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hantom of the Opera



* 약간의 설정날조가 있습니다.

*오타가 있을 수 있습니다...





지하, 까만 겉과 달리 속은 빨간 쿠션으로 채워진 관 속에 조용히 시체마냥 잠들어 있는 남자는 유난히 더욱 창백해 보인다. 누군가 그의 곁에 있다면 그가 깨어나지 못할까 걱정을 할지도 모른다. 잠 든 그의 눈가에 주름이 깊게 진다. 꼭 감은 눈과 조금 거칠어진 숨소리, 악몽에 의한 몸부림이었다. 시체와 같은 그의 몸이 급하게 일으켜 자리에 앉았다. 땀은커녕 피도 흐르지 않을 거 같은 모습을 하고 그의 턱 선을 따라 흐르는 물방울. 에릭은 손등으로 훔쳐내며 눈물이었는지, 땀이었는지 잠깐 생각했다. 하지만 그 고민도 잠깐, 하는 데에 별 의미가 없다는 걸 깨달은 그의 숨은 이내 잔잔해지며 한숨으로 변한다. 가면 안으로 축축한 듯한 불쾌한 느낌에 그는 자리를 옮겼다. 에릭은 세수를 하기 전 자신의 치명적인 결함을 감추기 위해 쓰고 있던 하얀 가면을 벗었다. 가면을 벗자 공기가 일그러진 피부 위에 닿는다. 조금씩 건조해지는 피부가 적나라하게 느껴졌다. 고작 가면 하나 몸에서 떨어져 나간 것뿐인데도 온 몸이 발가벗은 듯한 기분을 애써 무시하며, 세수하던 에릭은 급하게 수건을 찾아 물기를 닦아 내고 집안에 없을 거울을 찾아 다닌다. 그는 세수를 하다 자신의 손가락 끝에 닿은 감촉을 믿을 수가 없었다. 두 눈으로 직접 보아야 했다. 거울을 통해 보려고 했지만 자연스레 발길이 이끈 곳은 호숫가였다. 잠잠한 호숫가에 촛불을 하나 들어 가져가 대자 잔잔하게 일렁이는 수면에 비치는 에릭의 얼굴. 자신의 맨 얼굴을 오랜만에 들여다 본 그는 믿을 수가 없었다. 정상인과 같이 붙어있는 코, 흉측하지 않은 얼굴, 처음으로 에릭은 자신의 눈동자가 이리도 밝게 빛났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스스로의 얼굴이 맞는지 손을 들어 만지자 호숫가에 비친 그 역시 조심스럽게 뺨을 매만지고 있었다. 이내 그는 설움을 토하듯 눈물을 흘렸다.

 그는 빛과 어둠의 경계선에 서 있었다. 앞으로 한발자국만 내밀면 지하가 아닌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주저하는 발끝은 마치 구두의 밑창이 바닥에 붙어있는 것처럼 보였다. 에릭은 다시 한번 손을 들어 자신의 뺨을 매만졌다. 일그러지지 않은 피부, 오똑하게 제자리에 남아있는 코, 그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구속구를 벗어 던진 듯한 기분이었다. 바깥은 이미 높이 떠오른 해를 찬양하고 있었다. 에릭의 맨 살에 닿는 햇살의 따스함을 느꼈다. 그 동안 에릭에게 그 가면은 치부를 가리기 위한 일종의 신체의 일부와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벗어 던진 이 순간에 그는 왜 이토록 뜨겁게 자유를 느끼고 있는 걸까.

 햇빛에 눈 돌리지 않으며 앞으로 걷던 그는 들려오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반사적으로 몸을 숨기려고 했다. 움찔거리며 구석을, 어둠을 찾는 자신을 뒤늦게 깨닫고 그는 다시 허리를 곱게 폈다. 에릭은 입술을 깨물며 당당하게 빛과 마주하리라고 생각했다.

 사람들 사이를 걷고 있는 에릭은 믿기지가 않았다. 자신과 눈을 마주치고도 그 누구도 비명을 지르며 달아나지 않았다. 두근거림에 숨이 멎을 듯하다. 사람들의 웃음소리, 생활 소음, 거리는 생명으로 가득 차 있다. 그 가운데에 서 있는 에릭은 드디어 꿈에 그리던 평범한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괜시리 지나가다 사과를 두 개를 사 들고 오페라 하우스를 향했다.


 "안 됩니다. 이곳은 관계자와 관련되신 분만 들어갈 수 있어요."

 "그..."


아무렇지 않게 관계자만 출입할 수 있는 문을 열려고 하던 에릭은 경비원에게 제지 당했다. 무어라도 한마디 하려다가 그는 콧김을 차며 뒤돌아 섰다.  도둑 고양이가 사람을 피하기 위해 만든 길처럼 그에게도 다른 방법이 있었다. 비밀통로를 이용하여 분장실 안으로 들어온 에릭은 혼자 미소를 지었다. 아무도 없다. 이곳은 크리스틴의 분장실이다. 공연을 축하하는 꽃다발과 놓인 편지, 한눈에 봐도 그 주인은 라울의 것이라 그는 아무렇지 않게 편지를 빼앗아 쓰레기 통에 찢어 버렸다. 새빨갛게 익은 사과를 테이블 위에 놓으며 그는 크리스틴이 이곳에 오기를 기다렸다. 설렘에 떨리는 손 끝을 내려다보기만 한지 얼마나 되었을까. 에릭은 문 너머로 들려오는 발자국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문 앞에 선 이의 웃음소리, 크리스틴의 목소리였다. 그녀가 안으로 들어오다 앞에 서 있는 새까만 복장에 자연스레 놀라 어깨가 들썩거렸다. 또 그가 찾아온 것인지 잔뜩 긴장한 목소리로 그녀는 물었다.


 "당신은... 누구시죠?"


 에릭은 자연스레 뒤를 돌았다. 가면이 없는 맨 얼굴, 그녀가 비명을 지르지 않기를 습관적으로 빌었다. 크리스틴은 자신이 아는 그 사람이 아닌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내뱉으며 가슴을 쓸어 내렸다. 작게 미소를 지으며 어쩐 일로 찾아왔냐 물었다. 에릭은 당연히 그녀를 만나러 왔다. 하지만 입술이 움직이지 않았다. 무어라 변명을 해야 하면 좋을지 고민하다가 테이블 위 라울이 두고 간 꽃다발을 등 뒤로 재빨리 훔쳐냈다. 목소리가 잠겨 혹 바보같이 제대로 말도 못 건넬까 봐 기침을 하고 에릭은 꽃다발을 건넸다.


 "최근에 당신의 무대를 보았소.. 그, 당신의 목소리에 빠져 나오지를 못하겠더군. 직접 만나보고 싶어서 그 여기 관계자에게 부탁해서 이리 무례하게 찾아왔다네."

 "그렇군요! 무대를 좋게 봐주셔서 감사해요. 꽃다발은.. 저를 위한 건가요?"

 "그렇소."

 "수수하면서도 아름다운 꽃다발이에요. 고마워요."


 꽃다발을 품에 안고 그 향기를 맡으며 미소를 짓는 그녀의 모습에 에릭은 한동안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지금 당장 자신이 에릭이라는 걸 알리면 어떻게 되는 것인지 에릭은 생각에 잠겼다. 그녀는 웃으며 자신을 맞이해줄까. 그녀와의 사랑 속 독이 된 이 추악한 외모, 이것만 없으면 크리스틴과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던 그가 주저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자신을 알아보지 못했다. 차라리 그 편이 나을 수도 있다는 결론에 이른 에릭은 다음 공연을 축복하며 자리를 나왔다. 그 오페라의 관계자들을 지나쳐 나가면서 어떤 누구도 에릭을 보며 놀라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알아보는 사람 역시 없었다. 추악한 외모와 가면, 그것이 곧 에릭이었으니 말이다.


 발을 질질 끌다 싶을 정도로 힘없는 발걸음으로 지하로 내려온 에릭은 호숫가에 다시 한번 자신의 얼굴을 비춰보았다. 이 수면에 비친 이는 누구지, 에릭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질문이 그를 괴롭게 했다. 추악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얼굴을 보며 비명을 질렀다. 울부짖었다. 타인의 몸에 자신의 영혼이 갇힌 듯한 기분이었다. 가면이 아닌 육체에 갇힌 에릭은 자신을 잃을 거 같은 두려움에 빠졌다.


 "에릭?"


 그 순간 들려오는 또 다른 목소리, 에릭은 뒤를 돌아보자 그 앞에 다로가가 서있었다. 에릭은 황급히 얼굴을 가리기 위해 두 팔을 들었다. 추악한 외모는 더 이상 있지 않았지만, 동시에 에릭 또한 이 자리에 없다고 생각해서였다. 얼굴을 두 손으로 가린 채 벌벌 떨고 있는 에릭의 모습은 다로가 마저도 자신을 몰라볼까, 하는 두려움에 나오는 행동이었다. 에릭은 나지막한 신음을 내뱉으며 몸을 떨었다.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저 사람이 정말 에릭이란 걸 알아줄 수 있는지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차라리 몰라봤으면 하는 생각이 머릿 속을 스쳐 지나갈 즈음에 다로가는 에릭의 두 팔을 조심이 내렸다. 그가 혹 다쳤는지 알아봐야 했기 때문이었다.

 어째서 가면을 쓰고 있지 않은 지에 대해 물으려던 다로가의 입은 다물어졌다.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에 대해 고민을 하는 다로가는 조심스레 눈물로 얼룩진 에릭의 눈가를 엄지로 쓸었다. 손 끝이 눈물로 인해 축축해진 것보다 일그러진 피부의 감촉이 없는 걸 더 강렬하게 느낀 다로가는 작게 미소를 지었다. 에릭에게는 어떤 말이 필요하지 않을 거란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오늘은 나와 함께 시간을 좀 보내줄 수 있겠는가? 에릭."

 "...에릭인 걸 알아보겠소?"

 "물론이지."


 에릭은 묻고 싶었다, 어떻게 알아보았느냐고. 그러나 이 역시 터무니없는 질문이라는 걸 깨달은 에릭은 입을 꾹 깨물었다. 침묵이 감돌고 다로가는 에릭의 표정을 살폈다. 에릭은 코 앞까지 가까워진 다로가를 뒤늦게 알아차리고 몸을 뒤로 빼며 일어섰다. 그는 매몰차게 돌아가라고 얘기하려 했지만 곧바로 손을 잡아오는 다로가의 행동에 놀라 해야 할 말을 하지 못했다. 다로가는 그저 웃으며 더 말하지 않고 그대로 지하를 벗어나 밖으로 나갔다. 햇빛은 여전했다. 에릭은 잠깐 느꼈었던 그 해방감이 사라지고 두려움이 남아있었다. 다로가는 주춤거리는 에릭에게 괜찮을 거란 말과 함께 작게 끌어당겼다. 에릭은 그저 이끌리는 데로 발걸음을 옮겼다. 맞잡은 손을 타고 넘어오는 다로가의 온기는 그를 진정시켜주기에 충분했다. 어디로 향하는지 모르지만, 다로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걷고 있자 어느새 한 가게 앞에 멈추어 서있었다.

 이곳이 어디인지에 대해 묻기도 전에 코끝을 매만지고 지나가는 음식의 향은 도착한 곳이 레스토랑이라는 걸 알려주었다. 에릭은 돌아가야 할지 고민하기도 전에 이미 다로가에 의해 안으로 들어와 버린 상태였다. 테이블은 손님으로 꽉 차 있었다. 자리에 앉아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의 얼굴에 웃음이 얼굴에서 사라지지 않아 가게에 생동감을 더해주었다. 자리가 없으니 좋은 구실을 찾아내 이곳을 빠져나가도 좋을 거 같다는 생각을 한 에릭은 다로가의 옷자락을 끌어 당겼다. 다로가는 에릭을 향해 무슨 할말이 있냐는 듯 어깨를 들썩였다. 검지 손가락을 추켜 세우고 할 말이 있다는 듯 입술을 달싹거린 에릭은 곧바로 등장한 점원에 의해 말문이 막혔다.


 "예약하신 분 맞으시죠? 이쪽으로 오세요. 테이블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얼떨결에 자리까지 앉아버린 에릭은 점원이 자리를 피하자 다로가를 향해 언제 예약까지 했냐며 살짝 쏘아 붙이듯이 말했다. 다로가는 아까부터 잃지 않고 있는 미소를 지으며 그저 다 방법이 있다고 대답했다. 주문한 기억도 없는 와인과 코스 요리가 시작되고, 에릭은 자신의 행동이 혹 어색해 보일까 걱정까지 하면서 식사를 즐겼다. 평범한 사람들처럼, 그가 지금껏 동경해온 일상을 보내고 있다. 음식과 함께 와인을 즐기는 그 둘은 지나가다 보면 정말 사이 좋은 친구처럼 보였다. 에릭은 이따금 자신에게 꽂히는 시선에 어깨가 떨려오는 걸 느꼈지만, 지금만큼은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촛불로 근근이 밝힌 지하가 아닌 이곳에 있는 걸 온 몸으로 기억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이리도 시간이 빨랐었나, 와인병이 비어있는 걸 확인한 다로가는 그만 가게를 나가야겠다고 에릭에게 말을 건넸다. 에릭 역시 주변을 둘러보니 와인병 말고도 손님이 없는 테이블이 많아졌다는 걸 깨닫고는 일어날 준비를 했다. 계산을 한 뒤 먼저 앞서 나가는 다로가의 뒷모습을 보며 에릭은 어딘지 섭섭함이 밀려왔다. 어딘가 조금 답답한 느낌, 평소 저녁보다 더 먹어서인지 아니면 와인의 취기가 이제서야 도는 건지 그는 알 수 없었다. 다로가는 일정 거리 떨어져 걷고 있는 에릭을 일부로 부르지 않았다. 계속 생각이 많아 보이는 그의 표정 덕에 쉽사리 말을 붙일 수가 없었던 거였다. 애초에 저녁 식사도 자신이 멋대로 데려왔기에 다로가는 더욱 신경이 쓰였다. 대화가 오가지 않는 서로의 사이는 결국 발걸음이 빨라졌다. 덕에 일찍 도착하고만 오페라 하우스의 지하, 다로가는 이대로 에릭에게 저녁 인사를 하고 돌아갈 생각이었지만 그의 손이 이번엔 에릭에 의해 붙잡혔다.


 "...에릭과 좀 더 어울려 주게나. 자네가 먼저 그랬으니."

 "나야 좋지."


 어깨를 으쓱거리며 호숫가와 같은 잔잔한 미소를 보여주는 다로가의 모습에 안도감을 느낀 에릭은 와인을 꺼내 들었다. 평소와 다름 없는 장소에 같이 있는 두 사람의 사이에 묘한 기류가 흘렀다. 숨을 쉴 수 있는 편안함이 존재했지만 어딘가가 끈을 놓을 수 없는 긴장감을 형성했다. 에릭 역시 그 분위기를 파악하고 있었고, 다로가도 마찬가지였다. 둘은 무슨 얘기를 해야 할지 고민하며 서로의 잔만 비워나갔다. 가게에서 나올 때의 취기는 완전한 착각이었다는 걸 깨달은 에릭이 먼저 입을 열었다. 다로가는 붉어진 에릭의 뺨을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다. 창백한 피부에 오른 장미빛 색깔이 어째서인지 조금 탐스러웠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내 그저 술에 취해 선을 넘기고 만 것이라 스스로를 자제 시키는 다로가였다. 그 자제도 술에 의해 흐트러지기 마련, 그의 시선은 에릭의 입술에 머물렀다. 옴찔거리며 무슨 할 말이 있어 보이는 에릭의 입술에 미소를 지었다가 무슨 말이 나올까 궁금하던 찰나 목소리가 다로가의 귓가에 맺혔다.


 "어떻게 에릭이란 걸 알았소?"

 "...음?"


 꽤나 심각해 보이는 에릭의 표정에 다로가 역시 얼굴에서 미소를 지우며 골똘히 생각했다. 에릭은 알고 있었다. 그저 그런 지하에 있는 이는 자신밖에 없으니 다로가가 눈치를 챈 것이라고 말이다. 알고 있음에도 듣고 싶었다. 다른 이유를 말해주었으면 했다. 한참 동안 말이 없는 다로가의 모습에 에릭은 다리를 떨었다. 보채고 싶지만 쉽사리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몇 분이 흐른 지도 모르는 채, 그저 대답해 주기를 기다리던 에릭은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을 시작하는 다로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 눈동자가 여전했기 때문이야, 에릭. 그 금빛 색의 눈동자, 나를 보던 눈빛이 그대로였거든. 가까이 다가가니 체취 역시 같았어. 조금 변태스런 대답인가? 하하."


 멋쩍은 지 뒷목을 쓸어내며 대답하는 다로가의 모습에 에릭은 그저 할 말을 잊어버렸다. 눈동자, 체취, 그런 걸로 자신을 알아봤다는 그의 말에 에릭의 심장이 빠르게 뛴다. 그저 술에 취했다고, 다로가의 말 역시 와인에 의해 나온 사탕발린 말이라고 에릭은 스스로를 납득 시켰다. 새로운 감정으로부터, 어쩌면 행복에 겨워할 수 있는 자신을 보고 싶지 않기 때문이었다. 너무 지나치면 뭐든지 독이 되는 거니까, 에릭은 절제를 잊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다로가는 그런 에릭의 노력을 알고나 있는 건지 술기운에 자리를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비틀거리는 걸음, 에릭은 집으로 당장 돌아가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어느새 침대에 자리 잡은 그의 모습에 한숨을 내쉴 수 밖에 없었다. 잠에 든 그를 바깥에 내다 버릴 수 없는 없으니 말이다. 에릭은 잠든 다로가의 모습을 가만히, 그저 가만히 곁에 남아 지켜보다가 고개를 틀어 자신의 관을 바라보았다. 새 삶을 살 수 있을까, 그런 질문이 떠오르자 다로가의 얼굴이 에릭의 눈 앞에서 일렁거렸다. 크리스틴이 아닌 다로가의 모습이 생각난 자신이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에릭 역시 잠이 들기 위해 조금 일찍 눈을 감았다.



 다로가는 잠결에 기지개를 피다 손에 닿은 물건을 떨군 바람에 깨어났다. 이곳이 어디인지 둘러보다 금방 에릭이 지내고 있는 오페라 하우스의 지하라는 점을 깨달았다. 어젯밤 늦게까지 와인을 들이 부은 게 생각난 다로가는 자신보다 에릭의 속이 괜찮은 지 묻고 싶었다. 에릭이 잠들어 있을 만한, 그의 관에 찾아가 보았지만 에릭은 이미 자리에 없었다. 벌써 나간 건지, 다로가는 좀 더 둘러보고 싶었지만 집 주인이 없는 곳에 남아있는 건 그닥 좋지 않을 거 같아 이만 돌아가려 했다. 그 발길을 돌린지 얼마 안 되는 곳에서 들려오는 울음소리, 에릭이라는 걸 단번에 알아차린 다로가는 서글픈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조심스레 다가갔다. 그러자 그곳에 어제와 같이 얼굴을 가린 채, 몸을 웅크리고 있는 에릭이 있었다. 다로가는 어찌 된 일인지 묻고 싶었다. 그가 놀라지 않도록, 상처 받지 않도록 손을 뻗는 다로가에게 에릭이 먼저 그에게 달려들었다.

 작게 으르렁거리는 에릭의 행동은 타인이 보면 당장이라도 누군가를 해칠 거 같았지만, 다로가의 눈에는 달랐다. 어제의 달콤한 꿈은 환상이었는지 에릭의 얼굴이 다시 흉측한 몰골로 돌아와 있었다. 에릭은 그 사실을 아침에 깨닫고 절망감에 허우적거리고 있었던 거였다. 평범한 삶, 다시는 꾸지 못할 것을 신이 가르쳐 주기 위한 장치였을까. 에릭은 그저 서러웠다. 모든 게 또 다시 한꺼번에 사라져 버린 거 같은 허망감이 그의 꽁무니를 물었다. 에릭의 울부짖음이 좀처럼 멈출 기미가 안보였다. 다로가는 그저 에릭을 그대로 껴안고 그가 진정하기를 기다려주었다. 이따금 어린 아이를 달래듯 등을 두들겨 주는 게 다로가가 에릭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에릭의 들썩이던 어깨가 잠잠해지자 다로가는 그를 껴안은 채로 귓가에 속삭였다.


 "좋은 아침이네, 에릭."

 "...."

 "오늘도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주겠어?"




/ 오랜만에 쓴 다록에릭... 고향 찾아온 기분이다. 이 이후로는 그냥 대충.. 에릭이 진정한 사랑이 다로가라고 깨달았으면 조켓습니다.. 크리스틴 말고 다로가랑 햇빛이 잘 드는 방을 안방으로 두고.. 알콩달콩 살면 안되겠니? 

오유x한니발 (크오) 외에 잡다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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