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다 할 짐도 없었다. 가지고 올 수 있는 것을 다 담았다 한들, 기내용 캐리어를 다 채울 수도 없었다.

15살. 한국 나이로는 17세. 어리다면 어린 나이에 비행기에 혼자 올랐다. 쉽게 말해서 가출이었다. 단지 스케일이 조금 컸을 뿐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대한민국 서울까지.


엄마... 한 번만 도와주세요.


어눌한 한국어로 말하면 그래도 진심이 전해질까. 베이지색 수화기를 들고선 내가 말한 건 한 문장뿐이었다. 일주일 뒤 전해진 비행기 표 하나에 고맙다는 말을 수없이도 말했다.

양육권은 아버지에게 있었고 내가 꿈을 키운 것도 아버지를 보면서였다. 밤에 유명 바에서 베이스를 연주하는 아버지를 보며 아티스트의 꿈을 꿨던 게 10살. 그리고 지옥이 시작되었던 것도 10살.

이혼 후 아버지에게 유독 불행한 일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해야 하나. 잘 연주하던 바에서 해고당했으니 생계가 위험해졌고, 쉽게 뻗을 수 있었던 건 술이었으며 자연스럽게 알코올 중독으로 이어졌다. 마약을 하지 않은 게 다행이지.

술이 깬 뒤에서야 날 끌어안으며 통곡하던 아버지는 자신이 낸 상처를 보며 미안하다 수없이 사과를 내뱉었으나 반복되는 것은 같았다. 술, 폭력, 사과, 술. 악순환의 반복이었다.


...그만 생각해야지. 이제는 연이 없는 사람이다. 

엉망인 몸을 엄마가 보면 무슨 얼굴을 할까. 나와 달리 엄마는 짙은 갈색 눈에 검은색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다. 엄마의 재능을 닮았다고 했는데. 우리 세안이는 엄마 닮았네. 8살의 날 껴안고 자주 하던 말이었다.

설렜던 것도 사실이다. 엄마가 무슨 상황인지 모르던 게 5년이니 설렐 수도 있지 않은가. 이제는 뭔가를 할 수 있겠다. 어쩌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살 수도 있지 않을까. 다만 문제는.

어디를 가도 내가 도망칠 곳은 없었다는 것이다. 운명의 수레바퀴에서 난 실험용 쥐처럼 계속 달려갈 뿐이다. 항상 그 자리에. 멍청하게 여기가 쳇바퀴인 줄도 모르면서.


*


백혈병. 도망쳐 나오니 엄마는 백혈병이란다. 소설을 써도 이렇게 쓰면 욕먹지 않아? 날 버린 게 아니었댄다. 원망했다는 게 부끄러울 정도로 자괴감이 머리를 때렸다. 아 XX...


엄마 괜찮아. 세안이 넌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아.


그렇게 말하면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하는데. 모르는 척해? 모아둔 목돈마저 병원비로 다 나가면서.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 드럼 스틱을 잠시 내려놓는다고 해도 돈을 모으는 게 중요했다. 이제 내가 기댈 사람은 하나뿐인데, 이마저 잃고 싶지 않아서 학교에서 자는 한이 있어도 야간 편의점 알바를 뛰고, 택배 승하차 알바를 했다. 손을 혹여나 다칠까, 알바를 하면서 손을 주무르는 게 이제 습관이었다. 그 탓이었을까. 손에 힘이 풀려서 공책을 다 놓쳐버렸다. 아씨... 애들 건데. 괜히 눈치가 보여서 서둘러서 주웠다.

그리고 툭.

스스로에게 솔직해지자. 과도하게 흥분한 것도 맞다. 다만 그 낯짝이 짜증이 나서. 입고 있는 옷이 누가 봐도 고가의 옷이라. 자격지심에 이미 쪄 들어버린 내가 할 수 있는 발악을 다 쏟아부었다. 기껏해야 나랑 동갑인 애한테. 

전에도 이런 적이 있었다. 자기만의 세계에 갇힌 건 똑같은데 남을 짓밟기만 하는 그의 말에 상처를 받아서 악을 쓰고 짓밟고 지랄이라는 지랄은 다 떨었다. 이름이 크리스였나. 친구들이 그렇게 부르던데. 

곧 사라진 걔를 기억할 필요는 내게 없었다. 처음으로 짓밟힌 상처여서 오히려 더 잊기 위해 발악했다. 덕분에 지금 눈앞을 지나가는 놈한테 상처를 입진 않았다. 

이미 깊은 상처에 살갗을 더 찢는다 해도 큰 차이는 없었다. 솔직히 고마웠다. 그런 인간을 미리 만나서 내 주제를 더 잘 알 수 있었으니.


덕분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내가 나로서 하는 일은 일주일에 한 번 있는 동아리 활동에서 드럼을 치는 것뿐이었다. 조율도 되지 않은 드럼을 가지고 엉망인 밴드를 이끌어가는 것도 내 몫이었지만 엉망이어도 좋았다. 즐거웠으니까.


후배님들 잘 있었어?


내가 모르는 고3인 선배들이 오늘 견학을 온다 싶었더니 밝은 머리의 대학생 한 명이 동아리실에 등장했다. 두 손에 아이스크림을 가득 들고 와서는. 아까부터 왜 날 보면서 계속... 얼굴을 찌푸리고 있자니 나보고 하는 말이. 네가 그 또라이구나?

난 왜 만나도 이런 인간이랑. 그러곤 대뜸 손을 내밀며 하는 말은 더 기가 찼다.


너 우리 밴드 안 들어올래? 

밴드요?

응. 드럼이 필요한데 너만 한 애를 내가 못 봐서.

절 언제 보셨는데요.

계속? 여긴 내 명함.


무슨 대학생이 명함... 잠시 눈을 깜빡였다. 에? 


“왜? 익숙해? 강민형 성공했네~”

“이, 그, 음원, 어?”


음원 사이트에서 수없이도 들었던 노래의 주인이 여기 있었다. 요즘 밴드를 만들고 있다던데. 그게 진짜였나 보다.

얼굴에는 설렘이 가득했다. 항상 하얗기만 했던 피부가 붉게 물들어서는 더울 지경이었다. 심각하게 울리는 심장에 베이스 드럼이 울린다. 


“어때 해볼래?”

“....”


그런데도 왜. 선뜻 입이 떨어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입이 벌어지질 않았다. 하겠다고만 하면 되는데. 


전 못해요.

왜?

...제가 들어가면 피해만 갈 거예요. 연습도 주말 아니면 힘들고. 

맞춰줄게.

...그게 아니어도.


빤히 보는 시선이 얽혀 들어갔다. 나에게서 도대체 뭘 본 걸까.


너 드럼 잘 친다며. 어머니가 그렇게 자랑하시던데.

...형이 그걸 어떻게 알아요.

스승님이야. 괜찮은 애 없느냐고 여쭤보니까 너라고 엄청 일장연설을 하시길래 들어보러 온 게 오늘이고.


명함 위로 짙은 자국들이 생겨났다. 눈앞이 흐릴 리가 없는데. 난 시력이 좋은데. 짜증 나게도 눈물이 나서. 한 번도 밖에서 운 적이 없는데. 뭐가 그렇게 안도 된다고. 스스럼없이 날 안는 몸에 왈칵 울음이 터져 나왔다. 해도 되는 거예요? 그건 네가 정하는 거지. 하고 싶어요. 그럼 하는 거고. 도와줄게. 어머니 치료도 얼마 안 남았다며. 


“제가 뭐라고 그렇게까지 하시는 거예요?”

“드럼 잘 치잖아. 그럼 된 거지. 재능 썩히는 거 보기 싫어서. 너무 이유가 계산적인가?”


계산적이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지. 다만 차라리 가식 덩어리인 것보다는 그게 나아서. 


“할래요.”


그게 내 인생의 전환점이어서.


“고마워요.”


형이 하자는 건 다 따를 수가 있었다. 하물며 그게. 내가 싫어하는 놈이 밴드 객원 멤버가 된다고 해도.


“김재희 입니다.”


아직 끊어야 할 악연이 남아 있었나 보다. 









글을 씁니다

서레야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