닥으로 내리 눌러 막았다. 얼마간은 효과가 있었다. 그녀는 꽤 오랫동안 케일과 웃고 떠들지 않았던가.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위로 올라가는 힘이 누르는 힘을 압도하게 된다. 공기방울을 영원히 수면 아래에 잡아둘 수는 없는 법이었다. 카산드라는 전원 코드를 다시 벽에 꽂았다. 여과기가 다시 돌아가더니 한 더미의 물거품이 보그르르, 솟아올랐다. 거품들은 수면에서 터지며 한 가지 목소리를 냈다. 전부 네 욕심이야. 탐욕이고, 이기심이야. 네 잘못이야. 진작에 모두 그만뒀어야 했어.

케일은 위로 퐁퐁 솟는 물거품을 보며 활짝 웃었다. 카산드라는 그 미소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이제는 저 미소를 봐도 기쁘지 않았다. 깊은 물 아래에 잠겼을 때처럼 가슴이 먹먹하니 죄어들었다. 상처에 바닷물이 배어든 것처럼 따갑게 아렸다. 케일은 카산드라의 미소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웃어줄 수가 없었다. 카산드라는 탄식했다.

‘아. 이제 끝났구나.’

미안함이 사랑을 앞서면 관계는 절대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끝이었다. 그렇게 한순간에, 둘 사이에는 커다란 마침표가 찍혔다. 일방적인 이별이었다. 카산드라의 눈가가 화끈거렸다. 울어야 할 자격조차 없는 것 같았는데 우습게도 눈물이 났다. 이기적이었다. 그녀는 시작부터 끝까지 저 좋을 대로 관계를 재단해버리고서는 눈물마저 저 좋을대로 흘렸다.

“케일.”

카산드라는 수조에 등을 기댄 채 바닥으로 스르륵 주저앉았다. 시야 구석에서 케일이 벽면에 착 달라붙는 게 보였다.

“이제 끝났어.”

낮은 노랫소리가 한차례 울렸다. 케일은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기라도 하듯 평소와는 다른 톤으로 노래를 불렀다. 보다 무겁고 낮은 노랫소리가 웅웅대며 수조 전체를 울렸다. 카산드라는 등으로 진동을 느끼며 애써 밝은 척 목소리를 끌어올렸다.

“돌아갈 수 있다는 소리야. 바다, 넓은 바다 말이야. 벌써 까먹은 건 아니지? 네가 왔던 곳, 마땅히 있어야 할 곳 말이야.”

짧은 노랫소리.

“있잖아, 너는 내가 없어도 잘 살겠지? 아니, 너무 뻔한 소리였다. 당연히 지금보다야 잘 살겠지.”

침묵.

그리고 침묵.

카산드라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뒤로 기댔다. 차갑고 딱딱한 유리가 뒤통수에 닿았다. 꿍. 그녀는 다시 머리를 벽면에 박았다. 골이 띵하게 울리기만 할 뿐, 수조 속은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았다.

“미안해, 케일.”

그녀는 너무 늦어버린 사과를 건넸다. 케일은 작게 노래했다. 카산드라는 한참 후에 그 소리에 대답했다.

“그냥. 모든 게.”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뒤를 돌아보니 수조에 얹어진 커다란 손바닥이 보였다. 케일은 엷게 미소 지으며 카산드라를 기다리고 있었다. 부드럽게 일렁이는 빛이 그의 얼굴 위에서 춤을 췄다. 카산드라는 슬프게나마 미소를 띠며 손바닥을 그 위에 얹었다. 케일은 방긋 웃으며 노래했다. 유리잔이 가볍게 부딪히는 맑은 웃음소리. 이제 더는 그 웃음을 듣지 못한다는 사실에 카산드라는 덜컥 외로워져서 수조에 이마를 기댔다. 케일은 카산드라의 이마 위에 제 머리를 갖다 댔다. 꿍.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카산드라는 바로 앞에 다가온 케일의 눈을 응시했다. 투명한 유리 너머로는 아무것도 전해지지 않아야 했다. 체온도, 감정도. 하지만 맑은 시선이 고스란히 벽을 건너온 탓에 카산드라는 결국 울상을 지었다. 그는 행복해 보였고, 그럴수록 그녀는 슬프기만 했다. 카산드라는 괜찮지 않았다.


*


법이 집행되기까지 앞으로 하루. 카산드라는 모든 준비를 마치고서는 거실로 나왔다. 그녀는 온 몸을 덮을 만큼 큰 티셔츠 한 장 만을 입은 채였다. 오후의 햇살 아래 티셔츠 아래의 실루엣이 선명하게 비쳤다. 카산드라는 접사다리를 꺼내서 펼쳤다. 수조 속의 케일은 도통 가만히 있지를 못하고 네모난 바다 속을 바쁘게 헤엄쳤다. 그녀는 사다리를 올랐다. 케일은 수조 바깥에서 움직이는 것을 보더니 빠른 속도로 그 형체를 향해 헤엄쳐왔다. 텅, 텅. 급한 나머지 꼬리가 벽에 부딪히는 것도 신경 쓰지 않은 채였다. 벌어진 입술 사이로 날카로운 이가 번득였다. 카산드라는 사다리의 꼭대기에서 아래를 내려다봤다. 잔뜩 불안해하며 저를 올려다보는 잿빛 눈과 길게 이어진 푸른 꼬리. 흰 점이 아름답게 흩뿌려진 꼬리가 물 아래서 퍼덕이고 있었다. 카산드라는 꿈결에 빠진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케일, 이제 작별이야. 안녕. 완전히 안녕.”

케일은 수면 위로 고개를 내밀었다. 한 쌍의 잿빛 눈이 카산드라의 손을 바쁘게 훑었다. 카산드라의 손은 텅 비어있었다. 오랫동안 바다 위로 나가지 않아서인지, 뱃일로 생긴 자잘한 상처들은 모두 자취를 감추어 매끄러운 채였다. 케일은 텅 빈 손을 보고는 불만을 담아 꼬리를 수면 위로 들었다가 다시 내리쳤다. 첨벙 소리가 꽤 크게 났다. 튀어 오른 물방울이 카산드라의 옷을 적셨다. 카산드라는 담담히 웃으며 말을 이었다.

“조금 있으면 사람들이 와서 널 데려갈 거야. 그 사람들한테 할 말은 다 정리해뒀어. 너무 무서워하지 말고, 그 사람들이 데려가는 대로 얌전히 있어야 돼, 알았지?”

카산드라는 몸을 기울이고는 수조의 경계를 넘었다. 차가운 물이 다리를 감싸자 저도 모르게 온몸이 떨렸다. 케일은 카산드라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수조의 반대편으로 헤엄쳤다. 카산드라는 그를 향해 미소 지었다.

“괜찮아.”

나는 그저 도망치는 것뿐이야. 내 잘못된 선택에 대한 대가를 치루는 게 두려워서. 벌을 받는 게 싫어서. 그래서 비겁하게 도망치는 것뿐이야. 마지막까지 네게 내가 짊어질 짐까지 지우면서.

“괜찮아.”

카산드라는 케일에게, 그리고 스스로에게 속삭였다. 케일은 사납게 파도치는 겨울 바다처럼 흔들리는 눈으로 카산드라를 바라봤다. 그녀는 힘겹게 웃었다. 네 표정 좀 봐. 완전히 사람 같잖아. 이러지 말라고 애원이라도 하는 것처럼-

“사랑해, 케일. 그리고 미안해.”

그 말을 마지막으로 카산드라는 물 아래로 가라앉았다.

 

*

 

몇 시간 뒤, 카산드라의 말대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도착했다. 그들이 무엇을 발견했을지는 모를 일이다. 어쩌면 그들은 수조 바닥에 겹쳐진 인영을 마주했을 것이다. 진주가 자갈마냥 하얗게 깔린 수조 속, 온몸이 붉게 데인 인어가 더 이상 제게 화상을 입히지 못하는 이를 껴안은 모습을. 아니면 그들은 묘하게 붉어진 물속을 유유히 헤엄치는 푸른 꼬리의 인어를 발견했을지도 모른다. 좁은 수조의 바닥에 놓인 찢어진 천은 인어가 헤엄칠 때마다 힘없이 팔랑팔랑 물살에 쓸려 다녔을 것이다.

 

만일 후자였다면, 인어가 식사하는 모습은 전혀 아름답지 않았을 것이다.

이것저것 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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