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에 타오르는 집, 순식간에 혼비백산에 빠진 현장에 어린 아이가 주저 앉아 울고 있다.


"엄마...흐어엉.."


힘없이 엄마만 부르며 울고 있는 아이 위로 불기둥이 쏟아져 내렸다. 그 순간 검은 인영이 아이를 품에 안아 날아올랐다. 밤하늘의 달빛에 대비되는 흑빛의 존재는 죽음의 구렁텅이에 빠져있던 아이를 구했다. 아이는 우는 것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자신을 안아 든 사람을 보았다. 얼굴을 향해 퍼붓는 강한 바람과 그림자로 인해 입밖에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 입은 아이에게 안심하라는 듯 부드러운 호선을 그리고 있었다. 아이는 혹여 공중에서 떨어질까 목에 팔을 감싸 안았다. 하얀 손은 아이를 토닥이며 바람을 가르며 날았다. 더 이상 매캐한 공기가 흐르지 않는 곳에 도착한 그들은 땅에 발을 디뎠다. 다리가 풀린 아이는 바닥에 주저 앉았다. 


"허억.."


숨이 막히는 듯한 시간이 뒤늦게 아이를 덮쳤다. 아이를 이곳으로 데려온 미지의 존재는 아이의 이마에 손을 댔다. 아이는 시선을 올려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손의 근처에서는 반딧불이 반짝이듯이 빛이 났다. 그 순간 아이에게는 편안한 감정이 파도처럼 몰려왔고 서서히 눈이 감겼다. 아이가 들은 마지막 말은, 


"좋은 꿈을 꾸거라, 아가."


그 날의 일도 벌써 13년이 지났다. 흐릿해진 기억을 가지고 아이는 드디어 성인이 되었고 다른 사람들과 다름 없는 평범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또래와 같이 아르바이트도 하고, 친구들과 술자리고 가지고, 대학교도 다니며 살았다. 이 모든 것을 누릴 수 있었던 이유는 아이에게 익명의 후견인이 있었기 때문이다. 가끔 이메일로 주고받는 후견인과의 안부는 그의 존재를 더욱 궁금하게 만들었다. 아이는 얼른 자립하여 후견인에게 빚을 갚고 싶었다. 그렇게 아이는 내로라하는 기업에 전부 면접을 보러 갔고 그렇게 자신을 써준다는 기업의 부름을 받고 첫 출근의 날짜가 다가왔다. 떨리는 마음으로 단정히 옷을 차려입은 아이는 1층 중앙에 자리한 직원에게 가서 말했다.


"오늘부터 출근하기로 한 이제노입니다. 이곳에서 이름을 말하면 지정된 부서로 이동된다고 들었습니다."


"아, 이제노씨. 반갑습니다. 이제노씨는... 21층에 가시면 됩니다."


"네? 저는 일반 부서로 지원했는데요..?"


"하지만 이곳에 이제노씨는 21층 이사실로 발령 받으셨습니다. 여기 카드키 드리겠습니다."


얼떨결에 카드키를 받고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은 아이는 휙휙 스쳐 지나가는 바깥 풍경을 보다가 핸드폰에 후견인과 나눴던 문자를 보며 다짐했다.

"제가 꼭 갚을게요, 아저씨."

엘리베이터는 맨 위층인 21층에 도착하였고 아이는 아까보다 묵직한 공기의 흐름에 바싹 마른 입안의 침을 삼키며 이사실의 문을 두드렸다.


"들어오세요."


생각보다 젊은 남성의 목소리가 들렸고 아이는 문을 열고 들어가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이제노라고 합니다."

 

"네, 반가워요."


아이와 같은 또래의 남성이 웃으면서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했다. 아이는 그 손을 뿌리칠 수 없어 부랴부랴 남성의 손을 잡았다.


'차가워..'


아이의 눈살이 살짝 찌푸려진 것을 본 남성은 웃으며 말했다.


"제가 몸이 차가워서요."


머쓱해진 아이는 머리를 긁적이며 어색하게 미소 지었다. 남성은 젠틀한 손짓으로 방 중앙에 있는 소파로 안내했다. 어색하게 앉아 남성의 말을 기다리는 아이에 남성은 웃으며 말했다.


"오늘부터 제노씨는 제 개인비서로 일하게 됐습니다."


"아...네.."


시선을 살짝 들어 마주친 남성의 입꼬리는 부드럽고 따뜻한 호선을 그리며 웃고 있었다. 남성은 옆에 있는 방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서 개인적인 업무를 보다가 세미나같은 행사가 잡혔을 때 호출을 하면 같이 움직일겁니다."


"네.."


"어려운 일이 아닐테니 걱정하지마세요."


"네. 감사합니다.."


아직도 적응 하지 못한 아이를 바라보며 남성은 웃으며 말했다.


"이상 필요한 말은 다 전달해드렸습니다. 혹시 질문이 있어요?"


"아니요."


아이는 손사래까지 치며 부정했다. 그리고 일어나서 인사를 하며 말했다.


"필요한 일이 있으시면 말씀해주세요."


그렇게 후다닥 떠난 아이를 바라보는 남성의 머리색이 하얗게 변했다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남성은 아주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잘 컸구나, 아가야."





















오랜만에 돌아왔습니다!ㅠㅠ 시험 기간에 실기까지 겹치는 바람에 현생에 치여 글을 못 올렸는데요.. 이제부터라도 묵혀놓은 글 하나씩 올릴려고 합니다! 언제나 부족한 제 글을 읽어주시는 여러분께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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