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재

타이탄의 미네르바가 탑의 활주로에 도착하자 지상조업 직원들이 방향 지시봉을 이리저리 흔들었다. 타이탄은 우선 착륙을 고스트에게 맡겨놓고 차창 너머 저 멀리 대기중인 의료팀을 확인했다. 도착하기 전 관제탑에 부상당한 수호자가 동행중이라 언질을 넣어 둔 덕분이었다. 활주로에 임시로 비행선이 멈춰서는 동안 타이탄은 화물칸 입구를 열기 위해 안전벨트를 풀고 조종석에서 일어섰다. 그는 아래층으로 내려가 입구 근처에 조종 패드를 열고 시퀀스 버튼을 눌렀는데, 뒷문이 열리기 시작하자 그제서야 뒤를 돌아보았다. 거기에는 임시 들것에 움직이지 못하도록 잘 묶어 놓은 수호자와 그 위에 올려놓은 고스트가 있었다. 둘 다 활력신호는 보통이었으나 미동도 하지 않는다. 타이탄은 잠시 그를 내려다 보았다. 그는 저 각성자의 얼굴을 알고 있었다. 그때 화물칸 입구가 열리면서 미네르바 안으로 의료팀이 걸어들어왔다. 

“이 워록입니까?”

“네.”

그들은 워록을 의료용 들것에 옮겼다. 그 중 책임자로 보이는 사람이 와서 묻는다. 

“무슨 일이 있었던거죠?”

“저도 잘 모르겠네요.”

“아, 혹시 같은 팀 사람이 아니었던 겁니까?”

“네…그래도 저 수호자 어떻게 됐는지는 알고 싶은데, 연락을 어디로 받으면 될까요?”

“어차피 데려오신 분이 보호자 등록을 해주셔야 합니다. 여기, 여기 사인하시구요.”

“아, 네…….”

타이탄은 책임자가 내미는 패드에 사인을 마치고 그의 고스트와 함께 비행선에서 내렸다. 저 멀리 워록이 실려가고 있었고, 그는 잠시 그 장면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자동 유인장치가 비행선과 연결되고 격납고로 옮겨지는 모습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저 멀리 케이론 헬멧을 옆구리에 낀 엑소 워록이 홀리데이 갑판장에게로 걸어가는 모습이 눈에 띄였다. 그는 출발 직전으로 보였는데, 홀리데이 갑판장은 워록에게 필요한 물건을 주면서 말했다. 화만 내다 죽진 마. 그 옆에서 임무에 나가기 전 모여있던 지원팀이 저들끼리 떠드는 소리도 들렸다. 우리 할머니가 옛날에 어떤 워록에게서 꽃을 받았는데, 50년이 지난 지금도 썩지 않고 싱싱해. 신기하지? 타이탄은 그쪽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 그때 고스트가 말했다.

“수호자.”

타이탄은 그의 고스트가 뭘 하자는 것인지 알았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고스트와 함께 탑에서 가장 전망이 좋은 곳으로 올라갔다. 아래편에서는 샤크스경이 어린 타이탄의 질문에 하나씩 대답을 해주는 소리가 들려오는 곳이었다. 이곳에서는 여행자가 아주 잘 보인다. 수호자는 자신의 고스트가 여행자를 잠시 바라볼 수 있도록 내버려 두었다. 그는 무릎에 내려앉은 고스트가 하는 일들을 관찰한다. 작은 동반자는 자신의 출력을 낮춘다. 온 몸의 긴장을 풀고 인터페이스의 빛을 조절한다. 그는 여행자의 빛을 느낀다. 타이탄은 그의 바로 옆에 있는 기둥에 머리를 기대고 그도 함께 여행자를 올려다 보았다. 그는 자신이 데려온 워록에 대해 생각한다. 아주 어렸던 시절, 첫 임무에서 그에게 말을 걸어주었던 수호자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그는 워록이었지. 그도 각성자였어. 어떤 얼굴이었더라? 그때 그는 두뇌 업링크가 가능한 헬멧을 쓰고 있었다. 그는 문득 주머니에서 두동강난 오큘러스 솔을 꺼냈다. 그걸 내려다보고 있는데 문득 고스트의 눈이 어느새 이쪽을 보고 있음을 깨달았다. 타이탄은 잠시 자신의 고스트를 내려다 보다가 이렇게 말했다.

“그 사람이 맞지?”

고스트는 대답하기 싫은 듯이 잠시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의 타이탄이 의안으로 바꿔야만 했던 왼쪽 눈을 힐끔 보고서 마지못해 대답했다.

“맞아요.”


-


정신이 영원히 표류한다.

워록은 그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가 느끼기에 정신이란 어디까지나 표류하거나 부유하는 것이 아닌 뿌리내리는 것이었다. 뿌리는 육체라는 흙을 오랜 시간을 들여 움켜잡고 놓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견고한 힘이 자리잡으면 정신은 뜯어낼 수 없는 강력한 무기가 된다. 

하지만 뿌리부터 썩어들어가면 어떻게 하죠? 

그건 고스트의 목소리였다. 고스트는 속삭였다. 장면이 사라지면 두려움이 와요. 두려움이 오면 웅크리고 죽는거예요. 아이코라 레이의 연구에서 수호자들 중 85%는 청력 감소를 경험했지만 16%는 총성이 증폭되어 들리는 경험을 했다. 어떤 상황에서 뇌가 시력을 마비시키고 청력을 강화시킬까? 아이코라 레이는 어두운 곳에서 이런 현상이 벌어진다고 대답했다. 이것 역시 뇌가 두드러진 자극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인데 어둠 속에서 두드러진 자극은 소리다. 

수호자들은 어둠과 흔하게 마주친다. 어두운 굴 속으로 기어들어갈 때도 있으며 조명이 모조리 나간 드레드노트에서 적을 찾으러 다녀야 하는 때도 있다. 고스트를 이용해 불을 켤수도 있지만 전투상황에서 고스트를 꺼내는 것은 위험할뿐더러 그랬다간 적에게 표적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어둠 속에서 총격전이 벌어지면 총구에서 나오는 불빛이 유일한 시각적 자극인 경우가 많다. 혁신적인 사격 지도자 케이드-6는 아이코라 레이의 부탁에 이 문제에 관해 광범위한 연구를 도왔다. 케이드-6와 아이코라 레이는 숙련된 헌터를 어두운 방에 데려가 쌍방형 페인트탄 훈련을 하게 했는데, 헌터가 방에 들어가는 순간 방탄 조끼에 한두 차례 총격을 가했다. 거의 모든 사례에서, 헌터들은 총소리를 듣고 대응사격을 했다. 

소리를 듣고 공격자의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은 박쥐만이 가능하다. 어두운 곳에서 공격자를 정확하게 조준하기 위해서는 총구에서 나오는 불빛을 겨냥하는 것이 상책이다. 이 점을 교육하기 위해 케이드-6는 헌터들을 어두운 방에 데려가 수차례 화약 추진 방식의 페인트탄을 발사해 불빛이 어떻게 보이는지 알 수 있게 했다. 일단 헌터들이 정신적으로 훈련에 적응되면, 어두운 방에 들어가 페인트탄에 맞는 경우 총구 섬광을 향해 정확하게 조준할 수 있게 되었다. 이 훈련을 받은 뒤부터 헌터들은 야간전투 상황에서 훨씬 향상된 기량을 발휘했다. 

이렇게 때때로 수호자들은 상황별로 어떤 감각이 가장 필요한지에 따라 시력과 청력 기능이 전환되었다. 이런 사실은 총격전 상황에서 수호자의 85%가 스트레스성 난청을 경험하고 16%는 소리 증폭을 경험한다는 아이코라 레이의 결론을 뒷반침해주었다. 그런데 두 수치를 합하면 101퍼센트로, 일부 수호자는 한 차례 총격전 상황에 두 현상을 경험하기도 했다. 그것이 워록이 겪은 일이었다. 


이오에서 워록과 헌터는 굴복자 무리를 소탕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이 인간 헌터는 이전에도 임무로 한 번 만난 적 있었던 사이로, 자기 고스트와 아주 사이가 좋고 성격이 유들유들했다. 그 수호자에 그 고스트라고, 헌터의 고스트도 비슷한 성격으로 대하는 게 아주 편안했다. 이오에 도착한 뒤로는 참새로 이동하다가 차량진입이 어려운 지형을 마주하여 도보로 걸었다. 그러다가 그런 대화를 했다.

“이오는 워록의 정신적 고향이라면서?”

“그렇습니다.”

워록은 저 앞에서 먼저 길을 스캔하고 있는 두 고스트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헌터는 중력자 몰수 안에서 흐흐 하고 웃는 소리를 냈기 때문에 워록은 그를 의아하게 돌아보았다. 

“미안해. 아무것도 아니야.”

“뭡니까?”

“별 거 아니야. 이오는 아름답잖아. 이런 곳이 고향이면 참 좋을 것 같아서.”

워록은 잠시 헌터를 보다가 먼 구간을 뛰어야 했기에 우선 도약을 하면서 그들이 착지해야 하는 목표지점을 바라보았다. 그는 두 번에 걸쳐 천천히 하강한다. 그는 생각한다. 헌터가 어디에도 묶여있지 않은 것 처럼 자유로워 보이는 이유는 그들이 묶일 수 있는 곳이 어디에도 없기 때문일지 모른다. 그때 누군가 그의 머리 바로 뒤에서 속삭인다. 착각하지 마. 워록은 놀라서 뒤를 돌아보았지만 아무도 없다. 그때 총 소리가 들렸다. 굴복자의 비명도.

“워록!”

워록은 본능적으로 환한 햇빛 아래에서 벗어나 오른쪽 바위로 몸을 날렸다. 그 순간 그의 시야각에 들어온 장면은 고스트가 굴복자의 손에 붙잡혀 일그러지는 것이다. 워록은 순간 그것이 자신의 고스트인 줄 알았으나 비명소리는 헌터에게서 들렸다. 고통의 비명을 지른 헌터는 갑자기 미친듯이 돌진하기 시작했다. 워록은 이쪽으로 쏜살같이 날아오는 자신의 고스트를 본다. 그는 필사적으로 자신의 동반자를 움켜잡으며 그가 빛으로 스며들 때 안도한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그는 헌터의 머리를 뚫는 굴복자의 에너지탄을 보았다. 그리고 세상이 순식간에 검어졌다. 무언가 해를 가린 것이다. 

굴복자의 총을 봤는데, 그것 밖에 보이지 않았다. 총성은 들리지 않았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워록은 당황해서 움직이려 애썼지만 굴복자가 쏜 총 한발이 방탄조끼 아래에 맞아 척추에 부상을 입었다. 돌아서서 도망가려 했지만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다. 왜 그런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대신 팔을 들려고 애를 썼다. 팔을 튀기듯 해서 산탄총을 들려고 했지만 말을 듣지 않았다. 그는 헐떡거리고 있었다. 고스트가 다급하게 말했다. 진정해요, 수호자. 진정해요! 그러나 워록의 머릿속에는 온통 그 장면 뿐이다. 굴복자의 손에 산산조각이 나는 고스트. 그는 공황상태에 빠져 결국 미친듯이 아무렇게나 총을 쏘기 시작했다. 그러나 무언가 그의 온 몸을 물어뜯고 있었다. 그는 뜯어먹힌다. 완전한 죽음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하다. 눈도 귀도 멀어버린 채 마지막 수단으로 그는 신성폭탄을 토해낸다. 정신을 잃기 직전에 문득, 그 시체들의 구덩이에서 몇 달 동안 있어야만 했다는 어린 타이탄이 기억났다. 그리고 다시 죽음이 찾아온다. 


깨어난 다음에는 무전에서 자발라의 어떻게 되었느냐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의 주변에는 굴복자가 죽을 때 남기는 검은 액체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그는 주저앉은 채 헬멧을 벗어 던지고 저 멀리 부서진 고스트와 죽은 헌터를 보았다. 견딜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호자는 왜 다시 살아날까? 내 감각은 마치 죽은 자의 것 같은데, 산 자와 죽은 자는 어떻게 구분하지? 그 엑소 헌터가 중얼거렸던 말이 떠올랐다. 늪 인간. 우리들은 모두 늪 인간에 불과하다. 워록은 문득 저 멀리 굴복자 한 마리가 비틀거리며 걸어가는 모습을 보았다. 무전에서는 자발라가 시끄럽게 떠들어댄다. 워록은 자기 어깨에 붙어 있던 무전장치를 뜯어내 부수고 굴복자가 가는 방향을 보았다. 놈은 처음 보는 동굴로 들어가고 있었다. 무언가가 저것을 쫓아가라고 속삭였다. 워록은 속삭임에 동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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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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