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루른 회지 'The truth about S' 샘플입니다. (A5 / 약170p. / 14,000원 / 성인물)

하나의 장편글로 파이크술루, 커크술루본즈의 커플링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기존에 웹 연재했던 내용과 조금 달라진 부분이 있어서 샘플을 추가로 올립니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블로그에 올라와 있는 동명의 글 1~5편을 확인해 주세요.

샘플은 기존 업로드 분량에서 수정된 부분과 그 뒷부분 일부를 포함합니다.

참고로 웹 연재 분량(1~5편)은 전체 분량의 1/3 정도 됩니다.


본 샘플에는 수위 부분이 들어있지 않아서 전체 공개로 올리나

회지는 성인본으로 구매자의 신분증 확인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술루른 온리전 선입금 및 통신판매 구매 폼 : http://naver.me/5cF40nfp)


대사 사이의 공백 등 줄 띄움은 웹상에서 가독성을 좋게 하기 위한 편집으로

책에는 들어가지 않습니다.







술루는 매일 저녁 늦도록 사무실을 지켰고, 밤이 되면 파이크의 침상 곁에 앉아 자리를 뜨지 않았다. 코언의 요청에 직원들은 파이크의 병실에 술루가 쓸 침대를 하나 더 넣었다. 술루는 일하는 시간을 제외하고서는 항상 파이크의 병실에서 지냈다. 보스는 위독하고, 언더보스는 집에 가지 않고 보스의 곁을 지키고 있었기 때문에 의사와 간호사들도 교대 근무 체제에 돌입했다. 술루는 며칠 새에 부쩍 수척해졌다. 의료진의 잔소리에도 술루는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않았다. 맥코이는 몇 번이나 술루를 억지로 침대에 눕히고 수액을 주사했다. 그 앞에 버티고 서서 수액이 들어가는 동안만이라도 술루가 눈을 감고 휴식을 취하기를 강요했다.



3주가 지나는 동안 파이크는 한 번도 의식을 차리지 못했고, 상태도 안정되었다 위독했다가 들쭉날쭉 했다. 맥코이가 야간 교대를 하고 병실에 들어갔을 때 술루는 파이크의 침대 옆에 앉아서 양손으로 파이크의 한손을 감싼 채 침대에 엎드려 있었다. 맥코이가 나직하게 부회장님, 하고 불렀지만 잠이 들었는지 술루는 반응하지 않았다. 자면서도 꼭 쥐고 있는 손을 보니 심사가 뒤틀렸다. 맥코이가 술루를 두 번 더 불러 봤으나 술루는 미동도 않았다. 맥코이가 술루의 어깨를 가볍게 두들기니 술루가 느릿하게 몸을 일으켰다. 파리한 얼굴의 눈가가 붉었다.


“좀 누워서 주무십시오. 이러다 쓰러지시겠습니다.”


술루는 말없이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맥코이는 그런 술루의 몸을 잡아 일으키며 재촉했다. “제가 매시간 살피러 올 테니까요.” 맥코이가 어르자 술루는 마지못해 자신의 침대에 누웠다. 맥코이는 술루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파이크를 바라보다 눈을 감고 잠이 드는 것을 지켜보았다.


맥코이는 매시 정각에 파이크의 상태를 살폈다. 새벽 네 시, 조금씩 나빠지던 수치가 확 떨어져 있었다. 맥코이는 급히 주사기에 약물을 채우고 파이크의 팔에 꽂힌 호스를 통해 투여했다. 원래대로라면 한 시간 안에 상태가 호전되어야 했다. 두 시간이 지나는 동안 약간 좋아지긴 했지만 수치가 정상 범주로 들어오지 못하고 있었다. 왜지? 뭐가 잘못된 거지? 파이크가 쓰러진 후 내내 신경이 곤두선 상태로 있었더니 머리가 평소처럼 돌아가지 않았다. 속이 울렁거리고 시야가 흐렸다. 맥코이는 제가 원하는 숫자를 보여주지 않는 의료 장치를 가만히 노려보며 정신을 집중했다. 문득 과거의 한 장면이 머릿속을 스쳤다.


“…이렇다가 갑작스러운 응급 상황이 되었을 때 50세 이상 만성 저혈압 환자의 경우는 정량의 1.5배를 투여해야 해. 이거 안 지켜서 큰일 나는 경우 많으니까 꼭 명심해.”


대학 병원에서 일하던 시절 교수님이 당부하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투여시기를 놓치면 끝장이니까, 교수님은 진지한 얼굴로 레지던트들에게 재차 말했다. 사색이 된 맥코이는 파이크의 그간 의료 기록을 확인했다. 일상생활에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으나 파이크의 평상시 혈압은 정상 수치보다는 확실히 낮았다. 머리가 텅 비었다. 레너드 맥코이 잠을 못 자더니 네가 미쳤구나. 어떡하지? 지금이라도 되돌릴 방법이 있을 거야. 맥코이는 허둥지둥 약병들을 뒤지다 문득 움직임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파이크를 바라보았다. 처음 회의실에서 파이크를 만났던 날을 떠올렸다. 제 인생이 바뀌게 된 그 날. 전혀 원치 않았던 이런 삶으로 자신을 처박은 존재가 바로 눈앞의 그였다. 시선을 옮겨 다른 침대에서 자고 있는 술루를 보았다. 파이크의 손을 간절한 듯이 붙잡고 있던 술루의 모습. 붉었던 눈가. 멍으로 얼룩진 다리. 군살 하나 없이 매끈한 허리 라인. 자신을 향해 부드럽게 미소 짓던 얼굴.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눈을 질끈 감고 양손으로 얼굴을 쓸었다. 심한 스트레스와 누적된 피로로 피부가 거칠었다. 맥코이는 어둠 속에서 자신을 질책하는 파이크의 청회색 눈동자를 보았다. 술루가 나쁜 꿈을 꾸는지 괴로운 얼굴로 무어라 중얼거렸다. 길게 한숨을 내쉰 맥코이가 침착하게 약물을 섞어 파이크에게 주사했다.


“닥터 맥코이, 저 왔습니다. 이만 가서 좀 쉬세요.”
“지금 회장님 상태가 안 좋습니다.”
“정말요? 갑자기?”


교대하러 들어온 의사가 맥코이의 말에 깜짝 놀라며 수치를 확인하고 차트를 들었다.


“네 시 쯤 갑자기 수치가 떨어졌고요…”
“어, U를 70cc 투여했는데도 안 돌아왔다고요? 왜지?”


제 동료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난색을 보이자 맥코이는 속으로 안도했다. 무의식중에 이대로 파이크의 상태가 나아지지 않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스스로에게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술루가 잠에서 깼는지 이쪽을 향해 눈을 천천히 깜빡이고 있었다. 두 의사가 난감한 표정으로 머리를 맞댄 모습을 보고 안 좋은 일이 벌어졌음을 느낀 술루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왜 그래? 설마… 아니지? 응?”


절망스러운 낯으로 두 사람을 채근했으나 술루가 원하는 기적은 끝내 일어나지 않았다.


* * *
이어지는 내용이 아닙니다.

* * *



디저트를 다 먹은 후, 웨이터를 불러 계산까지 끝낸 맥코이는 식사가 끝났다는 아쉬움보다 지금 이 순간이 너무 행복해 견딜 수 없었다. 앞으로 이런 시간이 종종 있어주기만 한다면 인생에 더 바랄 것이 없을 것만 같았다.


“일어나실까요?”
“우리 한잔 더 하러 가자. 이 근처에 괜찮은 와인 바가 있거든.”
“어어…….”


예상치 못한 술루의 2차 이야기에 맥코이가 선뜻 답하지 않고 어물거렸다.

“싫어?”

술루가 의외라는 듯 한쪽 눈썹을 들고 물었다. 맥코이가 펄쩍 뛰며 강하게 부정했다.
“아뇨, 싫다니요! 오늘 보스가 술을 너무 많이 드시는 건 아닌가 해서… 어, 아직 컨디션이 완전히 돌아오진 않았으니…….”


술루는 빨리 결정을 내리라는 듯 여전히 눈썹을 든 표정으로 가만히 맥코이를 바라보았다. 맥코이가 크게 고개를 끄덕이고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시죠, 와인 드시러.”


저 혼자 우물거리다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결론을 내린 맥코이 때문에 술루는 웃음을 터트리며 따라 일어났다. 술루를 따라 두 블럭을 걸어 도착한 와인 바는 아는 사람만 올 수 있는 곳인지 간판이 없었고, 밖에서 안을 들여다 볼 수도 없는 지하에 있었다. 각 테이블은 널찍하게 떨어져 있었고 시끄럽지 않은 재즈는 적당히 말소리를 숨겨 주었다.


“맥코이, 자네는 결혼을 했었잖아.”

“아, 네. 그랬죠…….”


맥코이가 그런 과거가 있었다는 사실이 새삼 생각났다는 듯 한 번 눈이 커졌다가 먼 곳을 응시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왜 이혼한 거야?”
“음, 왜였더라… 아, 생각났다. 대학 병원에서 일할 때 엄청 바빴거든요. 아내는, 아니 전 부인도 같은 병원 의사였는데 전공이 달라서인지 제가 훨씬 바빴어요. 수술도 10시간을 넘기기 일쑤였고.”
“바빠서 사이가 나빠졌어?”


술루가 옆으로 고개를 갸우뚱 기울이며 물었다.


“전 부인은 아기를 갖고 싶어 했는데 제가 바쁘고 스트레스가 심해서 그랬는지 안 생겼어요. 의학적으로는 둘 다 문제가 없었는데… 시험관도 시도하고, 그러다 지쳐버렸죠. 그게 생각보다 되게 힘들거든요.”
“흠…….”


술루는 고개를 느리게 끄덕거리면서도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을 했다.


“전 부인을 사랑했어?”


술루의 질문에 맥코이가 아득한 기억을 더듬었다.


“사랑했죠. 그렇다고 생각했어요.”


술루는 여전히 모르겠다는 표정이었지만 맥코이는 술루를 이해시키기를 포기했다. 어차피 사랑하고 헤어지는 일은 당사자가 아니면 알 수 없는 감정이다. 심지어 결혼도 안 해 본 사람이 이혼한 심정을 어떻게 이해하겠는가.


“보스는…”
“응?”
“앗, 아닙니다.”


맥코이는 저도 모르게 술루의 연애사를 물어보려다 흠칫 놀라 입을 다물었다. 어지간히 술에 취한 모양이라 생각하면서 고개를 휘휘 흔들었다. 술루는 맥코이가 거둔 말이 무엇인지 캐묻는 대신 와인 잔을 들었다. 잔을 든 손가락과 손목의 움직임이 우아했다. 맥코이는 멍하니 와인 잔에 닿은 술루의 입술과 붉은 음료가 넘어감에 따라 크게 움직이는 술루의 목울대를 주시했다. 술루가 맥코이의 시선을 느끼고 맥코이를 쳐다보았다. 눈이 마주친 맥코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술루가 맥코이의 잔으로 시선을 옮겼다. 거의 비어있는 잔을 인지하고 술루는 제 잔을 내려놓고 와인 병을 들었다.


“벌써 다 마신 건 아니지?”
“아뇨.”


맥코이가 잽싸게 술루가 와인을 따르기 쉽게 제 잔을 밀었다. 오랜만에 마시는 와인이라 그런지, 보스와의 술자리라 그런지 아니면 좋아하는 사람과 술을 마셔서인지 맥코이는 평소보다 술이 쉬이 취하는 기분이었다. 첫 모금을 마셨을 때는 향도 맛도 자신이 마셨던 어떤 와인보다 훌륭했는데 지금은 그저 포도 맛이 나는 알코올로 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얼큰하게 술이 올라 시야가 흔들렸고, 음악소리가 어렴풋하게 들렸다. 맥코이가 손바닥으로 눈썹 뼈를 꾹꾹 누르는 모습을 보고 술루가 제 눈썹을 슬쩍 들었다.


“생각보다 술이 약한가 보네. 외모만 보면 우리 조직 그 누구보다 센 전투원 같은데 말이지.”
“아닙니다. 원래 제가 술이 진짜 센데, 오늘은 좀, 음…”


맥코이의 말이 느릿하고 발음이 어눌했다.


“진짜 센 거 맞아? 취했는데?”
“어, 네……. 약간 취한 것 같네요.”


맥코이가 머쓱해져서 웃었다. 같이 술을 마신 사람이라고 믿기지 않게 멀쩡한 낯빛의 술루가 다시 잔을 들어 맥코이가 들고 있는 잔에 가볍게 부딪쳤다.


“이것만 마시고 일어나지.”



* * *
이어지는 내용이 아닙니다.

* * *



커크는 적응력이 뛰어난 사람이었다. 밤마다 술루를 품에 안고 잠드는 것도,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침대에 혼자 남아 있는 것도, 그리고 넓은 저택에서 홀로 시간을 때우는 것도 모두 금방 익숙해졌다. 아침에 빈 집에서 눈을 뜬 커크는 대충 시리얼을 우유에 말아서 냉장고 속 과일과 함께 먹거나 가끔 스미스를 호출해 그가 차려준 아침을 먹은 후 술루가 준 차를 타고 등교했다. 수업이 끝나면 도서관에서 과제를 한 후 집에 돌아와 빈둥거리며 술루를 기다리는 생활을 했다. 술루는 가끔씩 아주 늦은 밤 시간에 귀가했는데 낮에 미리 연락을 줄 때도 있었고 저녁 식사 때가 다 되어서야 알려 줄 때도 있었다. 낮에 따로 연락을 줄 때면 커크는 친구를 만나곤 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술루의 퇴근 시간 이전에 집에 도착해 있어야 했다. 빔 프로젝터와 리클라이너가 설치되어 있는 영화 감상방에서 영화를 보거나 서재에 있는 수많은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는 일은 금방 지겨워졌다.


커크는 술루에게 조심스럽게 자신의 침실에 TV를 설치해도 되느냐 물었다. 술루는 오히려 의아하다는 듯 반문했다.


“알렌이 아직 카드 안줬어?”
“며칠 전에 받았어요.”
“그거 마음대로 쓰라니까. 한도가 아마 1만 달러일거야. 부족하진 않겠지?”


술루가 눈썹을 약간 찡그리며 말하자 커크가 손을 내저었다.


“아니에요. 부족하기는요.”
“현금도 필요하려나?”


술루가 이제야 생각났다는 듯 물었고, 커크는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일단은 제가 갖고 있는 돈도 있고, 딱히 현금이 필요할 것 같진 않아요.”
“그래? 필요하면 언제든 이야기 해. 갖고 싶은 것 있으면, 알지? 카드로 사.”
“네. 알았어요.”


커크는 다음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전자제품 매장에 가서 고민 끝에 제법 큰 LED TV를 샀다. 케이블 셋톱박스까지 설치한 이후 커크는 아무런 불만 없이 매일 저녁 술루가 집에 오기 전까지 방에서 뒹굴 거렸다. 석양이 내리면 저녁 짓는 냄새를 맡으며 음반을 하나 골라 온 집안에 울리게 틀었다. 귀가한 술루를 맞은 후 함께 저녁식사를 하고 밤늦게 술루가 부르면 한 침대에서 잠을 잤다.


커크는 노트북 컴퓨터까지 구매한 후, 이제 학교 수업이 끝나고 별 일이 없으면 도서관에 들리지 않고 집으로 곧장 돌아왔다. 밤마다 술루가 커크의 품에 기대어 잠드는 것 이외에 두 사람의 신체 접촉은 없었으나 커크는 몸매가 망가지면 술루가 자신을 싫어할까 봐 지하의 운동실도 이용하기 시작했다. 예쁘게 하고 있으란 말을 지키기 위해 면도를 말끔히 하고 머리를 단정히 정돈하고 술루의 취향으로 스타일리스트가 챙겨온 옷들을 입었다. 술루가 귀가할 때마다 저를 보고 빙긋 웃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것이 늘 기분 좋았다. 커크는 살면서 거의 겪어본 적 없는 사랑받는 기쁨과 예쁨 받는 행복을 마음껏 즐겼다. 한편 커크는 집 안의 모든 것을 편하게 사용하고 술루가 준 신용카드를 마음껏 긁었다. 요리사가 밥을 차려주고 스타일리스트가 때에 맞춰 제게 어울리는 비싼 옷을 한아름 안겨주는, 예전의 자신이라면 생각하지 못한 생활을 만끽하면서 그곳에서의 삶을 좋아하게 되었다.



* * *



술루는 회장실 일인용 소파에 널브러져 누워 천장을 향해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몇 년이나 매일같이 드러누웠던 소파였지만 이곳에서 담배를 피운 건 얼마 되지 않았다. 술루가 조직 건물에서 담배를 피우는 장소는 원래 제 사무실이었던 부회장실 뿐이었다. 창문을 열어 열심히 환기를 시키고 공기청정기를 돌려도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은 흡연 사실을 쉽게 알 수 있었다. 파이크는 술루의 사무실에 오면 자주 잔소리를 했다.


“요새 왜 이렇게 담배가 늘었어? 지나가다 냄새가 아주 진동을 해서 와 봤다.”


파이크가 부회장실의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오며 말하자 의자 등받이를 뒤로 젖힌 상태로 책상에 다리를 올리고 담배를 피우던 술루는 황급히 일어나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 껐다.


“어휴, 여기 아주 냄새 배겠네.”


파이크가 연기를 없애려 손을 휘휘 저으며 말하자 술루는 제 뒤의 창문을 활짝 열고 파이크의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담배 끊으라고 할 거예요? 피우지 말라고 한 적은 없잖아요.”
“이 정도로 많이 피울 줄은 몰랐지. 왜 이렇게 늘었어? 응?”


어느새 술루의 앞으로 다가온 파이크가 술루의 코끝을 꼬집었다. 술루는 붙잡힌 상태로 코맹맹이 소리를 내며 말했다.


“새로 인수하려고 보는 카지노 때문에 골치가 아파서요. 조금 줄일게요.”


파이크가 잡은 코를 놓자 술루가 파이크의 목에 팔을 감고 입술을 쭉 뺀 채 얼굴을 들이밀었다. 파이크는 이맛살을 찌푸리고 손으로 술루의 입술을 밀어냈다. “냄새나는 상태론 안 돼.” 파이크의 엄중한 목소리에 술루의 눈썹 끝이 축 처졌다.


“그리고 누차 말하지만 내 방에서는 절대 피우지 마. 화초 다 죽으니까. 알지?”
“알아요. 여기서만 피울게요.”
“절대 안 돼.”
“알았다고요.”


기분 좋게 살랑거리는 바람이 사무실 안으로 들어오고 파이크가 자신을 보며 빙그레 웃던 것을 기억한다. 그날의 옷차림, 제 손에 닿았던 재킷의 촉감, 제 머리를 쓰다듬던 손의 무게. 모든 것이 방금 있었던 일인 것처럼 생생했다. 미안해요, 크리스. 그 약속은 이제 못 지키겠어요. 술루는 다시 한 번 담배연기를 내뿜고 누운 몸을 일으켜 앉아 티 테이블 위 재떨이에 담배를 올렸다. 휴대폰을 들어 오늘 날짜를 다시 확인 하고서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찬장이 있는 사무실 구석으로 걸어가 위스키 한 병과 크리스털 잔을 들고 다시 소파에 앉았다. 술루는 혼자서 조용히 술병을 비웠다.




@rabbit5du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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