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잖아. 심장이 평생 뛰는 힘으로는 달까지 한 번 갔다 올 수 있대."

"그래? 나는 못 하겠네."


이 말은 대수롭지 않게 넘길 말이 아니었다. 웃는 너를 보고선 멍청하게 따라 웃으면서 장난치면 안 되는 거였다. 절대 아니라고 그럴 리가 없다고 잠깐 진지해졌어야 했다. 하지만 그 해 겨울의 우리는 너무 어렸고 나는 네 말의 깊이를 헤아리지 못할 만큼 철 없었다. 온종일 눈만 내리던 그 날, 분명 뉴스에서 마지막 폭설로 예상된다고 그랬는데, 이 눈바람만 걷히면 다시 따뜻해질 거라고. 그렇게 처음 보는 기상 캐스터조차 네게 희망을 가득 주었는데. 좋아하던 달은 보지도 못하고 눈발 휘날리는 겨울에 너는 영영 갇혀버렸다.

누군가 심장을 쿡쿡 아파하라고 찌르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나를 원망하는 네가 벌이는 복수 같은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죄책감에 힘들어하다 겨우 너에게 찾아간 후에도 여전하길래 너는 아닌가 싶었다. 그냥 신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 나에게 네가 느꼈던 고통을 벌주는 거라 믿기로 했다. 오히려 마음 편했다. 신은 범접할 수 없는 존재니까. 나에게 벌주는 신을 미워하고 증오한다 한들 네가 돌아오지는 않으니까.

요즘에는 차라리 너를 알지 못했다면 어땠을까 괜히 이기적이게 굴기도 한다. 뙤약볕 아래에서 내가 그 길을 걷지 않았다면, 그래서 너와 부딪히지 않았다면. 나 때문에 넘어지고 또 일으켜진 너와 그런 너의 죽음은 내 인생에서 지워져 티끌만큼의 영향도 끼치지 않았겠지. 아무래도 우리는 이렇게 아파할 운명이 맞는 것 같다.  애초부터 이렇게 정리될 역할로 서로를 만난 것 같다.


나에게 너는 뜨거운 여름 폭염 속 차갑고 시린 겨울이었다. 열기가 올라오는 바깥을 멍하게 바라보며 얌전히 앉아만 있을 때는 어울리지 못하는 외딴 계절 같았다. 우연히 다시 마주치게 된 너는 눈에 띄게 핼쑥해져 있었다. 그때 그 사람 이라며 나를 기억해냈고 이내 웃어주었다. 아직도 잊히지 않는 그 장면에선 푸르른 배경과는 상반되게 어딘가 쓸쓸함이 묻어나온다. 운이 좋게도 나는 외롭던 너의 친구가 되었고 우리는 그렇게 3년을 같이했다.

처음에는 네가 죽는 줄 알았다. 잔뜩 티 나게 고민하며 꺼낸 말이 아프다, 것도 아주 많이. 자존심으로 가득했던 나는 '내가 너 아픈 거 설마 모르고 있을까 봐?'. 나는 순진했다. 그날 밤, 별안간 네 손가락과 가슴께에 주렁주렁 달린 기계 따위에서 찢어질 듯한 소음이 들렸다. 철 없었지만 그 소리가 나와 너를 갈라놓을 거라는 생각은 분명했다. 여기저기서 아우성이 들리고 사람들이 급하게 들어와 무언가 분주히 움직이더니 소음을 멎게 했다. 밤을 지샌 내게 해가 뜨고 눈을 뜬 너는 자신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고 말했다. 그리고 자주 이럴지도 모른다고도 말했다. 그래서 나는 철없이 대답했다.


"그거 알아? 네 심박 수가 낮아질 때 내가 너를 안아주면 너는 살 수 있어."

"그럼 대신 네가 죽는 거 아니야?"


초점없는 눈으로 흐릿하게 나를 바라보면서 그랬다. 마치 죽음보다 희생이 더 무섭다는 듯이.


"말도 안 돼. 우리 심박 수가 같아지면 둘 다 사는 거지."

"정말? 만약에 정말이면 꼭 나 안아줘야 해."

"당연하지."


대답하지 말 걸 하고 후회해본다. 정작 네가 내 심박 수를 필요로 할 때 나는 너에게 아무것도 해 줄 수 없었다. 대답하지 않았다면 내가 너를 더 일찍 잊을 수 있지 않았을까.

다 식어 차가워진 너를 뒤늦게 껴안으며 네 심장이 다시 뛰지 않는다는 사실과 내 심장이 멈추지 않는다는 사실이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내 심장은 이렇게나 미친 듯이 뛰는데도, 이미 과분하게 뛰는데도 멈춰버린 네 심장에는 무엇도 해줄 수 없다는 게. 그게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


지금도 눈이 슬프게 많이 내리는 날에는 네가 떠오른다. 그토록 가고 싶어 하던 달에는 잘 도착했는지. 그곳에서는 아프지 않고 따뜻한 계절이 되었는지. 묻고 싶은 게 많다. 그러니까 이제 그만 아프게 하고 따뜻한 눈으로, 환하게 가득 뜬 보름달로 내게 와주었으면 한다.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겨울, 지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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