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정국이가 너무해_w. 제철망개




나 박지민.

지금은 신체 건강한 25살.

키 173cm.

몸무게는… 일단 그때는 80kg대인데 반올림하면 그냥 90.


사실 건강하다는 건 지금 그렇다는 거고 그때 나는 누가 봐도 뚱뚱했다. 오죽 뚱뚱하면 별명이 떡이야, 떡. 망개떡. 왜 그렇게 살이 쪘냐면, 내가 어릴 때 엄마, 아빠가 이혼했는데 다행히 외가가 부유한 덕에 경제적으로 곤란하진 않았다. 나는 자연스레 외가에 맡겨졌고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는 애가 크면서 아빠 없이 자란 티가 나면 안 된다고 나한테 자기 전에 뭘 자꾸 먹였다. 나는 주는 대로 다 받아먹었겠지, 내가 뭘 알았겠어. 거기다 내가 다칠까봐 운동 같은 것도 안 시켜서 먹는 족족 다 살로 갔고. 신진대사가 제일 활발한 10대가 되어서도 나는 신체 연비가 좋지 못해서 조금만 먹어도 나오는 것 보다 몸에 쌓이는 양이 더 많은 체질이 되어버렸다. 이게 전부 근육이었으면 몸 좋다는 소리라도 들을 텐데, 뼈와 장기를 빼면 죄다 살. 나는 말 그대로 그냥 떡이었다.

대학가면 살 빠진다는 말 만큼 어마어마하고 무책임한 개구라가 또 있을까? 나는 그 말만 굳게 믿고 중학교, 고등학교를 죽어라 공부만 팠고, 그 덕에 키는 73에서 멈췄지, 젖살은 그냥 살이 됐고 고2때 나온 민증으로 성인이 되어 당당히 술집 입성이 가능해 졌을 때 알게 된 소맥맛은 나를 더욱 더 불어나게 만들었다. 게다가 나는 이날 이때까지 연애란 먹는 것인가? 연애는커녕 썸도 타본 적이 없어서 반 40년을 짝사랑만 해왔다. 그 짝사랑 이란 것도 남한테는 말도 못 꺼낼, 혼자 앓다죽을 상대만 좋아했지, 젠장….

그러니까 내 말은, 나는 겁나게 잘 생긴 남자만.

오르지 못할 나무만 모가지가 꺾여라 쳐다봤단 말이야.




나는 내가 남자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참 늦게 깨달았다. 그냥 여자를 봐도 아무 감정이 생기지 않아서 나는 나한테 성장기가 오지 않은 줄 알았다. 참 멍청하지. 몸에 털이 나고 변성기가 오고 몽정을 했는데 성장기가 왜 안 와? 다만 그게 너무 얕고 흐릿해서 내 스스로도 알아채지 못했다. 맨날 쳐 먹기만 하고.

스무 살이 되었을 때, 처음으로 나 같은 사람들만 모인다는 클럽에 갔었다. 그 전까지는 게동만 찾아보다가 어떻게 알음알음, 나 같은 사람이 모이는 곳이 따로 있다는 것을 알고 처음으로 숨통이 틔는 기분이 들었다. 물론 혼자 가 볼 용기는 죽어도 나지 않아서, 커뮤니티에서 ‘뷔주얼’ 이라는 닉네임을 쓰는 동갑내기랑 클럽 가기 전에 근처에서 먼저 만나기로 했었다. 나는 내가 여자한테도 먹히지 않는 상태에서 그렇다고 남자한테 먹히겠냐 싶어서 그 날 엄청 멋을 부렸었다. 근데 다들 알잖아. 멋의 완성은 얼굴과 몸매라는 거. 살은 안 빼고 옷이랑 신발, 머리에만 누가 봐도 나 오늘 어디 좋은데 가요- 하듯이 잔뜩 멋 부린 내 모습은 지금 생각하면 손발이 없어질 것 같다. 정말 아무리 잘 봐줘도 이제 막, 갓 멋 부리기 시작한 남자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얼마나 병신 같고 웃겼을까. 나라도 그때의 나는 만나고 싶지 않다. 으, 끔찍해….


‘뷔주얼’ 은 너무너무, 지나치게 닉값을 하는 존잘 이었다. 멀리서 걸어오는데 내 주위의 시공간이 멈춘 듯 했고 뷔주얼 혼자 살아 움직이는 조각 같았다. 심지어 별로 멋을 부린 것 같지 않은데 그냥 존재 자체에서 멋이 뿜어져 나오는… 뭐 그런 멋의 집약체! 세상에 반다나가 그렇게 잘 어울리는 남자는 처음 봤다. 나는 그렇게 뜬금없이 첫사랑에 빠졌고, 용기내서 나오길 잘 했다는 생각에 나 자신이 기특하기까지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때 뷔주얼은 나를 보고 약간 사색이 됐었던 것 같다. 근데 그때는 그게 사색인지 뭔지 몰랐고 그냥 뭐 어디 불편한가? 배가 고픈가? 그렇게만 생각했다. 그래도 뷔주얼은 그날 밤까지 예의를 지켰다. 최대한 싫은 내색을 하지 않았고 먼저 보자 했으니 불러낸 책임은 져야지, 뭐 그런 생각이었겠지.

클럽 근처에서 간단하게 반주를 하자며 끌려간 아이리쉬펍은 내가 생전 못 가본, 그때 내 기준 겁나게 힙 한 곳이었다. 마트에서 파는 국산맥주 6캔짜리 번들만 따서 마실 줄 알았던 찐따였으니 펍 같은 게 신기할 만도 했지. 메뉴를 봐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고, 물어보자니 좀 쪽팔리고 해서 그냥 제일 윗줄에 있는 병맥을 시켰었다. 거기 안주는 수제버거가 제일 인기였는데, 뷔주얼은 그 버거를 무척 좋아했다. 얼굴은 조막만한데, 햄버거를 들고 입을 와앙- 벌리면 그게 또 그렇게 멋있었다. 내가 워낙 되지도 않는 멋을 부리고 나온 게 티가 났는지, 뷔주얼은 ‘너 처음 나온 거지?’ 하며 웃었고 그 웃는 얼굴에 약간 눈이 멀어버릴 뻔 했다. 내가 고개를 푹 숙이고 아주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응’하니까 자기 잘생긴 건 아는데 뚫어져라 보는 건 좀 부담스럽다고 했다.

나는 그때 내가 잘 생긴 사람을 정말 구멍이 나도록 빤-히 응시하는 버릇이 있다는 걸 알았다.



아이리쉬펍에 갔던 것도 나한테는 별천지였는데, 뷔주얼을 따라 들어선 클럽은 그야말로 새로운 세상, 나에게는 新유니버스였다. 입구의 가드는 뷔주얼과 안면이 있는지 웃으면서 툭툭 치기도 했고 시끄러워서 잘 안 들렸지만 서로의 안부를 묻는 것 같았다. 근데 뷔주얼의 뒤에 서있던 나를 보고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껌뻑거렸다. 나는 진짜… 내가 좀 괜찮아서 나를 그렇게 보는 줄로만 알았다. 미쳤지, 미쳤어.

뷔주얼이 가드의 귀에 대고 뭐라뭐라 속삭였는데 가드가 빙긋 웃더니 들어오세요-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 클럽, 그 꼬라지로는 당장 입뺀인데 아마 뷔주얼이 가드한테 오늘 하루만 봐달라고 했던지, 같이 왔으니까 좀 넣어 달라 했던지, 아무튼 이 물색없는 망개떡한테 별천지 한 번 보여주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벽을 따라 소파, 의자, 테이블이 놓여있고, 중앙의 홀에 바카운터와 디제이가 있는 클럽은 토요일이라 그런지 발 디딜 틈 없이 빽빽했다. 그 와중에 뷔주얼은 혼자만 잘 생겼다는 듯이 온몸에서 아우라가 흘러 넘쳤다. 나는 이렇게 멋진 애랑 이렇게 잘 나가는 듯 보이는 곳에 같이 왔다는 게 너무너무 뿌듯해서 뷔주얼의 기분은 전혀 파악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술도 주문할 줄 몰라서 머뭇거리는 걸, 뷔주얼이 대신 주문해 준 병맥을 들고 무슨 언어인지도 모를 노래의 리듬을 느끼는 척 조금씩 까딱거렸다.

주변을 둘러보니 온통 멋있는 사람들로 가득했고 천장에 반짝거리며 돌아가는 미러볼도, 여기저기서 뿜어대는 담배연기도 내 눈에는 죄다 ‘쿨’하고 ‘힙’하게만 보였다. 뷔주얼은 잘 생긴 게 춤도 잘 췄다. 돗대기 시장 같던 홀이 뷔주얼 주변으로 원이 생길 정도였다. 어두운 홀에 간간히 쏘아대는 조명을 받으며 한 손에는 술병을 들고 약간 건들거리며 리듬을 타는 뷔주얼은 좀 중2스럽지만 타락천사처럼 보였다.

하기야 그 얼굴로 굿을 한들 살풀이를 춘들, 뭐가 안 멋있었겠어.




그렇게 구경만으로도 재밌어서 죽을 것 같던 시간이 훌쩍 가버렸고 인터넷에서 10만원 주고 산 짭퉁 까르띠에 손목시계를 보니 12시를 지나있었다. 춤추다 지쳐서 쉬고 있는 뷔주얼 에게는 언제부터인지 사람들이 바글바글 몰려있었다. 아니, 저 사람 나랑 같이 온 사람이라니까? 부럽지? 뭐 그런 병신 같은 생각을 그때는 했었지….

나랑 같이 왔다는 걸 신경도 안 쓰는 뷔주얼 한테 꾸역꾸역 다가가서는 집에 언제 가냐고 물었는데, 뷔주얼 옆에 바싹 붙어 앉아서 치근덕거리던 남자가 나를 어떻게 봤는지는… 할많하않. 아니야, 뭐. 그때는 그런 것도 몰랐고 그냥 병신이었으니까. 나의 산통 깨는 질문에도 뷔주얼은, 난 좀 더 놀다갈테니 먼저 가려거든 가도 된다고 웃으며 대답해줬다. 아마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었겠지만.



나는 그 이후로도 뷔주얼 에게 꾸준히 연락했었고 내가 열 번 정도 카톡을 보내면 한두 번쯤 답이 왔다. 예쁜 신입생한테 집착하는 복학생 오빠처럼, 나는 그렇게 뷔주얼 에게 나 너 좋아한다고 티냈었다. 뷔주얼은 철벽을 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아주 반갑게 답을 보내주는 것 도 아니었다. 다행히 그때 나는 넌씨눈 이어서 그런 것도 몰랐지만.

반년 정도를 그런 식으로 연락만 했는데, 정말 얼마나 싫었을까. 지금 생각해도 쪽팔리네, 진짜.




한번은 무슨 근본 없는 용기가 생겨서 뷔주얼과 함께 갔었던 클럽을 혼자 갔었다. 그날은 뷔주얼 에게 이번 주에 같이 클럽 가자고 연락했는데 뷔주얼은 선약이 있다고 했었고 나는 약간 샘이 났던 것 같다. 너 없이도 나 혼자 잘 놀아보겠다는, 그 어떤 미친 근자감 같은 게 생겼었다.

당연히, 너무 당연히 입뺀을 당했다. 가드한테 저번에 왔었다고 아무리 설명해도 씨알도 안 먹혔다. 속수무책으로 혹시 하는 마음에 뷔주얼 에게 연락 해 봤지만 소용없었다. 실컷 차려입고 나왔는데 또 혼술 하러 가야하나 침울해졌는데 가드가 한눈을 판 사이에 안쪽을 살펴보자 뷔주얼의 뒤통수가 보였다. 분명히 그였다. 나는 막 마음이 급해져서 엄청 큰 목소리로 뷔주얼을 불렀고 뷔주얼이 이만큼 큰 눈으로 나를 돌아봤다. 뷔주얼은 약간 머뭇거리더니 내 쪽으로 다가와 줬다.


그때는 진짜… 그 뭐랄까. 왕자님이 나를 구하러 온 느낌? 지랄하네.


그 날은 그렇게 또, 뷔주얼 덕에 클럽에 입장은 했지만 나는 혼자 놀았다. 뷔주얼은 같이 온 친구들과 떨어질 수 없다고, 미안하다고 했다. 근데 나는 뷔주얼의 그 1도 영혼 없는 미안하다는 말이 왜 그렇게 기뻤는지 모르겠다. 그냥 귀찮아서 대충 둘러댄 말 일 텐데, 그때는 뭣에 뒤집어 씌여서, 나는 괜찮다고 '나중에 연락할게!' 이랬다. 계절이 바뀔 무렵 언제든 좋으니 한 번 만나자고, 만나서 고백해야지 하고 마음먹었을 때는 이미 뷔주얼 한테 차단당했고, 커뮤니티에서도 더 이상 뷔주얼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내 첫 사랑은 첫 사랑이라고 할 것도 없이, 카톡만 오지도록 보내다가 끝이 났다.






두 번째 사랑은 바텐더였다.

한동안 뷔주얼을 잊지 못해서 그 클럽 근처를 몇 달이나 서성거렸는지 모른다. 내가 나한테 짜증날 때쯤 홀리듯이 들어간 작은 바는 내부가 어둡고 카운터석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조금 엔틱한 느낌의 조명과 장식들이 여기저기 놓인 게 클럽이랑은 또 다른 느낌으로 ‘힙’하게 느껴졌었다.

내가 막 어른이 된 것 같고…그런 거 있잖아.


이른 시간이었는지 안쪽에서 컵을 닦고 있던 바텐더를 보자마자 나는 속으로 '대박, 대박!!' 했었다. 키가 크고 어깨가 엄청 넓었다. 아파도 좋으니까 저 어깨에 한번 치이고 싶다고 생각했다. 뷔주얼은 좀 차가운 미남 같은 잘생김 이었는데, 바텐더는 따뜻한 잘생김을 뿜어내는 미남이었다.‘여기 처음이세요? 하는데 목소리는 좀 하이톤 이었다. 내가 좀 버벅 거리면서 그렇다고 하니까 ‘앉으세요’ 하면서 웃었다. 존나 잘생겼다, 진짜…. 만화에서 종종 그려지는 꽃미남 바텐더라면 이 사람을 모델로 한 거구나 싶을 정도였다. 메뉴를 보여주는데 나는 그때까지도 칵테일은 잘 몰랐다. 근데도 물어보는 건 왜 그런지 좀 쪽팔려서 절대 물어볼 생각은 안 했다. 다행히 몰디브 가서 마신다는 그것이 보이길래 ‘이거 주세요’ 했더니 바텐더가 생긋 웃고 ‘잠시만요’ 하면서 작은 접시에 과자 같은걸 담아줬다.

바텐더는 자기를‘핑크’라고 했다. 핑크색 아이템을 너무너무 좋아해서 붙인 스탭네임 이래나? 핑크건 분홍이건, 이름이야 아무래도 좋았다. 눈앞에 이 사람이 꼭 나를 구원해줄 것 만 같아서. 나는 뇌가 어떻게 생겨 먹었길래 잘 생긴 사람만 보면 그딴 병신같은 생각이 드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한동안은 또 그 바를 주구장창 들락거렸다. 핑크는 항상 친절하고 따뜻하게 나를 맞아줬다. 당연하지, 돈 내고 술 마시러 오는 손님한테 누가 불친절 할까. 근데 나는 착각대마왕 이라서 그렇게는 머리가 안 돌아갔다. 문지방이 닳도록 들락거리다보니 자연스럽게 그 바에 자주 오는 단골들과도 안면을 텄다. 아, 이렇게 이쪽 사람들과 섞이게 되는구나. 하고 생각하니 내가 뭐 좀 되는 것 같고, 괜히 기분도 우쭐해졌다. 기분이 좋아지면 좀 비싼 칵테일을 시키기도 했는데, 그러면 핑크가 입이 째지도록 웃으면서 술을 만들어 줬다. 그렇게 한동안 거기를 줄기차게 다니다보니 용돈이며 뭐며 죄다 술값으로 꼴아서 남아나는 게 없었다. 엄마한테 좀 미안해져서 평일에는 겜방에서 알바도 시작했는데 내 평생 알바를 처음 시작한 계기가 핑크 였다. 엄마는 그런 줄도 모르고 용돈만 받아쓰던 아들이 알바 하겠다니까 다 컸다며 칭찬해줬다. 아들이 넘 잘 나가서 미안해, 엄마….



언젠가부터 핑크는 나한테 만 원 이하의 칵테일은 권하지 않게 됐다. 그런데도 나는 핑크가 권하는 거니까, 핑크가 맛있다고 하니까, 핑크가 마시라는 대로 주문하고 넙죽넙죽 받아 마셨다. 그게 다 영업 이라는 건데, 병신 같았던 과거의 박지민은 그걸 알 리가 없지.

알바 때문에 힘들어서 핑크를 만나러 2주 정도 못 갔었다. 월급을 한 주 앞둔 주말, 2주 만에 핑크를 보러 바에 갔더니 핑크가 울상을 짓고 ‘어디 아팠어?’, ‘왜 이렇게 안 왔어-’ 하면서 나를 그렇게 다독여 줬다. 그럴 때는 그냥 뭐 좀 바빴다고 하면 될 걸, 나는 정말 지나치도록 솔직하게 ‘알바 하느라 피곤했어요’ 이랬다. 핑크는 내 손을 꼭 잡으면서 ‘안 오는 줄 알았네’ 했는데 지금에서야 하는 말이지만 내가 마음을 두고 있는 사람이 내 손을 잡은 건 그때가 처음 이었다.

근데 2주 만에 만난 핑크가 나에게 오랜만에 왔으니까 서비스라며 나팔처럼 생긴 잔에 파란색 칵테일을 만들어 줬다. 나중에 알았는데 그거 칵테일이 아니라 블루레몬에이드 같은 존나 싼 주스였는데, 나는 너무너무 감동한 나머지 알바 월급 받자마자 그 길로 핑크한테 가서 샴페인 시키고 와인 시키고 체이셔 시키고 토닉 시키고 안주 시키고 그 날 같이 있었던 안면 튼 단골들한테까지 나눠주면서 아주 갖은 돈지랄 난장을 부리고 받은 월급을 그날 핑크한테 다 꼴아박았다. 엄마한테 양말 한쪼가리 사다 줄 생각은 못하고, 아들새끼 키워봐야 말짱 헛거라니까.

술값이 거의 100 가까이 나왔는데, 현금으로 내겠다고 월급을 고스란히 인출해서 담아온 봉투를 꺼냈더니 핑크가 눈에 광채를 내면서 ‘3만원은 깎아줄게’ 하고 나한테 윙크 했다. 나는 완전 사랑의 유람선에 올라 탄 기분이었다. 막 가슴이 터질 것처럼 벅차올라서 핑크가 퇴근할 때까지 몰래 기다렸다가 고백하기로 마음먹었다.


도대체 그 근본 없는 용기는 술 쳐 먹고 생긴 거지, 썅….




바의 뒷골목에서 폰 게임을 하며 새벽3시가 되기를 기다렸다. 술을 그렇게 마셨는데도 나는 술이 센 편인지 잘 취하지도 않았고 조금 취기가 올라도 새벽바람 맞아서 금방 다 깼다. 간판의 조명이 꺼지고 뒷문으로 나오는 핑크의 옆통수가 보였다.

지금이야, 박지민. 지금이라면 일에 지친 핑크가 내 고백을 감동적으로 받아들이겠지?


뭐 이런 생각을 하면서 핑크에게 들이대려는데.




“아니 진짜, 좆찐따새끼가, 저번 주에 서비스 한 잔 줬더니 오늘 아주 돈을 들이붓더라?”

“완전 호구 잡았지. 그 새끼 그 동안 돈 쓴 것만 해도 몇 백은 돼. 몰라, 존나 부잔가?”

“아 진짜- 알았다니까, 내일, 아 시발 깜짝이야!!”




그렇게 개호구 박지민은 핑크에게 고백은커녕, 한마디 대들지도 못하고 그냥 돌아섰다. 뒤에서 핑크가 뭐라고 소리치는 것 같았지만 듣지 않았다. 뻔하지, 뭐. 네 얘기 아니다, 오해하지 마라, 그런 거.

짜증을 내어서 무엇하나-

내가 개병신, 상호구여서 생긴 일인데.








***




안녕하세요!! 제철망개 입니다!! 재연재 시작했어요♡ 다시 잘 부탁드립니다^ ^*



제철망개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