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

깔끔한 뒤처리를 위해 마을로 돌아가자 반기는 것은 결코 좋은 광경은 아니었다. 험악한 분위기로 고성을 지르는 마을 사람들과 그 기세에 떠밀려 덜덜 떨고 있는 남자아이. 보다 못한 자르반이 아이를 보호하며 그 앞에 나서서야 악다구니를 지르던 마을 사람들이 주춤거리며 물러났다. 커다란 덩치의 흑표범이 갑자기 나타나 당황한 눈치였다. 자르반이 이를 드러내며 낮게 으르렁거리자 사람들이 화들짝 놀라 멀찍이 물러났다. 시즈쿠는 그런 마을 사람들을 한심하게 바라보다 자르반에게 다가갔다.

“왔나, 주인. 생각보다 오래 걸렸군.“

“주령의 영역전개 때문에. 시간이 다르게 흘렀나 봐, 나오니까 이틀 지났더라.”

“그래서 시야 공유가 어려웠군.”

“그래서 이거 무슨 상황이야? 알 것 같긴 한데.“

“주제 모르는 것들이 항상 하는 짓거리지.”

자르반이 경멸을 담아 비웃음을 흘렸다. 이쪽 일을 하다 보면 자주 보는 장면이었다. 강자에겐 비굴하게 굴면서 약자는 짓밟는 비겁한 행위 말이다. 그걸 개인이 하기도 단체로 하기도 하는데, 이 마을은 단체로 짜고선 자기들이 짓밟아도 되는 약자를 선출해 저들 대신 제물로 쓴 걸터다.

몸을 웅크리고 겁에 질려 있던 아이는 시즈쿠가 다가오자 수그리고 있던 고개를 슬그머니 들었다. 주령에게 먹이로 던져진 일이 충격인 건지 아니면 마을에서 살다 그랬는지 모르지만 아이의 머리는 하얗게 새어있었다.

‘아이는 아니지 않나? 너랑 나이 차도 별로 없던데.’

‘그거나 이거나.’

못 먹고 자란 건지 아이는 몸이 삐쩍 말라 뼈 밖에 없었고 체구 또한 왜소했다. 자르반은 아이를 소년이라 불러야 하지 않냐고 말했지만 시즈쿠는 이런 꼬맹이는 소년보단 아이가 더 잘 어울린다며 일축했다.

“꼬맹이, 이름은?”

“… 밥벌레.”

갈라진 목소리는 감정 없이 버석했다.

“그건 이름이 아닌데. 다른 건 없어?”

“쓰레기, 고아… 당신이 원할만한 이름은 없어요. 다들 절 그렇게 불러요.”

말을 조금 머뭇거리긴 해도, 눈을 맞추며 또박또박 말하는 모습은 썩 괜찮았다. 주술사와 눈을 맞추는 게 쉽지 않은데 말이다. 어린 주술사가 받아들이기엔 특급 주술사의 기운이 강해 정면을 응시하기 어려울 텐데 용케도 눈을 맞추는 게 신기할 지경이었다. 저 취급을 받으면서도 용케 눈도 안 죽었고. 몰골만 볼품없지 눈은 빛나는 게 좀 키우면 써먹기 좋을 것 같아, 시즈쿠는 턱을 쓸며 골몰히 생각에 잠겼다. 몸은 여전히 떨리고 있는데 눈빛은 선명하네. 이틀 전에 죽을 뻔했던 놈이. 얘도 주술사 체질인가?

생각을 끝낸 시즈쿠가 입꼬리를 당겨 시원하게 웃었다.

“좋아, 네 이름은 이제부터 ‘노아’다. 나랑 가자, 노아.“

노아는 미소 가득한 시즈쿠의 얼굴을 올려다보다, 제 앞에 내밀어진 손을 조심스레 붙잡았다. 머뭇거리던 손은 막상 굳은살 박인 단단한 손을 붙잡자 절대 놓치지 않을 거라는 듯 손아귀 힘이 꽉 들어갔다.

시즈쿠는 눈을 가늘게 접어 웃으며 동아줄처럼 손을 붙잡고 있는 아이를 내려다보았다. 사토루 같은 육안의 소유자라면 모든 정보를 보는 것만으로 뽑아낼 텐데, 아쉽게도 시즈쿠는 눈이 안 보이는-스스로 원해서였지만- 일반 주술사였다. 그냥 한번 보는 것만으로 아이의 정보를 알아낼 수는 없단 거다.

‘일단, 주력은 좀 있는 것 같고. 죽을 뻔했는데도 눈이 안 죽는 게 주술사 싹이 보이네.’

아이들을 모아 볼까. 지금껏 시즈쿠는 식신을 뿌려 재능의 싹이 보이는 주술사나 실력 있는 주술사와 친분만 만들었지, 그들을 모을 생각은 하지 않았었다. 딱히 필요가 없었으니까. 시즈쿠는 아이의 퍼석한 머리를 쓰다듬으며 생각을 수정했다. 일단 돌아가면, 노아 같은 처지의 아이들을 모아야겠지.

지도에도 자세히 나오지 않는 외진 시골의 주술사 아이 취급은 이런 거다. 혐오와 멸시가 일상, 고립되고 차별받으며 심한 경우 주령의 제물로 던져질 수도 있다. 제물, 시즈쿠는 이 단어가 끔찍했다. 주령에게 던져지는 건 그냥 죽으라는 거였고, 직접 겪어봤으니까. 아마 그때의 일이 지금 감정에 상당한 영향을 준 것 같다.

시즈쿠가 전국에 뿌린 식신들은 주술사 새싹의 옆에 붙어 그들을 지키고, 주술을 가르치고, 전담 마크를 해주지만 고립된 장소에선 식신 하나가 아무리 도와도 해결되지 않기도 한다. 그렇다면 그런 애들을 전부 모아서 한 곳에서 보호한다면? 이런 일이 더는 발생하지 않겠지. 시즈쿠는 그럴 능력이 있었고 할 의지도 있었다.

그렇다면 해야지. 스즈요라면 그걸 원할 테니까. 스즈요라면, 그러라 할 테니까.

아마도 이 ‘노아’라는 아이가 그 첫 시작이 될 것이다. 시즈쿠는 주술사 새싹들을-눈만 보이는 이들 포함- 위한 시설을 설립하기로 결심했다.

“네년도 전에 왔던 것들과 똑같은 거지!”

“역겨운 살인자 같으니…!”

“이게 다 너희 때문이야!”

“너희 때문에 내 아이가 죽었어! 너희가 일찌감치 와서 저 괴물을 치우기만 했어도…!”

저 너희는 시즈쿠와 노아를 말하는 걸까. 아니면….

시즈쿠가 자르반을 돌려보내자 멀찍이 떨어져 있던 마을 사람들이 다시 성난 기세로 돌을 던졌다. 날아오던 돌은 시즈쿠가 펼친 물의 장막에 간단히 막혔다. 시즈쿠가 심드렁한 표정으로 손을 휘젓자 장막에 막혀 바닥으로 떨어진 돌들이 작은 얼음알갱이로 바스러졌다.

마을 주민 중에는 주령으로 인한 피해자가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니 주령처럼 꺼림칙함이 느껴지는 주술사 꼬맹이를 박해하다 못해 제물로 보낸 걸 테고.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내 아이가 죽었다고 너도 죽으라는건 안 되지. 우린 멍청하고 순해 빠진 히어로가 아니라서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들어주지도 않을 것이고.

“노아. 지금 해주는 말은 평생 머리에 새기렴.“

노아는 갑자기 나타난 물의 장막에 다시 슬금슬금 멀어지는 주민들을 응시하고 있었다.

”주술사는 히어로가 아니야. 절대로.“

노아의 시선을 느끼며 시즈쿠는 가볍게 웃어 보였다.

물의 장막을 걷어내자 주민들은 이제 시즈쿠를 보며 고성을 질렀다. 원망과 혐오가 뒤섞인 욕설이 날아오고, 경멸과 두려움의 눈초리가 쏟아졌다. 노아의 손이 시즈쿠의 손을 더 꽉 잡았고, 시즈쿠는 입꼬리를 비죽 올려 그들을 비웃었다.

“아, 뭐래- 산 제물이랍시고 지네 밭에다 애 하나 던져서 죽인 건 자기들이면서.”

시즈쿠의 빈정거리는 말투에 주민들의 성화가 더 심해졌지만 알바는 아니었다. 시즈쿠는 자기보다 약자인 사람을 무참히 짓밟는 치졸한 이들을 혐오했다. 특급 주령이 제령되자 그 자리에는 주술사의 것으로 보이는 뼈 약간과, 아이의 것으로 보이는 작은 뼈 몇점과, 스쿠나의 손가락 하나가 남아있었다. 노아보다 좀 더 작아 보이는 뼈들은 제물로 먼저 던져진 아이가 어렸음을 알려주었다. 아마도, 이 마을에는 주술사 싹인 아이가 둘 있었고 그중 하나가 노아, 다른 하나는 더 어려서 먼저 제물로 던져진 거겠지.

세상은 드라마가 아니라서, 그렇게 제물로 던져진 주술사 아이는 주령의 먹이로 전락할 뿐이다. 시즈쿠처럼 어린 나이에 각성한다거나 하는 극적인 시나리오는 흔치 않았다. 사토루나 시즈쿠 정도의 급이 다른 강자가 아니라면 말이다. 아이를 바치고 한동안 잠잠하다, 주령이 다시 난동을 부리자 이번엔 남은 다른 주술사 아이를 제물로 바친 거다. 노아의 다음은 누구 였을까. 마을의 고아? 노인? 아니면 어린아이? 어찌 되었든 그들 중 힘없는 약자였겠지.

“이러니까 다들 탈주해서 주저사하지.”

게토 스구루 걔도 그럴 것 같은데. 주술계 출신이라면 이런 험한 일을 자주 겪어서 경험치가 생길 텐데 그 녀석은 비술사 출신이었다. 게다가 약자를 위하는 강자 마인드에 고민이나 불만도 속에 쌓아두는 타입. 심성이 곧은데 정신력은 그리 강하지 않아서 동료가 죽거나 이런 역겨운 일을 자주 마주하면 주술사로서 마인드가 흔들릴 거다. 고작해야 4급이나 3급들을 다른 애들을 위해서 없애는 것만 봐도 그렇지. 얘는… 주술계 들어오면 관리 철저하게 해야겠네. 하필이면 또 주술사로 재능있어선.

아무튼, 주술사들이 탈주하는 이유에는 개같은 상층부와 높은 사망률도 있지만 이런 힘든 환경도 있을 거다. 구해줘도 욕먹고, 안 구해도 욕 먹고. 게다가 부정적인 감정을 몰고 다니는 주술사 특성상 비술사가 느끼기엔 꺼림칙한 것도 많으니 거부감도 일으킬 테고. 가만히 있다 욕먹는 경우도 많다.

“시끄럽게 땍땍거리네. 좀 닥치지? 아, 연락왔다. 가자.”

가운데 손가락으로 귀를 파던 시즈쿠가 주머니에서 울리는 진동에 행동을 멈췄다. 마을에 오기 전 연락 넣은 보조 감독이 곧 도착한다는 문자였다. 시즈쿠는 문자를 보고는 더는 마을에 있을 필요를 못 느껴, 노아를 데리고 빠르게 즈쿠-거대 부엉이 식신, 미니 토토로를 닮았다-를 소환해 위에 올라탔다.

당황한 노아가 눈을 튀어나올 듯 크게 뜨며 휘둥그런 눈알을 이리저리 굴렸다. 작게 ‘부엉이?’ 중얼거리는 말에 ‘부엉이 식신’이라 정정해주었다.

“짜증 나게 굴고 있어.”

“쓸어버릴까, 주인?”

점심 뭐 먹을래? 묻듯이 평범하게 묻는 즈쿠를 보며 시즈쿠가 고개를 저었다.

“나중에 조용히 처리해버리자.”

“응.”

“아, 저기 보조 감독 차 보인다.”

시즈쿠가 노아의 동글동글한 머리통을 쓰다듬었다. 노아는 얌전히 그 손길을 받으며 똑같이 즈쿠의 부드러운 깃털을 쓰다듬었다.



61

“영역전개는 언제부터 쓸 줄 알았지.”

“솔직하게 답해요? 아니면 그냥 말해요.”

“… 일단 그냥 말해봐라.”

“특급 주령과 마주치고 죽을 위기에 처하다 각성했음요.”

“… 솔직하게 말하라 하면 뭐라 할 생각이었지.”

“이 천재 시즈쿠님이 못하는 게 있을 리가.”

천상천하 유아독존. 그건 고죠 사토루 뿐만 아니라 세가와 시즈쿠에게도 해당하는 말이었다. 조금 유치해 보이는가? 우리가 이해하자. 늦은 사춘기 왔다. 얼마 전에 부모 같은 새언니 떠나보내고, 짜증 나는 세가와 가문과 미뤄뒀던 대면도 하고, 윗대가리 좀 포섭하고, 정치질도 하고, 좀 바쁘게 사느라 사춘기가 이제 왔다.

오똑한 코를 자랑하듯 양손을 허리에 걸치고 거만하게 올리는 고개를 보며 야가 한숨을 쉬었다. 오만한 주술사의 모습은 널리고 널린 주술사의 흔한 모습이었다. 원래 재능빨에, 주술사 특성인 반 정도 돈 머리와 자만감은 주술사 특성이었다.

“장막은.”

“… 어차피 목격자는 다 처리하면 되는-“

콰광-!

“아파!”

잘못은 아는지 시즈쿠는 시선을 슬금슬금 굴렸고, 그런 시즈쿠의 머리 위로 야가의 매서운 꿀밤이 떨어졌다. 매서운 충격음과 함께 시즈쿠가 머리를 부여잡고 주저앉았다. 엄살인 걸 아는 야가는 시즈쿠가 아프다며 징징거리는 행태에 코웃음 쳤다. 야가가 보고서를 다시 돌려주며 다시 써오라 말하자 시즈쿠가 입을 삐죽였다.

“완벽하다고 생각했는데.”

“진심이냐.”

“음, 있을 내용은 다 들어갔는데.”

야가 진심이냐는 듯 험악한 얼굴을 더욱 구겼다. 눈치를 슬쩍 본 시즈쿠가 작성한 보고서를 펼쳤다. 정갈한 폰트로 인쇄된 깔끔한 보고서가 보였다. 폰트 선정 완벽.

[세가와 시즈쿠가 울부짓었다 세가와 시즈쿠는 졸라짱쎄서 최강이엇다 특급 주령도 이겼따 특급주령 따까리들도 이겼따 어쨌든 세가와는 울부짓었다

“으악 제기랄 도망가자”

도망가도 소용없었다 전부 세가와 시즈쿠가 얼려서 부서버려따 짱짱쎄서 다 부서따 영역전개해서 특급주령도 다 짜부시켜따

“크케케케케케케”

아이를 제물로 바쳐서 죽게 한 사람들도 벌벌 떠렀다 돌을 던져도 세가와 시즈쿠는 다 피해따 세가와 시즈쿠는 최강이엇다]

“내가 특급 주령이랑 그 밑의 주령들 제령한 것도 썼고, 내가 얼음술식으로 다 얼려버린 거랑 내 영역전개로 특급주령 제령한 것도 썼는데? 특급주령이 발생한 원인인 마을 사람들에 관해서도 썼잖아요.”

당당한 시즈쿠의 말에 야가 목덜미를 잡았다. 이놈은 대체 뭐가 문제일까….



이어지는 내용이 궁금하세요? 포스트를 구매하고 이어지는 내용을 감상해보세요.

  • 텍스트 2 공백 제외
300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