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겨울안개









‘술집 사장이 너랑 왜 만나. 너 위엄한 일 하고 다니는 거 아니지?’


현우의 문자를 확인하며 그가 어떻게 세훈을 알고 있는지에 대해 궁금해졌다. 하지만 곧 최건형 사건이 있던 날 자신을 집으로 데려온 사람이 현우와 준호라는 걸 떠올린다.


‘걱정마. 예전부터 잘 알던 사이야.’


민석은 현우에게 답장을 보내고 뒤로 돌아 세훈이 테이블에 얌전히 앉아있는 모습을 확인했다.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가만가만 앉아 있다가, 스르륵 테이블 위로 이마를 맞댔다. 그 행동에 놀란 민석이 다가가려 했지만 점원의 말소리가 그의 발목을 잡는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잔 나왔습니다.”






민석은 차가운 컵 두 개를 양 손에 쥐고 서둘러 세훈에게 다가갔다.






“많이 안 좋아요? 그러게 왜 이런 곳에 와요?”






세훈은 대답 없이 빨대를 빨아 당길 뿐이다. 아빠의 손을 잡고 오는 놀이공원 이라던가, 연인과 다정하게 데이트를 즐기는 놀이공원- 같은 것이라도 생각한 걸까. 하지만 두 사람은 그 어떤 범주에도 속하지 못한다는 것을 민석은 알고 있다. 그러기에 세훈의 행동에 의아함을 느낀다.






“하나도 못 탈거면 차라리 다른 곳을 선택하는 편이 좋았을 거예요.”






작은 배에 나란히 몸을 싣고 정해진 코스를 한 바퀴 도는 것이 전부인 기구를 탔다가 이런 꼴이 났다. 내리자말자 확인했던 그의 얼굴은 사색이 되어 있었다. 민석은 그를 진정시키기 위해 무던히 노력을 해야 했다. 등을 두드리면 토기가 치민다며 그만두라고 했고, 벤치에 잠깐 누워 보라니 누우면 세상이 빙글거린다고 말한다. 결국엔 오랜만에 와본 놀이공원을 두리번거리는 것도 잊은 채, 걱정스러운 눈길로 음료를 홀짝일 뿐이다.




민석의 계속되는 걱정과 추궁에 세훈은 말이 없어졌다. 늘 화가 난 그의 표정엔 변함이 없었지만, 민석은 지금 그가 매우 실망했음을 알고 있다. 저 커다란 사람이 무언가에 실망한 몸짓에 설핏 웃음이 나온다.






“음... 곧 퍼레이드도 하고, 밤엔 불꽃놀이도 할 거에요.”


“.. 그게 뭐.”


“굳이 놀이기구를 타지 않아도 즐거울 수 있어요.”


“....”


“놀이공원에 왔으면 즐거워야죠.”






대답이 없는 세훈을 보며 머쓱해진 민석은 음료를 당겨 한입 마셨다. 뭐라고 대답이나 해주면 좋겠는데, 세훈은 아무 말이 없다. 그때 웅- 하고 진동이 울린다. 민석이 주머니에서 폰을 꺼내드는 동안, 세훈의 시선은 줄곧 민석을 향해 있다.


‘네가 그 사람이랑 어떻게 아는 사이길래 강의까지 빼먹어?’


민석은 문자를 읽으며 세훈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망설였다. 답장을 보내야 하는데, 도무지 설명할 방법이 없다. 그냥 한 번씩 생각나면 자려고 만나는 사람. 이라고 보내면 정확할까? 그런데, 남자랑 자는걸 알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어지럽힌다. 결국 답장을 보내지 못했다.




두 사람은 카페를 빠져나와 인포메이션 부스에서 팜플렛을 받아왔다. 퍼레이드가 시작되는 시간과 장소, 불꽃놀이에 대한 정보를 알아보기 위함이었다. 민석이 팜플렛을 살피는 동안 세훈은 여전히 민석을 살핀다.






“동쪽 문에서부터 시작해서 중앙광장으로 오는 거래요. 아, 애기들 타는 기차라는데요?”


“태워줄게.”


“... 나 애 아닌... 하... 왜 다들 날 애라고 생각하는 거지?”


“세상 사람들이 입을 모아 말 하는 건 다 이유가 있어.”






어이가 없어 세훈을 쳐다만 보자, 세훈은 그저 웃고 만다. 알았어. 알았어. 애기 아냐. 그치? 누가 우리 민석이더러 애기래? 응? 누가 그랬을까? 하며 놀리는 것까지 아주 얄미워 죽을 맛이다.

















오세훈 X 김민석





탈출 13






퍼레이드라고 해서 거창한 것을 기대한건 아니었다지만, 코스프레를 한 사람들과 아이들을 태운 강아지 기차를 보니 헛웃음만 난다. 둘은 그 작은 행렬을 따라 걸으며 동요를 흥얼거렸다. 의외로 모르는 동요가 없는 세훈이 한 곡을 끝까지 따라 부르기도 했다. 어쨌든, 즐겁게 웃었으니 목적은 달성한 셈이었다.




어느덧 해가 넘어가고 있고, 둘은 다디단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손에 하나씩 쥐고 놀이공원 안쪽으로 난 산책로를 걷는다. 혀를 내밀어 아이스크림을 핥아먹는 민석을 바라보는 세훈의 시선이 예사롭지 않다.






“와. 지금 꼬시는 거야?”


“... 뭐래.”






민석이 웃음을 내뱉는다. 엉뚱한 말을 곧잘 하는 세훈이 재미있다.






“근데, 동요를 어쩜 그렇게 잘 알아요?”


“많이 들어서 그래. 부모님이 싸울 때마다 안방에 날 넣어놓고 동요 틀어주셨거든.”


“아....”


“그럼 거실에서 막 치고 박고 난리가 나는 거지.”


“어.... 네......”


질문을 잘못 고른 것일까. 눈치 없이 솔직한 세훈이 잘못한 것일까. 민석은 대화를 멈추고 아이스크림만 핥았다.






“나도 뭐 물어봐도 돼?”


"뭔데요?"


“기다리는 연락이라도 있어?”


“아뇨?”


“그런데 휴대폰을 뭘 그렇게 확인해. 지루했어? 나, 오늘 별로였어?”


“아뇨. 즐거웠어요.”


“그럼? 무슨 연락이기에 그렇게 심란해.”






진지한 두 개의 눈이 민석을 향한다. 민석은 이걸 어떻게 말해야할까 조금 망설인다. 우리 둘을 설명하지 못해서 계속 망설이는 중이에요. 라고 솔직하게 말을 할 수도-. 그렇다고 거짓말로 둘러대고 싶지도 않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세훈의 시선을 받는 것이 불편해, 결국 고개가 숙여진다. 망설이고 있는 자신의 발끝이 바보 같다.






“친구가.. 어떤 사이냐고 물어봐서요.”


“아까 그 잔디밭?”


“.. 네.”


“뭐라고 대답하고 싶어?”


“아..”






조용한 산책로에 가득했던 붉은 석양은 물러가고, 어둠이 밀려온다. 어디선가 들리는 노랫소리는 아득히 멀게만 느껴지고, 두 사람은 조용히 멈춰 서서 녹은 아이스크림으로 손을 적시고 있다.






“민석아.”


“... 네.”


“대답하지 않아도 괜찮아.”


“......”


“네가 무슨 대답을 하던, 내 마음은 변함이 없어. 내 마음이 상처 입을까봐 두려워하지도 않았으면 좋겠어. 오늘은 즐거운 날이니까, 즐겁기만 하자. 그러니까 방금 건 다 잊어버려.”


“그래도..”


“난 오늘 좋기만 했으니까. 너도 그랬으면 좋겠어.”


“.... 미안해요.”


“아냐. 아냐-. 그러지마, 민석아.”






세훈이 다가와 민석의 손을 잡는다. 자연스럽게 손가락 사이로 파고드는 그의 손이 시렸다. 민석은 아래로 내렸던 고개를 들고 세훈을 응시했다. 안타까워하는 세훈의 얼굴을 보니 더욱 가슴이 옥죄여 온다.






“나 밀어내지마. 아무것도 안 물어볼게.”


“아, 그런 거 아니에요.”






고갤 흔들며 부정한다. 하지만 끝끝내 입에선 말이 튀어나오질 않아 답답하기만 했다. 한참이나 말을 고르는 동안, 세훈은 민석을 기다려 주었다.






“..... 아무것도 없는. 그런 마음은 아니에요. 밀어내려는 것도 아니고... 모르겠어요. 아직... 설명을 못하겠어요.”


“아.....”






안도의 한숨이 터진다. 그제야 차분히 마음이 가라앉고 있다. 이제 곧 불꽃놀이가 시작된다는 안내 방송이 원내에 울려 퍼지는데, 둘의 시선은 하늘로 향할 줄을 몰랐다. 곧 펑-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서로의 얼굴에 푸르고 붉은 빛이 걸린다. 붉어진 얼굴이 불꽃에 가려진다.






“고마워.”






세훈의 입술이 다가왔고, 민석은 눈을 감았다. 무엇이 고맙다는 걸까. 밀어내지 않아서, 아무것도 없는 마음이 아니라서. 아마 그런 마음을 설명하려 애쓰는 그 모습이 고마운 것일지도 모른다.




좁고 어두운 산책로. 조용히 입술을 맞붙이고 선 두 사람의 얼굴에 색색이 찬란한 불빛이 걸렸다.






‘찰칵-’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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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본 사양 공지






◎ 크기 : A5 (148x210) 총 135페이지 (본편 총 111페이지 / 외전 총 24페이지)

                외전내용 – 그 후의 이야기 (부제 : 불안정(不安定)한 완전(完全))

◎ 표지 : 스노우지(무광코팅)

◎ 날개 : 有

◎ 금액 : 12,000원

◎ 특전 : HIRO(@herohiroxiu )님의 그림엽서

참고 : 

19세 미만 구독불가


안녕하세요. 드디어 소장본의 사양이 나왔습니다.

소장본 판매는 2018년 10월 20일(土)에 강남 SC컨벤션센터에서 열릴 예정인 세슈 온리전 “Whiteout”에서 현장 판매로 이루어집니다. 추후 남은 재고 부분이 통신판매 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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