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녁부터 비가 온다길래 우산을 챙겨나간 날이 있었다.

 


언제나 그랬듯 천천히 걸었다. 기다리는 사람이 없기에 늑장을 부렸다. 누구에게나 유한한 시간이 그럴 때면 꼭 나를 빗겨 가는 것 같아서, 나는 자주 멈췄다. 이름 모를 들풀을 한참 관찰하곤 학명을 추리하기도 했고, 낯선 꽃을 발견하면 내 멋대로 이름을 지어주기도 했다. 가는 도서관을 자주 바꿨다. 가파른 경사에 세워진 도서관부터, 좁고 낡은 골목 어귀의 도서관까지. 살던 도시에 있는 여러 도서관을 전전했다.



먹구름이 평소보다 조금 어두운 정도로 하늘을 채웠다. 이따 비 올 거야. 사람들이 걸음을 재촉했다. 작은 활자를 계속해서 읽느라 예민해진 눈이 구름과 구름 사이를 노려봤다. 정말로 올 것 같았다. 그렇지만 서두르지 않았다. 내게는 우산이 있었다. 소매나 바짓단이 젖겠지만 그 정도는 괜찮았다. 언제 비가 내려도 나는 우산을 펼칠 수 있었다. 접이식 3단 우산의 작은 지붕 밑으로 몸을 피할 수 있었다. 어떤 상황이 닥쳐도 괜찮을 거라는 생각. 나는 그 생각이 좋았다. 비가 정말로 오는지와는 상관없이 내가 가지게 되는 안온함이 마음에 들었다.



그 날 비는 오지 않았다.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에서 잠에서 깬 건 다음 날 새벽이었다. 항상 우산을 가지고 다녀야겠다고 생각했다. 가방은 무거워졌고 마음엔 꼭 우산만큼의 덩어리가 생겼다. 가로세로 30센치를 넘지 않는 작은 물건이 내게 주는 위안은 수치로 가늠하기 어려웠다. 비가 와도, 오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낯선 불행이 내게 닥칠 확률이 실제로 줄어들었다는 것. 그것이 중요했다. 나는 우산이 있다는 것만으로 내가 편안함을 느낀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제일 놀란 것은 귀가한 내게 엄마가 폭언을 쏟았을 때 어떻게든 흘려들으려고 애쓴 그 전과 달리 내가 내 가방 안의 우산을 떠올리곤, 그것을 그 상태에서 엄마가 있는 방향을 향해 펼친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내 눈에는 보였다. 깊은 바다를 오려다 놓은 듯한 감청색의 물건이. 그 후로도 나는 내가 조금이라도 상처 입을 기미가 보이면 우산을 꺼냈다. 실제로 쓰고 다니기도 했고 마음속에 펼쳐놓곤 그 속으로 들어가 웅크리기도 했다. 물론 우산이 전지전능한 방패는 아니었기에, 모든 것을 피할 순 없었다. 그래도.



준비할 수 있었다.



비가 올 거야. 젖게 될 테니 조심해. 몇 번이고 내 자신에게 일러주었다.



*



센터엔 비가 내리지 않았다. 그러니 우산도 사용할 수 없었다. 맑은 하늘은 사람들을 멍청하게 만들었다. 나 역시 그 아둔한 집단의 일원이었다.



변백현이 날 덮치는 것은 전혀 예상 밖의 일이었다. 나는 변백현이 내 말을 좀 들어주다(들어준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귀가 있기에 들리긴 하겠다만은.)사라질 것이라 예측했다. 그러고 나면 헛것, 홀로그램, 망상 따위로 방금전 변백현의 모습을 설명할 작정이었다. 변백현이 아무 말 하지 않고 없어져 주는 것이 내가 생각한 가장 긍정적인 결말이었다. 그러나 어깨가 축축해지고 있었다. 내 눈물이 아니라 남의 눈물로. 그러고 보면 남이 흘린 눈물이 아니고서야 어깨는 잘 젖지 않았다. 내 눈물은 방울방울 떨어져 나의 심장이나 혹은 허벅지를 물들이곤 했다.



그리고 대사.



‘안’이 두 번 들어갔다. 부정의 부정은 긍정인가? ‘안 보면 안 될 것 같아’와 ‘보면 된다’는 같은 문장인가? 아니지. ‘보면 된다’가 아니라 ‘보면 될 것 같아’지. 그런데 뭐가 안 되고 또 된다는 거지? 내가 봤던 수많은 삼류 싸구려 드라마들. 메타포가 무엇인지 설명하던 문학 이론 서적. 그렇지만 문학에는 답이 없다고 했는데…. 혼란이 가중됐다. 왠지 어깨가 기우는 것만 같았고 내 몸이 하나의 고장 난 추처럼 여겨졌다. 무게를 재는 기능을 잃어버린 추 말이다. 분명히 변백현의 머리통이 내 어깨와 딱 달라붙어 있는데, 나는 도통 변백현의 머릿속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또 느꼈다.



그동안의 울음과 달랐다. 나는 많은 사람의 울음을 목격했다. 많이 보고 나니 그 결도 자연스레 파악할 수 있게 됐다. 많은 사람이 내 앞에서 울었는데, 실은 내 뒤의 <경수>를 보고 우는 거였다. 그럼 난 따라 우는 버릇 때문에 눈가가 젖긴 했어도 코가 아프진 않았다. 사람이 진짜로 울면 얼굴이 아프다는 걸, 잡아당기고 꼬집은 것 마냥 붉게 변하는 건 다 아파서 라는 걸, 허연 얼굴에 눈물을 매달고서 깨달았다.



“정말로”

“…”

“못 견디겠어.”

“…”

“안 되겠어. 그 생각만 들어….”



변백현은 나를 위해, 나를 향해, 나 때문에 울고 있었다. 거울을 안 봐도 알 수 있었다. 색연필로 마구 칠한 것처럼 빨개지고 있을 내 얼굴과.



어깨와 심장이 동시에 젖고 있을, 내 모습이.



센터에 있는 건물은 죄 곧고 길게 뻗은 직선의 모양이었고 처마 같은 건 도통 찾아볼 수 없었다. 나는 붙잡힌 채로 서 있었다. 절대로 이 머리통을 밀어낼 수 없을 거라는, 강한 예감이 들었다. 영원히 나 혼자만의 무엇이 될 수 없으리란 예감. 변백현이 없인 나를 완성할 수 없어서 남은 생애를 온통 내 것을 깎아내고 그 자리에 변백현의 부스러기를 끼워넣는 데 할애할 것 같다는, 슬픈 예감.



“걱정하지 마.”

“…”

“난 못 떠나.”



네가 사라져도 네 옆에 있을 거야. 너는 없어도 너와 함께한 기억은 있을 테니까. 그 옆에 집을 짓고 몸을 뉠 거야.



꺾인 목이 들렸다. 엉망이 된 변백현이 내 얼굴을 빤히 응시했다. 나는 그 시선에 붙잡혀 주었다. 내게 변백현은 어려운 동시에 쉬운 사람이었다. 변백현의 의중을 파악하거나 속내를 들여다보는 일은 그 어떤 문제보다 날 고민하게 했지만 변백현을 대하는 나의 태도는 내 의사와 무관하게 이미 본능적으로 결정되어 있었다. 



기억을 잃기 전에 가지고 있었을, <경수>의 습관과는 별개였다. 이것만큼은 오로지 짧고 강렬한 내 삶의 일부였다. 층층이 쌓인 내 외로움의 역사를 단숨에 무너뜨린 변백현에게, 줄 수 밖에 없는 마음.



그러니 이 마음은 내 것이 아니었다.



믿지 못하는 걸까? 배신자 <경수> 때문에?



“이거는…”

“도경수.”

“이 마음은.”



할 말이 정해져 있었다. 이 마음은 네 거야. 네가 버려도 네 거야. ‘네가 버렸다는’ 점에서.



말을 잇지 못했다. 검은 벽은 강이 아니라 바다였다. 나는 물에 빠진 사람처럼 더는 입을 열지 못했다. 머리부터 침수하고 있었다. 이런. 발은 건조한데 눈가가 촉촉하다니.



떼쓰면 안 됐다. 합당한 부탁이나 거래가 아니라 순 어리광이니까. 크게 떠들어서도 안 됐다. 옆에서 곡소리를 내는데 나 홀로 즐거운 소리를 내는 것 만큼 몰상식한 일은 없으니까. 울 순 있었지만 눈물은 혼자 닦아야했다. 그들은 이미 각자의 슬픔을 추스르느라 바빴기 때문에. 많은 말을 참았다. 나를 말하는 일이 어려워졌다. 나는 남들에 의해 제멋대로 해석되기 일쑤였고 그것들은 일견 비슷해 보이지만 어쨌든 같지는 않았기 때문에, 나는 그들이 말한 수십 개의 나 중 어느것이 진짜인지를 가려내느라 현재의 나에게 통 집중할 수 없었다.



버린 카드 더미를 뒤지는 일이 실은 힘들었다. 나는 내 패가 무엇인지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스페이나 클로버, 혹은 아라비아 숫자, 혹은 색깔을 지칭하는 단어를 모르고 게임에 뛰어든 사람처럼 그저 손에 쥐고 있을 뿐 소리내진 못했다.



“천천히 말해.”

“이 마음은.”

“네 마음은.”

“…네 거야.”

“…”

“도저히 내키지 않아서 버리게 돼도,”

“…”

“그래도 네 거야.”



네 거 맞는데. 그걸 부정할 생각은 없는데.



있잖아. 변백현.



아주 오래 망설였다. 갓 태어난 아기가 자라 한글을 떼는 시간보다 더. 나는 말이 글과 다르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싫었다. 박제되는 글과 달리 말은 공중으로 흩어진다고 믿는 사람들의 안일함이 미웠다. 말에는 얼굴이 있었고 어떤 말은 영영 떨칠 수 없었다. 다른 어떤 일보다 입을 떼는 일에 신중하고 싶었다. 치기나 순간의 충동을 경계해왔다. 센터에 들어오기 전에는 잘 지켰었는데. 센터에 와 변백현을 마주한 후로는 몇 번이고 엇나갔다. 바로 지금처럼.



뱉으면 후회할 게 분명한데, 기어코 내뱉게 되는 마음이란 대체 어떤 것일까? 무엇이 뻔히 예상 가는 초라하고 볼품없는 미래를 무시하게 만드는 걸까.



“그래도,”

“…그래도.”



내 말을 변백현이 따라했다.



“안 버리면 안 돼?”

“…”



따라쟁이가 입을 다물었다.



“못 견디겠는 딱 그 정도만. 못 견디는 그 크기만큼만. 가지고 있어주면 안 돼?”



결국 털어놓았다. 순간 몸에 열이 올랐다.



나는 일희일비 하지 않는다. 나는 망상하지 않는다. 나는 희망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더 나쁜 미래를 예견한다. 나는 불행의 수를 따져본다. 나는 변백현이 내 존재를 긍정하는 일을 바라지 않는다. 큰 꿈도 작은 꿈도 꾸지 않는다. 나는 이걸로 됐다. 말했으니까. 말했으면 된 거다. 여기서 더는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았으면. 어쨌든 변백현이 나를 위해 울었고 내 어깨가 그로 인해 젖었고 나는 그 느낌을 잊지 않을 테니까.




나는 가보지 않은 곳을 대신 경험케 하는 외국 소설을 즐겨 읽었다. 러시아의 작은 마을이나 카리브해의 바람 같은 것들. 사진만큼이나 생생한 문장을 보면 배우고 싶어졌다. 나와 같은 사람을 위한 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많은 것을 알지만 하나도 가지지 못한 사람을 위한 책. 만약 내게 기회가 주어진다면 최대한 자세히 쓰겠다고 마음 먹었다. 비행기를 타본 적 없는 사람에게 러시아를 말하듯, 그렇게.



생각을 고쳐먹었다. 나에겐 글재주가 없다.



변백현의 입이 내게 닿았다. 나는 몸을 약간 뒤로 뺐는데, 싫어서는 아니었고 소스라치게 놀라서였다. 내가 도망치는 속도보다 변백현이 달려드는 속도가 더 빨랐다. 변백현이 내 뺨을 쥐었다. 원리가 어그러졌다. 내가 변백현을 치유하는 역할이라는, 이곳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 무너졌다. 아. 나는 정말로 형편없는 글솜씨를 가지고 있었다.



이 감정을 설명할 단어를 찾는 데 실패했다. 내가 두꺼운 사전이었다면 좋았을걸. 이렇게 벅찬 순간은 기록해야 하는데. 나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살면서 만나기 어려운, 어쩌면 다시는 겪지 못할 만큼의 벅참이란 걸. 그래서 이런 장면을 오래도록 기억하기 위해선 아주 자세하고 꼼꼼하게 설명해 두어야 하는데 고작 벅차다는 말을 반복하고 있는 내가 한심했다.



“내가 널…”



부르튼 입술. 입가의 점. 가까운 거리가 좋았다. 내가 변백현 곁에 있으면 변백현 역시 내 곁에 있는 것이기에.



“도경수. 잘 들어.”

“…”

“난 너 못 버려.”

“…”

“그게 뭐든, 절대로.”



“거짓말.”

“뭐?”



너무 좋아서 받아먹지 못했다. 정도를 벗어난 행복이 날 괴롭게 했다. 사람은 너무 좋은 것을 알면 안 되는 법이었다. 너무 좋은 것은 아주 드물게 주어지기 때문에 너무 좋은 거였다. 모르는 쪽이 살기엔 더 편했다. 나는 멋대로 변백현을 의심했다. 내가 듣고 싶은 말만 해주는 변백현이라니. 이런 변백현도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되면 난 아마….



“솔직하게 말해도 돼.”

“…”

“상처 안 받아.”

“…도경수.”

“아까 그거면.”

“…”

“난 충분해.”



난 야망이 없어서, 가진 꿈은 죄 소박하고 마음의 그릇은 작기만 해서, 변백현이 주려는 것이 버거웠다. ‘절대로’라니. 분에 넘치는 말이었다.



변백현이 내 두 팔을 붙들었다. 울음기가 가시지 않은 낯에 단호한 기색이 서렸다.



“나 똑바로 봐.”

“…”

“거짓말은 네가 하잖아.”



<경수>에 대한 추악한 내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나 자신을 미워하고 시샘한다니. 그것도 사랑받아 마땅했던 녀석을. 변백현의 구원이자 희망이었던 녀석을. 내가 이렇게 못돼서 <경수>가 돌아오지 않는단 생각까지 들었다. 사람들과 같이 녀석을 그리워하려 애썼다. 애썼지만 마음이 자꾸 삐딱해졌다. 사람들이 원하는 이상적인 미래는 녀석이 돌아와야만 가능한 것이었다. 나는 그저 대역이었다. <경수>가 주인공인 무대를 잠시 채운 엑스트라였다.



녀석은 돌아오지 않았고 나는 지쳐갔다. 하지만 그런 감정이 내게 있다고 말할 순 없었다. 미친 사람 취급을 받을 내 모습이 훤했다. 기억을 잃더니 정신도 잃은 모양이군. 사람들이 날 비난했다. 변백현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절대로’라고 했지만, 그 또한 막연히 상상하겠지. <경수>가 돌아오는 어느 날을.



“가지고 있어 달라며.”

“…그게 다야.”

“다라니.”

“말 그대로 그게 다라는 소리야.”

“그럼 방금 한 말은 뭔데.”

“…”

“나보고 솔직해도 된다는 거, 그거 무슨 뜻이야.”

“…”

“뭘 생각했길래 상처 안 받는단 소리를 지껄이냐고.”



변백현. <경수>를 영영 보지 못한다고 해도 내 곁에 있을 거야?


아니잖아.



질문을 속으로 삼켰다. 마음이 벌레에 물린 것처럼 따끔거렸다.




“실수, 실수예요.”

“존댓말 하지 마.”

“…”

“듣고 싶으니까, 얘기해.”



변백현은 영리했다. 들어줄 테니 말하라고 했으면 내 입은 열리지 않았을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얘기해야 했다. 나는 원하지 않지만, 변백현이 듣고 싶어 하니까.



“…내가 나를 질투하는 기분을 알아?”



변백현. 네가 부추긴거야.



나는 변백현이 지을 수 있는 표정 중 가장 엉망인 것을 상상했다. 내 얘기를 듣고 난 후 그가 보일 대략적인 반응을 생각했다. 짙은 모멸감이 서린 얼굴로 날 훑으면 난 아마 수렁으로 떨어지겠지. 그럼 난 어둡고 깜깜한 바닥을 긁다 지쳐 잠들겠고. 꿈에는 아마 변백현이 나올 거다. 날 절망케 하기 전의 변백현의 행동. 나를 끌어안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달콤한 말을 해주는 변백현. 난 당연히 꿈인걸 알아서, 꿈에서만 할 수 있는 말을 쏟아낼 지도 모른다. 보통의 낯간지러운 고백들 말이다. 좋아한다거나 내 전부를 주고 싶다거나하는 말들. 안타깝게도 꿈은 거기서 끝난다.



“아니.”



알 리가 없지.


그건 말이야, 어떤 것이냐면….



“그렇지만,”



변백현이 숨을 골랐다. 대체 그렇지만, 다음에 무슨 말이 나올 수 있지. 



“…”

“그렇지만 너도 모르게 될 거야.”



봄의 따뜻함. 여름의 더위. 가을의 선선함. 겨울의 추위. 사계절이 순식간에 스쳐 지나갔다. 심장이 부풀었다 가라앉기를 반복했다. 변백현, 난 네 말 한 마디에 천국과 지옥을 오가. 신중하게 말하란 말이야. 책임질 수 있는 말을 해. 아니야. 안 그래도 돼. 네가 할 말이 내가 꿈꾸는 것이라면, 실은 더 많이 듣고 싶어. 마음이 오락가락했다. 



“…변백현.”

“나에게 이제 도경수는,”

“…”

“너 하나야.”

“…”

“그렇게 정했어.”



세상을 가진 것 같다는 부끄러운 고백을 이제야 이해했다. 세상을 주는 사람이 정말로 있었다.



*



센터로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멀찍이 떨어져 걸었다. 어둠에 싸인 변백현의 인영은 나와 걸음을 맞추려는 듯 종종 어색한 모양으로 움직였다. 나는 그런 변백현을 슬쩍 보곤, 왜인지 눈물이 차올라 고개를 숙였다.


눈부시게 빛나는 센터의 건물이 점점 가까워졌다.



도서관에서 온종일 있다보면 단행본 말고도 다른 인쇄물을 자연스레 접하게 됐다. 그중 내가 제일 좋아하던 것은 사진 잡지였다. 빽빽하게 쓰인 글씨를 읽다 지치면 사진 잡지를 펼치는 게 하나의 루틴이 됐다.



아직까지 기억한다. ‘도시’를 다룬 호였다. 한국의 것이 맞나 싶을 정도로 쨍한 색감의 아파트들. 무너져가는 재건축의 현장. 구획마다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있는 신도시의 풍경. 흥미롭게 넘기다 한 페이지에서 멈췄다. 도시의 야경을 찍은 작품이었다. 작가는 아파트의 밤 풍경을 우주에 비유하고 있었다. 네모난 창문은 각각의 별 같고, 그런 별들이 모여 하나의 비밀스런 우주를 만든다는 거였다. 나는 작가가 찍은, 푸르스름하게 빛나는 창문이 가득한 사진을 오래도록 바라봤다.



그 날 밤 나는 작가를 따라해 보려 노력했다. 답답하게만 보이던 반대쪽 아파트의 창문들. 비밀스럽기보단 음산하게 느껴지던 불빛. 낡은 창살과 유리에 여러 개의 별과 하나의 우주같은 예쁜 어휘를 덧씌우려 애썼다. 


외국인의 시선과 한국인의 시선은 같을 수 없는 건가? 아무리 어여쁘게 보려 해도 그저 외로워 보일 뿐이었다. 그리고 저 사람들의 눈에 나 역시 그렇겠지.



이 역시 이제야 이해했다. 



그 작가, 사진 찍을 때 행복했구나. 충만한 마음을 가진 사람의 눈에는 모든 게 아름답게 보였다. 못생겼다고 타박한 센터의 외양은 세련의 극치였고 밤에도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있는 것 같아 끔찍하다고만 생각했던 센터의 불빛도 찬란한 광휘로만 느껴졌다.



“되게 반짝거리네.”

“센터?”

“응.”

“…”

“몰랐는데 예쁘네.”

“내 건?”

“네 거?”

“저번에 봤잖아. 내 빛”



아아.



변백현이 또 나를 좌절케 했다. 난 변백현을 말하는 데 서툴렀다. 내가 가진 언어로는 부족하기만 했다.



“미안해.”

“뭐가?”

“꼭 찾아올게.”

“뭘.”

“네 빛을 표현할 수 있는 말, 어딘가엔 분명히 있을 거야.”



결연하게 중얼거리자 변백현이 푸스스, 하고 웃었다. 망했다. 찾아야 할 것이 또 늘어났다. <변백현의 웃음.>



그러는 동안에도 건물은 가까워졌다. 넌 어디로 가? 변백현에게 물으려던 찰나였다.



“도경수!”



익숙한 목소리였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내 쪽을 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돌아본 변백현의 표정이 무섭게 굳어있었다.



“…오세훈이네.”

“루머?”



가게는 어쩌고?



현실적인 물음이었다.


그 질문을 제외한 모든 것은, 지나치게 비현실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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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이 되어서야 올리는 디루머입니다.

괜찮아도 괜찮아, 를 계속해서 중얼거리고 있어요.

읽는 분들에게도 괜찮은 일들만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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