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플링 : 우시지마 와카토시 x 텐도 사토리

사양 : A5 | 떡제본 | 56 페이지 | 대학AU

가격 : 5,000원

줄거리: 대학에 들어간 후, 우시지마를 짝사랑하면서도 그에게 여자친구를 만들어주려 사랑이나 연애에 대해 알려주기 시작하는 텐도와 그를 통해 사랑을 알아가는 우시지마의 이야기. 



※표지는 레몬레이드님이 작업해주셨습니다.





샘플




고등학교도 졸업하고 대학생이 되어도 지루한 수업을 들어야 한다는 것은 변함없었다. 특히 필수 교양이라는 것은 왜 있는 건지, 텐도는 강의실 뒷자리에 자리 잡고 앉아 지루함에 펜을 돌리다가 문자를 알리는 폰의 램프에 속으로 쾌재를 울렸다. 지루함을 달래는 데엔 역시 수다가 최고지. 텐도가 오리지널로 만든 노래를 내심 콧노래로 흥얼거리며 메시지를 확인하자 생각지 못한 인물의 이름이 화면에 떠 있었다.

‘우시지마 와카토시.‘라고 짧게 써진 이름은 익숙했지만 그에게서 먼저 연락을 받는 일은 드문 일이었기에 텐도는 자기도 모르게 화면을 주시하다가 황급히 교수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나 걱정했던 것과 달리 그는 앞 좌석에 앉아 질문하는 학생에게 집중하느라 텐도가 딴청을 피우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듯했다. 텐도는 그에 안심하고는 다시 화면으로 눈을 돌렸다. 그곳에는 다음 주 주말에 연습을 쉬어 시간이 비게 되었다는 사실과 함께, 혹시 그 날 텐도의 시간이 되는지를 묻는 간결한 문장이 쓰여 있었다. 그 문장을 읽은 텐도는 자신의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애써 참으며 손가락을 움직였다.


〈나야 언제나 프리하지~! 뭐야뭐야, 팀메이트도 놔두고 나한테 연락할 만큼 사토리가 보고 싶었던 거야?〉

〈팀메이트와는 매일 얼굴을 보고 있지만 너는 아니니까. 그럼 그 날 ㅇㅇ역 앞에서 어떤가?〉


언제나처럼 농담조로 한 말에 착실히 진심으로 답해오는 그의 문자에 텐도는 눈을 접어 웃었다. 마치 자신을 특별하다 해주는 것 같은 그 문장에 몸을 가만두지 못할 만큼 가슴이 간질거렸다. 그와는 고등학생 때와 다름없는, 아니, 팀메이트라는 위치에서는 내려오게 되었으니 어쩌면 더 멀어졌다고 할 수도 있는 관계를 유지 중이었지만 그는 여전히 전과 같이 텐도를 부르곤 했다. 텐도는 그것만으로도 만족하고 기뻐하는 자신이 스스로도 웃기다고 생각했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머리와는 달리 가슴은 두근거리며 기분은 좋아지기만 했다.


〈그래! 그럼 12시에 ㅇㅇ역 앞에서 봐~〉

〈그나저나 이 시간에 문자라니 정말 별일이네. 와카토시군 수업할 시간 아니야? 공강이었나?〉


원래라면 이대로 끊어도 되었을 대화였지만 왠지 아쉽다고 생각한 텐도는 첫 문자를 받았을 때부터 궁금하던 것을 그에게 던져보았다. 종종 연락을 주고받다보니 그의 공강 시간은 대충 기억하고 있었지만 혹시 기분이 나쁠까 싶어 일부러 모르는 척 한마디 더 붙여 보낸다. 우시지마라면 그런 것은 신경 쓰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괜히 신경이 쓰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수업이라면 교수님의 사정으로 휴강이라는 문자가 와서 갑작스럽게 공강이 되었다. 지금 오이카와와 카페에 와있다.〉

〈오이카와군이랑?〉


우시지마의 문자에 텐도는 재미있겠단 생각에 내심 키득거렸다. 대학생이 된 후 가장 놀란 일 중 하나라면 바로 이것이었다. 고등학생 때까지 우시지마만 보면 으르렁거리며 털을 곤두세우던 오이카와가 우연이라곤 하나 그와 같은 대학, 같은 팀에 들어간 이후로는 투덜거리면서도 의외로 그와 잘 지낸다는 것. 그를 아는 인물은 아마 모두 놀랐을 것이고, 그것은 시합 때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멀리서 지켜보던 텐도도 마찬가지였다.

오늘도 아마 갑작스러운 공강에 할 일이 사라진 우시지마를 카페까지 데려가준 것은 그였을 것이다. 텐도는 그 과정을 직접 본 것처럼 선명히 머릿속에 그려낼 수 있었다.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그를 가만히 두지 못하는 오이카와를 처음 두 눈으로 봤을 때는 정말 너무 웃어서 배가 아플 지경이었다. 그때를 떠올리며 키득거린 텐도는 마음 한편이 차분히 내려앉는 것을 무시하며 그와의 수다를 이어갔다. 그러다 문득 머릿속에 의문이 떠올랐다.


〈주말 약속에 오이카와군도 오는 거야?〉


그저 친구끼리 만나서 노는 자리이니 그가 와도 이상할 건 없었다. 다만 텐도로서는 약간 달갑지 않은 일이었기에 설마, 하는 마음에 물어본 것인데, 다행히 돌아온 답은 ‘아니’였다. 그에 내심 안도감과 작은 자조가 뒤섞여 텐도는 쓴맛이 감도는 입술을 삐죽이며 수업이 끝날 때까지 그와 문자를 주고받았다.

 

수업이 끝난 후 친구와의 저녁 약속에 불려 간 텐도는 술자리에서 빠지지 않고 튀어나온 연애 이야기에 내심 그 자리에 온 것을 후회했다. 다른 때였다면 순수하게 친구를 놀리며 재밌어했을 자리이건만 오늘은 조금 달랐다. 친구를 놀리는 건 평소와 다름없었지만 마음 속 어딘가는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오랜만에 우시지마와 연락한 탓인지 오늘따라 친구의 한탄이나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너는 누구 없냐는 뻔한 질문이 일일이 심기를 건드렸다.


“뭐야, 진짜 좋아하는 애도 없어? 저번에 말했던 교양 같이 듣는 애는?”

“걘 그냥 친구라니까 그러네, 스즈키군도 참~. 그러는 스즈키군이야말로 이전에 카페에서 같이 있던 애는 누구야?”

“엣, 누구?”

“너 우리한테 비밀로 이번엔 누굴 만나고 다닌 거야!?”


그저 흐름상 한 번 이야기가 나오면 한 명씩 거치고 지나가는 질문이었지만 오늘따라 신경을 거슬러 텐도는 일부러 자신에게 향했던 화살의 촉을 더욱 날카롭게 다듬어 상대방에게 되돌려 주었다. 그에 테이블을 둘러싸고 있던 이들의 화살촉도 덩달아 그에게로 향해 그는 매우 당황한 얼굴로 횡설수설하기 시작했다. 친구들의 질문 세례에 시달리다 잠시 눈이 마주치자 두고 보라는 듯 째려보는 친구의 시선에 텐도는 히죽 웃으며 손을 들어 브이 사인을 돌려주었다.

그들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조금 전에 텐도에게 향했던 질문의 대답은 사실 맞으면서 틀리다고 할 수 있었다. 텐도 사토리는 현재 진행형으로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런 의미에서는 긍정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그들이 말하는 이는 아니었기에 그 질문에 부정한 것도 거짓은 아니었다.

텐도는 술을 홀짝이며 속으로 낮에 문자를 주고받은 이의 얼굴을 떠올렸다. 우시지마 와카토시. 어릴 때는 괴동으로 불렸으며 고등학교 때부터는 전국구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팀의 에이스로 유명한 이였다. 그런 구름 위의 존재와 같은 그를 과거의 팀메이트이자 절친이라 부르는 것만으로도 복에 겨운데, 텐도는 그런 그를 몰래 짝사랑 중이었다. 몰래, 라고 해도 전 팀메이트 중에는 눈치가 빨라 그의 마음을 아는 이들도 있었지만, 어찌 됐든 본인은 모르고 있으니 몰래 호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다만 텐도는 그 마음을 당사자에게 전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요괴라고 불렸을 만큼 평범함과 동떨어진 자신을 평범하게 대해주고 친구로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만족 중이었다. 그런데도 가끔씩 오이카와나 대학에서의 새로운 팀메이트를 질투어린 시선으로 봐버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그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사람 마음이란 게 생각처럼 움직이는 게 아니라는 것을 실감하는 텐도였다.

 

 

(중략)

 

 

“와카토시군은 말이야, 여자친구 안 사겨?”


이 질문은 고등학생 때에도 이미 몇 번인가 했던 질문이었다. 그렇기에 텐도는 질문을 던지기 전부터 그의 대답을 알고 있었지만, 대학생이 된 후로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유독 이 질문을 많이 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 질문에 와카토시가 고개를 끄덕인 적은 한 번도 없었고, 오늘도 그랬다.


“생각해본 적이 없다. 지금은 배구에 집중하고 싶기도 하고.”

“또 그런다~. 난 대학에 가면 와카토시군 여친 좀 볼 수 있을까 했는데….”

“왜 그렇게 내 여친에 신경 쓰지?”


변함없는 우시지마의 대답에 일부러 아쉬운 소리를 하자 예상하지 못한 질문이 돌아와서 텐도는 잠시 빠르게 눈을 깜빡였다. 언뜻 들으면 짜증내는 것이라 오해할 수도 있는 문장이었지만 그의 표정에는 순수한 의문만이 있었다. 빠르게 그 표정을 스캔한 텐도는 그 표정에 내심 안도하며 시선을 도르륵 굴렸다. 왜 그렇게 신경 쓰냐니. 그야 당연한 것 아닌가.


“그야 난 네 절친이니까. 절친의 여친이 될 사람은 누구일지, 언제쯤 만날지 궁금한 법이잖아?”

“그런가.”

“그럼그럼!”


텐도의 말에 고개를 기울인 우시지마를 보며 텐도는 입 안에 퍼지는 쓴 맛에 테이블에 내려놓았던 티라미스라떼를 마셨다. 분명 음료의 단 향은 나는데, 이상하게도 입 안은 여전히 썼다. 이럴 때만큼은 그가 둔한 게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럼, 텐도도 여친이 생기면 나에게 소개해줄 건가?”

“으음, 생길지 안 생길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그것은 미약하게나마 텐도의 진심이 담긴 말이었다. 조금 더 정확히는 여친을 사귀지는 않겠지만, 만약 생긴다면. 이라고 하는 게 맞겠지만 말이다. 물론 현재 절찬리 짝사랑중인 상대가 있는데 다른 사람을 사귀는 것도 웃기고 실례되는 일이니 당분간은 없을 예정이었지만, 그런 것을 모르는 우시지마로서는 웬일로 그 대답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 듯 했다.

텐도는 자신의 애매한 대답에 우시지마의 미간이 불만스럽게 구겨지는 것을 보고 쓴웃음 지었다. 아마 자신이 그에게 숨기는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불만이거나 불공평함을 느끼는 것이리라. 그 불퉁한 표정에 텐도는 웃으며 농담이라고 얼른 자신이 했던 말을 정정했지만 그래도 그의 미간 사이의 주름은 펴지지 않았다. 덕분에 텐도는 한동안 웃으며 그를 달래고 이리저리 화제를 바꿔야만 했다.


“정말이라니까, 내가 와카토시군한테 숨기는 게 있을 리 없잖아, 내가 거짓말하는 거 봤어?”


그렇게 말하는 지금도 그에게 큰 비밀을 숨기고 있는 텐도였지만, 이 감정을 숨기는 것에 대한 죄책감은 이미 너무 오래되어 그 위에 또 다른 작은 거짓말을 쌓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하지만 항상 세미를 놀리지 않았었나.”

“...그런 거 말고~!!”


텐도의 외침에 우시지마의 입꼬리가 작게 올라갔다. 그 웃음이 방금 전의 말이 고의적이었다는 것을 알려주어 텐도는 과장되게 입을 떡 벌렸다. 고등학교 때와 비교하면 그는 제법 잘 웃게 되었고 농담도 종종 하고는 했지만, 설마 이렇게 되돌아올 줄은 몰랐다. 즐거워 보이는 우시지마의 웃음에 텐도는 금방 볼을 부풀리며 삐진 척을 했지만 속으로는 그의 기분이 풀린 것 같아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런 가벼운 대화를 이어가던 중, 우시지마가 잠시 자리에서 일어날 기미를 보여 텐도는 말을 끊었다.


“잠시 화장실에 다녀오겠다.”

“응. 다녀와~.”


둘밖에 없으니 한 마디 남기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우시지마에게 텐도가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적당히 흔들던 손을 내린 그는 팻말의 화살표를 따라 카페 구석으로 가는 우시지마의 뒷모습을 보며 턱을 괴었다. 배구를 그만둔 그와 달리 운동을 계속하며 전보다 더 체계적인 관리를 받는 우시지마의 몸은 스웨터 너머로도 알 수 있을 만큼 고등학생 때에 비해 더 듬직하게 골격을 키워가는 것 같았다. 텐도는 배구를 그만둔 것을 후회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가끔 이제는 셔츠 아래 저 몸을 직접 볼 수 없다고 생각하면 그와 같은 팀으로 뛰지 않는다는 사실이 조금 아쉬워질 때가 있었다.


‘차라리 누구랑 사귀기라도 하면 나도 좀 더 마음의 정리가 쉬울 텐데.’


텐도가 둔한 편인 우시지마도 눈치 챌 정도로 있지도 않은 그의 여친이나 그의 연애 사정에 관심이 많은 이유는 이것이었다. 결국 이것도 저것도 전부 다 그의 짝사랑이 깊게 연관되어 있는 것이다.

그것이 매우 이기적인 바람이며 동기라는 것을 알면서도 텐도는 그것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게 텐도가 생각하기에 가장 평범하고 빠르게 자신의 마음을 접을 동기 부여가 될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텐도는 평소에는 그의 절친 포지션에 만족하며 지냈지만, 그가 자신에게 상냥하게 대해줄 때마다 한 단계 위의 관계로 발전할 가능성에 대해 망상하곤 했다. 그리고는 그 직후 바로 그런 망상을 한 자신을 비웃거나 자기혐오에 빠지곤 하는 것이다. 그 모든 것이 가끔 지긋지긋하게도 느껴졌지만 그런 감정과는 별개로 그의 상냥함에 두근거리는 가슴은 좀처럼 사라지질 않았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외부적인 요소뿐이지 않은가.

그러나 애석하게도 연애나 이성에게는 손톱의 때만큼의 관심도 없는 우시지마 때문에 그 가능성조차 바닥을 기는 수준이어서, 텐도의 입에서는 자연스럽게 무거운 한숨이 새어나왔다.


“하아...”


오늘만 해도 오랜만에 그의 얼굴을 보게 되어 기쁘지만 동시에 복잡한 마음이 들어 한숨을 쉬고 있자니, 그 한숨을 지워내듯 가벼운 알림음과 함께 짧은 진동이 테이블을 울렸다. 그 소리와 진동을 따라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우시지마의 폰이 놓여 있었고, 메시지를 수신한 폰은 커다란 화면에 메시지 내용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었다. 텐도는 친구를 위해서라도 나중에 프라이버시에 대해 한 소리 해줘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별 생각 없이 화면에 시선을 두었다가 눈을 크게 깜빡였다.


“어라?”


텐도는 시간이 지나 화면이 꺼진 후에도 아직도 그곳에 문자가 떠있는 것처럼 화면을 주시했다. 텐도의 머릿속에서 전등이 깜빡였다.

이건, 혹시 찬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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