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명이 테라토나이트라는 끔찍한 생화학 무기를 뒤집어썼어. 테러였지. 나도 불운한 피해자 중 하나였어. 그 푸른 가스에 노출되자마자 피부가 화끈거리더니 7분만에 전신의 촉각이 사라졌어. 20분 뒤에는 온몸의 피부와 털이 모두 벗겨져서 피투성이가 된 채로 백화점 바닥을 뒹굴고 있었고, 응급실에 실려온지 2시간이 지났을 때는 남은 근육이 전부 역겨운 초록빛으로 물들어있더라.

세계 최고의 의학자들과 생화학무기 권위자들이 다함께 머리를 맞대고 온갖 방법을 강구했어. 부질 없었지. 한나절도 되지 않아 팔과 다리가 썩어서 떨어져 나갔어. 아무 고통도 없었지만, 내 몰골은 끔찍했어. 격리실 침대가 온통 검붉은 색으로 물들어도 난 비명 한 번 지르지 않았어. 성대가 부식되어서 목구멍으로 핏방울과 살점이 떨어지는 바람에 진공청소기를 목구멍에 욱여넣고 있었거든.

부모님은 잠깐 지켜보다가 기절해서 실려나가셨고, 남자친구는 내가 추하게 썩어가는 꼴을 보면서 곁에서 눈물을 흘렸어. 이 모든 악몽 같은 일이 벌어지는 동안 내가 애타게 바랐던 건, 어서 죽고 화장되어서 괴물처럼 변한 모습을 더 이상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 것이었어. 내가 살아날 방법 따윈 없다는 걸 직감했으니까.

이 시간이 더 길어질수록 남자친구와 내 주변 사람들이 날 예전 모습이 아니라, 부패한 초록색 고깃덩어리로 추억하는 일이 더 잦아질 걸 알았으니까. 난 반쯤 소화되다만 메뚜기 같은 꼴로 죽는다는 사실보다, 이 꼬락서니를 한 나를 보면서 시선도 피하지 않고 눈물을 흘리는 녀석의 모습이 더 슬펐어.

불행히도 녀석은 절대 나를 포기하지 않았어. 자랑 같지만, 내 남자친구는 세계적인 제약회사의 상속자였거든. 어중간한 대기업이 아니야. 냉동인간을 소생시키고, 젊음을 회복하는 약을 개발한 엄청난 기업이 이 녀석의 소유였어. 부와 권력을 모두 쥔 사람이었지. 그런 삶을 사는 사람의 자존심과 야심이 얼마나 드높을지 생각해봐.  난 녀석이 아무것도 가지지 않았어도 사랑했겠지만, 녀석은 나를 위해 가진 걸 전부 쏟아부을 기세였어. 실제로도 그러고 있었고.

사흘째 되는 날, 관상동맥이 절반 이상 융해되어서 난 갈비뼈를 열어놓은 채 심장에 관을 꽂고 살아야 했어. 유일한 의사소통 수단은 내 시선을 읽고 글자로 바꿔주는 컴퓨터 장치뿐이었어. 그때쯤에는 말은 커녕 숨도 내 힘으로 못 쉬고 있었거든. 내게 남아있던 삶에 대한 집착은 발견하는 족족 허공으로 사라져갔어.

남자친구가 열심히 책을 읽어줬고, 태블릿으로 내가 좋아하던 유튜브 채널을 켜줬지만, 내 귀에 가장 깊게 내리꽂히는 건 의사들이 넌지시 비용을 청구하는 소리뿐이었어. 내가 백번을 살아도 다 벌지 못할 금액이 한 시간마다 나를 살리기 위해 남자친구의 계좌에서 나가고 있었어. 연인이 나를 위해 비현실적인 금액을 쓸 때마다 내가 느꼈던 건 사랑이었는데, 그 때 내가 느낀 건 광기와 절망이었어.

우린 말다툼을 했어. 아주 느린 언쟁이었지. 내가 겨우 안구를 굴려서 '죽여줘'라는 단어를 쓰면, 아니, 대략 '죽ㅇ'까지 완성하면, 남자친구는 인상을 쓰면서 기계를 저만치 치워버렸어. 한 여덟 번은 그랬던 것 같다. 한 번은 그냥 '죽은 먹을 수 있겠지'라고 쓰려던 거였는데.

아무튼 그때마다 녀석은 내 몸의 아직 성한 부분에 조심스레 장갑 낀 손을 올린 채로 조곤조곤 내가 살아야하는 이유를 설명했어. 내가 얼마나 소중한지, 자기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이 일이 끝나고 나면 우리가 어떻게 축하할지 한참을 떠들어댔어. 난 아무리 사랑받아도 비참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어.

사흘이 더 지나서 왼쪽 안구가 완전히 융해되었을 때, 난 녀석에게 부탁했어. 기계를 치우지 말라고. 내 유일한 의사표현 수단을 빼앗지 말아달라고. 그리고 거울을 가져오라고 했어. 녀석은 의외로 거절하지 않았어. 거울 속의 나는 무덤 속에서 썩어가는 시체보다 끔찍한 몰골이었어. 마치 분쇄기에 넣었다 뺀 고깃덩어리들을 뭉쳐서 만든 덩어리 같더라. 난 그 버러지 같은 꼴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했어. 용기를 얻기 위해.

이제 곧 하나 남은 눈알도 사라질 걸 알고 있었기에, 나한테는 시간이 많지 않았어. 나는 아주 조심스럽게 고른 말들로 내가 왜 죽어야 하는지 녀석에게 설명했어. 설령 이 끔찍한 생화학 무기가 해독된다고 하더라도, 테레사 수녀마저 시선을 피할 이런 더럽고 추한 몰골로는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고. 물론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이유도 있었지. 난 사랑하는 사람의 파멸이 되고 싶지 않았어.이 녀석이 바람이라도 피웠으면 했지.

그렇지만 녀석은 눈물을 흘릴 뿐이었어. 눈이 벌게져서는 열변을 토하더라. 내 아름다움은 외면뿐만 아니라 내면에 더 그득하게 있었으며, 자기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왜 모르냐고. 몰라서 그런 말을 했겠니. 바보 같은 놈.

그리고 이때가 바로 내가 실수를 저지른 순간이었어. 너무 화가 났거든. 난 '모르겠다'고 대답했어. 정말로 날 사랑한다면 그냥 못 볼 꼴 그만 보고 얌전히 요단강인지 스틱스강인지 좀 건너게 해주지 왜 이렇게 질척거리냐고 쏘아붙였어. '지금 죽으면 난 그냥 테러희생자야. 그런데 살아남으면 앞으로 세계 최악의 추녀로 살아야 해. 넌 내가 평생 손가락질 당하길 원하니?' 그게 내가 녀석에게 한 마지막 말이었어. 아,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조금 전까지만 해도 칭얼거리던 녀석이 눈을 흡 뜨더니 날 노려봤어. '증명할게'라는 말 한마디만 하더니 의사들을 불러오더라. 잠시 뒤 난 뭘 하는 거냐고 물어볼 기회조차 박탈당한 채 마취가스를 들이마시고 잠에 들어야 했어.

사실 그 때는 남자친구가 자존심이 상해서 날 죽이려는 줄 알았어. 희망했던 결말하고는 좀 많이 다르지만 이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지. 한 가지 아쉬웠던 건, 녀석을 닮은 꼬맹이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지 보지 못하고 죽는다는 거였어. 근데 말했잖아. 마취가스였다고. 안락사용 질소가스 같은 게 아니었어.

눈을 뜨기 전에 의식이 먼저 돌아왔어. 잠든지 불과 3분이나 5분 정도가 지난 것 같았지. 난 아주 잠깐 졸았을 뿐이니까. 눈을 떠보니 남자친구는 그 사이에 옷을 갈아입고 있었어. 나도... 옷을 입고 있었고. 아직도 기억나. 그 때 처음 느낀 건 아주 포근하고 시원한 섬유의 감각이었어. 촉각이 다 사라졌는데 내가 무언가를 느낄 수 있었던 거지. 코끝에 감도는 건 내 몸이 썩어가면서 나던 피비린내가 아니라 향긋한 멜론 냄새였고, 내 눈도 두 개였어. 모든 게 아주 선명하게 보였지. 마치 새 눈이라도 받은 것처럼.

그리고 녀석은, 내가 사랑했던 사람은 너무나 눈부시게 아름다웠어. 나한테는 팔이 없었지만, 녀석이 먼저 날 안아줬어. 죽길 원했지만, 살아남았다는 걸 깨닫자마자 왈칵 눈물이 솟구쳤어. 난 녀석에게 안긴 채로 엉엉 울었어. 행복이 눈에 보이고 만져지는 순간이었어. 그래. 너무 행복했지.

나와 녀석이 어디에 있는지 둘러보는 건 그 다음이었어. 여기서부터는... 말하기가 힘들구나. 짧게 얘기하지. 내가 수십억 명 있었어. 어디로 시선을 돌려도 '사람'은 전부 팔과 다리가 없는, 썩은 오이피클 같은 모양새였어. 공중에 뜬 의자 따위가 '인간'과는 억만 광년 동떨어진 초록색 고기반죽 같은 것들을 실어날랐지. 안구는 한 쪽뿐이고, 코가 녹아내려서 입으로 숨을 쉬어야 하고, 시원함과 따뜻함이 뭔지도 모른 채 죽느니만 못한 신세로 사는 자들뿐이었어.

세상이 왜 이런 꼴이 되었는지 한 때 내 연인이었던 자에게 물었을 때, 놈은 자랑스럽다는 듯이 활짝 웃었어. 설명하는 내내 즐거워했지. 나는 냉동인간이 된지 270년만에 깨어났고, 세상의 모든 국가는 하나로 통합되었으며, 최고 통치자는 단 한 명이라는 걸. 무엇보다, 나와 녀석을 제외한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전부 태어나자마자 테라토나이트를 뒤집어써야 한다고.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거냐고 물으니, 그게 법이더랬지. 세상을 불과 철로 통일한 위대한 정복자가 만든 새 규칙이랬어.

난 한동안 공포에 질려있었어. 미래는 내가 상상했던 것과 달리 너무나 끔찍했어. 겨우 충격을 이겨내고 난 벌벌 떨면서 물었어. 대체 정복자라는 미치광이는 왜 하필 그런 끔찍한 법을 만들었냐고. 놈은 다시 한 번 활짝 웃으며 대답했어.

 "감히 내가 사랑하는 사람한테 추하다고 손가락질 하는 놈이 있으면 안되니까."

놈은 나를 다시 끌어안았고, 귓가에 애정을 속삭였어. 난 마주 안아줄 팔이 없었지만, 설령 있었더라도 놈의 털끝 한 올 건드리지 않았을 거야.

난 조용히 결심했어. 나의 사랑이 세상을 정복했으니, 이제 내 증오가 세상을 되찾을 거라고. 

괴담, 로맨스 BL 등등 1차 저작물 생산을 주로 합니다. 싸지본 말고 세이지본이라고 읽어주세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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