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월 12일 브런치에 게재한 칼럼입니다.


행진곡을 연상시키는 에너지와 발랄한 에너지의 'CUPID'와 몽환적이고 서정적인 'Closer'는 지금까지 오마이걸의 디스코그래피에서 큰 두 축을 만들었다. 'LIAR LIAR'과 'Coloring Book', '비밀정원'과 같은 곡들은 디테일은 다르지만 위의 초기 활동에서 구축한 두 개의 노선을 각각 따르고 있다. 오마이걸은 이 두 컨셉을 적절히 활용해가며 특유의 세계관을 만들어갔다. 그럼에도 오마이걸이 우리에게 보여준 것은 아주 새롭거나 낯선 것들은 아니다. 힙합과 퓨처 베이스, 뭄바톤, 하우스 같은 트렌드의 홍수 속에서 오마이걸은 S.E.S 시대부터 이어져온 전통적인 걸그룹의 클리셰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그들만의 신-고전을 만들어가고 있다.

타이틀 곡 '다섯 번째 계절 (SSFWL)'은 트랩 비트와 벌스에 붙은 속삭이는 듯 한 랩으로 인해 언뜻 오마이걸의 곡들 중에서도 트렌디한 구성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몽환적인 신스 사운드와 역동적인 오케스트라 사운드가 질주하듯 흘러나오는 코러스는 분명히 'Closer'와 '비밀정원'의 연장선이다. 그렇지만 '다섯 번째 계절 (SSFWL)'는 오마이걸의 두 컨셉 중 어느 한쪽만을 따르고 있지는 않다. 오마이걸이 에너제틱하고 발랄한 에너지를 담았던 행보 역시 이 곡에는 반영되어 있다. 'Closer' 계열의 곡들보다 훨씬 커진 곡의 스케일과 복잡한 구성, 넘치는 활기에도 차이점이 있다. 이 폭발하는 건강한 에너지는 여자친구의 곡들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그렇기에 다시금 오마이걸 특유의 몽환적인 신스 사운드와 다른 그룹들보다 많은 청아한 색의 보컬이 팀 고유의 분위기를 유지해준다. 다른 아티스트들이 이미 장점으로 내세우고 있는 요소들을 오마이걸만의 색으로 적절하게 변주하는 밸런스가 돋보이는 곡이다.

수록곡들에서도 오마이걸의 이 '대조'는 눈에 띈다. 특히 '소나기'부터 '미제(Case No.L5V3)', 'Tic Toc'으로 이어지는 트랙들에서 오마이걸의 스펙트럼이 보인다. 몽환적이고 아기자기한 사운드의 2,3번 트랙에서 2000년대 미디움 템포의 틴팝을 연상시키는 4,5번 트랙을 지나 성숙하고 팝적인 매력의 6~9번 트랙에 이르기까지의 트랙 배치는 매우 인상적이다. 타이틀 곡에서 기존의 두 방향성을 하나로 결합한 것에서 그치지 않고 앨범 전체에 또다시 각기 다른 스타일과 그 사이의 스펙트럼을 펼치며, 오마이걸 세계관의 틀을 유지하면서도 그 범위를 확장시켰다. [THE FIFTH SEASON]은 -그들의 첫 정규 앨범임에도 불구하고- 좋은 구성의 음반을 만드는 것과 팀의 음악적 확장, 세계관의 확대를 이뤄낸 앨범이다.

오마이걸의 이러한 행보가 더욱 눈에 들어오는 이유는, 그들이 사실 새로운 것을 시도한 게 아니라는 것에 있다. 이 팀은 레드벨벳처럼 실험적인 사운드와 컨셉의 극단을 향해 달려가거나, 블랙핑크처럼 대중적인 트렌드의 최전선에 서 있지도 않다. 오마이걸은 오히려 (여자)아이들의 행보와 닮아있다. (여자)아이들이 오마이걸의 행보와 닮아있다고 하는 것이 좀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두 그룹은 모두 지금까지 걸그룹들이 보여온 스타일의 대표적인 것들을 선별해 자신들의 것으로 만드는 방식으로 활동을 지속해왔다. (여자)아이들의 계보의 시작에 샤크라가 있다면 오마이걸은 계보는 S.E.S로부터 시작된다. S.E.S 역시 '소녀'적이라고 여겨지는 스타일의 음악을 하면서도 몽환적인 사운드나 에너제틱한 리듬, 팝 씬의 문법을 따른 것들까지 다양한 스타일을 선보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외국 작곡가의 곡들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 역시 두 팀 사이의 공통점이기도 하고, 앨범의 후반 트랙들은 S.E.S의 후기 음악들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오마이걸이 이 걸그룹의 고전을 어떻게 계승하고 변주해갈지 기대된다.

지금의 음악을 걸그룹의 고전과 연결 지으며 음악적인 성취를 거둔 것과는 별개로 아쉬운 점 역시 있다. 앨범 커버 이미지의 컨셉인 흰색과 무용수, 소녀와 같은 빅토리아 시대의 '순결한' 여성상을 현대의 소녀로 이끌어온 게 그것이다. WM엔터테인먼트는 지난해 '바나나 알러지 원숭이' 활동 당시 유아를 연상시키는 의상과 제스처를 연출해, 한 차례 팬텀 내 보이콧 운동을 유발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러한 비주얼 컨셉을  WM엔터테인먼트가 걸그룹과 '소녀'를 바라보는 시각은 여전히 90년대, 혹은 빅토리아 시대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보인다. 팬덤과 대중, 특히 남성 소비자들의 호응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타협은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특히 걸그룹의 경우는 그렇다. 그렇지만 오마이걸의 음악을 표현해내기에 적합한 이미지 컨셉과 툴들을 찾아내려는 노력이 보이지 않는 것은 유감스러운 부분이다.

오마이걸은 이미 세상에 나온 것들을 선별해 조합하는 것에 특화된 팀이다. 앞으로 그들이 새롭게 선보일 음악들과 함께, 지금의 그들에게 어울리는 이미지들을 찾아내는 것은 그들에게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라고 기대한다. 음악적으로는 고전을 통해 새로운 고전을 만들어가고 있더라도, 그들은 지금을 살아가는 소녀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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