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버전
*다니엘 헤니 x 잭 양,  센티넬 가이드,  월터&잭 쌍둥이 설정
*산달 님의 Story of Jack 에서 어지는 글입니다.





Story of Daniel


너는 아름답다. 집에만 있으면서 보기 좋게 그을린 피부는 보는 이로 하여금 칭찬을 부른다. 미소는 또 어떤가. 좀처럼 웃지 않는 네가 활짝 웃을 때면 따라 웃지 않을 수 없다. 너의 미소에는 힘이 있다. 나를 안심시키고 말 없이도 진심을 전하는 힘. 하지만 가장 좋아하는 건 네가 활짝 웃을 때도 아니고, 그을린 피부를 슬쩍 내비칠 때도 아니다. 웃을까 말까, 웃자, 웃어 주자, 하며 잔잔한 눈빛을 보낼 때 나는 그 순간을 끄집어내어 단단한 프레임에 가두고 싶다는 충동이 든다. 수줍은 너는 웃고 싶지 않을 때조차 착한 성격에 지고 만다. 그때마다 보이는 씁쓸하고 안타까운 얼굴을 좋아한다.


***


몇 시쯤 됐을까. 월터는 이불을 젖히고 일어나 창밖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빛이라곤 전혀 없어서 눈부실 일이 없는데도 월터는 눈을 찡그렸다. 완전히 닫힌 커튼은 안으로 들어오려는 모든 빛과 소음을 차단했고, 역시 집안의 어둠을 빼앗기는 게 싫은 듯 작은 틈도 주지 않았다. 어둠뿐인 창밖을 월터는 오래도록 응시했다.

"왜 그렇게 있어?"

다니엘이 깼다. 부스럭거리는 기척을 느끼고 눈을 떴다. 주위는 어두웠다. 머리맡의 휴대폰 홈 버튼을 누르니 새벽 세 시가 넘었다. 희미한 휴대폰의 불빛 때문에 눈이 부셔 반사적으로 눈을 몇 번 깜박였다. 졸린 눈은 금세 어둠에 적응했고, 월터가 멍하니 밖을 바라보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월터, 월터어."

응석이 섞인 목소리로 월터를 당겼으나 월터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다니엘은 여전히 침대에 누워 숨을 죽인 채, 눈을 가늘게 뜨고 그 실루엣을 보았다. 그를 따라 창문으로 시선을 옮겨 봤지만 보이는 건 없었다.

"밖에 뭐 있어? 왜 그래, 월터."

이윽고 요지부동이던 마른 몸이 움직였다. 커다란 배가 방향을 바꿀 때처럼 몸이 천천히 각도를 바꿨다. 월터는 툭 떨구고 있던 팔을 빼고 다니엘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그리고 작게 속삭였다. "아무것도 아니야." 월터의 얇고 부드러운 손이 뺨을 훑었다. 익숙한 손길은 언제 받아도 따스했다. 그때쯤 두 사람의 눈은 어둠에 완전히 적응했고, 불 없이도 서로를 알아볼 수 있었다. 다니엘은 자신의 뺨을 어루만지는 손에 입을 맞췄다. 손은 쉼없이 움직이는 초침처럼 오래도록 뺨 위에 머물렀다. 그러다 입술을 지나갈 때면 놓치지 않고 입을 맞췄다. 기저에 깔린 사랑은 잠결에도 여전했다.

"오늘 늦게 들어와서 화났지.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 말도 없이."
"아니야, 바쁜 거 아는데."
"아니긴, 삐쳐서 잠도 못 자 놓고. 미안해, 월터. 이리 와."

달래는 목소리가 다정하다. 그것을 받는 목소리는 다정을 포용하는 그릇처럼 나긋나긋하다. 다정은 나긋함을 흡수하듯 당겨와 품에 가뒀다. 나긋함은 품에 기대어 아기 고양이 같은 숨소리를 냈다. 둘의 밤은 평화로웠다. 자다가 깼는데도 누구 하나 불평하지 않았다. 자주 있는 일이었다. 이따금씩 월터는 자다 일어난 다니엘의 어눌한 다정함이 좋아서 일부러 깨어 있기도 했다.

한참을 안고 있던 두 사람은 새까맣게 탄 어둠 속에서 지극히 당연한 일인 것처럼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월터는 흰 실크 잠옷셔츠에 종아리까지 오는 잠옷바지를 입고 있었다. 키가 크고 마른 탓에 항상 사이즈가 애매했다. 게다가 위아래 세트를 맞추는 섬세함을 갖춘 것도 아니었어서 늘 손에 잡히는 대로 꺼내 입었다. 다니엘 역시 마찬가지였고, 보통은 신경 쓰지 않았지만 되도록이면 입지 말고 잘 것을 권했다. 벗기기 귀찮다는 이유였다. 다니엘이 월터의 셔츠단추를 하나하나 풀어내렸다. 서두르지 않지만 망설임도 없다. 아주 매끄럽고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단추를 하나씩 풀고, 바지를 벗기고, 속옷을 벗겼다. 부드러운 옷감은 소리도 없이 바닥에 떨어졌다. 마찬가지로 지극히 당연한 일인 것처럼 월터는 알몸이 되었다. 월터는 다니엘의 바지를 끌어내리고 딱 달라붙는 브리프 안으로 손을 넣었다. 아주 단단하고 따뜻했다.

다니엘의 몸 위에 올라타 두 팔로 단단한 몸을 감쌌다. 다니엘은 팔을 더 크게 벌려 그런 월터를 품에 가두었다. 서로의 따뜻한 숨결이 목덜미에서 느껴졌다. 허벅지에는 월터의 체모가 닿았다. 이윽고 월터는 미끄러지듯 들어왔다. 항상 했던 일을 그대로 되풀이하듯 지극히 자연스럽게, 당연한 일로써, 반쯤 잠이 든 채, 꿈을 꾸듯이 들어왔다.


***


긴 시간이 지나갔다. 움직일 수 없었다. 다니엘은 옴짝달싹할 수 없는 상태로 손을 뻗어 머리맡 휴대폰 홈 버튼을 눌렀다. 벌써 다섯 시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둠에 완전히 적응한 탓에 더 이상 휴대폰 불빛이 눈부시지 않았다. 새벽빛 한 줄기가 들어올 법도 한데, 철저히 닫아 둔 커튼은 성문을 지키는 문지기라도 되는 것처럼 외부의 어떤 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가만히 월터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보송보송한 촉감이 좋았다.

"새벽이야, 월터."
"응, 새벽."
"안 힘들어? 물 갖다 줄까?"

월터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몸을 움직이지도 않았다. 꽉 맞물린 성기는 어느 틈엔가 빠져 있었고, 이불을 적신 정액은 흘러가는 시간과 함께 말라갔다.

"커피."
"뭐라고?"
"커피 마시고 싶어. 뜨겁게."
"지금 당장?"
"지금 당장."
"타 올게."
"아니, 사다 줘. 아주 뜨거운 걸로."

월터는 섹스를 마친 후 별안간 커피를 주문했다. 다니엘은 눈에 띄게 당황했지만 월터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마치 배달 음식을 주문하는 사람처럼 태연하게 주문을 마치고 눈을 감았다. 그는 다니엘이 자신을 위해 새벽의 커피 심부름 정도는 당연히 갖다 오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다니엘은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고, 그제야 월터는 다니엘에게서 떨어졌다. 천천히 속옷을 입고, 잠옷셔츠를 걸치며 느릿하게 단추를 잠궜다.

다니엘은 말없이 일어나 옷을 갖췄다. 젖은 속옷은 빨래바구니에 던져 놓고 따뜻한 스웨터와 치노 팬츠를 입고 지갑을 챙겼다. 군더더기 없고 재빠른 몸짓이었다. 다행히 꽤 가까운 곳에 24 시간 문을 여는 스타벅스가 있으니 금방 다녀오면 된다. 이왕 간 김에 월터 아침으로 스콘을 사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다녀올게." 짧게 중얼거린 후 문을 나섰다. 마지막까지 월터에게 눈을 떼지 못했다. 몸을 작게 웅크린 그가 이불을 잘 덮었는지 확인하고 나서야 발을 뗄 수 있었다.

스타벅스는 가까웠다. 성큼성큼 걷는 다니엘의 발걸음으로 채 십 분이 걸리지 않았다. 주말 아침의 이른 시간이라 손님도 별로 없어서 커피는 거의 주문과 동시에 나왔다. 새벽 다섯 시에도 명랑한 스타벅스 파트너가 말했다. "아주 뜨꺼운 카푸치노, 식지 않도록 홀드컵 두 개 끼워서, 맞으시죠?" 다니엘은 커피와 스콘을 받아들고 고맙노라 대꾸했다.

돌아오는 길은 왔던 길보다 빨랐다. 같은 거리인데도 훨씬 가깝게 느껴졌다. 건널목만 건너면 집이었다. 다니엘은 차가 다니지 않는 신호등에서도 고집스럽게 초록불을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 문득 양말에 시선이 갔다. 불도 키지 않고 입느라 양말을 짝짝이로 신었다. 월터에게 말해 주면 웃겠지. 그를 떠올리니 웃음이 났다. 손바닥으로 감싼 테이크아웃 잔이 따뜻했다. 그 사이 초록불이 켜졌다. 길을 건너 집이 아닌 옆 가게의 빈 테라스에 앉아 주머니를 뒤적였다. 담배였다.


***


월터.
아름다운 월터.

지금 내 모습을 보면 너는 뭐라고 할까. 추우니 들어가라? 커피 고맙다? 어쩌면 나의 짝짝이 양말을 보고 놀릴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종종 아무렇지도 않은 유치한 것들로 시간을 채우곤 했으니까. 월터, 어떤 말이든 좋으니 네가 있으면 좋겠다.

내 모습에 언제나 칭찬뿐인 너였지만 이젠 확신할 수 없다. 네가 떠난 후, 굶어서 야윈 사냥개마냥 두 뺨이 패이고 어깨며 허벅지며 볼품없이 말라서 칭찬은커녕 걱정만 한가득 안겨 줄 것 같다. 자세가 눈에 띄게 나빠졌고 어깨가 기울어졌다. 금방 회복할 수 있는 수준이라서 다행일 뿐,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의 심각함을 전혀 알지 못했다. 알고 싶지 않았다. 죽어 가는 사람처럼 보인다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여겼다. 어떤 의미에서 나는 이미 죽은 것과 다름 없으니까. 가이드를 잃은 센티넬은 대체 어디에서 삶을 지속해야 할까. 너를 잃은 나는 대체 어떻게 살아야 해.

내가 사랑하는 연인. 나의 귀한, 나의 소중한 가이드. 널 어떻게 추억해야 할까? 어떤 말로 널 기억해야 좋겠어. 응? 말해 봐. 네게 어울리는 미사여구, 아니, 네가 듣고 싶은 말이라면 수백, 수천 번이라도 더 해 줄 수 있어. 그러니까 월터, 제발 돌아오기만 해.

너를 떠올리면 이렇듯 담배 반갑이 우습게 사라진다. 월터, 아무래도 나는 네가 없으면 죽나 보다. 없이 살아 보려 시도해 봤지만 번번이 무너졌다. 기갈에 머무르다 바닥을 찍고 일어났다. 스스로 숨을 차단하는 건 쉬웠지만 막힌 숨을 뚫는 것은 무척 힘들었다. 그래서 너를 찾아왔고, 덕분에 이렇게나마 못난 숨을 쉰다.

나는 살기 위해 너를 추억하고 있다. 그러면 힘이 나. 살아져. 내가 이렇게나마 사는 걸 너는 용서할 수 있겠니? 나는 살기 위해 하나뿐인 너의 동생을 죽였다. 그제도, 어제도, 오늘도, 아마 앞으로도 계속 잭의 얼굴을 너로 덮고 사랑에 빠질 것이다. 그러면 저 깊이 판막이 뛰고 심장이 움직이며 비로소 폐에 삶이 들어찬다. 그럴수록 잭이 죽어 간다. 형을 잃은 슬픔에 이어 나 때문에 마음이 다 찢어졌다. 얼마나 깊이 상처를 낸 건지 감도 오지 않아, 월터. 사랑하지도 않는 내게 안겨 잭이 매일 울고 있다.

그래, 집앞에서 망설이는 이 시간은 사실 너를 추억하는 시간도, 담배를 위한 시간도 아니야. 잭이 울고 있는 시간이지. 모른 척 넘어가는 이기적인 시간.

월터, 나를 용서할 수 있겠니.






twitter.com/unseendeer

unseendeer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