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컬트 동아리요? 그런 동아리는...비공식 동아리란 말씀이신가요?"

"그래...왜! 뭐! 안된다는 교칙도 없잖아!"

"장은표. 어디서 큰소리야."


범인에게 가격을 당한 미술부 3학년이 깨어났다는 소식에 병원을 방문했다. 머리에 거즈를 붙인 선배님은 어머니의 간호를 받고 있었다. 고상한 투로 나직이 선배를 꾸짖은 어머님께서 대신 사과하셨다.


"생명의 은인께 공손해야지, 은표야."

"생명의 은인은 무슨..."

"장은표!"

"괜찮습니다, 관장님. 그럼 선배님, 오컬트 동아리원 네 명이 교내 동서남북에 위치해서 동시에 주문을 외웠다, 이 말씀이시죠?"

"그래!"

"그 동아리 회원들이 누구인지 알려주시겠습니까?"

"몰라. 익명으로 활동하니까."


한숨을 쉴 뻔한 것을 가까스로 참아내고 메모장에 '오컬트 동아리 조사' 라고 입력했다. 교내에 비공식 동아리가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학생회에서 파악하지 못한 것을 보면 익명이라고 해도 비밀유지가 철저하고 저들끼리 돈독한 것 같다.


집안끼리 교류가 잦거나 부모님들의 직장이 비슷한 자녀의 경우, 이런저런 모임을 자주 갖기는 해도 따지고 보면 학교밖의 모임이다. 휘광여고 학생들도, 선후배들도 모이기 때문이다. 나또한 자주 모이는 몇이 있다. 그 모임 챙기기도 바쁜데 굳이 휘광고 재학생만 가입할 수 있는 비공식 동아리를 만들 생각을 한 사람이나 알아내고 가입한 사람이나, 어느 의미로는 참 대단했다.


"동아리 가입은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 겁니까? 이런 동아리가 있다는 건 어떻게 아셨고요?"


장은표는 물로 목을 축이고 바짝 마른 입술을 열어 긴 설명을 막힘없이 술술 뱉었다.


"...라커에 명함사이즈의 종이가 꽂혀 있었어. 검은색 종이에 글자는 빨간색으로 cult us 라고 적혀있었고, 하단에 Oc.31 이라고. 처음에는 10월을 표시하고 싶었는데 t를 빠뜨린 건가 했어. 10월 31일 할로윈 근처였거든. 영어 지지리도 못하는 멍청한 놈이 명사, 동사 구분도 못하면서 사이비 포교한다고 그렇게 생각했는데, 다시 보니 이상하더라고. 순서를 바꾸면 Occultus잖아. 오컬트(Occult)가 Occultus에서 유래했으니까, 아 이거 심상치 않구나, 싶었지. 그래서 주소창에 Occultus.31 이라고 검색해 봤어. 휘광고 내 비공식 오컬트 동아리라고 하더라고. 회원이 되려면 학생증이랑 교복을 인증해야 했어. 대신 이름이나 사진은 가리고. 총 회원수가 몇인지는 몰라. 활동이라고는 각자 아는 오컬트 썰을 푸는 정도였고, 어제 처음으로 활동다운 활동을 한 거지."

"하아...내 아들이라지만 도대체가..."


장은표 선배님의 어머니는 갤러리 몇을 소유하고 있었다. 출생부터 고귀하고 우아하게 자란 관장님은 제 배에서 나온 아들에게 순간 혐오의 눈빛을 내비쳤다. 아마 스스로도 자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상류층의 예의를 배운 사람에게 '경멸'이란 속으로 느낄지언정 겉으로는 숨겨야 하는 날것의 감정이었다. 그런데도 순간 그는 제 아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사이비에 빠진 어리석은 타인을 보듯했다. 제 자식이기에 더 이해할 수 없고 어쩌면 배신감도 느꼈겠지.


낯설지 않다.


'고세인'


고개를 저으며 잡념을 털어냈다. 이럴 때가 아니었다.


"오컬트 동아리는 그날 무엇을 위해 교내 동서남북으로 흩어진 건가요?"

"......"

"불을 지르려 하셨습니까?"

"무슨! 우리는 방화 동아리가 아니라 오컬트 동아리라고!"

"자세히 말씀해주세요, 선배님. 웬만한 학생들은 그 시간에 소각장에 가지 않습니다. 그런데 범인이 소각장에서 선배님을 노린 거라면, 선배님이 소각장에 간다는 걸 알았다는 얘기잖습니까."

"우리는 철저히 익명으로 활동하기 때문에 나를 특정하진 못했을 거야. 그날도 현장에 나가는 것, 방향, 모두 제비 뽑기로 진행했어. 익명4, 익명17, 익명2, 익명21. 이렇게가 동서남북으로 배정 됐어. 내가 익명21이었고. 그리고 내가 소각장까지 가면서 얼마나 주변을 살폈는데. 쫓아오는 사람은 없었어. 그러니까 범인은...우리가 불러낸 귀신인거야!"


뜬금없이 등장한 귀신이란 단어에 놀라긴 했으나 관장님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정은표! 무슨 소릴 하는 거야! 그 입 안 다물어?!"


관리 받은 손톱이 뺨을 짓누를 정도로 세게 선배의 입을 틀어막았다.


"미안해요, 테이 학생. 은표가, 쟤가 아직 제 정신이 아니라 그래. 이해해줘요."

"...전 괜찮습니다. 하지만 경찰 조사에서는."

"그럼, 그럼. 내가 잘 처리할게요."


선배가 관장님의 얇은 손목을 붙잡고 가볍게 떼어냈다. 아들의 힘에 또 한번 적잖게 놀랐는지 큰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평생을 고상하게 사신 어머니는 이해못하시겠죠. 하지만 내가 우리 동아리의 성과를 몸소 입증했잖아요? 제가 귀신을!"

"그 입! 다물지 못해?!"


악을 쓰듯 외친 관장님의 뺨이 흥분과 당황으로 새빨갛게 물들었다.


"윤박사...윤원장, 아 그래, 테이 학생, 내가 어머니 좀 찾아 뵙고 싶은데, 지금 좀 급해서 그런데 도와줄 수 있을까요? 미안해요. 우리 아들 구해준 은인한테 염치없이 이런 부탁이나 하고..."


선배가 오컬트 동아리를 언급했을 때부터 이렇게 될 가능성을 예상했다.


"바로 가실 건가요?"

"그래야겠어요. 우리 은표가, 응, 은표가 윤원장님 도움이 당장 좀 필요해 보이네요."

"출발하시면 말씀드려 놓겠습니다."

"고마워요. 그...부탁해요, 테이 학생. 내가 나중에, 이건 나중에 갚을게요."

"네."


선배는 앞으로 제가 가게 될 곳이 어디인지 알면서도 딱히 반항하거나 거부감을 보이지 않았다. 이미 주변의 몇몇은 '그 곳'에 다녀왔을 것이다. 지금 그 곳에 있는 사람도 여럿 있을 것이고. 어쨌든 선배는 눈앞의 두사람이 저를 그곳으로 보내겠다 했음에도 동요하지 않고 오히려 순응했다.


관장님의 요구로 경찰대신 나 혼자 들어와 조사를 하던 참이었다. 갑자기 열린 병실문에 경찰들은 이제 저희도 조사를 시작해도 된다는 뜻인 줄 알았는지 병실로 발을 들였다. 하지만 곧이어 관장님의 연락을 받고 달려온 병원 보안직원들이 베드 채로 옮겨 나가자 경찰들이 반발했다. 그래도 선배는 미성년자였고, 보호자인 관장님의 뜻이 우선되었다. 관장님은 더이상 대면조사는 불가하며 웬만한 것은 내게 전달했으니 내게 물으라며, 합의 없던 짐을 떠넘긴 채 자리를 떴다.


실려가는 선배와 어딘가로 전화를 거는 관장님을 허망하게 지켜보던 여러 쌍의 눈이 내게로 향했다.


"하아...역시 선배님께서도 범인은 보지 못했다고 하셨습니다."


귀신같은 허무맹랑한 이야기 속에서도 건질 만한 정보는 있었다. 선배가 말한 주소를 형사의 수첩에 적어주며 말했다.


"이 사이트 주인을 잡으면 그 사람이 범인일겁니다. 적어도 한패인 건 확실해요."


정확히 정은표가 올 것을 알고 미리 소각장에서 기다리고 있었다는 건데, 그렇다면 익명으로 활동한다고 해도 인적사항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었을 것이다. 그 방법이 무엇인지는, 정신없는 관장님이 미처 챙겨가지 못한 선배의 폰이 말 해 줄 지도 모른다. 관장의 아들이 귀신을 믿는다는 얘기만 나돌지 않으면 되는 것이니 경찰들이 선배의 핸드폰을 조사하는 것 까진 굳이 막지 않았다.


오컬트 동아리의 사이트는 곧장 수사에 착수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문제가 있었다.


"...없어."


보안실의 허가 없이는 학생회는 물론 교사들과 기타직원들까지 교내에 들어올 수 없었다. 특히 학생들은 이유불문 금지되었다. 그건 학생회도 마찬가지라서, 대신 보안직원들이 교내의 게시판을 돌며 동아리 포스터를 모두 회수해왔다.


봉사부 부장인 공제헌이 미술부라서 그와 같은 동아리인 정음표를 노린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미술부 포스터는 물론, 단 한 장도 훼손된 것이 없었다.


우연일까? 정말 온가람과 정은표 선배의 습격 사건, 그리고 양궁부 포스터 훼손 사건은 서로 관련이 없는 별개의 일일까?


학교 화단을 엉망으로 만든 방화범, cctv영상을 바꿔치기 한 해커. 해외에 서버를 둔 오컬트 사이트를 운영해가며 정은표를 꾀어낸 특수폭행범. 한 명일까, 여러명일까.


한명이든 여러명이든 대체 무슨 이유로 이런 짓을 하는 걸까.


주말내내 고민을 이어갔으나 귀신의 짓이라는 선배님의 말이 아주 틀린 말은 아닐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지경까지 갔다.


범인을 특정할만한 증거가 부족했다. 습격당한 정은표는 뒤통수를 가격 당하고부터 기억이 없다고 했다. 눈을 감고 오컬트 동아리 내에서 만든 기도문을 읊고 있었으니 누가 다가오는 줄도 몰랐다고 한다.


남은 방법은 송재하가 만들어 두었다는 멍자국을 확인하는 방법뿐인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임시 휴교중인 지금 경찰과 보안직원들이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전교생의 옷을 벗기고 멍자국을 확인하는 것은 큰 반발을 살게 뻔했다.



MISsION! IMPoSsIbal!

11. 독립영화 (이윤추구를 목표로 하지 않고 제작자의 의도가 중시되어 만들어지는 영화)




이제 학생회가 어떻게 해볼 수 있는 단계가 아니었다. 무력하되 치열했던 주말이 지나고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되었다. 임시 휴교 기간이라 수업은 온라인으로 진행한다. 등교시간에 맞춰 출석체크를 하고 조례를 기다렸다. 평소였다면 아침방송이 진행되었을 시간에, 노트북 화면에는 교장선생님과 이사장님이 함께 카메라에 잡혀 송출되었다. 학교에 학생이라고는 조례 촬영을 위한 방송부가 유일하다.


-큼...안녕하세요, 자랑스러운 우리의 휘광고-


치직, 화면이 일시정지 하더니 스파크가 튀듯 까만 줄이 여러 개 떠올라 교장선생님의 얼굴을 가로로 조각 내었다. 일시적인 오류가 아닐까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서도 학생수가 몇천도 아닌데 뭐 이리 시작부터 튕겨 대냐며 비아냥대고 있을 때였다.


화면이 바뀌고 동관 로비가 보였다. 로비 난간을 따라서 모든 동아리의 휘장이 걸려있다. 갑자기 왜 동관 로비가 뜨는 것인지, 그리고 어쨌든 방송된다는 건 누군가는 동관을 촬영중이라는 것인데 대체 무슨 이유 때문인지 의문을 갖고 불안함을 느낀 순간이었다.


-왜! 왜 이래! 저리가! 가라고!


겁에 질린 비명소리와 함께 3층 난간으로 사람이 나타났다. 난간에 등을 기대어 오도가도 못하던 학생이 비명을 지르며 풀썩 주저 앉자, 등이 닿아 있던 위치의 휘장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미술부의 휘장이었다. 


학생은 도망치듯 겁에 질려가다 뒤를 돌아보곤 한번 더 주저 앉았다. 그러자 이번엔 넘어진 그 위치의 휘장, 오케스트라부의 휘장이 한쪽 고정만 풀린 것처럼 삐딱하게 흘러내렸다. 그래도 한쪽은 묶여 있어 미술부처럼 완전히 떨어지지는 않았다.


학생의 뒤를 따르는 사람은 흐릿해서 잘 보이진 않았으나 가면을 쓰고 있는 것 만큼은 확실했다. 가면을 쓴 사람은 학생을 향해 긴 검을 휘둘렀고, 그때마다 휘장의 한쪽 고정이 풀려 동아리의 로고와 슬로건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 동아리들은 댄스부, 수영부였다.


급박하게 도망치던 학생이 잠시 화면에서 사라지더니 2층으로 내려왔다. 역시나 그 뒤를 가면 쓴 남자가 쫓았다.


-저리가! 나한테 왜 이래! 아악!


학생은 위험하게 아예 난간을 넘어가 휘장에 매달렸다. 2층이니 휘장을 타고 조금 내려가 뛰어내릴 생각인듯 했다. 하지만 매달린 휘장을 검으로 긋자 균형을 잃은 학생은 급하게 그 옆의 휘장으로 옮겨갔다. 검도부의 휘장이 엉망이 되었다.


난간위에 서서 내려다보던 가면은 이번에야 말로 학생을 떨어뜨리겠다는 듯 아예 난간 밖으로 검을 빼, 학생의 눈 앞에서 휘장을 그어버렸다.


-아아악-!


학생과 함께 휘장이 추락하는 것을 끝으로 화면이 꺼졌다.


마지막 휘장은 양궁부의 것이었다.


전교생이 다 보고 있는 방송으로 학생회가 포함된 동아리 휘장만 떨어지거나 찢어졌다. 이제는 범인을 잡아야 겠다는 투지도 사라졌다. 깊은 무력감을 느끼며 방송이 시작될 때부터 울리던 전화를 받았다.


"...응."

-테이야.

"왜 전화했어."

-나 좀 꺼내주라.

"내가 어떻게."

-어머니한테 네가 말씀 좀 잘 해봐, 테이야. 어머니가 네 말은 잘 들어주시잖아. 응? 테이야. 형 좀...제발 꺼내 줘.

"그러게 왜-!"

-반항이었어! 진짜 죽으려고 그은 게 아니었다고! 그랬다면 너 귀가시간 뻔히 아는데 그때 하필 집에서 그었겠어? 정말 죽고 싶었으면 선로에 뛰어들거나 옥상에서 떨어졌겠지!

"그러니까. 그래서 형이 갇힌 거야."

-...테이야, 형 좀-

"형 지금 벌 받는 중이라고. 그럼 나한테 꺼내 달라고 빌게 아니라 엄마한테 빌어야지."

-씁...그건 좀 자존심 상해. 아니면, 내가 뭐 도와줄 건 없어?

"형...철 좀 들어, 제발..."

-너희 학교 지금 난리 났다며. 새로 들어온 애가 그러더라. 학생회 좆됐다고. 귀신들 농간에 놀아나는 중이라고. 휘광고 역사상 최초로 운동장에서 굿판이나 퇴마 의식 진행해야 할 거라고.


땅이 꺼져라 한숨이 나올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장은표 선배는 하필 형에게 홀라당 사정을 털어놓은 것이다.


-귀신같은 헛소리는 걸러 들어도 학생회 큰일 난건 맞는 것 같은데, 그럼 슬슬 학생회 애들 내려오라고 말 나올 거고 대자보나 수업거부까지 번질 수도 있겠는데.


통화 너머의 목소리가 즐거운 일을 기대하는 사람처럼 들떴다. 듣는 학생회 당사자 따위는 신경쓰지 않는 게 정말 형 다웠다.


"끊을게."

-잠깐, 내가 도와줄게.

"뭘."

-범인 잡는 거.

"병원에 갇혀서 하루에 한번만 통화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누굴 도와."

-범인이 유독 장은표만 공들여 잡은 것 같지 않아? 뭐, 피해자가 둘뿐이라 유독이라고 하기도 그렇지만.

"......"

-화단에 불 지르는 거야 하루 종일 부지런히 돌아다니면서 기름 살살 뿌려 놓고 확 불지르면 된다지만, 6개월간 사이트 운영하는 건 웬만한 정성 아니곤 못하지.

"별개의 사건일 수도 있어."

-휘광고도 삼재 이런 거 겪게? 이런 일이 동시에 일어날 가능성이 얼마나 되겠어. 다 같은 놈, 혹은 같은 패 짓이지. 꼬리가 길면 잡힐 수 밖에 없어. 보아하니 범인은 학생회가 마음에 안드는 것 같은데, 두세명정도만 피를 보는 선에서 빠르게 학생회를 끌어내리고 싶을 거야. 피해자 둘로는 아직 살짝 부족하고, 무슨 계기를 또 준비 할 텐데 피해자 늘기 전에 잡아야지?


아마 그 계기는 방금의 영상이 될 것 같단 직감이 들었다.


"...어떻게 잡을 수 있는데?"

-거래할거야?


부탁과 도움에서 거래로. 하지만 이제는 내가 거절하기 아쉬운 입장이 되어버렸다.


"해."


결국 형이 원하는대로 되어버렸다. 내게 빚을 지우는 것 없이 서로 주고받는 거래의 형식으로.




형의 말대로 학교는 발칵 뒤집혔다. 영상자체는 연출된 영상이었다. 언뜻 동관처럼 보였던 곳은 한 건물의 로비였고, 며칠 전 영화 촬영이 있어 빌려주었다는 건물주의 증언을 확보했다. 현금을 받았으며 독립영화 촬영이라 인원수가 적어도 그러려니 했다는 것, 배우 둘과 카메라맨 한 명의 얼굴은 자세히 기억나진 않지만 고등학생처럼은 안보였다는 진술을 얻어내었으나 그렇다고 학생들의 불길을 잠재울 수는 없었다.


휘장이 아예 떨어져 내린 양궁부와 미술부는 그렇다쳐도, 다른 동아리의 부원들은 다음 번 범인의 표적이 제가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만으로 충분히 위협을 느낄 것이다. 더군다나 영상에서 학생역의 배우가 추락했으니 다음 번 피해자는 추락 할 것임을 스포한다는 그럴 법한 이야기까지 퍼지자 그간은 호기심으로 사태를 지켜보던 학생들도 학생회를 향해 분노와 비난을 쏟아냈다.


<학생들을 지키지 못하는 학생회. 이래도 괜찮은가?>


-우리가 물러나면 뭐가 해결되는데?! 범인이 잡히길 해, 아님 범인이 범행을 그만둔대? 우리가 물러나는게 진짜 범인이 원하는게 맞긴 하고? 보안 구멍 낸건 보안실인데 왜 학생회보고 지랄인데!


제헌 선배가 닥친 상황이 답답했는지 회의로 분통을 터뜨렸으나 대꾸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실책한 건 보안실 쪽이지만 비난의 화살은 학생회 쪽으로 쏠렸다. 이유야 뻔했다. 노려진 동아리의 공통점이 학생회였기 때문이다.


“선배님들.”


-내가 봤을 때 범인이 노리는 건 고요나 다른 3학년이 아니라 너야. 임기 3개월 남은 애들을 뭐하러 이제 와서 노리겠어. 불명예스러운 조기 은퇴? 글쎄, 안 내켜. 그런데 너는 지금 타격을 입어야 차기 회장 후보로 나오지 않을 수 있잖아? 너 엿먹이는 김에 학생회 괴롭히는 거라고 봐야지.


“제가 범인 잡겠습니다.”


-학생회는 범인 뜻대로 놀아나지 말고 뻔뻔하게 버텨야 해. 그러면 초조해진 범인이 성급하게 또 문제를 일으키려고 할거야. 네가 검도부랬나? 범인이 검도부를 노리게 만들어. 너여도 좋고?


"임시 휴교기간 안에 잡을 수 있습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네가 무슨 수로.

-경찰도 못잡는 걸 후배님이 어떻게 잡게.

-그래, 테이야. 너무 위험한 것 같아.

"범인이 노리는 건 접니다. 더이상 선배님들께 폐 끼칠 수 없습니다. 조기 은퇴는 말도 안돼요. 제가 꼭 잡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잡을 거냐고.


선배님들이 돌아가면서 걱정을 담아 말렸지만 이미 형과의 거래는 마친 상태다. 마침 도어락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테이야. 형왔다."


6개월간 호화스러운 감금생활을 마친 형이 환하게 웃으며 귀가했다.






**고구마 구간...이제 정말 정말 끝입니다...ㅜㅜ 길어져서 죄송합니다!!

https://asked.kr/wooahan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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