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만 큰 어린애. 카멜리아에게 있어 칼로스 카벤 바우어는 그 한마디로 정리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다른 누군가에게는 멋지거나 듬직한 사람일 수 있어도 카멜리아가 생각하기에는 자신이 어떻게 해야할지도 모르는 어린애였다. 여리고 상냥하고 정도 많아서, 약하디 약한 사람. 그걸 숨기기위해 뒷걸음질치다 오히려 타인을 상처입히고 그 사실에 자신또한 상처입지는 않았을까 걱정되었다.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다. 손이 많이가고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이 곳에 있는 16명 모두가 카멜리아에게 있어서는 걱정의 대상이었으나 굳이 따지자면 칼로스는 제 아픈 손가락과도 같았기에, 가장 큰 고충이었기에 조금 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내가 한 말 한마디, 단어 하나하나가 조심스러웠다. 괜한 말을 꺼냈다가는 도리어 너를 상처주고 수면 밖으로 내밀었던 얼굴마저 다시 들어가게끔 해버릴까봐. 그래서 카멜리아는 네 말에 답을 하기보다는 일부러 다른 말을 꺼내는 것을 선택했다. 


" 손이 이게 뭐야.. " 


 손에 생긴 상처들이 아팠다. 바늘로 쿡쿡 찌르는 듯한 아픔이 마음을 감쌌지만 내색하지는 않았다. 제가 괴로워하면 너 자신마저 괴로워할까봐서. 작은 한숨을 내쉬는 것으로 아픔을 내려두고 조심스럽게 손에 둘러진 붕대를 풀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너에게 조금 화가 난 것도 같았다. 이렇게까지 자신을 몰아붙인다고 뭐가 달라지냐고, 자신에게 상처를 입히면 조금 편해지냐고 멱살이라도 잡고 윽박을 지르고 싶었지만 모든 것을 목구멍 사이에 넣고 삼키며 일부러 장난스럽게 말을 뱉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너희에게 약했다. 


" 웃을거면 그냥 웃지그래? 앞으로 또 이렇게 다쳐오면 꿀밤을 먹여줄테니까. 숨기려고 하지말고, 숨긴다고 숨겨질 것 같아? 나는 다 알고 있다고~. "


엣헴, 하고 괜히 뻔뻔한 낯을 들어올리며 으스대다가 소독약을 손 위에 부었다. 약을 바르고 붕대를 다시금 감아주며 그 짧은 시간동안 침묵했다. 약이 네 몸의 상처를 감싸고 새살이 돋아나게 도와준다면, 네 마음까지 그렇게 해줄 수 있었다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외과의란 그런 것이다. 아무리 타인의 몸을 고치고 살린다하여도 그 사람의 마음까지 고칠 수는 없다는 것이 항상 원망스러웠다. 내가 해주는 것에 한계가 있다는 것 정도는 이미 진작 알고 있었다. 나는 너희와 같이 아픔을 짊어지고 가줄 수도 없을 것이고, 아무리 좋은 말을 한다한들 스스로가 바뀌지 않는다면 나의 말은 스쳐지나가는 바람만큼이나 가벼운 것이 될것이다. 항상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그저 환자가 지금 이 순간을 잘 버틸 수 있기를 기도하는 것과 마지막 한 숨, 그 숨이 끊길때까지 곁에 머물러주는 것 뿐이었다. 그럼에도 내가 너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내 욕심이었으리라. 


" 칼로스, 있잖아. 우리 병원에 오는 환자들은 대부분 삶이 벼랑끝까지 몰려서 , 마지막 기대를 가지고 오는 경우가 많아.  그리고 전적으로 의사를 의지할 수 밖에 없지. 그럼 환자와 의사의 관계는 일방적인 관계인걸까? 의사와 환자의 관계는 가장 가깝고 솔직한 신뢰관계야. 환자가 자신의 목숨을 걸고 의사를 신뢰하고 의지한다면 의사는 그 신뢰를 깨지 않기위해 노력하고 솔직하게 의지할 수밖에 없어. 나는 이게 비단 환자와 의사 사이에서만 해당되는 건 아닐거라고 생각해. 칼로스의 말이 단순히 밀어내기 위한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아. 설사 그런거라고 해도 나는 그런걸로 상처받거나 흔들리지 않을거지만. " 


소독약 냄새가 나는 손위로 제 손을 덮어 살짝 잡았다. 아직 살아숨쉬는 생명이 그곳에 있었다. 밀어낸다는 것은 두려워 도망치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너는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나. 길지도 짧지도 않은 인생중에 어느 곳에 머물러있나. 제가 동경하던 어린시절의 너는 이상이 있었고, 정직했고, 정의로웠다. 너는 아직도 그걸 쥐고있나. 


" 내 이상은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었으면 좋겠어. 이게 아무리 허무맹랑한 거라고 해도 상관없어. 그게 내가 내일로 이어질 수 있게 해주는 힘이고, 내 소원이니까. 그러니까... 나는 칼로스가 나를 의지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상관없어. 내가 의지할게. 그리고 결국 내가 바라는 건 하나야. 아무리 거센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더라도 뿌리까지는 뽑히지 말기를,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기를, 내가 없어도, 다른 누군가가 없어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난 그거면 충분해. 칼로스, 너에게 내일을 이어갈 수 있게 해주는 건 뭐야? " 


손을 조금 힘주어 잡으며 시선을 들고 네 눈을 바라보았다. 약한 것만이 실패는 아닐 것이다. 약하기에 강해질 수 있는 것이고 약해보았기에 그만큼 다른 사람들을 헤아릴 수 있을 것이다. 너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될수 있기를 바라면서,


" 불은 모든 걸 태워 없애버리지. 때로는 사람들의 두려움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여러가지를 해치기도 할거야. 남는 건 재밖에 없겠지. 그렇지? 하지만말이야, 결국 그런 상처들도 삶을 살아왔다는 증거이며... 새로운 시작은 늘 모든 게 없어진 뒤부터 시작되는거잖아. 모든게 재가 되어 없어진 자리에서부터 싹이 돋아나고 꽃이 피어나고, 이윽고 따듯한 봄이 올거야.  "


있는 힘껏 웃었다.


" 봐봐, 아름답지않아? "


칼로스, 너는 분명 이곳에 봄을 피워낼 수 있을거야. 칼로스에게도 봄이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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