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블루 펄에게까지 당도했다. 어떤 괴짜 로즈 쿼츠가 반역을 도모하고 있다는 소문이.

광장을 오가다 듣는 이야기들은 대개 병사들이 시간을 죽이려 하는 우스개소리에 불과하다. 그걸 아는 블루 펄에겐 반역은 언어도단 할 일이었다. 불충한 옐로우 펄들이 한 저질 농담이겠거니 싶었지만 불안이 블루 펄의 발걸음을 서두르게 했다. 덩치 큰 젬들을 뚫고 펄은 푸른 세라믹 막사에 당도했다. 은빛 머리채를 높게 땋은 작달만한 체구의 젬이 눈에 들어왔다. 블루 펄이 그의 발치에서 무릎을 꿇자 주군은 고개를 돌려 종을 바라보았다. 세 갈래로 땋은 머리카락은 한 박자 늦게 주인의 시선을 따라왔다.

“사파이어, 무서운 이야기를 들었어요.”

“뭐지?”

청량한 목소리가 모자이크 타일들에 부딪혔다.

“반역이... 진행되고 있단 이야기요.”

사파이어는 미소 지으며 펄에게 손을 내밀면서 다가갔다.

“가엾은 펄. 겁먹었구나.”

펄은 얼굴을 붉혔다.

“그렇지 않습니다.”

사파이어는 펄을 올려다보며 손을 잡았다. 주인의 손끝에서 전해진 냉기는 신중했고 믿음직스러웠다.

“그건 헛소문이야.”

펄은 그제서야 긴장을 풀고 중얼거렸다.

“그럴 줄 알았어요.”

사파이어는 펄에게 무릎을 굽히라고 손짓했다. 펄의 기다란 코 끝이 사파이어에게 닿을 듯 말 듯 하게 되자, 주인은 시종의 창백한 뺨에 작은 손을 뻗었다. 펄은 가만히 눈을 감았다.

“설령 진짜라고 해도, 어떻게 한낱 로즈 쿼츠가 다이아몬드들을 거역할 수 있겠니?”

사파이어는 펄과 머리를 살짝 부딪혔다. 펄은 이마를 감싸 쥐고 머쓱하게 웃었다. 유언비어로 사파이어를 곤란하게 한 것 같아 죄송스러운 마음이 커졌다. 이미 불안은 마음 뒤편으로 사라져 버린 지 오래였다. 사파이어는 노래하듯 말했다.

“펄, 내일도 바깥 이야기를 들려 주렴. 목소리가 듣기 좋구나.”

펄은 뻣뻣하게 경례하고 막사 밖으로 뒷걸음질 쳐서 나왔다. 충분히 멀어졌다는 확신이 들자 펄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중얼거렸다.

“내 목소리가 듣기 좋다니. 당신의 목소리가 더더욱 아름답습니다.”


날카로운 파열음이 귀청을 때렸다. 재스퍼 “산발이” 가 또 주의를 기울이지 못했던 거다. 대장간에선 모든 것에 주의하라는 5분 전에 들은 충고를 깡그리 무시한 처사였다. 지난달에 모루를 박살 냈던 사건에 이어 이번에도 도끼를 내려놓은 건지 모루에 박아 놓은 건지 모를 정도로 내던졌던 것이다. 블루 펄은 펄쩍 뛰어올랐고 산발이는 그런 펄을 보고 히죽였다. 비스무트는 재스퍼 특유의 허세에 고개를 젓곤 날이 나간 도끼를 움켜쥐고 담금질하기 시작했다. 펄은 입을 삐쭉이며 물었다.

“온통 숲이었다고?”

산발이는 팔뚝에 있는 젬을 두꺼운 손가락으로 어루만지며 투덜거렸다.

“그래. 망할 이끼랑 질긴 덩굴뿐이었어.”

“그럼 편하긴 하겠구나.”

산발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손을 내저었다.

“아니야. 도끼를 휘두르고, 피하고, 젬을 터트리면,”

산발이가 손날을 휘저으며 상상의 적과 싸우는 동안 펄은 한심하다는 듯 눈동자를 굴렸다. 재스퍼는 아랑곳하지 않고 머리를 톡톡 두드리며 말을 이어갔다.

“... 머리를 써야 되거든. 근데 식물이랑 싸우라고? 펄, 그건 그냥 중노동이야.”

“흠... 그럼 사파이어한테 그렇게 보고할까? 너한테는 맞서 싸울 수 있는 젬을 하나 배치해 달라고.”

재스퍼는 펄쩍 뛰며 말했다.

“진심이야?”

“물론 농담이지.”

재스퍼 산발이는 한 방 맞았다는 듯 웃었다.

“이제 탐사 마무리 단계인걸. 곧 홈 월드로 갈 수 있을 거야.”

블루 펄은 젬에서 패드를 꺼내 정보를 확인했다.

“홈월드로 가는 게 아니라 지구로 배치될 수도 있대. 페리도트들이 그러던데.”

산발이는 낮게 웅얼거렸다.

“그래? 짓고 뚫고 하는 건 다 우리 몫인데... 생각을 좀 해줬으면 좋겠군.”

블루 펄은 산발이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팔을 꼬았다. 산발이는 겁에 질려 입을 틀어막았다.

“아니, 난 딱히 사파이어한테 불만이 있는 건 아니고...”

펄은 산발이를 노려보다가 웃었다.

“힘든 것 알아. 만약 정말로 연속으로 근무하게 된다면 블루 다이아몬드가 보상해 주실 거야.”

산발이는 하품을 늘어지게 하며 머리를 긁었다.

“맞아. 그냥... 이제 덩굴이라면 지긋지긋하거든.”

곧 비스무트가 도끼를 벼리기 시작하면서 내는 쇳소리로 대장간이 찼다. 펄은 가볍게 손을 흔들고 막사로 향했다. 산발이는 멀어져 가는 펄을 느긋하게 바라보다가, 품에서 책을 하나 꺼내 읽기 시작했다.


“...보조 도끼는 합이 총 백 서른.”


펄은 콤콤한 냄새가 나는 장막 안에 정렬된 군수품을 체크하면서 그때를 돌이켜 봤다. 정말 지구로 즉시 배치될 줄은 몰랐던 것이다. 덩쿨을 베면서 길을 내고 라피스 라즐리들을 기다리던 그 때가 차라리 평화로웠다. 지금은 관리해야 할 병력들과 물자들, 군단 별로 배치된 비스무트, 애머시스트들을 기억해야 했다. 기억해야 할 중요한 젬들이 너무 많았다. 업무량이 늘어났다는 사실은 펄에게 아무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하지만 크리스탈 젬이라는 단어는 입 안에 떫은 맛을 남겼다. 장막을 걷고 나오자 강한 정오의 햇살이 블루 펄의 눈을 부시게 했고, 펄은 눈을 찡그리곤 자신의 방으로 종종걸음쳤다.


펄은 잠시 주어진 휴식시간 동안 바닥에 벌렁 누웠다. 사파이어의 침소에 가장 가까운 곳에 마련된 방에서 지낸다는 사실에라도 만족하기로 했다. 그건 비상시에만 가능한 호사였다.


그때였다. 펄은 발치에서부터 불어오는 차디찬 외풍에 깜짝 놀라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 싸늘한 얼음바람은 사파이어의 장막에서부터 불어오고 있었다.


펄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 한달 들어 벌써 세번째였다. 지난주에는 펄의 허리만한 얼음 기둥이 바닥을 뚫고 자라나는 걸 목격했었다. 한동안 잠잠하다 싶더니 다시 차가운 바람이 분다는 건 위험한 전조였다. 펄은 미간을 찌푸리곤 눈썹 사이를 문질렀다. 급습하는 추위와 창칼 같은 결정들은 주군의 불안을 의미한다는 것을 블루 펄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다른 막사는 멀찍이 떨어져 있기에 이러한 주군의 증세는 자신 외에 아무도 보지 못했을 것이다.


크리스탈 젬을 치기로 한 날이 밝았다. 확성기가 사파이어의 격려를 군사들의 척추로 직접 전달시킬 터였다. 넓게 도열해 있는 병사들은 불안감을 지우려고 애써 요란하게 웃고 떠들었다. 아무도 인정하진 않았겠지만 간악한 로즈 쿼츠와 대담한 펄에 대한 이야기가 병사들을 온통 흔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연단 위에 미리 서 있던 블루 펄은 재스퍼 군단 한가운데 서 있는 산발이와 눈이 마주쳤다. 그러자 산발이는 자기 팔뚝의 젬과 근육을 과시하면서 허세를 부렸다. 블루 펄이 질색하며 입 모양으로 꼴불견이라고 하자, 산발이는 과장되게 뜨악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펄은 소리 죽여 킬킬거렸고 산발이도 자기 키만한 도끼에 기대며 시원하게 미소지었다.


사파이어는 병참 앞 마련된 비단 연단 위로 부유하듯 올라갔다. 황금빛 햇살이 비치자 사파이어의 머릿결엔 은빛 윤기가 감돌았다. 사파이어가 전열을 향해 손을 들자 좌중은 고요해졌고, 주군은 입을 열었다. 평야의 바람도 숨을 죽이고 그의 연설에 귀기울였다.

“우리는 다이아몬드의 영토를 넓히는 사명을 띄고 이곳에 왔습니다. 하지만 반란세력이 드러난 이후로 여러분들의 목표는 다이아몬드를 위해 싸우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잘 되었지요. 그대들이 생겨난 목적인 전투에 부합하는 일이니까요.”


재스퍼와 애머시스트들이 사납게 웃었다. 사파이어도 이에 화답하듯 미소짓고 담담하게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석양이 지기도 전에 그들은 씻을 수 없는 피해를 입고 패퇴합니다. 우리는 오늘 승리합니다.”


그건 기원이 아닌 건조한 사실의 나열이었다. 그걸 아는 전사들은 열광하며 전투의 함성을 내질렀다. 이젠 전장에는 약속된 승리를 확인하러 갈 뿐이었다. 날붙이들은 얼마나 흉폭해질 수 있는지를 증명하고 싶어하는 듯 제각기 번득였다.

사파이어는 연단에서 내려올 때도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러다가 갑작스럽게 펄을 호출했다. 펄은 자랑스러운 주군의 모습에 감동하여 허둥지둥하여 다가왔다.

그러나 펄은 사파이어가 손을 떨고 있는 걸 보고 흠칫 놀랐다. 사파이어는 미소짓고 있었지만 건드리기만 해도 말라 부서질 듯했다. 주군은 간청했다.


“날 좀 부축해 주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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