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은 평범한 마을처녀인데 전란으로 인해 가족을 잃고 너 혼자 살아남았음. 가족의 무덤을 만들어준 후 차마 가족의 뼈를 묻은 마을에 있기가 괴로워 고향을 떠나 먼 마을로 일자리를 찾아감. 그러다가 인술학원에서 멀지 않은, 어느정도 번영한 마을에 가게 되는데 먼저 잠자고 먹고 잘 곳이 있어야 할 거 아님?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빈방이 있으면 빌려주십사 청하지만 낯선 사람이니 경계해서 다 거절당하고 도이쌤네 집 빌려준 집주인을 찾아가게 됨. 아가씨가 가진 돈이 너무 적어서 방 빌리기도 어렵고(이동중 여비 거진 써버림) 남는 방도 없다 거절하지만 네가 사실 제가 이런 사정이 있어 그렇다, 어떻게 좀 안되냐고 하도 사정사정하니까 측은하게 여긴건지 그게, 거의 비어있는 집이 있긴 한데....말끝을 흐림. 거의? 의문 품으면서도 소개해준대서 따라갔는데 그게 도이쌤네 집인거임.

소박한 집이지만 지금 처지의 너방 눈에는 영주님 성 같아서 빈 집 둘러보면서 우와 감탄하는데 좀 기다려보라며 마침 마을 외곽으로 나가는 사람한테 부탁해서 건너건너 도이쌤에게 집을 지금 다른 사람이 보고있다는 소식이 전해짐. 도이쌤 애들 마지막 교시 끝나자마자 존나 기겁해서 안된다고 달려옴. 아무리 방학을 제외하면 집에 거의 못가는 처지라지만 집없이 어케 사냔말임;;;

그래서 도이쌤이 쌩 달려와서 혹시 집관리가 소홀하다고 내쫒으시려는거냐, 덜덜 떠는데 엥? 잘보니까 웬 아가씨가 집주인이랑 앉아있음. 뭐지;;; 어안이 벙벙해서 둘이 어색하게 고개 숙여 인사함. 집주인이 중개역할을 하면서 사정을 설명해줌. 자네는 허구헌날 집을 비우다가 잠시간 쓰고 또 집을 나가는데 그러면 아깝지 않냐, 이 아가씨는 갈곳이 없다 하니 불쌍히 여겨서 총각이 집에 없는 동안만 세를 주며 살고, 돌아오면 그사이 다른 집을 얻어 나가는걸로 해줄수 없겠냐 하는거임. 

아니, 말도 안된다! 어떻게 외간남자랑 시집도 안간 처녀랑 그럴수 있나, 펄쩍 뛰는 도이쌤. 친척도 가족도 아닌데 무리다, 무엇보다도 아가씨가 불편해 하실거다, 하면서 너를 힐끔 보는데 너는 전의 생활도 가난해서 생활의 쾌적함을 느끼는 역치가 극단적으로 낮기 때문에 도이의 집이 영주의 성처럼 느껴지는데다 이 기회를 놓치면 진짜 산,들에서 노숙해야 하는 처지라 애걸복걸함. 불편끼쳐서 죄송하다, 그동안 열심히 돈을 벌어서 나갈테니 집에 없는 사이에만 신세지겠다고 굽신굽신하는거 보면서 도이쌤이 아이고;;; 머리긁긁함. 결국 마음 약한 도이쌤이 져서 도이쌤이 없는 사이 빈집에 네가 살게 됨. 

 

너는 가난했던 대신 생활력이 좋아서 금방 마을에서 날품팔이를 하면서 돈을 벌게 되고, 큰 돈은 아니지만 매일매일 성실하게 같은 시간에 나와서 꾀부리지 않고 열심히 일하고 떠나는 거 모습에 낯설다고 경계하던 마을 사람들이 차츰 마을구성원으로 받아들이게 됨. 그리고 집주인 통해서 너에게 그런 사연이 있음을 알고 안됐다 여겨서 품삯을 조금 더 주거나 야채같은걸 나눠줌. 넌 감사합니다, 기뻐하면서 소박한 생활을 꾸려감. 넌 집주인과 도이를 은인으로 여기고 있음. 하마터면 집도 없이 떠돌이로 굶어죽을뻔했는데 말도 안되는 조건의 동거를 허락해줬으니까.

그래서 넌 급여를 받으면 먹을걸 사들고 꼬박꼬박 집주인 찾아가서 그때 너무 감사했다 인사하고 애기하고 돌아가고 집주인도 너를 손녀딸처럼 예뻐하게 됨. 하지만 도이는 처음 마주친 이후로는 오지 않기 때문에 너는 이 고마움을 어떻게 전하면 좋을지 몰라서 우선 도이가 없는 사이의 월세만 차곡차곡 모으고 있었음. 집주인이 네 몫의 세는 도이에게 주라고 했기 때문임. 

 

삼개월정도 되었을까, 그날은 초저녁부터 비도 너무 심하게 오고 우레 소리가 요란해서 넌 촛불 하나만 켠 방안에서 덜덜 떨고 있었음.  무서워서 어서 자고 싶은데 뇌우때문에 시끄러워 머리끝까지 이불을 덮어썼는데도 잠도 안옴. 혹시 집이 무너지면 어떡하지, 내 집도 아닌데 어떻게 하나, 걱정하는 네 신경이 갑자기 싸하게 곤두섬. 소리는 안들렸는데 뭔가 집안에 들어온 거 같음. 벌레나 짐승과는 다른 인기척에 무서워서 숨도 제대로 못쉬는데 똑, 물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음.

간이 콩알만해져서 아아악!!!! 비명지르는데 으악! 아가씨? 부르는 소리가 어디서 들어본 목소리임. 놀라 이불을 걷고 보니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흠뻑 젖은 도이쌤이 있음. 도이쌤은 오히려 제가 더 놀란듯 눈이 튀어나올것 같음.

 

아아, 그렇지.....내가 집을 빌려줬는데...잊고 있었어요, 미안해요. 

 

네가 침의차림인거 보고 바로 고개 돌리면서 나가려는걸 네가 붙잡음. 

 

이렇게 비가 오는데 어디 가세요? 비를 피하러 오신 거잖아요?

늦은 밤에 여자가 있는 집에 있을순 없어요. 

여긴 원래 당신의 집이니까 그럴순 없어요, 정 불편하시면 제가 나갈게요.

아니, 이렇게 비오는 늦은 밤에 그건 안되지요!

  

잠시 실랑이 하다가 도이가 뒤돌아있는 사이 네가 옷을 껴입고서 몸을 닦을 수건을 잔뜩 주고는 씻으라고 솥에 물을 끓이러 나감. 도이는 교장선생님의 심부름을 하다가 시간이 너무 늦고 비가 오는데 마침 제 집앞을 지난다고 오늘은 여기서 자고 내일 아침 돌아갈 셈이었던 거임. 바쁜 학교생활에 찌들어서 네 존재를 완전히 까먹고 있었기에 도이쌤도 놀라서 하마터면 심장이 튀어나올 뻔했음. 사복차림이라서 다행이다, 닌자복이었으면 둘러대느라 큰일날뻔 했다고 여기면서 몸의 물기 대충 닦는 도이쌤에게 네가 더운 물 준비했다고 말함. 도이쌤이 고마워요, 말하고 씻고 침의로 갈아입고 나오는데 추울테니 이거라도 드시라며 네가 뜨거운 차를 내옴. 그리고 마침 잘되었다고, 그간의 월세라며 돈을 내미는데 도이쌤이 난감하다는 얼굴을 함.

 

이렇게 돈을 주셔도 되나요? 다른 집에 세들어 살때도 목돈이 드실텐데...

덕분에 편하게 지내고 있으니 안 받으시면 제 마음이 더 불편해요, 받으세요.

  

도이쌤은 여자가 이런 대접을 해주는게 너무 낯설고 어색해서 돈을 받고 아무 말도 없이 차만 들이키고 있는데 네가 반대편에 이불을 깔아줌. 잘보니까 네 이불이 있고 도이쌤의 이불도 있음. 작은 키리마루의 침구는 그대로 남아있어서 도이쌤이 놀람.

  

침구를 새로 사셨군요. 왜 있는 걸 안쓰시고....

그, 그건 제 것이 아니니까...

  

빈털터리 신세로 월세에 네 살림을 갖추느라 넌 몇개월을 일했지만 여전히 알거지나 다름없는 신세였음. 솥같은건 있는걸 그냥 썼지만 다른건 모두 네가 벌어서 만든 거임. 나는 괜찮은데...아니, 내가 공동생활에 익숙해서 그런가? 개인 물건이고, 여성분이니까 남자가 쓰던 침구는 싫으려나...생각하는 도이쌤에게 어서 주무시라고, 저는 젖은 옷을 빨 거라는 말에 도이쌤이 펄쩍 뜀. 아니, 그렇게 안하셔도 된다, 여기 둔 여벌 옷을 입고 빨랫감은 가져가겠다 하는데 당신은 제가 이 마을에 발붙일수 있게 도와주신 은인인데 아무것도 해드릴게 없어 죄송스러웠다고, 이런 거라도 하게 해달라며, 괜찮다고, 오히려 야밤에 비가 너무 거세서 무서웠는데 다른 사람과 같이 있으니 안 무서워서 좋다면서 젖은 옷 들고 나가는거 어버버하면서 보던 도이쌤이 어째 네가 즐거워보여 더 말리지도 못하고 그냥 이불에 드러누움.

이부자리에 누웠다가 아, 햇살냄새가 난다 깜짝 놀라는 도이쌤. 몇달은 개켜놓기만 한 이불인데 보송보송하다는건 틈틈이 침구를 햇빛에 말리고 먼지를 털어왔다는 거임.

스윽 방을 눈으로 훝어보면 네 물건으로 살림은 조금 늘었지만 전보다 더욱 깨끗하게 정돈된 것 같음. 조금 낯설지만 어쩐지 몹시 편안하다는 생각에 ...........아내가 있으면 이런 기분이려나, 하다가 잠드는 도이쌤이겠지......



도이쌤은 그날 세상모르고 푹 잤음. 맛있는 냄새가 나서 눈을 떴더니 달그락대는 식기 놓는 소리가 들림. 가물가물한 눈으로 쳐다보니까 아침밥 차리는 여인의 옆모습이 보임. 놀라서 허둥지둥 일어나는데 간밤에 피곤하셨던 거 같다, 시장하시지 않냐며 네가 식사하시라고 말 붙임. 너는 분명히 도이쌤보다 늦게 잠자리에 들었을텐데 피곤한 기색도 없이 아침 일찍 일어나서 그새 씻은건지 말간 얼굴에 옷도 낡았을지언정 주름한점 없이 단정한 차림새였고 밥이며 국도 지어놓았음. 젖었던 도이쌤 옷도 실내에 빨랫줄 걸어놓고 옷도 말려놨음. 

원래는 그정도 기척은 잠결에도 알아챘을터인데 그걸 느끼지 못한 자기 자신을 믿을수 없음. 집이라고 긴장이 풀렸나? 찜찜해하면서 세수하고 손발씻고 옷도 갈아입은후 밥상을 받음. 도이쌤은 네게 안 드시냐고 묻는데 이미 먹었다고 함. 미친, 얼마나 잔거야;;;;; 밥먹고 어서 가야겠다, 싶어 잘 먹겠습니다, 말하고 입에 넣는데 깜짝 놀라는 도이쌤. 도이쌤은 뭐든 잘하니까 못해먹고 살진 않았는데 요리솜씨가 기가 막힌거임. 별다를거 없는 밥이고 국이고 나물반찬인데 너무 맛있어서 눈이 휘둥그레져 마파람에 게눈감추듯 먹어치움. 도이쌤이 그렇게 허겁지겁 먹을줄은 몰라서 놀라던 너는 웃으면서 더 드세요, 밥공기를 하나 더 밀어주는데 지가 식탐있어 보일까봐 부끄러워지는 도이쌤. 

대접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나가려는데 멀리 가시는거 같은데 가져가시라고 주먹밥 싼걸 줌. 이러지 않으셔도 되는데....도이는 민망해하면서도 받음. 넌 어쩐지 하고싶은 말이 있는데 못꺼내는 눈치임. 주저주저 망설이다가 다음에는 언제 오세요? 묻자 가슴이 철렁해서 네, 네? 하니까 다음에 방을 쓰시면 제가 여길 떠나야 하니까요. 라는 말에 겨우 알아먹고 얼굴 시뻘게지는 도이쌤. 

여름에는 돌아올 것 같다, 하니까 그래요.....말하는 여인은 생각에 잠긴것 같음. 왜 그러시냐니까 아무것도 아니라며, 여름이 되기 전에도 들를 일 있으시면 오시라고, 언제 오셔도 이정도 대접은 해드릴수 있다고 배웅하는 너에게 손흔들며 걸어가는 도이쌤. 한참 걷다 돌아보면 조그만 점이 된 여인이 다시 도이의 집으로 슥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음. 세입자가 좋은 사람이라 다행이군, 남의 살림 망칠 일은 없겠어. 생각하면서 걷던 도이쌤은 그닥 배고프지 않은데도 학교에 도착하기 전에 주먹밥을 다 먹어버렸음. 속도 변변찮은게 없이 간단하게 조미료로 맛만 낸 주먹밥인데 왜 그렇게 맛있게 느껴졌는지는 모를 일임. 학교에서 맛있는 식당아줌마 밥을 먹으면서도 그 아가씨가 해주던 밥, 참 맛있었어. 종종 생각하는 도이쌤. 

  

 

그렇게 몇달이 흐르고, 도이쌤은 여름방학이 되어 키리마루랑 집에 돌아가게 되었음. 사전에 미리 전갈을 보낸터라 오늘은 집을 비워주셔야 한다 여자에게 안내는 되었을 것임. 애초에 그러기로 말맞춘 참이었으나 도이쌤은 제가 마치 그를 쫒아내는 것처럼 생각되어 괜히 위가 아팠음. 키리마루에겐 대강 설명해줬지만 이 악동에겐 그게 재미있는 소문거리로 여겨졌는지 도이쌤을 막 놀림. 


에, 그.....키리마루, 놀라겠지만.....사실 그 집이 비어있을 동안 살던 분을 만날수도 있어. 오늘 만나면 인사 잘해야 한다.  

선생님 집에 여자가! 학교에서 다 떠들거예요! 

그런거 아니야, 인마.


그래도 떠들거라고 까불락대는 키리마루한테 기어코 동전을 뜯기고 맘. 집으로 들어가니까 깨끗하게 정돈된 방에 커다란 짐보퉁이를 안은 네가 있음. 셋이서 딱 눈이 맞는데 도이쌤은 괜히 얼굴이 달아오르고 너는 어색하게 웃기만 함. 키리마루가 낯도 안가리고 다가가서 물음. 

 

누나가 도이 선생님이 말하던 사람이에요? 

 

조잘대는 키리마루가 예쁘고 귀여워 살풋 웃으면서 끄덕임. 도이쌤에게 그간의 월세라며 돈을 내밈. 돈이다! 눈이 동전으로 변해 낚아채려는 키리마루 꿀밤 먹이면서 도이쌤이 고맙습니다, 함. 그동안 신세 많이 졌습니다. 인사하고 짐을 안고 나가는 여인의 뒷모습을 둘이서 지켜봄. 

 

 

너는 마을 외곽으로 나와서 정처없이 걷다가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들판 한가운데 주저앉음. 노을지는 그림같은 마을 모습을 바라보다가 문득 서러워져서 눈물을 주륵 흘림. 네가 게을리 살진 않았지만 날품팔이로 버는 돈은 적었고 일이 매일 있는것도 아니었음. 또 월세를 내는 처지에다 다른 살림도 갖추어야 했기에, 이것저것 필요한걸 갖추고 나니 수중에 돈이 모자라 다른 월세도 구하지 못한 거임. 마을 사람들 처지도 엇비슷한걸 아는데다 지금도 여러모로 신세 지고 있어서 다른 집을 알아보지도 못함. 그나마 위안인건 마을의 인심으로 일자리를 구할수 있다는것과 먹고살 가재도구는 갖추었고 날이 풀려 얼어죽을 일은 없다는거임. 그러나 여자 몸으로 노숙을 하는게 얼마나 위험한지는 알고 있어 걱정되었음. 실제로 그동안 이동하면서 전쟁으로 거칠어진 사람들 틈에서 절도, 살해, 정조의 위협에서 몇 번이나 도망쳤는지 모름. 아니다, 나는 운이 좋은 처지다. 만약 죽기라도 했다면 이런 고민도 못할게 아닌가, 생각하면서 마음을 다잡으려고 해도 이 넓은 세상에 마음놓고 쉴 공간 하나 없다는게 서러워져서 무릎에 고개를 박고 우는데 멀리서 누가 부르는 소리가 들림. 

 

누나! 누나! 

 

너는 소리지르면서 달려오는 애를 보고 깜짝 놀람. 아까 본 꽁지머리 남자애가 숨을 헐떡이면서 언덕길을 오르고 있었음. 놀라서 네가 왜 여기.......물으니까 급하게 달려오느라 호흡이 딸려서 사과같은 얼굴로 키리마루가 말함. 

 

누나, 갈 곳 없죠? 그래 보이는데! 난 다 알아요! 

 

마을 안으로 안 들어가고 자꾸자꾸 먼 길로 나가서 이상해서 쫒아왔다고, 여자는 노숙하면 큰일난다면서 집에 가요, 잡아끄는 키리마루를 보고 네가 쩔쩔맴. 

 

하지만, 그 집은 주인분이 돌아오셨는데.... 

선생님이 괜찮으시면 여름에만 같이 살쟀어요! 

선생님? 

도이 선생님! 우리 선생님! 

 

그제야 겨우 네가 도이쌤의 직업을 알게 됨. 키리마루 손에 붙들려 돌아온 너와 마주보는 도이쌤 모두 어색하기 짝이 없음. 나는 왜 여기....혼란스러워 보이는 네게 도이쌤이 저어.....외람되나, 오늘 어디서 주무세요? 물어서 네 얼굴이 더 달아오름. 아무 말도 못하고 선 걸 보고 도이쌤은 속으로 내 짐작이 맞았다, 생각함. 혹, 아직 다른 거처를 마련하지 못하셨다면- 괜찮으시다면 여름동안만 같이 지내요. 말함. 네? 뜨악한 반응에 도이쌤도 어버버함. 

 

여자 혼자 노숙을 하게 내쫒는 것 같아서 마음에 걸릴 뿐, 다른 뜻은 전혀 없으니까요! 키리마루도 있고! 

와아, 좋은 핑계네요, 도이 선생님! 

키리마루!!! 

 

기어코 한마디가 많아서 또 꿀밤먹는 키리마루임. 머리에 혹 달고 훌쩍이는 애 어깨 붙잡고 이 애도 피가 섞인 가족은 아니지만 여름에는 저와 같이 살고 있다, 가족이 아니어도 어려운 사람끼리 한지붕 아래에서 서로 돕고 살수 있으면 좋지 않냐.....말하는 도이를 보고 너는 잠시 고민함. 

 

너는 남의 동정을 사는 처지가 부끄러웠지만 한편으로는 도이가 먼저 그렇게 말해줘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름. 마치 제 속을 들여다본 것 같아서 창피하면서도 집없는 설움을 알아주는 것 같아서 안도했음. 선택지는 없었지만 그 상대가 너그러운 도이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음. 전란의 시대, 세상살이가 흉흉하여 만약 나쁜사람에게 의탁해야하는 처지였다면 재산이나 몸을 요구당했을지도 모른다는걸 너는 알고 있었음. 게다가 둘 사이에 어린 키리마루가 있다면 혹여라도 남녀간에 있을지 모르는 불상사를 막을 수 있을거임. 물론 그럴 사람이 아니란건 알지만-제게 집을 빌려준것만 해도 도이의 인성을 알 수 있었음-젊은 남녀이니만큼 걱정스러운 부분이 있었는데 키리마루 덕분에 해소되어 너는 키리마루에게도 고마움을 느꼈음. 조용히 눈물을 떨구면서 감사합니다......인사하는 여자를 보며 도이쌤은 상황에 어울리지 않게 그 얼굴이 아름답다고 생각하고 말았음. 

  

그 다음부터는 걍 애만 딸린 신혼부부 아님? 싶게 둘이 손도 안스치는데 존나 부부모먼트일듯. 온종일 키리마루 손에 붙들려 알바 뛰고 오는 도이쌤과 날품팔이 하는 날에는 일하고 장봐오고 아닌 날에는 집에서 살림하면서 네가 두사람 맞아주는거임. 당연히 생판 남인 남자 둘과 사는게 처음엔 조금 어색했지만 여자가 걱정할법한 불상사는 전혀 일어나지 않았음. 아침부터 선생님 일어나라고 알바 도와주기로 하지 않았냐며 도이샘 잡고 삐약거리는 키리마루와 아이고, 제발 5분만 더 자자...하는 도이쌤 사이에서 그런 분위기는 억지로 만들래도 만들어질수 없었기에 너는 곧 안심하고 도이를 대하게 됨. 피가 섞이지 않았대도 네 눈에 도이쌤은 아빠닭이고 키리마루는 병아리나 다름없이 귀엽고 흐뭇한 부자지간으로 보였음. 

 

너는 둘 사이의 완충재 역할을 하는데다 말잘하고 깨방정 떠는 키리마루가 너무 예쁘고 귀여움. 키리마루는 저와 도이쌤에 대해서 이것저것 애기해줬음. 이건요, 닌자집안 사람끼리만의 비밀인데요, 그러니까 누나만 알고 있어야해요, 쫑알대면서 닌자학교 애기를 줄줄 해줌. 비밀이면 말하면 안되지 않니..? 해서 아차! 표정 지으면 괜찮아, 비밀로 할게. 후후 웃음. 키리마루는 제가 가족이 없다는 것,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 닌자학교로 왔다는것, 보호자가 없어서 도이쌤이 가족역할을 대신 해주고 있다는걸 말해줌. 

 

그래서요, 저는요, 이담에 크면 도이쌤한테 효도해야 해요. 지금은 도이쌤이 우리 아빠고 형이니까. 


말하는 걸 들으면서 너는 도이에 대한 존경심이 커져감. 정말 인품이 훌륭한 분이구나, 하긴 그런 사람이니까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는 거겠지, 정말 대단한 분이다, 생각함. 제가 본 이들 중에서 제일 멋있는 남자다, 생각하다가 ! 해서 머리를 가로저음. 은인에게 무슨 생각이람;;;; 하는 네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키리마루가 물어옴. 

 

누나는 우리 선생님 어떻게 생각해요? 

누나한테도 아빠고 오빠같지. 

피이- 나이도 비슷하면서? 


이어서 하는 말에 네 얼굴이 확 달아오름. 


도이쌤은 노총각이니까 누나가 시집와주면 그게 은혜갚기인데! 

키리마루! 나가서 놀지 못해! 

 

옆에서 대나무바구니 짜면서 듣고있던 도이쌤이 참다 못해 꽥 소리지르면 총알처럼 튀어나감;;;; 오늘은 너까지 키리마루 도와서 대나무바구니 만들기 부업중이었음;;; 하지만 막상 키리마루가 사라지니 더 어색해짐;;; 재가 참, 하는 짓이 조숙하지요? 장난기만 심해서는...어색하게 둘러대는 도이쌤과 네, 네.....대꾸하는데 정신이 하나도 없어서 계속 엉뚱하게 손을 놀리는 너;;; 둘이 잠시 뚝딱이다가 도이쌤이 저기, 말함. 이거 돌려드릴게요. 내미는 돈은 어제 여름 1달치의 월세였음.

 

이번에는 제가 세를 받지 않으려 해요. 

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그게, 저랑 키리마루가 밖에 나가있는 사이 모든 살림을 해주시니까 너무 수고스럽다는 생각이 들어서... 

 

가사도 큰 수고가 드는데 품삯을 돈으로 쳐드리진 못해서요. 게다가 돈을 모아 더 좋은 집으로 이사가셔야 하는데 계속 월세를 줘버리시니까....어려우실 것 같아서. 몇 달간만이라도 모아두세요. 돈봉투 돌려주는거 너는 못받는다, 도이쌤은 받아라, 아웅다웅하다가 네가 고마움을 표시할 수 있는게 이정도 뿐인데 어찌 거절하시냐, 오히려 제가 더 섭섭하다고 울상이 되니까 도이쌤도 아무 말도 못함. 

 

....저도 싫은데 억지로 하는 거 아니에요. 

 

모기소리로 네가 덧붙이는 말에는 둘 다 사과처럼 익어서 한참이나 아무 말도 못했음. 키리마루가 다시 나간 김에 알바 더 찾아왔어요! 소리지르면서 돌아오기 전까지 마주 앉아서 다다미만 보고 있었다나. 


이어질수도 있는데 일단은 여기서 자름.

그간의 백업. 좋은선생님의 살아있는 표본같은 남자.....한창 닌타마 팔때는 호모 존나 하느라 드림은 거들떠도 안봤는데 나이먹으니까 타소가레나 선생님들같은 어른들이 끌리네요 도이쌤 너무너무 드림 말림...첫사랑 도둑놈.....흑흑...이남자와 지독하게 얽히고 싶구랴..

농놀중인 닌자이자 백수이자 로드레이서인 오타쿠 (닉넴은 파는 장르가 자꾸 늘어나는데서 유래. 지금은 슬램덩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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