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앞에서 파는 샌드위치


온통 중화요리뿐인 이세계에서는 샌드위치/토스트를 먹으려면 무지 비싼 값을 치르거나 먼 곳까지 가야 한다

그래서 이 샌드위치 가게가 회사 앞에 개업했을 때 나는 비로소 이세계의 문명이 일보 전진했음을 절감했다

게다가 구성이 저렇게 혜자로운데도 가격이 3100원!!

원으로 환산하니까 별로 안 싼 느낌인데 아주 준수한 가격에 속한다


가게가 개업하고 이튿날, 나는 신나서 사 먹으러 달려갔다

결제를 하고 자리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는 가운데 주방에서 사장님(이자 주방장)이 나오셨다

그런데 웬걸!!!!

사장님이 위생용 마스크를 착용하고 계셨다!!!!!!!!

그!!! 그!!! 턱 부분에 플라스틱 달리고 그거!!!

내가 받은 충격은 어마어마했다

그건 마치 정글에서 만난 원시 부족 족장이 우리 종족의 유구한 역사가 기록된 기록부를 보여주겠다며 움막집에 들어가더니 아이패드 프로를 가지고 나와서 pdf 어플로 '이 문서가 그 문섭니다'하며 보여주는 충격에 필적했다

왜냐하면 대개 이세계의 소규모 식당은 위생 개념 따위 멸종했다고 봐야 하므로...

일례를 들자면 어떤 소규모 식당에서 국수를 사 먹은 적이 있는데,

계산대 뒤쪽이 주방이어서 내부 사정이 다 보였던 곳이었다

그리고 그 주방 측면에는 장롱만한 크기의 공간이 하나 더 있었다

딱히 자세히 보려고 하지도 않았는데 문짝이 없었기 때문에 안이 훤히 보였다, 그리고:

그곳은 화장실이었다

문짝이 없는데

뚫려 있다고

심지어 가정용 좌변기가 아니라 화변기였다

고무신처럼 생겨서 쪼그려 앉아서 싸는 그 변기 말이다

바닥 타일도 주방이랑 똑같아 천년의 입맛이 증발했다

요리하다가 국자 만졌던 손으로 꼬추 꺼내서 쉬 싸고 다시 손도 안 닦고 요리할 주방장의 모습이 폭력적으로 선명히 떠올랐다


(잠시 토하러 다녀옴)


그 후로 두 번 다시 거길 가지 않았다

이세계의 소규모 식당은 그러하다

관광객들은 감수하시라

그러니 내가 위생용 마스크를 쓰고 나타난 사장님에 대경실색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아무튼 난 이 가게의 단골 손님이 되기로 결심했다


한편, 가게에 포스가 심상치 않은 아조씨가 입장했다

그는 우리 사장님과 실랑이를 벌였다

대충 구청에서 온 직원인 듯한데, 이 가게가 '사업자' 등록은 되었는데 '식품 사업자' 등록은 안 되어 있다며 나로서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문제로 옥신각신하고 있었다

그러니 누구도 이 가게에서 음식을 사 먹으면 안 된단다

나 앉아 있는데;;

구청 아저씨가 대뜸 나한테 "당신, 여기서 음식 샀습니까?"라고 물었다

내가 오랜 기간 유목민 생활을 하면서 얻은 지혜는: 한국인한텐 외국인인 척하는 게 좋고, 외국인한텐 한국말밖에 못하는 척하는 게 좋다

안 그러면 대화가 길어짐

난 급 어눌한 척하며 구청 아조씨한테 말했다

"워 쓰 한궈 (나는 한국이다)"

일부러 틀린 문장을 뱉음으로써 나와 대화하고자 하는 상대의 의지를 꺾는다

때마침 사장이 '이 분은 무료 시식하러 오셨습니다!'라고 애드립을 넣어 위기를 스무스하게 모면했다

그리고 구청 직원이 떠난 후 나도 내 샌드위치를 스무스하게 받았다

맛은 한국식 수제 햄버거와 비슷하다

그 후로도 자주 시켜 먹었다

근데 저 샌드위치만 먹으면 턱이 너무 따끔따끔해서 왜 이러나 싶었는데,

알고 보니 쿠킹 호일에 턱이 긁혀서 나도 모르게 소소한 자해를 하고 있었다

그러니 모두 쿠킹 호일을 조심하도록 하자




ⓒ 2022 내송. All rights reserved.

내송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