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6월에 번역했던 글입니다. 지금 다시보니 수정해야할 곳이 많이 보이는데 귀찮아서 안건드림.

직접 번역한 건데 불펌당해서 아마 내가 번역했단거 아는사람도 없을듯..

그런데 포스타입은 원래 글 접기를 지원을 안하나요? 그렇다고 결제선 아래에 작성하기도 뭐한데.. 장문의 글 작성할때는 이런점은 좀 불편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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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제로EX 「호접지몽」

햇빛에 눈을 찔려 눈이 뜨이는 것은, 최근 들어 스바루의 아침 연례행사가 되어 있었다.

 “자─자─! 아침이에요─! 어서 일어나세요, 스바루 님!”

눈뜨기에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역시 바로 정신이 번쩍 드는 건 아니다. 햇빛을 쬐어서 현실로 돌아올 시간이라고 뇌가 판단하지만, 잠의 세계에서 돌아오는 데는 다소 시간이 걸린다.
최근엔 특히나 잠이 깊어졌다. 물론, 일어나있을 때 심신이 혹사당하고 있다는 것이며, 매일을 충실하게 보내고 있다는 증거기도 하다.

 “이제 일어나야할 시간이잖아요─! 일어나! 자, 빨리 일─어─나─!”
 “시끄러”
 “무귯!”

침대 속으로 움츠리는 스바루의 귓가에, 그를 깨우려는 목소리가 날아든다. 스바루는 입김이 닿을 정도로 가까이에서 들리는 목소리를 듣곤, 그 대상을 끌어안는다는 보복에 나섰다.
개구리가 밟히는 듯한 목소리를 내며, 목소리의 주인은 스바루와 함께 침대를 굴렀다.
아직 아침은 쌀쌀한 계절이어서, 그렇게 살결을 끌어안자 적당한 따듯함이 느껴졌다.

 “아─이제 좀 살 것 같다. 이대로 안락하고 편안히 다시 잠드는 것도 좋지 않을까……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으음! ……증말, 저는……그, 괜찮지만…….”

방금까지 있었던 기세는 어디로 갔는지 스바루의 감언에 쉽사리 넘어갈 것 같은 목소리.
알고 지낸지도 꽤 오래 되었지만, 평소엔 착실한 사람이면서 이렇게 스바루가 어리광을 부리기 시작하면 바로 이런 표정을 지어버리는 아이다.
그런 점이 무척 사랑스럽다고 생각한다. 타산적인 이야기지만.

 “좋─아, 착하지. 그럼 이대로 나랑 꽁냥꽁냥한 아침 시간을…….”
 “그런데, 오늘 아침 담당은 공작님이니까……혼나도 모른다구요?”
 “윽……그랬었지.”

잊어버렸던 것을 떠올려, 스바루는 시무룩해졌다. 이대로 다시 잠든다는 쾌락을 선택하면, 후환이 두렵다.
어쩔 수 없구만, 이라고 말하며 스바루는 침대 위, 팔 안에 있는 소녀를 다시 한 번 꼬옥 껴안고 나서 힘차게 이불을 걷으며,

 “쩔수 없지, 일어날까. 아아, 젠장, 오늘도 날씨 겁나 좋구만!”

침대의 스프링을 튕기며 일어난 스바루는 그 자리에서 가볍게 몸을 풀었다. 그리고, 아직 스바루의 손을 잡은 채로 침대에 엎드려 누워있는 소녀를 내려보며,

 “이봐……그렇게 옷이 흐트러져 있으니까 엄청 에로 하잖아. 여자 아이가 그렇게 경망스럽게 있으면 안된다고 항상 말했잖아──페트라.”
 “괜찮아요. 저는 스바루 님……스바루 앞에서 밖에 이런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걸.”

혀를 내밀고 사랑스럽게 웃으면서, 메이드복이 잘 어울리는 나이가 된, 페트라 레이테가 발칙하게 말했다.
그런 그녀에게 손을 내밀어 침대에서 끌어내고,

 “그럼 식당으로 갈까. 이쯤이면, 모두 모여있을 때지?”
 “네. 가요, 스바루 님.”

고개를 끄덕이자 웃음 짓는 페트라. 그런 그녀의 손을 쥔 채로, 스바루도 침대에서 내려간다.
둘이서 손을 맞잡고, 스바루와 페트라는 통로──붉은 카펫을 깔아놓은, 루그니카 왕성을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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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늦었어.”

──스바루가 식당에 들어가자마자 맞이해준 것은, 굉장히 불쾌한 느낌이 살아있는 의연한 목소리였다.

목소리에 깃들어 있는 위압감을 느끼고, 스바루는 등에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내심 무서웠던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억지로 웃음을 짓고, 가볍게 손을 흔들며

 “미안미안. 그게 말이지, 아무래도 꽤나 피로가 쌓였었나봐. 좀처럼 아침에 일어나는게 힘들어서 말이야.”
 “서투른 거짓말을 뱉지 마. 내가 진심인지 거짓인지를 간파할 수 있다는 걸 잊지 말라고. ……어차피, 오늘 아침도 깨우러 온 메이드와 정을 통한 것이겠지.”

찌릿, 하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노려보자 스바루는 휘파람을 불며 고개를 돌렸다.
실제로 페트라에게 조금 들러붙었던 것은 사실이다. 아침에 깨우러 오는 당번이 누구였든지, 다소 들러붙었을 것에는 틀림없지만.

 “어찌되었건, 경이 나와의 약속을 어긴 것은 사실이다. ……그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아니, 그럴 생각은…….”
 “위로는 필요 없다. 나도 알고 있으니까. 나는……귀염성이 없는 여자니까 말이야. 경의 근처에 있는 다른 여성들과는 다르게, 검을 휘두르는 것 말고는 적극적이지도 않고. 꾸미는 것도, 화장 같은 것도 잘 모른다. 경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것도 당연해…….”

답지 않은 자학이 이어지는 것은, 여태까지 쌓이던 것이 터졌기 때문이겠지. 이런 문제를 더 이상 참지 못하게 되는 건, 큰 계기가 필요 없다.
다만, 쌓이고 쌓인 불만이 이럴 때에 터진 것만으로. 그리고, 이렇게 될 때 까지 눈치 채지 못한 것은, 틀림없이 스바루의 잘못이었다.

 “──무슨, 생각이냐.”
 “내 마음을 읽을 수 있다면, 어떤 의도인지도 읽을 수 있지 않아?”
 “놀리지 마라.”

품에 안기며, 얼굴을 외면한다. 그녀는 스바루의 얼굴을 보지 않은 채로, 안겼다는 것이 부끄럽다는 듯이 어깨를 흔든다. 하지만, 그것도 형태뿐인 저항이다.

 “나에게 보이는 것은, 어디까지나 풍향일 뿐이다. 상대의 마음의 겉면은 보일지 몰라도, 그 안까지 간파하진 못해. ……그러니까, 경의 행동의 진의는 경의 입으로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
 “이건 꽤나, 부끄러운 말을 해야겠는걸.”
 “경의 진의는 부끄러운 것인가. ……그건, 나에게도 보이지 않았군.”

품 안에서 쓴웃음을 짓는다. 살짝 보니, 이쪽을 보는 시선과 스바루의 시선이 겹쳤다. 포옹한 두 사람의 얼굴은 굉장히 가까워서, 서로의 숨결이 느껴지고 있을 정도였다.
그래서 스바루는, 말보다 확실한 방법으로 그녀의 물음에 답하기로 했다.

 “──응”

겹치는 입술에, 조심스럽게 더해지는 혀의 감촉. 새어나온 뜨거운 숨이 굉장히 요염해서, 밀어붙이듯이 입맞춤을 하자 귀가 뜨거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한동안 입술을 겹치더니,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떨어진다. 살짝 흐트러진 숨. 눈동자가 살짝 젖은 그녀를 보고, 평소엔 의연한 모습을 지키던 여성의 요염한 표정을 짓게 했다는 사실이 스바루의 마음을 불태웠다.
이 얼굴을 볼 수 있는 것은 나 뿐이다, 라고 생각하자 몸이뜨거워진다. 이대로, 그녀를 원하듯이 팔을 뻗고,

 “──오늘 아침은, 여기까지.”

하지만, 눈동자에 맺혔던 열정을 눈을 닫아 지운 그녀에게, 뻗은 손은 보이지 않았다.
관능적인 흥분이 갈 곳을 잃어, 뻗은 손을 미련이 남은 듯이 거두었다. 그리고 원망스러운 듯이 상대를 보자, 그녀는 다시 의연한 웃음을 지었다.

 “여기서 멈추지 않으면, 오늘 예정에 많은 영항을 주고 말아. 게다가, 경의 입장은 나 하나에 얽메여서도 안 돼. 그러니까, 여기까지.”
 “……가끔은, 넋을 잃을 정도로 빠져주는 것도 귀여울 거라고 생각하는데?”
 “말했을 텐데. 나는 귀염성이 없는 여자라고. ──전부 잊고서, 당신과 하루를 나태하게 보내는 것도 매력적이긴 하지만.”
 “──그렇게 곳곳에 여성스러움을 점을 보여주는 건 비겁하다구우.”

마지막으로 뻗었던 손이, 가볍게 튕겨 나왔다. 한 대 맞은 손을 털며, 스바루는 당당하게 돌아서는 등을 바라보며,

 “자, 식사를 하지. 오늘 아침은 더욱 신경을 써서……경의 식사를 대충 만든 적은 없지만, 오늘은 특히 자신 있다.”
 “이상한 곳에서 홀리는 게 크루쉬 씨 답지.”

어깨를 떨구며, 스바루는 공복을 찌르는 향기를 따라 식탁으로 향했다.
그녀가 실력을 발휘해 보았다고 자랑스럽게 손을 벌리고 있었다.

 “바쁜 몸인 것은 알지만, 이러한 한때, 식사를 할 시간정도는 내가 경을 독점하고 싶다. ──제멋대로 굴어서 미안하군, 낭군이여.”
 “이게 제멋대로 구는 거라면, 너무 귀여운 걸, 내 아내야.”

큰 식탁에 앉자, 평소처럼 바로 옆에 앉아오는 크루쉬. 그대로 곁눈질을 보내어, 스바루가 첫 식사에 손을 대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
그리고 첫 숟가락을 들어, 스바루가 규정이라도 따르듯이 ‘맛있어!’ 라고 말할 때 까지, 그 의연한 눈동자 속에 희미한 불안을 내비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건 정말로 비겁하다며 속으로 생각하면서, 스바루는 음식을 포크로 찔러 첫 입을 입으로 가져가서, 역시 맛있다고 말하게 되는 것이었다.


※※※※※※※※※※※※※


──공무라는 명목으로, 책상 위에 산더미처럼 쌓인 서류를 앞에 두고 스바루는 고전하고 있엇다.

 “해도해도 끝날 기미가 안보이네…. 만화나 애니에 이런 씬이 곧잘 나오곤 하는데, 그거 실제로도 있는 일이였구나…….”
 “구시렁대고 있는 틈에 추가야, 바루스. 그렇게 쉬고있지 말고, 빨리 일을 해. 정말 굼뜨기는.”
 “너, 내 입장을 알고서도 그런 발언을 하냐!?”

서류의 산중 하나가 끝나서고 남은 산은 앞으로 4개──인 시점에서, 무심하게 추가되는 하얀 산맥. 산의 수가 네 개 정도 불어나자, 스바루는 들고 있던 깃털 펜을 정면에 찔러 넣고,

 “언제까지고 네가 위라고 생각하는 거야? 내가 이 나라에서 지금, 어느 정도의 힘을 갖고 있는지 알고 있냐고. 내가 후배처럼 다뤄지는 것도 이제 끝이라고, 언더스탠드?”
 “바루스야 말로, 누군가 도와주지 않으면 혼자서 제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없단 걸 잊어버린 듯 한 발언이네. 람이 여기서 바루스를 버리고 퇴실하면, 대체 누가 이 서류의 산의 대필을 도와준다는 거야? 입장을 자각하도록 해.”
 “죄송합니다, 언니 님! 부탁이야! 버리지 말아줘! 날 도와줘!”

바로 발언을 철회하고, 스바루는 책상에서 몸을 내던지고 자존심마저 버리고 부탁하기 시작했다.
그걸 보고, 분홍 머리의 메이드는 ‘핫’ 이라며 코웃음을 치고,

 “입장이 어떻게 되든지, 변하지 않는 건 변하지 않아. 이제 이 대화도 그만 질릴 때가 되지 않았어? 좀 더 그럴듯한 말을 생각 해내봐.”
 “언니 님의 도량에는 진심으로 감탄하고 있습니다. 이런 씬, 다른 사람이 보면 큰일 난다구? 나, 메이드에게 약점 잡히다! 라는 스캔덜러스한 기사가 신문의 1면을 장식하게 된다고.”
 “람이 위고 스바루가 아래. 그 사실에 거짓은 없어. 문제 없겠네.”
 “언니 님 진짜 장난 아니네요!”

여전히 방약무인한 태도에 스바루가 목소리를 떨자, 람은 질렸다는 듯이 한숨을 쉰다. 그리고 그녀는 스바루의 집무용 책상에 예비 의자를 가져와, 연필꽂이에서 예비용 깃털 펜을 꺼내들고,

 “대필할 수 있는 건 람이 대필할게. 확인만 할 테니까 구두로 대답해.”
 “오-케이, 항상 고맙습니다. 언니 님이 없으면 나라가 제대로 돌아가질 않겠어.”
 “감사의 마음은 태도로 증명해.”
 “구체적으로 말하면?”
 “‘님’을 붙이는 게 예의잖아?”
 “그것도 다른 사람이 보면 엄청난 일로 번질 거라고!?”

어찌됐건, 쓸데없는 말을 하느라 손이 멈춰있는 스바루와 다르게, 람의 일처리 속도는 장난이 아니었다. 전에 언뜻 들은 이야기로는, 로즈월 저택에서도 이렇게 로즈월 대신 서류 업무를 도와줬다는 듯 했다.
그런 장면을 직접 본 적은 없으니까, 처음 봤을 땐 꽤나 놀랐었다.

 “그냥 의자에 앉아만 있었던 건 아니었구나.”
 “불명예스런 평가를 받은 기분이 드는데.”
 “그럴 리가. 칭찬한 거야. 사람은 겉모습과 태도와 품행이 다 같진 않다고.”
 “분풀이로, 과격 정치 단체의 탄원서를 인가할게.”
 “하.지.마!”

확인하겠다고 말한 것 치곤, 전부 자신의 재량으로 처리하고 있는 람. 그래도, 스바루가 굳이 그걸 지적할 필요는 없다.
입으론 이러니저러니 해도, 스바루가 그녀에게 고쳐달라고 말할만한 점 같은 것은 없다는, 이 이상 없을 정도의 신뢰를 표하는 것이기도 했다.

살며시, 서류를 보고 있는 람의 옆얼굴을 쳐다보았다.
여전히 변함없는 무표정이 보였다. 부드러운 용모와, 어딘가 어린 외모는 처음 만났을 때와 변한 게 없다. 웃기만 한다면 꽃처럼 가련한데, 그런 모습은 1년에 한 번 볼까 말까한 점도 똑같다.

 “……또 손이 멈췄어, 바루스.”
 “아아, 미안. 람을 보고 있었어.”
 “────칫.”
 “혀를 찼어!? 렘이라면 얼굴이 새빨게져서 엄청 귀여운 표정을 지었을 거라고!?”
 “렘과 람을 그렇게 비교하지 말라고 말했을 텐데. 반으로 잘라버린다.”
 “뭐를!?”
 “‘뭐’를, 말이야.”

얼어붙을 것 같은 눈동자를 보고, 스바루는 몸 안이 비는 듯 한 느낌을 받았다.
악의가 있어서 이름을 꺼낸 건 아니지만, 신경에 거슬리게 해버렸다면 실수다. 람보다 렘을 우선하라고, 평소에 그녀가 입에 딱지가 질 정도로 말했으니까.

 “딱히 비교한건 아니지만, 람에게 푹 빠져있던 건 진심이야. 너, 이렇게 입을 다문 채로 이상한 행동만 안하면, 성격만 모르면 엄청 귀엽다구.”
 “말하는 걸 보고, 행동하는 걸 보고, 성격을 보다 깊이 알게 되면, 그걸 초월해서 사랑스럽다는 것. ──에밀리아 님에게 말해둘게.”
 “그렇게 말한 적 없거든!?”

자기 평가가 엄청난 것과, 스바루의 평가가 엄청나게 낮은 것도 변함없다. 라곤 해도, 사실은 그렇게 자신을 높게 평가하지 않고, 이렇게 고압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은 연기일 뿐이라고, 지금은 알고 있다.
그래서, 귀염성 없는 발언도, 쑥쓰러워서 그런다고 생각하면 용서할 수도 있다.

 “또 불쾌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네, 바루스.”
 “그래? ……그거, 미안한 걸.”

람의 옆모습에서 눈을 떼고, 더 이상 그녀의 분노를 사지 않도록 서류 업무로 돌아간다. 딴짓이 즐거운 것은 사실이지만, 끝낼 것을 끝내지 않으면 예정이 어긋난다.
일을 할 때는 일을 하고, 모두 끝내고 나서 놀자.

 “람과 렘을, 같은 입장으로 비교하는 건……하지 말아줬으면 해. 그건 바루스가 마치, 람을 렘과 같은 대상으로 본다는 것처럼 들리니까.”

일에 몰두하는 스바루는, 자신의 옆모습을 바라보는 람이 그렇게 중얼거린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깃털 펜이 하얀 머리 위로 미끄러지는 소리만이, 집무실에서 춤추듯이 흘렀다.


※※※※※※※※※※※※※


 “──한가하구만.”

문이 거칠게 열리고, 들어온 인물의 첫마디에 스바루는 맥이 빠진 표정을 지었다.
그대로 보지 못한 걸로 하자는 듯이 시선을 떨구고, 눈앞의 테이블에 올려진 물품의 확인을 계속하기로 한다. 하지만,

 “첩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불경하도다.”
 “아아!? 너 임마, 아무리 그래도 뒤집을 것 까진 없잖아!?”

무시당한 화풀이로 발로 힘껏 테이블을 뒤집어 버리자, 그 위에 올려져 있던 것들이 성대한 소리를 내며 바닥을 굴렀다.
당황해서 테이블을 돌려놓고, 떨어진 것을 주워 모은다. 충격으로 고장날법한 물건이 없던 것은 다행이지만, 심장에는 별로 좋지 않은 일이었다.

회수한 것들의 무사를 확인하고 안도의 한숨을 쉬며, 스바루는 테이블을 뒤집어버린 인물──여전히 자기주장이 강한 붉은 드레스를 입은 소녀, 프리실라를 노려보았다.

 “너 말이야, 난 오늘도 할 일이 산더미처럼 많다고. 올 거면 오기 전에 연락을 하라고 그렇게 말했잖아. 그러면 네가 여기에 오기 전에 거절할 수 있으니까 말이야!”
 “웃기지 마라. 첩이 한가하다고 느끼는 것은, 첩의 기분에 따라 언제가 될지 모른다. 그런데도, 어째서 네놈의 사정에 맞춰줘야 하는 건가. 입장을 알아라.”
 “네가 알아야 하거든! 대체 왜 내 주위에 있는 자기중심적인 여자는, 내 입장이 이렇게 바뀌었는데도 태도가 바뀌질 않는 거야. 나, 혹시하는데 명예직 취급이야?”
 “하찮다, 시시하다. 전보다 더 언동에 우아함이 줄었구나. 그런 태도로는, 모두를 만족시키는 왕도같은 건 걸을 수 없지. ──첩들을 꺾고 왕좌를 찬탈했건만, 그런 모습이라니……너무도 한심해서, 사등분 해버리고 싶어지는구나.”
 “스플래터!!”

진홍색의 눈동자에 가학적인 빛이 감돌고, 프리실라는 소리 지르는 스바루에게 지루한 듯 한 표정을 짓는다. 변함없이 자기중심적이고 가혹한 소녀다. 상대하고 있자면 피곤하기 짝이 없지만, 그 주장은 근본적으로 일리가 있으니 기분이 나쁘다.
적어도 스바루의 자리는, 그녀들의 바람을 밀어내고 얻은 것이 맞으니까.

 “그나저나, 변변찮은 취미로고. 대체 무엇을 보고 무료를 달래고 있던 것이냐.”
 “그냥 시간 낭비한 건 아니야. 이건 그, 최근에 시내나 시골에서 유행하고 있다는, 마광석이나 여러 가지를 이용해서 생긴 신기술의 집합체야. 이렇게 보고 있으면 사람의 상상력이란 게 꽤나 재미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호오, 신기술이라. 그건, 무슨 효과가 있나?”
 “예를 들면, 그렇지…….”

프리실라의 질문에, 스바루는 테이블에 올라와 있는 것 중에, 손으로 쥘 수 있는 크기의 금속 상자 같은 것을 잡았다.
눈을 가늘게 뜨고 효과를 설명해주길 기다리는 소녀에게, 스바루는 금속 상자의 바닥을 가볍게 두드린다. 그러자, 작은 소리가 나며 상자의 위쪽에서 파란 불이 피어났다.

 “호오, 들고 다닐 수 있을 법한 크기의 불쏘시개 인가.”
 “내가 살던 곳에선 라이터나 챳카만(※1) 이라고 불리는 도구야. 이게 보급된다면, 마법을 쓸 수 없어도 바비큐를 할 수 있을 테고, 조그마한 불빛도……되려나? 한 개 남았으니까, 나중에 밖에서 한번 써봐야겠다.”
 “비약적으로 건물을 불태우는 정신 나간 녀석들도 나올 법 한데.”
 “으극…….”

엄격한 의견을 찔러오는 프리실라. 이 소녀, 평소의 언동만 보면 생각하기 어렵지만, 의외로 꽤나 머리가 좋다.
그녀는 스바루의 손에 들린 챳카만을 빤히 쳐다보며,

 “안에 작은 불의 마광석이 들어있군. 그걸 바닥의 장치로 자극해서 불을 일으킨다……허나, 장치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다면 살짝 쓴다는 것이 터져버릴 수도 있어. 몇 번 사용한 마광석은 효과의 정도도 발휘되는 시간도 퇴화하니까. 교환하는 빈도가 잦다면, 시중에 보급하는 것은 아직 멀었겠군.”
 “으그극……!”

속속들이 들어난 미비점은, 개발원에서 나왔던 개선 필요 사항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한 번 본 것만으로 그것들을 찾아내는 능력──다른 사람의 약점을 잘 찾아낸다고 생각해도 좋지 않을까.

 “어찌됐건, 그것을 처음에 보여주었다는 것은 그것이 가장 자신 있는 물건이었던 게지? 자신작이 이 모양이니……남은 것들이 어느 정돈지는 안 봐도 알겠군.”
 “시, 시끄러시끄러. 잘 들어봐, 미지의 기술에 도전하려는 자세. 인간은 그것을 로망이라고 부른다고. 어느 시대건, 로망이야말로 인류를 진화시켜 왔다고. 나는 믿어……이 챳카만이 언젠가, 인류의 큰 길을 열 거라고.”

로망을 이해하지 못하는 프리실라의 태도에, 스바루는 주먹을 쥐머 반론했다. 그리고 다시 챳카만의 바닥을 두드려, 그 푸른 불꽃의 자태를 보여주──.

 “어라? 어라라? 안 나오네.”
 “음, 바로 고장인가. 로망, 인지 뭔지는 모르겠다만, 그런 것에 기대를 한다는 것은 꽤나 우습구……나!”

재미 없다는 듯이 말하던 프리실라의 표정이, 갑작스레 긴장하여 어미가 높아졌다.
다음 순간, 그녀는 가슴에서 꺼낸 부채로 앞을 긋고──스바루의 손 안에 있던 챳카만의 선단이 그 위력에 날아가, 곧바로 소리를 내며 터졌다.
방구석에서 한순간 크게 피어오른 붉은 섬광에 스바루는 숨을 삼켰다.

 “이런 때에 최악의 고장이 나온다니……개발자에게 엄벌을 줘야겠군. 왕국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네놈의 몸에, 엄청난 위기를 끼쳤으니까 말이야.”
 “……그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어. 그래도, 고마워.”

순간적인 판단으로 프리실라가 챳카만을 날려 버리지 않았다면, 꽤 큰 화상을 입었을 지도 모른다. 혹은 안쪽에서 튕겨나온 금속이, 얼굴에 상처를 냈을 가능성도 있다.
스바루는 미연에 피해를 면한 얼굴을 슬슬 쓰다듬으며,

 “이 이상 인상이 나빠지면 곤란하니까 말이야.”
 “무얼, 그렇게 나쁘진 않아. 익숙해지면 꽤나 사랑스럽기도 하다.‘

힘이 빠져 의자에 쓰러지듯 앉자, 그런 말을 하며 프리실라가 다가왔다. 스바루는 ‘그런가’ 라며 드물게도 위로를 하려는 듯 한 그녀에게 힘없이 대답했다.
그리고, 그런 스바루의 무릎 위에 프리실라가 아무런 주저도 없이 당당하게 허리를 올리고,

 “이봐?”
 “한가하다, 고 말했지 않는가? 게다가, 첩 덕분에 치명상을 피할 수 있었지. 허면, 예정에 없던 교류가 생겨도 할 말 없겠지?”
 “……나, 이것도 공무라는 이유로 겨우 혼자 있었는데.”
 “공무를 구실로 쉬고 있던 것 뿐이잖는가. 홀몸으로 보낸다니, 시간이 유한함을 생각하면 아깝지 않는가. ──첩을 위해서 쓰도록 하여라.”

무릎 위에서 몸을 흔들며, 점점 몸을 가까이하는 프리실라의 굉장히 부드러운 감촉. 벌써 몇 번도 더 이렇게 맞닿았던 사이지만, 아직도 이렇게 다가오는 것은 익숙해지지 않는다. 몇 번을 경험해도, 처음 겪는 일이라는 듯이 뜨거워지는 몸이 그녀의 매력을 말하는 듯 했다.

 “이런 생각이 드는 게, 나쁜 여자에게 속고 있다는 걸까나….”
 “경국의 미희, 라고 불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지만. 무얼, 잠깐 동안은 그렇게까지 빠져들게 할 생각은 없다. 안심해도 좋아. ──그저 이 잠깐 동안, 첩이라는 꿈에 잠기면 되는 것이야.”

그렇게 말하고, 프리실라가 뻗어오는 팔이 스바루의 목을 휘감는다.
순 끝의 감촉에, 목이 마르는 것 같은 착각. 지금 바로, 무언가로 입술을 축이고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생각으로, 바로 앞에 있는 붉은 혀에, 스바루의 혀가 뻗어간다.


※※※※※※※※※※※※※


 “뭐여, 꽤나 지친 얼굴을 하고있구먼? 잘 못잤는감?”
 “굳이 말하면, 일어난 후부터 논스톱으로 일을 하고 있는 게 문제인 것 같은데……익숙하지 않은 일로 바쁜 것도 있고, 사생활 면으로도 몸도 마음도 쉴 수가 없었달까……아니, 내가 스스로 고른 일이니까 약한 소리를 할 처지는 아니지만.”
 “그런 책임감이 나츠키 군의 좋은 점이라고 내는 생각한데이.”

싱글벙글 웃으면서, 정면의 소파에 앉아있는 아나스타시아가 말했다. 거기에 힘없는 미소로 대답하고, 스바루는 두 사람 사이의 테이블 위를 보았다.
그곳에 놓인 것은, 오늘은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은 서류 더미였다. 라곤 해도, 이건 공무나 사무 처리가 아니라 취미스러운 점이 크지만.

 “나츠키 군 덕분에, 지금 호신 상회는 카라라기 제일이 됐지……내도 가슴을 펴고, 이렇게 루그니카에 얼굴을 비칠 수 있게 된 기라. 정말로, 내도 이런 뻔뻔스러운 표정을 지을 수 있었구마.”
 “나는 솔직히, 별로 대단한 일은 안했는데 말이야. 아나스타시아의…….”
 “나츠키 군.”

웃는 얼굴로, 스바루의 말을 가로막는 아나스타시아. 그녀는 자신의 웨이브진 머리카락 끝을 만지작거리며, 스바루에게 변함없는 미소를 지어 보이고 있다.
다만, 그 미소가 어째선지 스바루에겐 다른 의미로 보여서 숨을 삼켰다.

잠깐의 침묵이 가시고, 스바루는 졌다는 듯이 한숨을 뱉고는,

 “……아나의 노력의 성과야.”
 “증말─, 이렇게나 매번 말하고 있는데 아직도 익숙해지지 않은 건 내의 노력부족인가? 아니믄, 이렇게 몇 주에 한번씩 밖에 만나지 못하는 측실에겐 용서가 없다는 기가?”
 “그런말 하지 마. 나는 아직도 의외로 약삭빠른 크루쉬 씨에게도 경어를 쓴다고.”
 “그야말로 이상한 야그네. 크루쉬 씨, 나츠키 군의 앞에선 데레데레잖나. 그래놓고 위엄을 지킨다느니 한다면, 크루쉬 씨도 의외로 스스로를 모르는 기네.”

입가에 손을 대고, 짙게 웃는 아나스타시아. 호칭과 화제의 전환으로, 어떻게든 분위기를 바꿀 수 있었나. 일단, 스바루는 안심해도 되겠다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내랑 같이 있는데, 다른 여자 아이의 이름을 꺼내쌋나. 감점이야.”
 “너무 엄하지 않아?”
 “엄한 선을 정해서, 그 선을 넘지 않게 주의하는 것이 장사 에서도 남녀관계 에서도 당연한 배려제? 내가 나츠키 군과 있을 때에, 한번이라도 남자 이름을 꺼낸 적 있었나?”

날카로운 눈으로 노려봐, 스바루는 말이 막힌 채로 팔짱을 꼈다. 그대로 가볍게 시선을 위로 올리고 회상에 들어가자, 분명히 그랬던 적은──.

 “없었을지도…… 거참, 방심도 틈도 없구만.”
 “에헤헤─, 가끔은 이런 것도 좋네. 내, 오랜만이기도 하고.”

라면서, 그렇게 스바루가 시선을 돌린 사이에 테이블을 건너 온 아나스타시아가 스바루의 옆에 앉았다. 살짝 뻗은 손이 스바루의 손을 위에서 감싸자, 화사한 웃음이 얼굴에 비치는 것이 보였다.
새하얀 그녀지만, 이렇게 부끄러운 듯이 목덜미까지 빨갛게 물들이면, 얼마나 용기를 내고 있는지 한눈에 알 수 있기에 더욱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오늘은, 투자나 다른 이야기의 결과를 가져 올 거라고 하지 않았어?”
 “나그가 세상에서 두 번째로 소중한 나츠키 군에게 받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돈으로 실수를 할 리가 없잖아? 그건 믿어도 좋다구?”
 “거기서 돈의 우선순위가 나보다 높은 걸 보니, 역시 아나는 아나구나.”
 “글도, 첫 번째와 두 번째는 근소한 차이니께. 두 번째와 세 번째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골이 있다. 그니까, 용서해 줘.”

살짝 흐려진 눈동자는, 돈 계산을 할 때와 스바루와 있을 때 전용이다. 돈과 같은 급에 있는 것은, 기뻐해야 할까 슬퍼해야 할까.

 “──왜에?”
 “아니.”

손을 맞잡지 않은 쪽의 손으로, 아나스티사이의 솜털같은 머리를 쓰다듬는다. 모질이 가느다란 긴 머리는 마치 새끼 동물처럼 부드럽고 기분이 좋다.
스바루가 쓰다듬고 있는 아나스타시아도 간지러운 듯이 눈을 가늘게 뜨고, 고양이처럼 스바루의 가슴으로 다가와서, 코를 문지르고 잇다.

그런 식으로, 사랑스런 연인을 가슴에 안으면서,

 “뭐, 절대 흔들리지 않는 가치관과 비슷한 위치라면, 좋다 이거야.”

라며, 자신의 위치에 일단 만족했다.


※※※※※※※※※※※※※


 “오빠는 말야, 분명 언젠가 지옥에 떨어질 거야.”

방에 돌아온 스바루를 맞이한 것은, 침대 위를 굴러다니던 펠트의 신랄한 말이었다.
스바루는 웃옷을 벗고, 넥타이를 풀어 목을 가볍게 하고, 셔츠의 버튼을 풀며 펠트의 쪽으로 다가갔다. 몸을 일으키는 펠트가 침대 위에서 책상다리를 하곤,

 “저기─, 듣고 있는거야?”
 “듣고 있어. 아니, 것보다 너는 좀 드레스를 입고 굴러 다니지좀 마라. 그리고 책상다리도 하지 마. 스커트가 짧아서 안쪽이 보이잖아.”
 “이제 와서 무슨 소리야. 나랑 오빠 사이에, 이제 와서 스커트가 어쨋거니 하는거야? 보고싶으면 보면─되─잖아.”
 “멍청아. 보고 싶을 때 볼 수 있는 것도 겁나 좋지만, 예기치 않은 타이밍에 보이고 마는 게 낙원이라고 불리는 이유라고. 너 같이 방심만 많은 녀석이 그래봤자, 기쁘기는커녕 안타까울 정도야.”

털썩 침대 끝에 앉으니, 스바루의 옆에서 펠트가 ‘쳇─“ 이라며 혀를 찬다. 그리고 침대에 눕는 스바루의 옆에, 나란히 눕는다.
그렇게, 누운 채로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는 두 사람.

 “방금 말한 참인데……말해 두겠는데, 그 자세면 누가 문을 열고 들어오면 바로 스카트 안쪽 깊숙이 까지 보인다.”
 “안쪽 깊은 곳은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을 테니까 안심하라고. 오빠, 언제까지 나를 그렇게 아이취급 할 거야? 처음 만났을 때부터 몇 년이 지났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런 말을 할 거면 조금은 정신적인 면에서 여자다움을 발휘해 보라고. 언제까지 그런 불량한 말투로 오빠오빠 거릴 거야.”
 “하아? 오빠라고 불러달라는 건 그쪽의 부탁이었잖아. 그게 꽁냥꽁냥할 때 더 불탄다나 뭐라나 하면서…….”
 “그만해! 취했을 때 취기에 의한 발언은 말하지 마! 내 안의 내가 모르는 짐승이 내 본심을 뱉은것 뿐이야!”
 “본심이잖아.”

펠트가 깔깔 웃으며,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린 스바루의 몸에 주먹을 댄다. 부드러운 가슴을 찌르는 감촉을 손바닥으로 감싸니, 펠트가 ‘아’ 라며 작은 목소리를 올렸다.
그렇게 손을 맞잡은 채로,

 “뭐, 이렇게 신파극을 벌이고 있긴 한데, 진짜로 걱정이야. 나도 하루 종일 너를 신경쓰고 있을 수도 없고……여기서, 네가 불편해하지 않을까 하고 말이야.”
 “불편하다고 하면, 오빠랑 만난 후의 한달이 훨씬 답답했고……그 뒤의 일도, 힘들었다면 힘들었지만 말이야.”
 “그런 일을 거드는 건 내 역할이 아니었고 말이야. 그렇게 못한게 분했었는데, 이렇게 손이 닿는 지금은 내가 어떻게든 해 주고 싶다고.”
 “……우.”

꾸욱, 하고 껴안은 팔을 당겨, 구르던 펠트를 가슴에 꼭 껴안는다. 오늘의 펠트는 어깨가 드러난 드레스 차림이라, 맞닿은 피부에서 그녀가 점점 뜨거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펠트는 스바루의 품에서, 부끄러움으로 빨개진 얼굴으 들고,

 “아, 아직 저녁 전인데…….”
 “하고 싶어지면 몇 시가 됐던 시작할 텐데, 지금은 그럴 생각으로 껴안은 게 아니야. 아니, 원한다면 나도 싫진 않은데……”
 “아, 아냐! 지금은 됐어! 나, 나도 각오라고 할까, 마음의 준비나, 자양강장에 좋은 걸 먹고 마셔서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하니까!”
 “너, 밤에 내 방에 올 때마다 그런 준비를 하는거야?”
 “그, 그치만…….”

뜻밖의 말에 놀란 스바루를 보고, 펠트의 얼굴은 삶은 문어처럼 붉어졌다. 반론하려던 그녀는 거기서 말을 끊고, 한번 더 입 안에서만 ‘그치만’ 이라는 말을 반복하다,

 “오빠는 상대가 잔뜩 있고……며칠에 한 번밖에 차례가 오지 않잖아. 그럴 때 내 준비 부족으로 오빠가 실망하기라도 하면, 나도 싫은 걸.”
 “………….”
 “주,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전부 굉장한 사람밖에 없으니까, 첫 번째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안해. 에밀리아라던가 렘이라던가, 그런 사람들한테 이길 수 있을 것 같지도 않고. 가, 가슴도 크루쉬나 프리실라한테 지는 걸. 아나스타시아는, 이길 것 같지만.

성장기에 들어가, 꽤나 커진 자신의 가슴에 손을 대면서 펠트가 말했다. 그리고, 그녀는 다시 빠르게 말을 잇는다.

 “그치만, 항상 첫 번째가 되지 않아도, 그……둘만 있을 때 정도는, 나를 가장 중요하게 여겨줬으면 한단 말이야. 그러니까, 그, 그 정도는 해야하겠지 싶어서….”
 “펠트.”
 “……뭐야! 내,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게 이상…….”
 “너, 진짜 귀엽구마안!!”
 “──아붑,”

변명을 늘어놓는 모습이 너무도 귀여워서, 스바루는 안고있던 펠트를 더욱 강하게 끌어 안고 그 볼에, 이마에, 목에 키스의 비를 내린다.
그런 스바루의 과잉 반응을 받아, 키스의 비에 시달리는 펠트는 대혼란을 겪엇다. 그녀는 얼굴을 파랗게 질려야 할지, 붉게 물들여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이 눈을 돌리며,

 “무, 무, 무…….”
 “전부터 귀엽다고 생각은 했는데, 너 이건 반칙이잖아? 우와, 우─와─, 지금 건 엄청 위험했어. 엄청났어. 처음 만났을 때, 골목길에서 너에게 버림받았을 때의 충격이 다시한번 느껴졌을 정도야!”
 “나, 오빠한테 그런 적 있었나!?”
 “괜찮아 괜찮아, 용서한다. 물로 씻었어. 그 때의 원한이 뼈에 깊게 스며들어서, 여태까지 침대 위에서 너를 그렇게 괴롭혔었는데, 앞으론 상냥하게 할게.”
 “그런 이유로…아, 그래도, 딱히 좀 난폭하게 다뤄지는 정도는 괜찮은데……아! 지금거 취소!”

쓰다듬은 스바루의 손바닥의 감촉 때문에 마음이 느슨해진 것인지 쓸데없는 말을 해버린 펠트. 그녀가 자신이 실언을 해버렸다는 걸 깨닫자, 실실 웃는 스바루의 가슴을 밀쳐내고, 튀어 오르듯이 침대를 벗어났다.

 “아─젠장! 이게 무슨 수치야! 이제 두 번다시 말 안할거야!”
 “그런가, 그런가. 좀 난폭하게 하는 게 좋은 건가. 잘 기억해 둘게, 내 아내!”
 “시끄러─! 역시 오빠는, 지옥에나 떨어져 버려!”

버릇없게 중지를 세우고, 펠트는 얼굴을 붉게 물들인 채로 등을 돌리려고 했다. 하지만, 스바루는 멀어지는 그녀의 손을 잡고,

 “기다려. ──펠트. 부탁이니까, 아까도 말했지만 너무 사람들 앞에서 무방비한 거나, 조금 성장 배경이 나쁘다는 걸 보여주지 말라고. 내가 없는 곳에서, 너한테 무슨 일이 있을 가능성이 무서우니까.”
 “……괜찮사와요. 저, 다른 곳에서는 멀쩡히 격식을 차리고 있으니까요.”

돌아본 펠트가 입가에 손을 대고, 품위 있는 웃음으로 대답했다. 생각지도 못한 반응에 머쓱해진 스바루에게 펠트가 고개를 갸웃이며,

 “왜 그러시나요? 안색이 나쁘셔요.”
 “……내 앞에선 하지 마. 빈틈 투성이인 모습이면 충분해.”
 “핫, 그렇지? 나도 오빠 앞에서 점잔을 떠는 건 등이 싸해지니까 두 번 다시 하고싶지 않다고.”

펠트는 그렇게 깔깔 웃고는, 파랗게 질린 스바루에게 손가락을 들이댔다.
바로 코앞까지 다가온 손가락을 보는 스바루에게 그녀는,

 “그리고, 걱정하지 않아도 돼.”
 “뭐가?”
 “내가 스커트를 입고, 그……뒹군다던가, 그런 빈틈 많은 모습을 보여주는 건……오빠뿐인걸. 그런 거, 다른 사람에겐 절대로 보여주지 않을 거야.”
 “………….”

그렇게 말하고, 펠트는 얼굴을 피하면서 방의 문 쪽으로 발을 옮겼다. 하지만, 스바루는 재빨리 움직여 팔을 잡았다.
그리고 힘껏 끌어당기고,

 “으갸─!”
 “역시 너, 엄청 귀엽구나아! 귀여워! 귀여워! 펠트쨩 귀여워!!”

또다시, 키스의 집중호우가 쏟아졌다.

※※※※※※※※※※※※※

 “스바루 군. 왼쪽 눈, 왜 그런가요?”
 “펠트가 너무 부끄러운 나머지 뜨거운 주먹으로 키스를 해줘서 말이야. 저래뵈도, 꽤 귀여운 녀석이지만……이번엔 내가 너무 까불었어.”
 “정말이지, 조심 좀 해주세요. 스바루 군의 몸은, 이제 혼자의 것이 아니니까요.”

저녁을 지나고, 방을 찾은 스바루에게 부드러운 미소를 보내온 렘이 그렇게 말했다.
그녀의 미소에 어깨를 으쓱하고, 스바루는 렘의 곁으로 갔다. 일어서서 자리를 양보하려는 그녀를 손으로 누르고,

 “너야말로 조심하라고. 분명 내 몸이 나 혼자의 것이 아니란 게 맞기는 하지만……이젠, 네 쪽이 더 그렇잖아.”
 “죄송합니다. 원래라면 이런 바쁠 때일수록 렘이 스바루 군의 힘이 되어주어야 했을텐데.”
 “착각하지 마. 지금 렘은 안정을 취하고, 이렇게 얼굴을 보러오는 나한테 최고의 웃음을 보여주면 그걸로 족해. 그게 가장 힘이 된다고. 정말로.”

라고 말하면서, 스바루는 의자에 앉아있는 렘의 앞에 무릎 꿇고, 그녀 쪽으로 손을 뻗는다. 그 손끝이 향한 곳은, 그녀의 복부──선이 가는 렘의 배가 지금은 살짝 부풀어 있는 것이 느껴진다. 그곳에, 또 하나의 생명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나와 너의 사랑의 결정이 여기 있으니까 말이야. 얼마나 나의 활력이 되는지 모를 거야.”
 “정신적인 지주가 되는 것도 기쁘지만, 좀 더 제대로 물리적으로도 스바루 군을 돕고싶어요. 페트라에게 역할을 뺏겨서, 조금 분할지도 모르겠네요.”

자그맣게 혀를 내밀고, 거동이 불편해서 분하다는 것을 숨기려는 렘.
메이드 업무는 이제 거의 만능 메이드로서 재능을 이어받은 페트라에게 옮겨가, 렘은 하루중 대부분을 뱃속의 아이에게 할애했다.
특히나 최근 들어서 렘의 시간을 가장 빼앗아 가는 것은,

 “양말 꽤나 많이 만들었네.”
 “뜨개질, 처음엔 잘 못할 거라고 생각했는데……만들다 보니 점점 재미가 들려서요. 아이가 자랄 걸 생각해서, 조금씩 크게 만들고 있답니다. 처음엔 엄지손가락 정도로, 다음엔 주먹 정도로, 다음엔 손바닥 정도로, 다음엔 삼과 정도로, 다음엔 멜로누 정도로…….”
 “나랑 너 사이의 자식인데, 대체 뭘 어쩌면 거인 사이즈의 양말이 필요한 거야!?”
 “크게 쑥쑥 자랐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내가 알고 있는 가장 큰 영감보다 크게 자랄 가능성이 있으니까 싫어!”

어떤 아이가 태어나도 사랑할 자신이 있지만, 그 자신을 뛰어넘는다면 자신이 없어진다. 스바루의 태클에 렘은 ‘농담이에요’ 라면서 웃어 보이고,

 “아무리 그래도 너무 크게 만들어 버렸다고 반성하고 있어요. 지금은 다시 풀어서 작게 만들고 있답니다. 아이의 것만 만들기도 그러니, 스바루 군의 것도 같이.”
 “오. 내 것도 만들어 준건가. 그거 기쁜데. 좋아, 렘이 애정을 담아서 만들어 준 거니까 몸에서 떼지 말아야지.”
 “네. 장갑하고, 양말하고, 하라마키하고, 코시마키하고, 목도리하고, 귀마개하고, 모자하고, 속옷하고, 내복하고, 상의하고, 신발하고, 발감개에요.”
 “아이가 입을 거 짤만한 털실은 남아있긴 해!?”

속속들이 꺼내는 형형색색의 뜨개질 작품. 이걸 전부 입은 채로 공무를 하러 간다면, 아마 수십 분 내로 더워서 쓰러질 것이다.
손재주가 좋은 인간에게 취미를 주고 방치하면 이렇게 되는 거다.

 “아무리 그래도 이걸 전부 입고 일하는 건 힘들겠는데……. 로테이션으로 입어도 될까?”
 “괜찮아요. 렘은, 스바루 군이 선물을 받아주는 것만으로 충분해요. 그것만으로 뜨개질을 한 의미가 있던 거니까요.”
 “렘…….”
 “그러니까 스바루 군이 그걸 받아서 어떻게 쓸 지는, 스바루 군의 자유에요. 벽장 속에 넣은 채로 먼지를 쌓아도, 실수로 밀크를 흘려버렸을 때 닦는데 써도, 잠깐 쉬려고 의자에 앉을 때 의자가 더러워서 깔개 대신 써도, 렘은 괜찮답니다.”
 “하나씩, 매일 소중히 쓸게! 그런 요상한 상상 하지 말라고!”

받은 선물을 그 자리에서 전부 입어 보이고, ‘이렇게!’ 라고 외치며 렘을 바라보았다. 스바루의 엄청 더워 보이는 모습에 렘은 감동한 듯이 손뼉을 쳤다.

 “봐봐, 너의 아버지는 이렇게 상냥한 사람이란다. 어서, 아버지에게 건강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네─.”
 “지금 내 모습을 본다면, 이걸 입지 않을 때의 내가 나라는 걸 모르지 않을까. 이 아빠는 그게 조금 걱정되는데.”
 “괜찮아요. 렘의 아이니까, 스바루 군을 정말 좋아할 거에요. 그러니까 스바루 군이 어떤 모습으로 있더라도, 바로 찾을 거랍니다.”
 “그래도 절반은 내 아이니까 말이야. 내 열성 유전자가 걱정이구만.”
 “스바루 군은 언제나 멋져요. 그러니까, 스바루 군을 닮는다면 분명 이 아이도 멋진 아이로 자랄테죠.”

배를 문지라며, 렘은 입술을 삐쭉 내민 스바루에게 평소와 같은 말을 한다. 렘의 스바루 과대평가는 옛날부터 변하질 않았다. 그래서 스바루도, 그녀의 그 평가에 부합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라도, 계속 노력할 필요가 잇다.
그런 그녀가 주는 힘은, 정말 굉장했다.

 “저기, 스바루 군. 남자 아이와 여자 아이, 어느 쪽이 좋으신가요?”
 “어려운 문제구만. 렘을 닮는다면 둘 다 귀여운 or 멋있는 아이가 될 거라고 생각하는데, 나를 닮는다면 이 눈매가 유전될 테니 말이야……여자 아이라면 좀 미안해지는데.”

더욱이, 스바루와 눈매가 똑같은 어머니는, 어린 시절에 꽤나 고생했다고 한다. 항상 불쾌한 듯이 보이는 눈매기에, 길을 걷고만 있어도 동급생 여자들이 무서워해서 과자를 헌납하곤 해서 항상 배불렀다고 하던가.
아마, 눈매가 나쁘다는 디메리트를 신경 쓰지 않고 살았던 것이 스바루의 어머니일 것이다.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딸이, 그 어머니 정도로 관대할거라곤 생각하기 어렵다.

 “우리 집안의 눈매는 유전율이 엄청나니까 말이야. 엄마 쪽 할아버지도, 그 위의 할아버지도 눈매가 나빴던 것 같아. 그러니까, 아마 꽤 높은 확률로 유전되겠지.”
 “그러면, 남자 아이가 좋은가요?”
 “그래도 내가 살던 곳에선 첫째는 딸, 둘째는 남자라는 말도 있으니까 말이야. 첫째가 여자 아이에 둘째가 남자 아이라는 게 키우기 좋다던가 하는 기억이 있는데.”
 “정말이지. 그럼 어느 쪽이 좋은 건지 모르겠잖아요.”

결론이 갈팡질팡하는 스바루에게 렘이 화난 듯이 볼을 부풀린다. 그 뺨을 손가락으로 찔러서 공기를 뺀 뒤에 스바루는 웃으며,

 “그러니까, 어느 쪽이던 좋다는 얘기야. 아니, 어느 쪽이던 좋다고 해도 적당하게 뱉은게 아니라, 둘 다 사랑할 거라는 얘기라고.”
 “스바루 군…….”
 “여자 아이라면, 나는 뭐 금이야 옥이야 하면서 귀여워하고 응석 받아주면서 딱 달라붙어서 키우겠지. 크면 아빠랑 결혼할래! 라는 말을 중학생 정도까지 하게 하는 게 목표야. 중학교까지 딸에게 좋아한다는 말을 듣는다면, 그야말로 아버지로서 승리했다는 거지. 아내가 이렇게 귀여운 시점에서 이미 승리자지만.”

흐르듯이 나오는 찬사에 렘이 얼굴을 붉힌다.
그 렘의 붉어진 얼굴을 사랑스러운 듯이 바라보며, 스바루는 손가락을 세우고,

 “그리고 남자 아이가 태어난다면, 아버지는 아들에게 있어서 최고의 벽이고, 최고의 호적수이자, 최고의 악우라는 우리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전통을 실천해야지. 항상 용서 없이 부딪히는 관계이자, 몇 번이고 자식을 벼랑 끝으로 떨어뜨리는 사자처럼 키울 것이다! 아아, 그것도 재밌겠어!”

그러니까, 라고 스바루는 말을 잇는다.

 “렘은 걱정하지 말고, 건강한 아이를 낳는 것만 생각해줘. 괜찮으니까 안심하고. 내가 엄청 사랑하는 네가, 나를 사랑해서 생긴 아이라고. 내가 사랑하지 못할 리가 없잖아?”
 “──네, 그렇네요.”

스바루의 거창한 액션을 보며, 렘은 행복하다는 듯이 입술에 웃음을 띠운다. 그 미소를 보자, 스바루는 근지러움을 참지 못하고,

 “렘.”
 “────.”

이름을 부르고 얼굴을 가까이 한 것만으로, 렘은 바로 무엇을 원하는지 알았다.
그대로, 눈을 감는 렘에게 얼굴을 대고, 스바루는 그녀와 입술을 겹친다.

부드러운 감촉에, 어딘지 머뭇머뭇하며 뻗어오는 혀.
사랑스러운 듯이 서로 얽히며, 스바루는 계속 그녀의 몸을 안고 있었다.


※※※※※※※※※※※※※

 “오늘도 하루도, 힘들었다……!”

자기 전에 들어온 서류 작업을 끝내고, 스바루는 팔을 돌리며 방으로 돌아간다. 저녁 전에 끝나야 했을 업무가, 일부 관계부서의 처리가 늦어져서 남아있던 일들이 쏟아진 것이다. 덤으로, 당일에 그것을 처리해 달라는 무리한 일이었다.

 “진짜로, 내가 좀 우습게 보이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노’라고 말할 수 없는 일본인의 기질이, 여기기와서 독이 된 건가……좀 거절도 해둘걸 그랬나.”

하지만, 그래서 문제가 일어난다면 곤란한 사람이 잔뜩 나오겠지.
그렇게 생각하면, 좀처럼 개인 사정으로 ‘싫어!’ 라고 말하는 것도 용기가 필요하다. 그런 소시민적인 부분은 입장이 바뀌어도 좀처럼 바뀌지가 않는다.
이런 믿음직스럽지 않은 생각을 해대는 왕이라니, 정말로 괜찮은걸까.

 “뭐, 이제 와선 어쩔 수 없지. 이미 되버린 거니까. 약한 소리를 늘어놔봤자, 들어줄 상대도…….”
 “그럼, 내가 그 스바루의 늘어놓을 상대가 되어 줄게.”

혼잣말을 중얼거리면서 방의 문을 열고, 하루동안 쌓인 피로의 원인과 이후의 방안을 생각하던 스바루. 그를 맞이한 것은, 열린 창문의 가장자리에 앉아서, 밤바람에 은발을 휘날리던 소녀다.
그녀의 은색의 머리가 달빛에 빛나며, 스바루를 돌아보고 웃는다.

 “어서 와. 엄─청, 고생했어.”

그리고 들리는 위로의 말에, 스바루는 말을 잃는다.
그녀가 밤에 찾아온 것이 뜻밖이었던 것도 있지만, 그 미소의 치유효과가 엄청났던 것도 있다. 단지, 그것보다 큰 요인이 있다면,

문득, 눈동자 속에서 차오르는 감정. 뜨거운 것이 차올라서, 스바루는 생각지 않게 흘러나올 것 같은 것을 참으려고 얼굴에 소매를 가져다 댄다.
얼굴을 더니 갑자기 울어버리면 에밀리아가 당황할 것이다. 그러니까, 열심히 그것을 참으려고 해 보지만, 도저히 멈추질 않는다.

 “젠장, 어라, 뭐지……에, 에밀리아땅이, 와 주었는데…….”
 “스바루.”
 “괘, 괜찮아. 아무렇지도 않아. 완전 멀쩡하다구. 금방, 이런 것 쯤은……잠깐, 뭔가 오해를…….”
 “────.”

변명을 늘어놓으며, 스바루는 에밀리아에게서 얼굴을 돌린다. 이 한심한 얼굴을 에밀리아 에겐 보여주고 싶지 않다. 아니, 다른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다.
스바루가 이런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이젠 누구에게도 할 수 없다.
당연하다. 지금 스바루의 위치에 오르기 위해 밀어낸 얼굴을 생각하면, 그런 것이 가능할 리가 없다.

그녀들의 바람을 밀어내고, 그럼에도 이 자리에 서 있는 스바루를, 그녀들은 한 점 탓하는 말도 없이, 그렇기는 커녕 오히려 사랑을 보내주고 있는 것이다.
그 것이 얼마나 힘을 보태주고 있는지. 그것만으로 충분할 텐데.

 “나, 나는…….”
 “아아 정말, 진짜 스바루는 고집쟁이에 뒤틈바리 라니까.”
 “──아.”

허세를 뱉던 입을, 에밀리아의 손가락 끝이 멈춘다. 그대로 눈을 크게 뜬 스바루의 바로 앞으로 다가온 에밀리아가 발돋움해서──입을 맞춘다.
충격에,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은 착각이 올 정도였다. 마비될 것 같은 감각이 혀끝에서 부터 전신을 달렸고, 지금 이 순간까지 복받치고 있던 것이 의식의 저편으로 날아가 버렸다.

입술을 떼고, 소녀는 그대로 눈을 깜빡이는 스바루의 머리를 가슴으로 끌어안았다. 스바루의 안은 손이 느긋한 리듬으로 등을 두드리며, 아이를 어르듯이 쓰다듬는다.

 “힘들어?”
 “……아니, 아직 멀쩡해.”
 “도와줬으면 해?”
 “좀 더, 힘내 볼게.”
 “정말, 진짜로 무리하는 거 아니지?”
 “무리는, 조금 하고 있어. 그래도, 지금이 바로 무리를 할 때라고.”

예전에도, 그보다 더 전에도, 이렇게 그녀에게 위로받은 적이 있었다. 그 때의 스바루는 약한 소리를 흘리다 못해서 눈물과 콧물을 잔뜩 흘리며 에밀리아에게 메달렸다.
그 때의 일을 생각하자 볼이 뜨거워진다. 하지만, 그것은 부끄러워서만 뜨거워진 것이 아니다. 자랑스러운 기분이기도 햇다.

그 때, 자신이 너무도 약해서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던 자신은, 그 때와 똑같이 에밀리아에게 안겨 있으면서도 고집을 부릴 수 있게 된 정도로는 남자다워진 것이다.

 “진짜, 그 때는 남자 아이였지만, 지금은 어엿한 남자고 말이야.”
 “……지금, 뭔가 이상한 생각 하지 않았어?”
 “에밀리아땅, 엄청 좋은 냄새가 난다 싶어서. 이대로, 침대까지 밀어 쓰러뜨려도 돼?”
 “에, 싫어. 목욕부터 해야지, 밖에서 돌아온 참인데…….”

갑자기 평소의 상태로 돌아가서, 안고 있던 스바루에게서 몸을 떼는 에밀리아.
그녀는 손가락을 빗 삼아서 자신의 은발을 빗고는, 반대쪽 손으로 스바루의 시선에서 몸을 숨기듯이 안는다.
그런 행동이 오히려 스바루의 흥분을 돋우는 것을 그녀는 전혀 모르고 있다. 그녀의 그런 면이야 말로 최고의 매력이긴 하지만.

 “게다가, 오늘 밤은 내 차례가 아니잖아?”
 “천만에 말씀, 오늘은 며칠에 한 번 있는 휴일이라고. 가끔은 혼자 자지 않으면 빨리 죽는다는 페리스의 진단으로 몸을 쉬는 날이야.”
 “그럼, 더더욱 나랑 같이 있으면 안되는 거 아니야?”
 “그야 심장이 두근두근대고 숨은 하아하아대고 코는 부히부히거리는 엄청난 꼴이 되겠지만, 그걸 전부 참아내고 에밀리아땅과 같이 이불을 덮고 있는 것 만이라면, 뭐 참기 힘들거 같긴 하지만….”

손가락을 세우고, 조심스러운 자세로 스바루는 에밀리아에게 제안한다.
그 스바루를 의심스럽다는 듯이 에밀리아가 바라보며,

 “스바루……참을 수 있겠어?”
 “우문이군. 나는 한다면 하는 남자야. 그러니까, 안 한다면 안할 수 있다고.”
 “미안, 좀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어.”
 “나도 잘 모르겠는데, 안심해도 되는 남자라는 걸 말하고 싶었어. 그러는 에밀라아땅은 어떤데. 나랑 같이 자는데, 나를 향한 사랑이 폭발하지 않겠어?”
 “아, 그건 저언─혀 조금도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야.”
 “왜 그렇게 강하게 부정하는거야?”

스바루가 미묘하게 상처받은 표정을 짓자, 에밀리아는 ‘그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라며 놀란듯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처음 봤을 때부터 변함없지만, 그녀는 자신의 발언이 스바루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조금 더 생각하고 발언을 해야 한다고 강하게 생각한다.

물론, 항상 그렇게 말하고 있지만 바뀌는 게 없는 시점에서, 앞으로도 얘기해봤자 변하는 게 없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어쨌든.

 “그럼, 그런 연유로 슬슬 휴식 모드에 들어가려고 하는데……에밀리아땅, 나랑 같이 이불을 덮고 뒹굴어주지 않을래?”
 “응……나도 피곤하기도 하고, 오랜만에 스바루랑 같이 있고 싶기도 하고……알았어. 같이 뒹굴어 줄게.”
 “조아써.”

스바루가 내민 손을, 에밀리아가 품위 있는 표정으로 잡는다.
그대로 마치 춤을 에스코트 하듯이 스바루가 손을 당기자, 에밀리아의 몸이 끌려서 가슴에 안겼다. 그렇게 끌어안은 채로, 잠깐의 정적이 흐른다.
그리고 두 사람은 천천히 침대 속으로 들어가서,

 “그럼 잘 자, 에밀리아땅. 꿈속에서도, 나를 찾아 줘.”
 “응, 열심히 해 볼게. ──있지, 스바루.”
 “응─?”
 “……정말 좋아해.”

그렇게 말하고, 베개에 얼굴을 묻어 버려서 에밀리아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빛이 사라진 방 안에서, 스바루는 달빛에 의지해서,

 “에─밀리땅.”
 “아, 잠깐, 스바루, 아까 분명히 참는다고…….”
 “참을 거라고 말했으면 참았겠지만, 생각해보니 그런 말을 한 적 없구나 싶어서.”
 “그거, 순 억지……으응.”

함께 이불에 들어온 순간부터 당연한 결과다.
말을 하려던 입을 입으로 막고, 스바루는 은빛의 소녀를 향한 사랑을 전신으로 표현한다.
처음엔 저항하던 에밀리아도 점차 저항이 약해지고──.

 “정말이지, 스바루는 뒤틈바리.”

라고, 겸연쩍은 듯이 말하고, 밤이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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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우절 기획.
본편에선 절대 실현되지 않을 루트, 하렘 루트.

페트라, 크루쉬, 프리실라, 아나스타시아, 펠트, 렘, 에밀리아 공략.
발상은 ‘왕선 후보를 전부 아내로 맞은 스바루가 왕이 된다. 그런 루트가 있어도 괜찮겠다’라는 생각에서 시작했습니다.
덧붙여서, 본편에선 절대로 실현되지 않을 루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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