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학

글을 쓰려고 책상 앞에 앉았을 때
문틈 사이로 벼르던 햇살이 들어와
함께 갈 데가 있다고 먼저 쓴다
나는 옅은 코발트 빛 향기에 이끌려
햇살을 따라간다
노래하러 간다

우암산 후미진 산자락
외로운 샘 가에 쭈구려 앉아
통곡을 하면서라도 부르고 싶은 노래
너무 많아서 차마 부르지도 못하고
샘물만 마시다가
씨뿌리러 간다

나보다 앞서가는 햇살
들풀들 우거진 빈들에 와
씨를 뿌린다
주여 내가 의연할까요?
잡목 같은 나라도 이쁠까요?
잦은 바람
눈물 속에서 들리다
글을 쓰는 것 보다 소중한 것은
글을 쓰려는 것
노래보다 아름다운 것은
노래하고 싶다는 것
가문 날에도
씨앗이 말라죽지 않는 것은
뿌린 이의 눈물을 기억하려는 것
돌아오는 길에
잊혀졌던 씨앗들
사랑
인정머리
의로움 그리고
누군가 말했듯
인간에 대한 예의
하나


넷…
가슴 속에 담았다

햇살은
날 배웅하고는
구름 위로 떠오르더니
멀고 힘든 딴 곳으로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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