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完)


어느새 계절은 여름으로 접어들고 있었어. 뉴스에서 오존층 파괴가 심각하고 어쩌고 하더니, 아직 초여름임에도 불구하고 벌써부터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었지.


우영은 커피숍 2층 창가자리에 앉아 남포동 시내를 내려다보고 있었어. 토요일 오후라 그런지, 극장 앞에 사람들이 꽤 많이 붐비고 있었지.


그러고 보니 태오와 정석적인 데이트를 해보지 못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연인들의 흔해빠진 데이트 코스 있잖아. 영화보고 밥 먹고 차 마시고...아닌가? 영화보고 술 마시고 모텔 가고?


아무튼 우영의 자취방이 있다 보니 모텔도 가본 적이 없었네. 경주에 놀러갔을 땐 모텔 같은 펜션에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하룻밤을 보낸 적은 있지만.


모텔에 대한 어떤 로망이 있었던 건 아니었지만, 단순한 궁금증은 있었어. 가끔은 목적이 뻔한 장소에서, 뻔한 목적을 행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고.


그런 시답잖은 생각들을 하는 사이, 커피숍 아르바이트생이 우영의 앞에 우영이 주문했던 아이스 카페라떼를 내려놓고 있었지.


컵 안에 꽂혀있는 빨대엔 아코디언 주름잡기로 된 사과모양의 종이공예 장식품이 끝에 달려 있었어. 우영은 사과모양 장식품을 떼어내 주름을 접었다 늘렸다 하며 손장난을 치고 있었지.


그때 커피숍 1층의 출입문이 열리는지, 문 위에 달려 있던 자그마한 풍경이 차랑차랑 소리를 냈어. 우영은 반사적으로 귀를 쫑긋했지. 


잠시 후에 언제나처럼 나른한 표정을 한 채준이 느릿느릿 계단을 밟아 2층으로 올라왔어. 채준은 우영을 발견하고는 우영의 맞은편에 털썩 앉았어.


자리에 앉자마자 담배부터 꺼내 입에 물었지. 밖이 많이 더운 모양인가 봐. 땀을 잘 안 흘리는 채준이었는데, 앞 머리카락이 땀으로 살짝 젖어있었거든.


담배를 한 모금 빨아 당겼다가 연기를 뱉어낸 채준은, 아직 우영이 입도 대지 않은 아이스 카페라떼를 제 앞으로 끌고 가서 벌컥벌컥 마셨어. 반이나.


이윽고 물을 가져다준 알바생에게 파르페를 주문했지.


우영은 속으로, 채준의 파르페가 나오면 위에 얹어진 아이스크림을 반드시 뺏어먹겠다고 다짐하고 있었어.


시간대가 채준과 잘 맞다보니, 어느 순간 둘이 먼저 만나게 되는 경우가 많아졌어. 우영은 제 카페라떼 잔을 슬쩍 제 앞으로 다시 끌어오면서, 채준의 눈치를 살폈지. 사실 그날 이후 한겸이 우영에게 하루에 몇 통씩 문자와 전화를 해대고 있었거든.


내용은 다 비슷했어. ‘니 채준이 소개팅 시키줄끼가? 박채준 성격 존나 이상한데, 진짜 여자 소개 시키줄끼가? 니 그 여자한테 욕 뒤지게 얻어 묵을 낀데, 소개팅 진짜로 시키줄끼가?’


우영은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었어. 전화가 오면 어떤 대답도 하지 않고 끊어버렸지. 문자도 마찬가지로 답을 하지 않고 오는 족족 씹어댔지만, 한겸이는 지치지 않았어. 이 정도면 이 새끼, 진짜 바보 아닌가, 의심스러웠어.


지나가는 개미도 알 것 같은데. 한겸은 정말 제 마음이 뭔지 모르는 걸까. 아니면 알면서 거부하고 있는 걸까.


한겸이라면, 진짜 모르고 있을 가능성이 더 크긴 해. 채준과 하루 이틀 친구사이가 아니잖아. 게다가 둘이 친구라면 하지 않을 행위를 하게 된 계기도 너무 단순했고, 그런 기간도 꽤 됐으니 설마 싶겠지. 마음이 아닌 몸을 먼저 맞댔으니...착각인 건 아닐까, 혼란스러움도 당연히 있을 테고.


그래, 그러니까 이해해. 이해한단 말이지. 아니 아무리 그래도 지가 지금 하고 있는 짓거리가 질투라는 것쯤은 이제 알 때도 되지 않았냐고!


확, 진짜로 소개팅 해줘버릴까 보다. 물론 채준이 그 소개팅에 응하지 않을 것 같긴 하다만.


우영 역시 프로 삽질러들 사이에, 괜히 애먼 사람 끌어들이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지.


그래도 그때 우영이 취해서 지껄였던 말 덕분에, 미적지근했던 둘 사이가 점점 데워지는 것도 같아서 이건 다행이다 싶긴 했어. 직접적 화력은 아직 먼 것 같긴 하다만.



“니는 한겸이 새끼한테 소개팅 소릴 왜 해가지고, 내를 달달 뽀까 쳐묵어서 도라쁘겠다.”


 

한겸인 우영이 뿐만이 아니라, 채준이도 괴롭히고 있는 중이었나 봐.


 

“뭐라카든데? 소개팅 나가지 말라고?”


 

채준은 대답 대신 낮은 한숨을 내쉬고는, 다시금 담배를 깊게 빨았어.


 

“한겸이는 바보다 아이가. 그니까 한겸이보다 조금 덜 바보인 니가 먼저 한 발짝 다가가믄 안되나? 왜 골인 지점 바로 앞에서 머뭇거리고 있는지 모르겠네.”

“이한겸이 바보니까...그 마음이 진짠지 가짠지, 비스무리해서 구분을 못하는 걸 테니까.”

“인제 보니, 한겸이보다 니가 더 바보였네.”



태오와 우영처럼 앞뒤 없이 뛰어들고 보는 사랑이 있는가 하면, 채준이처럼 망설이는 답답한 사랑도 있는 거야. 어떤 사랑도 정답이라고 할 수 없고, 또 오답이라고도 할 수가 없지.


생각을 너무 하지 않아도 문제긴 하지만, 너무 많이 해도 때론 문제가 되기도 하는 것처럼.


채준이가 하는 사랑은 느리지 않았어. 왜냐하면 채준은 제 마음을 진작 알았으니, 부지런히 사랑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 사랑을 상대방에게 드러내는 것이 무서웠던 것뿐이야.


한 순간에 친구라는 위치도 잃을 수 있잖아. 두려운 건 당연했지. 친구와 애인 중 양자택일을 해야만 한다면, 채준은 망설임 없이 친구를 택하겠지. 그 자리만이 오래도록 한겸의 곁에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 테니까. 그건 한겸에 대한 애정과는 별개의 문제야.


원래 남의 연애사나 가정사에 끼어들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긴 하지만, 우영은 이왕 불씨를 던졌으니 부채질을 해줘야겠다, 싶었어. 불씨가 그대로 사그라져 완전히 꺼져버리기 전에. 그래도 불씨인데, 불꽃 한번은 피워봐야 하지 않겠어?


우영은 제 휴대폰을 집어 들었어.



“내는 딱 여기까지만 할게. 둘이서 죽을 끓이든 밥을 태우든, 인제 더 이상은 내도 모르겠다.”



우영의 말에 채준의 미간이 작게 구겨졌어. 우영이 무슨 뜻으로 저런 말을 하는지 알 듯 모를 듯 아리송했거든.


한겸의 지긋지긋한 소개팅 소리에 귀에서 딱지가 내려앉을 것 같긴 했지만, 채준은 내심 기분이 좋았던 건 사실이긴 해. 그러면서도 저도 모르게 계속 브레이크를 걸었지.


처음부터 어떤 기대도 없이 인정했던 감정이었어. 그야 한겸은 완벽한 이성애자였으니까. 채준에게 다른 감정을 가질 일은 절대로 없을 것 같았거든.


어쩌다 일어난 사고 때도, 채준의 생각은 변함이 없었어. 그 사고가 점차 고의가 되어갔을 때도 마찬가지였지. 한겸은 단순하니까, 혼자서 딸 잡는 거보다 다른 사람이 잡아주는 게 더 기분이 좋으니까 계속 이어가는 것뿐이라고.


흥분이 목 끝까지 올랐을 때, 별안간 한겸이 채준에게 키스를 했을 때도. 채준은 한겸의 그 행위에 의미를 두지 않으려 애썼지.


그러고 보면 채준은 한겸을 좋아하면서, 늘 부정만 해왔던 것 같아. 정말 한겸이 그럴지 안 그럴지는 모를 일이잖아. 채준은 작은 희망도 품지 않으려고, 일부러 더 차단해왔던 건지도 모르겠어. 이제 그만 하자만 되 뇌이다 여기까지 와 버린 거지.


우영은 한겸에게 보낼 문자를 한 땀 한 땀 찍었어. 우선 커피숍 위치와 이름을 적은 뒤, [지금 채준이 소개팅 할라고 기다리는 중] 망설임 없이 전송을 눌렀어.


지금 이 시간이면, 한겸은 한창 바쁘게 일하고 있을 시간이긴 해. 그래서 더 적절한 타이밍이라고 생각했어. 정말 중요한 게 무엇인지, 또렷하게 보이겠지. 눈 뒤집힐 한겸은 어떤 행동을 할까.


잠시 후 채준이 주문한 파르페가 나왔지. 우영은 아이스크림에 꽂혀있는 크래커를 먼저 빼들고는 크래커 끝으로 아이스크림을 퍼먹었어.


채준은 우영이 제 파르페의 아이스크림 뿐 아니라, 파르페를 몽땅 다 해치운다고 해도 별 상관이 없는 듯 다시 담배를 꺼내 물었지. 


뭐가 저렇게 복잡할까. 아니, 채준의 고민과 걱정이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어. 태오나 우영은 평범하지 않음을, 너무도 자연스럽고 평범하게 받아들인 것일지도.


정상이다, 비정상이다를 논하는 건 아니야. 어쨌거나 아직 우리나라는 동성애에 대해 색안경을 끼고,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 현실이니까. 결코 평범하다고 할 순 없는 거였지.


우영도 장담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어. 절대로 그럴 일은 없고, 그런 생각은 티끌만큼도 하고 싶진 않지만...만약에, 아주아주 만약에 태오와 헤어지게 된다면...이후에도 이성이 아닌 동성을 만날 것이라곤 장담할 수 없었지. 마찬가지로 동성이 아닌, 이성을 만날 것이라는 장담도 할 수 없었어.


헤어지는 가정을 배제하더라도, 언젠가는 결혼적령기라고 할 만한 나이가 되겠지. 우영의 집에서, 그리고 태오의 집에서 결혼 얘기가 심심찮게 나오게 될 거야.


단순히 골치 아파서, 후에 일어날 일을 무작정 덮어두고 있는 건 아니야. 제대로 생각중이고, 나름대로 각오도 하고 있어.


되게 클래식한 생각이긴 한데, 다시 말해서 고리타분하다는 뜻이야. 어쨌든, 지금은 갓 스무 살이잖아. 텅 빈 밭에 씨를 뿌렸을 뿐이니, 잘 가꿔서 후에 싹이 트고 자라서 열매를 맺고 그 열매를 수확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을 때 확실히 알리고 싶었어.



-



채준은 저가 주문해놓고 파르페엔 손도 대지 않았지. 우영이 긴 숟가락으로 파르페를 야금야금 떠먹다보니, 벌써 절반 정도를 먹어치우고 있었어.


어째선지, 휴대폰이 잠잠했지. 사실 한겸에게 그렇게 문자를 보내면, 전화가 발발이 올 것이라고 예상했었거든. 


일이 바빠서 폰을 들여다보지 못한 건가. 그래서 아직 문자를 못 봤나. 그런 생각을 하며 다시 숟가락을 들어 올렸을 때였지.


차라라랑- 1층 출입문의 풍경소리가 요란하게 울렸어. 누가 이렇게 문을 세게 열고 들어온 건가, 우영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을 하며 숟가락을 입에 집어넣었지.


쿵쿵쿵 계단을 밟는 소리가 크고 빠르게 들려왔어. 곧이어 계단 위에 우뚝 선, 한겸을 보고 우영의 눈이 땡그래졌지.


땀으로 샤워라도 한 건지, 한겸의 얼굴과 머리카락은 푹 젖어 있었어. 일하다말고 바로 튀어온 건지, 작업복 차림 그대로이기도 했지.


우영은 입에서 숟가락을 빼내고는, 한겸을 향해 배시시 웃어보였지. 한겸은 우영의 그런 해맑은 표정에도 잔뜩 구겨진 인상을 펴지 않고 있었어.


성큼성큼 다가온 한겸은, 대뜸 없이 채준의 손목을 잡아 쥐고는 그대로 채준을 끌어 올렸어.


계단을 등지고 앉아있던 채준은 한겸이 온 줄 모르고 있었거든. 느닷없이 나타난 한겸을 보고 적잖이 놀란 듯 했지. 채준이 이렇게 놀라고 당황스러워 하는 표정을 짓는 걸 우영은 처음 봤어.



“뭐고? 니가 여기 왜 왔는데?”

“와? 오면 안 되나?”

“뭐...? 근데 니 일하다 말고 온 기가?”

“소개팅 깽판 놓을까봐, 내가 안 반가운가베? 근데 우짜노, 내 진짜로 깽판 놓을라고 온 거 맞는데.”



채준이 커다란 눈동자를 굴려 우영을 보았지. 우영은 능청스런 표정으로 어깨를 작게 으쓱해 보였어. 하지만 상황이 어떻게 된 것인지를 이미 눈치를 챈 채준이 우영을 보며 윗입술을 실룩였지.


 

“우영이가 장난칫는갑다.”



2층엔 다른 손님들이 별로 없긴 해서 다행이긴 했어. 그런데 얼마 없는 손님들은 싸움이라도 나나 싶었는지 힐긋대고 있었어.


채준은 한겸이에게 잡힌 손목을 빼내려했지만, 한겸이는 놓지 않았지.


 

“씨...아프다, 놔라.”

“소개팅 하지마라.”

“안 한다고. 니 여자 친구 생기기 전까지는, 내도 여자 친구 안 만들게. 됐제? 인제 놔라. 쫌.”



한겸은 그제야, 뛰어오느라 힘이 들어가 있던 다리에 힘이 풀리는 모양이었어. 후우- 숨을 길게 내쉬며, 그 자리에 쭈그려 앉았지. 채준의 손목은 여전히 잡고 있는 채로.



“내가 먼저 여자 친구 만들믄 니랑 안 놀아줄까봐, 그래 걱정 되드나?”


 

채준이 피식 작게 웃으며 말하자, 한겸이 고개를 휙 쳐들어 올렸어.


 

“니가...인제 내 안 좋아할까봐...무서웠던 기다.”

“....뭐?......씨발...니 혹시...알고 있었나?”

“내는 알고 있었는데, 니는 모르드라고. 내가 누굴 좋아하는지.”



채준의 하얀 얼굴이, 순식간에 훅- 붉어졌어. 이런 전개는 우영도 생각하지 못했던 거라 놀랐지.


한겸이 눈치고자라서, 지금까지 진척이 없었다고만 생각했는데. 이 무슨 반전이지? 근데 한겸인 채준이 저를 좋아하고 있는 줄도 알고 저도 같은 마음이었으면서, 도대체 왜 여태 삽질을 하고 있었던 거지? 


채준도 혼란스럽긴 마찬가지인 것 같았어. 지금 이 순간, 제일 혼란스러운 사람은 채준일거야.


 

“내가 아는 척 하면...그리고 내도 그렇다카면...니는 도망갈 게 뻔하니까...존나 얌전히 기다리고만 있었는데...”



앞서 말했듯이, 사랑엔 여러 종류가 있어. 정답도 오답도 없는.


 

“...니...쓰레기 냄새 난다!!”



채준이 많이 당황하긴 했나봐. 그래도 그렇지, 고백한 상대에게 하필이면 처음으로 내지른 대사가 저 모양이라니.


한겸은 제 팔을 들어 코를 처박고는, 강아지마냥 킁킁 거렸어.


 

“쓰레기 치우다 왔으니까 글치. 냄새도 밸로 안 나고만. 개새끼가? 개 코 맨키로 냄새 존나 잘 맡네.”



그에 대꾸하는 놈의 대사 또한 평범하진 않았지. 천생연분은 이럴 때 쓰라고 만들어진 말이 아닐까 싶은 우영이었어.


우영은 자리에서 일어났어. 채준의 손에 계산서를 고이 쥐어준 뒤, 우영은 말없이 계단을 밟아 내려가 커피숍을 빠져나왔어. 불씨 던져준 값으로, 커피 한잔이면 싸게 쳐준 거지.


제빵 학원에서 밀가루 반죽만 졸라게 시킨다고 투덜거리던, 태오가 유난히 보고 싶은 토요일 오후였어. 우영은 오랜만에 태오의 학원 앞에서 태오를 기다려볼까 싶어서 걸음을 옮겼어.



**


 

10년 후,



“퍼뜩 안 인나면, 버리고 내 혼자 가쁜다!”



귀로 박혀드는 태오의 목소리에, 우영은 미간을 잔뜩 구기며 머리를 말고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어.


침대 옆쪽 유리문 장식장 안엔 색이 조금 바란 노란색 병아리 헬멧과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기스가 나고 모서리가 닳은 손목시계가 나란히 놓여 있었지.


같이 산지, 올해로 벌써 3년이 되었어.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이 있듯이, 그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어.


우선 가장 큰 사건은, 군 입대였지. 입영통지서가 먼저 날아온 건, 우영이었어. 


우영이 훈련소에 입소하던 그날. 우영은 처음으로 봤어. 태오가 아이처럼 엉엉 우는 모습을.


우영의 어머니도 함께 훈련소 앞까지 갔었는데, 하마터면 태오와의 사이를 그날 들킬 뻔했지 뭐야. 그도 그럴 것이, ‘친구’가 군대 간다고 저렇게 대성통곡하는 놈이 어디 흔하겠냐고.


우영이 군대 간지, 6개월 후에 태오도 군대를 갔지. 그때도 둘은 염병천병 연애질을 멈추지 않았어. 둘 중 한 놈이라도 휴가 나오면, 서로의 부대로 면회 다니기 바빴거든.


태오는 군대에 있을 동안 부모님껜 편지를 달랑 세 통 보냈으면서, 우영에겐 수백 장을 보냈지. 보고 싶다는 내용이 90%였고, 나머지 10%는 음담패설에 가까울 정도였어.


우영아, 니 고추는 잘 있나? 내 보고 싶다고 안하나? 내는 오늘따라, 니 고추가 무지하게 보고 싶은데....등등. 주로 우영의 고추 안부를 묻는 거였지.


우영은 누가 볼까 두려워서 하나도 남김없이 모조리 다 태워버릴까, 잠시 생각했지만 상자에 차곡차곡 모아 누구도 볼 수 없게 깊숙이 숨겨두었어. 나름 추억이잖아....?


우영은 제대 후, 복학하고 졸업을 한 뒤에 대학병원 약제실에서 일했었어. 얼마 전에 드디어 약국을 개업했지. 우영의 약국 옆은, 고소한 빵 냄새가 풍겨오는 태오의 빵가게가 자리하고 있었어.


태오는 얼마 전에 방영한 드라마, ‘제빵 왕 김탁구’를 이겨서 제빵 왕 자리를 차지하겠다며 열의에 가득 차 있는 중이야.


서른 살이 되었지만, 철은 아직 안 들었어. 아마 평생 안 들지 않을까 싶기도 해. 우영은 내심, 이대로 태오가 영원히 철들지 않았으면 했지. 해맑고 귀엽잖아.


아무래도 우영은 제 눈의 콩깍지를 성능이 매우 우수한 강력접착제로 붙인 모양이야. 아직 떨어지지 않는 걸 보면 말이야.


우영이 파고들었던 이불이 휙- 걷어졌어. 곧 침대 옆에 선 태오의 모습이 보였지. 오랜만에 보는 말끔한 정장 차림에, 왁스까지 발라넘긴 머리. 아직 매듭이 지어지지 않은 채, 목에 걸치고 있는 넥타이.



“지금, 몇 신데?”



우영의 질문에, 태오는 벽에 걸린 시계로 힐끗 눈을 돌려보고는 입을 열었어.



“10시 넘었다. 빨리 인나서 준비해라.”

“12시 반까지 가믄 된다 아이가. 시간 널널하네.”



피실 웃음을 흘리며, 우영이 말했지. 태오는 삘이 온 모양이야. 마른침을 꿀꺽 삼키느라, 툭 불거진 울대가 크게 꿀렁이고 있었거든. 눈썹도 살짝 꿈틀했어.



“정장 입은 거 보이까, 꼴리는데. 늦었다믄 어짤 수 엄꼬...”

“하아, 민우영...옷 꾸개지믄(*구겨지면) 안 되는데...”



하는 말과는 달리 이미 태오는 침대로 기어올라, 우영의 다리 사이로 파고들고 있었어.


오늘은 석현이 결혼식을 하는 날이야. 사회는 한겸이 보기로 했지. 한겸은 채준이가 반드시 부케를 받아야 한다고 우기다가, 채준이에게 머리통을 세게 얻어맞았어. 한겸은 결국 신부 친구에게 부케를 양보하기로 했어.


양보는 무슨, 그게 원래 맞는 건데.


 

-


 

지나간 시간만큼 여태 많은 일들이 있었고, 앞으로 또 많은 일들이 있을 거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함께일 테지. 지금까지도 그랬듯, 앞으로도 역시 늘 좋은 일만 있지는 않을 거야.


어떤 날은 뒤통수도 보기 싫을 정도로 미운 날도 있을 것이고, 또 어떤 날은 콧구멍을 삐져나온 코털까지도 예뻐 보이는 날이 있겠지.


섭섭하고 화나서 서로의 가슴에 못질하는 말을 뱉어내기도 할 테고, 복수랍시고 상대방의 칫솔로 변기 물을 휘저을지도 모르지. 


그래도 금세 깨닫게 될 거야. 


그 모든 순간에도 서로를 사랑하고 있음을.


그렇게 투닥 거리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엉겨 붙겠지. 


서로의 흰머리가 늘어갈 동안. 주름이 패여 갈 동안. 피부가 마르고 뼈가 약해질 동안. 


아주 오래도록, 그렇게 매일 매순간 사랑하겠지.


가끔씩, 그 시절 우리가 설레었던 순간들을 꺼내들기도 할거야.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꺼낼 때마다 새로운 비스킷을 먹는 것처럼 두근거리겠지.


생의 마지막이 다가올 때쯤엔, 그런 약속도 하겠지.


다음 생에도, 꼭 만나서 우리 다시 사랑하자. 그때도 이번 생처럼 서로를 알아보고, 오래도록 함께 늙어가자. 아마 저번 생도, 분명 그랬을 거라고.


조용히 숨이 꺼져가는 순간에 서로의 귓가에 대고, ‘그 시절 우리가 설레었던’ 추억을 속삭이며 미소 짓겠지. 그리고 말미엔 그렇게 말할 거야.


 

'사랑해.'



,



,



,




 


‘그거 하지마라...마누라니 어쩌니 하는 거..’

‘그람 니가 내 서방해라. 됐제?’


 



‘우영아, 첫 키스는 인자 해봤으니까 두 번째 키스도 해볼래?’



 

 


‘내다, 니 마누라. 내 서방님은 지금 뭐 하노?’


 




‘니는 뭐 좋아하는데?’

‘니.’


 




‘내년 생일에도 태오랑 같이 보내게 해주세요.’


 




‘10분 안에 데리러 가께.’

‘천천히 온나.’

‘그라믄 11분 안에 가께.’


 



‘내한테는 니만 있음 완벽한기다. 뭐가 더 필요하노. 내 지금 억수로 행복한데?’






‘시계 선물의 의미가..너와 모든 시간을 함께 하고 싶다...는 거라카드라.’

‘이거 비싼 거 아이가.’

‘니랑 함께 보낼 시간보다 비싸겠나.’


 


 




 


그 시절 우리가 설레었던,


 


fin.




가볍게 재미삼아(?) 썼던 청게물. 그 시절 우리가 설레었던, 인소삘 썰로 썼던 소설인데 생각보다 많은 사랑을 받았던 소설이라 2부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2부는 썰체가 아닌 문체로 쓰여질 것 같구요...아마 당장은 찾아뵙기 힘들 듯 해요...ㅠㅠ


구원의 강 완결 및 외전 후에 차기작을 쓰면서 아마 찾아올 듯 합니다. ㅎㅎ


2부는 한겸이와 채준이 커플과 태오와 우영이의 못다한 이야기들을 풀게 될 것 같아요..^^


기다려주시면 반드시 옵니다!! ㅎㅎ


그동안 그우설 1부를 사랑해주셨던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오늘은 회식으로 상태가 메롱인 관계로 내일 구강으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모두 평안하고 행복한 밤 되세용~>_<♡




몽상가 夢想家 꿈을 꾸는 낭만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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