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young, I’m bold

난 젊고, 대담해.

I call myself a boundless genome

나는 나를 무한한 유전자라 불러

Don’t fear the world, the vision’s ahead em

세상이 두렵지 않아, 그들보다 앞선 나의 시야

Awake your brain and physical reign

너의 뇌를 일깨워 육체적인 정복을 이뤄

Third wave's heading out us

제3의 물결이 우리를 향해

My brothers and sisters, we’re the coming wave

내 형제 자매들이여,

우린 다가오는 물결이 되네.


VA-11 HALL-A

 발 할 라



 위잉, 위잉, 위잉- 거대한 불빛들이 수없이 점멸하는 금렵구의 야경이 보인다. 정국은 가슴이 터져나갈 듯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그가 내지른 환호성은 달려가는 바이크가 도로와 마찰하는 굉음과 뒤섞여 금렵구의 허공 안으로 사라졌다. 수십개의 교각과 교각 사이를 달리고 있는 초고속 열차들이 보인다.

네온 사인과 휘황찬란한 홀로그램이 뒤엉킨 곳은 정국의 기억속에서 보다 조금 더 정돈된 느낌을 주었지만, 역시 정국이 기억하고 있던 것과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정국은 새로운 표지판이 생긴 도로 위를 달리고 또 달린다. 부아앙- 굉음을 내며 도로 위를 질주하는 정국은 차동차 사이를 재빠르게 빠져나갔다. 계기판에 알림음이 계속해서 깜박이며 뜬다.


[금렵구 B 지역 진입. 금렵구의 B지역입니다. 수인들이 가장 많이 사는 지역 중 하나입니다. 시타델에서 그리 멀지 않은….]


설명이 계속해서 이어진다. 귀 속으로 들어오는 정보들은 이미 배양액 속에서 길고 긴 꿈을 꾸었던 동안에 알고 있던 것들이었다. 그런 '정보'들 보다는 지금 당장 정국의 눈 앞에 보이는 이 모든 '현존하는 실재'의 풍경들이 선명하다. 머리카락을 가르는 바람도, 그를 바로 어제 태웠던 것처럼 강하게 달려가는 바이크도, 그의 동공 앞을 빠른 속도로 스쳐 지나가는 수십개의 불빛들과 교각들도. 긴 꿈에서 깨어나 이렇게 현실로 마주한 세상은 즐겁기 그지없다.

정국은 재빠르게 방향을 바꿨다. 금렵구의 지역 도심 시내는 머릿속에 내비게이션이 내장되어 있는 것처럼 전부 세어볼 수 있을 정도다. 정국은 지금 금렵구 내부에서도 가장 높은 쪽에 세워진 교량 위를 달리고 있다. 아래쪽을 굳이 내려다보지 않아도 그가 지금 지상에서 100m높이 위에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백미터를 더 달려나가면 세 개의 길로 나눠지는 교차로가 나타날 것이다.

그러면 어느 쪽으로 가볼까? 뭐, 어느쪽으로 가도 즐거운 것이겠지만 그럼 여기에서 더 높이, 높이 가 볼까? 그의 시야 끝에 세 갈래로 갈라지는 길이 보인다. 하나는 아래로, 하나는 일직선으로 하나는 조금 더 높은 교각으로 올라가는 터널이 보인다. 원형 터널이다. 아, 저거 재미있지. 터널은 원의 형태. 이 부스터 엔진을 가지고 달려나가면 터널의 천장 위를 거꾸로 달려나가는 곡예도 가능할 것이다. 역시나 전정국, 스릴 즐기는 거 아직 안 죽었네.

정국은 운전대의 부스터 기어를 최대도 올렸다. 빠른 속도로 달려나가는 매끈한 금렵구의 새로운 차들 사이로 정국의 낡은 바이크 뒷 쪽에서 새파란 불꽃이 펑, 퍼엉- 소리를 내며 터져나온다. 부아아앙- 몸을 낮게 숙이고 바람의 저항을 최대치로 하고 터널을 향해 방향을 튼다.

기기기기기긱- 커브를 꺾는 동안 바이크가 옆으로 한껏 기울어졌다. 바닥을 긁는 소리가 무섭게 흘러나온다. 넌 이정도 충격은 아무것도 아니잖아!? 가보자고. 자신의 바이크를 믿고 있다는 듯 자연스럽게 말을 건다.


[터널 입구 진입 10초전.]

"터널 안쪽 벽 타고 올라서 거꾸로 달리는 거 어때!?"

[그건 무모한 선택일지도 모른다고 판단됩니다만, 사고가 날지도 모릅니다.]

"좋아. 그럼 결정!"


낭랑한 안내음을 들으며 정국은 단번에 앞 바퀴를 들어올렸다.


9, 8, 7, 6, 5,

4-----

3

---2

---

1--!!!


카운트 다운 하는 안내음이 들려옴과 동시에 정국의 바이크는 터널의 외벽을 타고 올랐다. 부우우우웅- 바이크의 배기통에서 흘러나오는 새파란 불꽃은 유성의 꼬리처럼 긴 여운을 남긴다. 몸이 단숨에 뒤집혔다. 가속도가 붙은 바이크는 멈추지 않고 달리는 차들의 위를 달려나갈 뿐이다. 몸이 뒤집힌 채로 보는 시야는 재미있기 그지없다. 정국은 고개를 들어 자신의 아래를 달리고 있는 차들의 행렬을 바라보았다.


[터널 길이 300미터, 이 속도를 유지한다면 곧 빠져나갑니다. 가장 높은 도로 위 도착. 터널을 빠져나가면 좌측으로 급하게 떨어져 내립니다. 도로는 없습니다.]

"도로가 없으면, 그 옆은?"

[가드레일 너머 아래엔 각기 다른 교량이 교차로 지나갑니다.]

"그럼 거기로 가는거지- 가장 가까운 교각은?"

[밑 교량 20m아래 위치합니다.]

"좋아."


머리카락이 제멋대로 거칠게 휘날린다. 바이크의 핸들 손에 꽉 쥔 채 틀었다. 기기기긱- 하는 소리와 함께 정국이 탄 바이크는 아슬아슬하게 터널의 왼쪽 벽을 완만한 포물선 형태로 달려 내려가고 있다. 시간 계산은 잘못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그그그그극--- 덜덜거리는 바이크의 진동이 그대로 전해진다. 곧 도착할 것이다. 터널 출구 너머로 도심이 보인다. 정국은 핸들을 갑작스럽게 틀었다.

터널을 빠져나감과 동시에 좌측으로 급격하게 꺾이는 커브길 너머 허공 아래로 바이크는 날았다. 정국의 눈동자 아래, 20m아래의 또 다른 교량들이 보인다. 여기서, 곧장 핸들을 살짝 꺾기만 하면 곧장 그 교량 위에 안착할 것이다. 한순간이라도 바이크와 함께 허공을 나는 감각은 그 어떤 것보다 짜릿하다.


「무모한 녀석이네.」

"!?"


순간 어떤 목소리가 정국의 귓가를 스쳤다. 이제껏 기계적으로 답하던 그의 안내인이, 아닌 분명 다르게 섞여드는 이질적인 목소리가 틀림없었다. 어디서 들려오는 거지? 분명 사람의 목소리인데. 추락하고 있는 그 찰나의 몇 초간 정국은 그의 동물과도 같은 반사신경으로 눈동자를 굴렸다. 하지만 여긴 금렵구의 -허공- 위다.


「왜 너 같은 녀석이 '에인헤라르'인지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뭐야!? 어디서 들려오는거야?"

 「그것보단, 앞에 잘 보는게 좋을걸.」

"어, 으아아악!?"


정국은 소리를 냅다 질렀다. 핸들을 살짝 틀었다. 허공을 날아 낙하하고 있던 바이크는 하마터면 곧장 바로 앞으로 달려나가는 길고 긴 정유 트럭과 부딪혀 산산 조각이 날 뻔했다. 콰아앙-! 정국이 탄 바이크는 클락슨을 울리며 달려나가는 은빛의 정유 트럭의 뒤를 따라 가까스로 내렸다. 속도를 조금씩 줄여나간다. 주변을 둘러본다. 목소리는 분명 들렸지만, 어디에서 들려오는지는 모르겠다. 남자의 낮은 목소리였다. 안내음에서 나오는 여성형 인공지능인 아담의 목소리는 아니었다. 전속력을 넘어 부스트 모드로 달리고 있던 정국이 바이크가 조금씩 느려진다. 배양액 속에서 깨어났을 때보다 더 놀란 낯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너 같은 녀석이 나랑 같이 움직일 에인헤라르라니, 이상하잖냐.」

"어, 뭐, 뭐지?"


정국은 눈을 느릿하게 깜박였다. 주변을 둘러보아도, 달리고 있는 자동차밖에 보이지 않는다. 순간 금렵구의 시타델 주차장을 빠져나가기 전에 소장이라던 석진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두번째 발할라 프로젝트는 수인들의 형태를 하는 복제인간 레플리카 개발이었죠.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특수공안 팀을 "세르눈노스"라고 부릅니다.'

'그럼 이제 팀 막내로구만. 세르눈노스 대원들 다 정국씨보다 나이 많아요.'

'아직 잘 모르는 위험한 지역이나 외곽으로 빠지기 전에 우리쪽 '사슴'들이 나타날 거에요.'


세르눈노스인가? 금렵구의 같은 팀? 수인의 DNA로 만들어졌다던 특수공안과? 하지만 이런 환영은 조금 너무하지 않나? 아무리 내가 막내라고 해도 말이야. 잘 깨어났다고 환영식 해주는 거 아냐? 방금전까지만 해도 아슬아슬한 곡예를 하며 달리던 정국의 바이크는 눈에 띄게 얌전해졌다.


[금렵구 아이시안 6구역 도착했습니다.]


@2012 TOTAL RECALL CONCEPT ART


그와 맞춰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이시안 6구역의 거리가 나타난다. 그의 곁을 함께 달리던 수십대의 차도 이제는 거의 없다. 복잡한 홀로그램 간판과 그 위로 겹겹히 쌓아진 낡은 골조가 드러나는 빌딩과 건물들이 가득하다.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처럼 아슬아슬한 낡은 철교 위를 달려가고 있는 전차 한 대가 정국의 시야에 보인다. 에, 벌써 여기까지 왔다. 조금 더 라이딩하고 싶었는데.

새롭게 개발이 된 후의 모습들도 전부 정국의 기억 속에도 들어와 있다. 뭐 배양관 속에 있었다고 해도, 정신은 자유롭게 계속해서 정보와 데이터들을 새로 업데이트하고, 오래된 정보들은 삭제하고 부족했던 정보들은 덧붙여 채워 완전하게 만들어나갔다. 정국은 다리 옆의 타워형 주차장 옆에 바이크를 잠시 멈추고 그 아래 검은 물을 가르고 흘러가는 배들을 바라보았다.

이런 곳에서 마시는 술은 싼 값이겠지만, 맛있다고. 잠들기 전에는 자주 갔었으니까 말이지. 정국은 제법 가볍게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타워 주차장 앞의 초록빛 네온 홀로그램 위에 그려진 방향에 맞게 바이크를 세워두고 그 옆에 세워진 낡은 주차 기계에 지문을 댔다.


[신원확인완료. 시타델 연방 소속. 주차료 무료]


복지 끝내주네? 좋네. 종종 휴일이면 여기 와서 술 마셔야지. 주차 타워의 철문이 열리고 홀로그램 위에 세워진 바이크가 스스로 옮겨진다. 바이크를 향해 손을 흔들어주곤, 정국은 홀가분하게 뒤를 돌았다. 워커를 신고 있는 발을 움직였다. 그보다 방금 전에 라이딩 할 때 들려왔던 목소리는 이제 더이상 다시 들리지 않는다. 뭐, 돌아가면 그게 '세르눈노스'였는지 물어봐야겠다.

일단은 여기까지 달려오는 동안 목이 좀 말랐다. 술이라도 마실까? 예전에 있던 클럽이나 바는 없어졌지만 그 자리엔 간판을 바꿔 달고 계속해서 같은 업종의 바를 운영중이다. 수 없이 많은 수인들이나 인간들의 사이를 지나쳐 간다.

정국의 앞으로 갑작스럽게 현란한 나비 문양을 온 몸에 새겨넣고 헐벗은 몸으로 홀로그램 전광판을 들고 있는 한 여자가 모습을 드러낸다. 여자는 말을 하지 않았지만 그녀가 들고 있는 얇은 홀로그램 광고판에서 조잡한 기계음소리가 계속해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무엇을 원하시나요? 고대 이집트의 왕비? 짐승의 본능을 따르는 인간? 신비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요정? 당신이 원하는 모든 것이 현실이 될 수 있답니다. 쇼크에서는 말이죠-.]


낭랑한 여자의 목소리가 바뀔 때마다 그의 앞에 선 여자의 모습도 단번에 뒤바뀌고 있었다. 전혀 본적없는 표범 무늬가 피부 표면에 자리잡은 여자부터- 파충류의 껍질이라도 뒤집어쓴 것처럼- 옷에 무지개빛으로 빛나는 비늘이 뒤덮여 있다. 쇼를 함께 보여주는 거대한 클럽들의 호객 행위를 하는 여자일 뿐이다. 정국의 어깨를 부드럽게 터치한다.


"에, 나? 됐어. 나 돈 없거든. 거기 가면 완-전히 파산."


정국이 애써 미안한 듯한 표정을 하며 어깨를 들썩거렸다. 웃으면서 정국을 향해 손짓한다. 그럼에도 상관없다는 듯한 태도다.


"게다가 …내 타입 아니야. 미안."


 양 손을 앞으로 모아 기도하듯 고개를 짧게 숙인다. 잔뜩 모욕당했다는 듯한 표정으로 불같이 화를 내는 듯 입을 벙긋거리는 여자의 앞에서 빠르게 등을 돌려 인파 속에 섞여 들었다. 조금 더 가야 하는건가. 정국의 옆으로 또 다시 거나하게 술에 취한 사람들이 낄낄거리며 크게 웃으며 지나갔다.

그 옆으로 고개를 돌리자 꽤 마음에 드는 호프집이 보인다. 오픈된 바 형식으로 되어 있는 곳에 사람들이 가득 들어차 있다. 정국은 활짝 열린 야외 테이블 사이사이를 지나 낡은 로큰롤이 흘러나오는 바의 빈 의자에 털썩 앉았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위치에 앉은 손님과 인사를 하고 있던 바텐더가 정국을 향해 몸을 돌린다.


"주인장! 여기서 제일 도수 센 걸로!"

"…애송이 녀석이 마실 수나 있나?"

"에이, 나를 뭘로 보고요. 형씨는 몇 살이나 먹었는데?"

"…쉰 둘."

"나보단 어리네! 어라? 아닌가. 나 지금 나이로는 스물 여섯이지."


입 안에 담뱃잎을 말아 질겅대며 씹고 있던 주인장은 정국을 향해 한쪽 입꼬리만 끌어올려 웃었다. 뭐 이런 이상한 녀석들이야 하루에 수백명씩 이 술집에 드나들테니,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이 술을 파는 업장의 불문율일 것이다. 마스터이자 바텐더인 그의 쉰 둘이라는 나이에 비하면 새파랗게 어린 젊은 놈이 세상을 다 산 남자처럼 구는 것이 꽤나 흥미롭기도 하다. 그는 정국을 향해 새파랗게 염색한 눈썹 한쪽을 들썩거리며 상체를 숙였다.


"스물 여섯짜리 애송이가 우리 가게에서 제일 도수 높은 술을 마실 수나 있나?"

"아, 그거 줘보고 얘기하면 안되나?"

"뭐, 좋아. 나중에 마셔보고 환불해달라는 말이나 하지 말게."


정국은 낡은 테이블 위를 손바닥으로 툭툭, 가볍게 두드리며 웃었다. 당연하지. 담뱃잎을 징걸거리며 바텐더가 냉장고 문을 연다. 가득 쌓인 곳에서 뭔가를 꺼내어 잔에 따른다. 코르크로 꽉 막혀 있던 병에서 흘러내리는 것은 향기도, 색도, 어느 것 하나 특별할 것 없는 무색, 무취의 액체다. 길고 좁은 유리잔 끝까지 채워져 찰랑인다. 얇게 썰어 저민 라임 즙을 뿌려 넣어준 후, 그것을 꽂아주고 허브로 보이는 것 하나를 술 위에 띄운 채 정국을 향해 내밀었다.


"도수는 70도야."


에에, 그정도? 괜찮으려나? 뭐. 돌아가는 길에는 자동 항로 설정해두면 곧장 돌아가겠지만 말야. 이런 걸로 취하지는 않으니까. 정국은 잔을 받아들었다. 바텐더는 어디 한 번 마시라는 듯 정국을 향해 턱을 할짝 들어올리곤 팔짱을 끼운 채 보고 있다.


"이 잔 다 마시면, 이 술은 내가 공짜로 주는 걸로 하지. 애송이."

"그 말 무르기 없기야, 보스."


정국은 유리잔을 손에 쥐고 건배를 하듯 바텐더를 향해 유리잔을 들어보이곤, 단숨에 입 안으로 털어넣었다. 목 안쪽을 타고 넘어들어가는 감각이 느껴진다. 타들어가는 듯 화한 알콜의 맛. 화끈거릴 정도지만, 시원하기 그지없다. 한껏 치켜올린 정국의 목울대가 꼴깍, 꼴깍, 움직인다.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던 중년 바텐더의 얼굴이 서서히 놀람으로 바뀌어 간다.


"크---으! 이맛이지!"


 정국은 마지막 남은 한 방울까지 남김없이 마시고 잔을 내려두었다. 이야-! 바텐더와 함께 옆에서 그것을 지켜보고 있던 이들 중 몇 명이 정국을 향해 찬사와 환호성을 보낸다. 정국은 단번에 비운 잔을 자신의 머리에 거꾸로 뒤집어 털어보인다. 한 방울도 떨어지지 않는다. 모두가 정국을 향해 술을 사겠다며 달려든다. 정국을 향해 자신이 산 술을 건네는 이들이 몰려들었다. 어깨를 두드리곤, '마셔! 마-셔! 마셔!'라고 외치기 시작한다. 그래, 바로 이거야. 이런 게 즐거운 일이잖아. 정국은 그들 중 한명이 내민 술을 단숨에 꺾어 마셨다. 바텐더까지도 정국을 향해 졌다는 듯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다.


"…헤이. 너 대체 뭐야? 수인? 이 구역에서 이렇게 잘 놀고 잘 마시는 놈들 못 봤는데!"

"어이- 맞다고! 이렇게 술 잘마시는 녀석 오랜만인데!"

"당연하지, 이 술맛이 그리웠으니까. 주인장. 또 다른 술 없어요?"


 눈을 빛내며 묻는 매력적인 얼굴의 청년이다. 술집의 바 근처에 앉아있던 이들은 이제 정국의 매력에라도 흠뻑 빠진 것처럼 그의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얼굴도 몸도, 가볍게 걸친 가죽 라이더 자켓도. 꽤나 매력적이다. 그렇게 도수 높은 술을 몇 잔씩 꺾어 마셨는데도 전혀 취하지 않은 점도 대단하고 말이다. 바텐더는 결국 정국을 향해 두 손을 들여보였다.


"자네 술 값은 오늘 받지 않겠네."

"아, 와 최고! 그럼 나 앞으로 여기 단골 가게로 정해도 되나!? 이름이 뭐더라-"

"이제껏 우리 가게 이름도 모르고 있었단 말야?"

"아, 술 보이자마자 들어와서 간판을 못 봤네."

"여긴 Mani야. 옛 고대 언어로 달을 뜻하지."

"오, 마니. 좋아. 나 그럼 마니를 이제 단골 가게로 할거야. 내 이름으로 술도 달아둬요. 다음에 올 때에는 돈 들고 올 테니까."

"…그럼 돈 없이 여기까지 온 거야, 자네?"

"아, 오늘 마실만큼 마시고 외상 달아두려고 했는데."


 대화를 하다보니, 더욱 더 이상한 청년이로구만. 아니, 간이 큰 놈인가. 처음 온 객같은 손님에게 외상을 달아줄 정신나간 사장이 있을거라 생각하고 있는건가? 그럼에도 분명 만약 그가 외상을 달겠다고 했으면, 왠지 모르게 흔쾌히 돈은 필요없다고 해두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 바닥에서 삽심년이 넘도록 술집을 운영했지만, 이런 손님은 처음 봤다. 돈도 없이 술집에 들어와서 가장 도수가 높은 술을 시키고 술 값이라곤 단 한푼도 내지 않고 여기 있는 모든 손님을 친구로 만들어 놀다 갈 줄 아는 녀석이라니. 그런 놈에게는 역시, 돈을 받으면 안되겠지만. 그는 이제야 하하 웃었다.


"이 자리에서만 가게를 삼십년이 넘도록 하고 있지만 자네같은 청년은 처음이네. 좋아. 단골로 달아주지."


빳빳한 털이 덥수룩하게 난 바텐더가 정국을 향해 악수를 내밀었다. 정국은 그의 손을 강하게 맞잡았다. 그리곤 웃었다. 잘 부탁해. …어린 놈이 따박따박 반말을 해대는 것이 밉지도 않다고 생각되는 이유는 왜일까.


"자네, 이름이 뭔가? 단골 손님 이름은 알아둬야지."

"정국."

"정국?"

"전정국."


끝맺음이 힘있게 느껴지는 이름이로구만. 정국은 바텐더와 악수를 하며 웃었다. 아, 잘 놀았다. 술 사주는 거 사양안하고 다 받아서 마셨더니 벌써 몇 잔이나 더 마셨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게 그리웠다. 꿈속에서는 술 같은 거 마시지 못했잖아. 사람들과 제대로 어울리지도 못했고 말야. 정국은 비로소 지금 이 순간 자신의 몸이 '현실' 속에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마 여긴 새벽이 지나고 해가 뜰 때까지도 손님을 받고 영업을 할 것이다. 뭐 석진이 정국에게 딱히 통금시간을 걸어두진 않았지만, 자정을 넘겨서 새벽 한시까지도 들어가지 않으면 걱정할 것이다. 오늘은 깨어난 첫 날이니까 사고치고 싶진 않다. 이제 슬슬 가볼까. 떠들어대던 사람들의 소음 속에서 조용히 의자를 끌어 일어나던 순간 정국의 귓가에 다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른쪽.」

"…!?"


정국의 귓가에 불현듯 목소리가 잡혔다. 이상한 일이네. 귀 속에 수신기는 꽂지 않았다. 바이크는 주차 타워에 올려두었으니, 거기 안내음이 여기까지 들릴 리는 없고. 제 아무리 시타델이 첨단 기술로 무장한 곳이라고 해도, 이런 금렵구 외곽 지역까지 제대로 된 전파를 보낼 수 있을 리는 없다. 게다가 내가 잠들어 있는 동안 내 몸의 반을 기계로 개조하지도 않았으니까. 몸 속에 수신기 꽂지 않았을거고. 이거 진짜잖아. 정국은 우뚝 멈춰섰다. 자연스럽게 높은 스툴 위에 앉았다.


「자리에 머물러.」

"…넌 대체 뭐야? 어디 있는거야? 어디서부터-"

「쉿. 조용.」


대체 뭐야. 정국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웃고 떠들고 술잔을 부딪히며 떠나가라 노래를 부르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이 목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이 수 많은 인파 속에, 이 목소리의 주인공이 숨어있나? 정국은 입고 있던 바지춤에 내장되어 있을 머신건 쪽을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렸다.


「20초 뒤에, 자리에서 벗어나. 카운트 다운은 내가 센다.」

"…이유라도 말을 해줘야, 할 것 아냐."

「이유? 이유가 있어? 전정국. 네 녀석이 유일한 발할라의 '에인헤라르'라는 걸 보여줄 때야.」

"--!!!"


그건 이 술집의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는데. 에인헤라르라는 명칭까지 알고 있다면, 누구지? 시타델의 관계자? 남자의 낮은 목소리가 귓가에서 머리속으로 직접 전달되어 웅- 울리는 것 같다. 목소리는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10.9.8.7.6.5.4.3.2. …1.

콰과광-!!!! 정국의 등 뒤에서 폭발음이 들려온다. 정국은 짐승과도 같은 반사신경으로 자리에서 뛰어올라 몸을 돌려 달리기 시작했다. 아이시안 구역의 교각 위를 달리고 있던 낡은 초고속 열차가 멈춰선다. 교량위의 전차가 폭발했다.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이 곳에서 도망치기 시작한다. 위잉, 위잉, 두두두두두두- 땅을 울리는 것만 같은 거대한 굉음이 들려온다.


「자아. 가보자고, 전정국.」


귓가에 들려오는 목소리는, 더욱 더 선명해졌다. 칫. 정국은 이를 악다물었다.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다리 위까지 바로 옆에 있는 건물들의 외벽에 붙은 철골 구조물들을 타고 올라가면 금방 갈 것이다. 정국은 강물이 흘러가는 다리의 난간 위에 가볍게 올라섰다. 몸을 한껏 낮췄다. 도약을 위한 어떤 사전 준비도 필요치 않았다. 정국은 맨 몸으로 3층 건물의 외벽에 달려 있는 낡은 철제 간판을 향해 뛰어 올랐다.


「마음껏 날뛰어 봐.」

"뭐, 그래. 좋아. 좋다 이거야. 네 녀석 정체가 뭐든지 알아보는 건 이 다음으로 미룰 테니까."


마음껏 날뛰어 보자고.


 


*


오랜만이네요. ㅎㅎㅎ기다려주셨을까요... 드디어 나옵니다. 발할라의 정국이와 만날 남자.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는 최고의 "전사"인 또 다른 남자가...드디어...나옵니다. ㅎㅎㅎ 요즘 날이 많이 따뜻해졌네요. 모쪼록 다른 이야기에서도 또 뵙겠습니다! 


언어의 파도 나는 당신의 파도를 유영하는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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