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형을 위해 달릴거야.




-

"지민이형 없어요?"

"어? 정국이구나. 러닝하러갔어."

"네."


정국은 늘어지게 늦잠을 자고, 더이상 잠이 오지 않아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습관적으로 핸드폰을 확인하다, 매니저의 문자와 부원들의 카톡을 읽고 인상을 찌푸리고 바로 나가버렸다. 


[시발놈아 연습안나오냐]- 김태형


정국은 태형의 카톡은 가뿐하게 씹은 뒤 카톡 목록을 계속해서 내렸다. 지민이형, 지민이형. 없다. 정국은 잠시 천장을 바라보다, 모자만 눌러쓰고 옆 집으로 향했다. 초인종도 누르지않고 1013, 비밀번호를 누르고 거실로 들어갔다. 익숙하게 지민의 어머니한테 인사를 드리고 지민의 방으로 걸어갔다. 침대에 풀썩 누워 천장을 바라보다가, 탁상위에 놓인 액자를 발견했다.


"................"


정국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액자를 쳐다봤다. 


".............."


이안이형. 정국의 친 형.


이안은 지민과 똑같은 유니폼을 입고 어깨동무를 하고 있었다. 환하게 웃는 사진속의 이안은 무척 행복해보였다. 


"미안해, 형. 미안해.."


정국은 액자속의 이안을 바라보다, 액자를 덮어버리곤 다시 침대에 누웠다. 팔로 큰 눈을 가리고 눈을 꼭 감았다. 


이안은 2년전에 죽었다. 


***


'난 투수, 석진인 포수, 그리고 타자 이안. 많은 사람들이 모인 전국 대회에서 이기는거야.'


나는 그때 15살 꼬맹이였으므로, 지민이 형이 하는 말을 먼 벤치에 앉아 듣고있었다. 나는 항상 멀리서 지민이형이 하는 말을 듣기만 했다. 빙빙 맴돌다가, 핸드폰만 하고있으면 지민이 형이 멀리서 달려와 어깨동무를 하고 끌어당겼다. 


'혼자 거기서 대체 뭐하는거야?'


나랑 똑닮은 이안이형은 혼자 깍두기 짓을 하는 나를 혼내는듯 핀잔을 두고, 큰 손으로 내 손을 꽉 잡았다. 


'왜 정국이를 빠뜨려. 얜 대단한 애야.'


이안이형의 말에, 부끄러워서 주먹으로 어깨를 퍽 쳤다. 이안이형은 큰 눈을 깜빡이며 환하게 웃었다. 지민이 형도 내 얼굴을 잡고 말했다. 지민이 형의 작은 얼굴이 내 앞으로 다가왔다. 두근두근.


'맞아, 정국이를 빠뜨렸네.'


난 두 눈을 깜빡였다.


'칫, 난 빼줘.'

'왜?'


'난 야구가 싫어.'


나는 그 날, 나를 보고 무척 실망했던 지민이 형의 얼굴을 기억한다. 석양이 넘실대는 15살의 여름 운동장. 지민이 형은 내 얼굴을 보고, 한참동안 빤히 쳐다보기만 했다.


'거짓말.'


***


형을 따라, 네살부터 야구를 시작했다. 형은 타자, 나는 투수. 내가 공을 던지면 형은 공을 쳤다. 재미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리운건 사실이다. 형은 허무하게 죽어버렸다. 고등학교를 올라와서 첫 전국대회를 앞두고, 형은 교통사고를 당했다. 나는 그 날, 참 많이 울었다. 


형은 죽었다. 


변한건 없었다. 


나는 야구를 하고, 지민이 형도 야구를 한다. 나는 2군 투수고, 지민이 형은 1군 투수다. 지민이 형은 투수, 석진이 형은 포수, 많은 사람들이 모인 전국대회에서 야구를 한다. 


그리고 나는 형 옆을 맴돈다.


***


"정국아. 또 연습 빠졌어?"

"형......."


정국은 잠결에 들려오는 지민의 목소리에 부시시한 얼굴로 눈을 떴다. 해가 중천이야, 임마. 시계를 보니 어언 오후 두시다. 너무 많이 자서 허리가 아파 에구구, 하며 일어났더니 지민은 물이 뚝뚝 떨어지는 얼굴로 정국의 어깨를 두드렸다. 


"씻고왔어?"

"어. 금방, 이제 연습 끝났어."


정국은 늘어지게 기지개를 펴고, 침대에 누워 데굴데굴 굴렀다. 연습 안해? 지민의 말에 정국은 핸드폰을 만지며 대충 대꾸했다. 어, 그 말에 지민이 침대에 누워 정국의 목에 헤드락을 걸었다. 


"아! 아파! 왜?!"

"이 새끼가 3일 내내 빠져놓고."

"여름 방학이잖아. 쉬자! 좀!"


사실 열심히 했던적도 없기에 쉰다는 말이, 부끄러웠지만 냅다 크게 소리를 질렀다. 지민은 정국의 목을 조르다, 힘이 빠졌는지 숨을 몰아쉬며 침대 옆에 누웠다. 좁은 싱글침대 때문에 어깨가 부딪혀 답답한 정국이 습관처럼 지민에게 팔베개를 해줬다. 지민은 푸시시 웃었다. 지민은 금방 씻고 온탓인지 좋은 냄새가 났다. 정국은 강아지처럼 킁킁거리다 지민의 어깨에 고개를 묻었다. 눈을 빼꼼 뜨고, 지민의 옆모습을 바라봤다. 가슴 언저리가 숨을 내쉴때마다 움직였다. 심장이 쿵쿵.


"마운드 위에서 주목받을 사람은 형이야."


정국은 쌍커풀이 진 예쁜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 생각에 젖은 눈. 지민은 조심조심 정국의 눈 언저리를 만지며 말했다. 간지러운지 정국이 조용히 웃으며 지민을 바라봤다.


"뭔 소리야."

"난 야구가 싫어."


정국은 웃으며 말했다.


지민은 그 말에 정국을 쳐다본다. 크고 맑은 눈이 지민을 쳐다본다. 17살의 이안을 똑 닮은 17살의 정국. 


"거짓말."


***


"밥 먹구 가."

"그러려고 했어."

"배가 고프긴 해?"

"응."


일어났더니 지민의 어머니는, 잠깐 장이라도 보러가셨는지 큰 집에 둘만 남았다. 정국은 어슬렁 어슬렁 백수처럼 일어나 식탁 앞에 앉았다. 와아, 닭볶음탕이네. 정국은 기뻐하며 숟가락으로 부지런하게 밥을 펐다. 정국은 한참 밥을 퍼먹더니, 숟가락을 딱 내려놓고 지민을 바라봤다. 정국은 어제 사실 한숨도 자지 못했다. 그래서 잠이 안와, 일부로 지민의 집까지 들어와 오후 내내 잠만 잤다. 내가 무슨 고민을 했더라. 사실 매일 반복되는 고민이라 이젠 별로 자극성도 없다. 그런데 아직까지 저의 잠을 깨우는 고민. 짜증나. 정국은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밥을 먹는 지민을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걔랑 사귈거야?"

"어? 누구."

"그 뭐.. 하연인가. 걔. 그 있잖아. 형한테 고백했다고 소문 다났던데."


이하연. 정국은 사실 이름부터, 그 여자애의 신상정보까지 다 알아냈지만 아무것도 모르는척 바보처럼 떠본다. 지민은 그 말에도 밥을 먹으며 정국을 쳐다본다.


"아. 걔? 그게 1학년한때까지 소문이 다 나?"

"어, 아무튼 사귈거야?"

"아니. 미쳤냐."

"안사귈줄 알았어."


태형은 어제 정국에게 물어봤다. 하연이 누나 존나 예쁜데, 지민이 형이 이번에 사귈 가능성은 몇퍼로 보냐? 그렇게 물어서 태형은 정국에게 어제 얻어맞았다. 안사겨, 형 좋아하는 사람 있거든. 정국은 옥상 난간에 걸쳐 서서 말했다. 푸른 하늘에 넘실대는 구름을 보며.


"형은 이안이형 좋아하니깐."

"............."

"거절할지 알고 있었지."


지민은 그 말에 물끄러미 정국을 쳐다보자, 다시 숟가락으로 밥을 떴다. 지민은 조용히 웃었다.


"..............."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밥을 먹고, 지민과 피시방을 다녀와서 게임을 하고, 저녁이 되자 만화책을 보며 티비까지 봤다. 밤이 되자, 지친 지민이 침대에 드러눕자 정국은 의자에 걸터앉아 야구공을 만지며 지민을 쳐다봤다.


"자게?"

"어. 내일 연습해야지."

"아, 맞다."


정국은 공허한 눈으로 야구공을 통통 튕기다가, 지민을 바라봤다. 지민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저를 보고 있었다. 통통한 지민의 눈매를 멍하니 보다가, 갑자기 등을 얻어맞았다.


"내일 연습안나오면 진짜 죽는다."

"아, 귀찮은데."

"나와라. 진짜. 내일 안나오면 김태형도 죽인다."


정국은 실실 웃으며 지민을 올려다봤다. 아래에서 올려다보니 지민의 통통한 입술밖에 보이지 않았다. 뾰루퉁한 표정의 지민이 저를 쳐다보고 있었다.


"훈련 열심히 하면 뭐해줄건데."

"이게 이젠 조건을 거네?"


정국은 크하하, 웃으며 지민을 쳐다봤다.


"키스해줘."

"..........."

"연습 잘 나올게."

"........."

"빨리."


시계 초침이, 째깍째깍 울리며 돌아간다. 열어둔 창가에선 바람이 솔솔 불었다. 지민은 무릎을 낮추고, 정국의 얼굴을 조그만 손으로 붙잡았다. 순간 떨어지는 입술에, 정국이 숨을 훅 들이마셨다. 누구라도 할것없이 빤히 서로를 쳐다보다, 정국이 먼저 시선을 돌렸다. 


"............."


정국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지민의 방을 나갔다.


"............"


쾅 닫히는 문소리에, 지민은 의자에 스르르 주저앉았다. 


지민은 홀로, 남았다.


***


키스해줘.


연습 잘 나올게.


나는 요새 연습도 잘 나갔는데.


[이안이 형. 매일 부탁만 해서 미안한데, 이번에도 지민이형을 지켜줘.]


'난 투수, 석진인 포수, 그리고 타자 이안. 많은 사람들이 모인 전국 대회에서 이기는거야.'


이번에 이기면 결승전이래. 전국 대회에서 이길수 있으니깐.


나는 그 날, 아니 그 전날. 그 전전날부터 지민이형의 경기를 위해 자기전마다 기도했다. 태형까지 협박하며 응원을 시켰고, 준결승날 맨 앞자리에서 형의 경기를 지켜봤다. 형이 조그만 몸으로 공을 던지는 모습. 멋있게 부원들을 향해 소리치는 모습. 득점을 할때마다 마운드위에서 기뻐하는 모습. 나는 그 모든 모습을 두 눈으로 담았다. 형은 내 우상이었으니깐.


그 날, 형은 완투승을 했다. 2:1로. 


그리고 ,어깨를  다쳤다. 


나는 형의 선수생활이 끝났다는 얘기를 가장 처음으로 듣게됐다. 형과 같이 간 정형외과에서.


왜 몰랐을까. 9회전에서 모든걸 포기하듯, 엇나간 팔꿈치로 울면서 공을 던졌던 형의 모습을.


"................."


'난 투수, 석진인 포수, 그리고 타자 이안. 많은 사람들이 모인 전국 대회에서 이기는거야.'


"..............."


며칠 뒤, 나는 골목길에서 지민이 형을 봤다. 골목 벽에 울면서 공을 던지고 있는 지민이 형의 모습을. 나는 먼 발치에서 풍선껌을 불며, 형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더이상 모른체 하지 못하고 형에게 달려가고 말았다. 형은 나를 보자마자 공을 놓치고 무릎을 쪼그린상태에서 엉엉 울었다. 모든걸 다 내려놓고 우는 형의 작은 몸을 꽉 끌어안았다. 형은 내 목에 매달려 엉엉 울며, 숨을 몰아쉬었다.



"하지마."

".........."

"그만해."

"..........."

"아프잖아."

"..........."

"그만 해도 돼."


울지마, 형. 울지마. 나는 형이 울다가, 숨을 멈출까봐 무서워졌다. 형은 숨을 헐떡이며 내 목에 얼굴을 문질렀다. 형의 눈물이 내 티셔츠를 적셨다. 


그 여름날 밤, 형은 밤새 내 목을 끌어안고 눈물을 흘렸다. 나는 괜찮다며, 형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도 진심으로, 눈물을 흘리면서. 나는 잠시 눈물을 참으려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쳐다봤다.


그 날은, 별이 참 많이 있었다. 


"내가 할게."

"............"

"............."


'난 투수, 석진인 포수, 그리고 타자 이안. 많은 사람들이 모인 전국 대회에서 이기는거야.'


나는 두 눈을 꽉 감고, 17살 싱그러운 목소리로 얘기했던 형의 얼굴을 떠올렸다. 글러브를 꼭 쥐고, 흙먼지를 뒤집어쓴채 밀려오는 석양을 배경으로 멋있게 얘기하던 형.


"야구 싫어한다면서."


형은 코가 막혀, 코맹맹이인 목소리로 겨우 얘기했다.


"거짓말이야."


그 날, 형은 조금 웃었던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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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나면 다 적어야하는 병에 걸린 ^^ 네개 동시연재하죠 뭐 어떻게든되겠지 금방 올게요 항상 댓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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