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선 회차에서 다른 회사가 버린 프로젝트를 주워온 사례(28화 참고)를 소개한 바 있습니다. 오늘은 짤방대로 남이 버린 일감 묻고, 더블로 간 이야기를 풀어볼까 합니다. 바로 최근까지 근무했던 G 회사입니다.


입사 당시 G 회사가 저에게 던져준 프로젝트들은 대부분 마감을 훌쩍 넘겼던 일감들이었습니다. G사 CEO가 조악한 기술로 얼기설기 이어붙여 억지로 연명하던 것들이었죠. 진행은 터무니없이 느렸고 클라이언트들은 수시로 연락을 해왔습니다. 연락을 받을 때마다 그들은 불쾌함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제가 들어가기 전이고 잘 알지도 못하는 일로 욕받이가 되는 게 억울했습니다. 하지만 클라이언트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없는 건 아니었습니다. 자초지종을 알고 나니 괜히 제가 다 미안해질 지경이었거든요.

클라이언트들 처지에서 보자면 계약한 업체가 기한을 미루고만 있는 겁니다. 정작 프로젝트 진행 상황을 확인시켜 주지는 않으면서 말이죠. 무슨 말을 해도 '기다려 달라' 또는 '작업 중이다'는 답만 반복합니다. 실제로 처리하고 있는지 아닌지도 의심스럽고 시간만 속절없이 흘러가는데 얼마나 답답했겠습니까.


G 회사가 가장 오래 지연시킨 기간은 무려 2년. 이보다 무책임할 수가 없습니다. 이러고도 클라이언트가 여태 거래를 끊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입니다.

창업 이후 모든 프로젝트는 CEO가 처리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CEO가 구사하는 기술은 지켜보던 제가 욕이 다 나올 정도로 엉망이었습니다. 불법으로 받은 프로그램을, 자료나 체계도 없이 수박 겉핥기로 익혔으니 당연하겠죠.

정리하자면 이런 겁니다. G 회사는 의뢰받은 프로젝트를 엉성하게 처리해 왔습니다. 게다가 기간도 제대로 지키지 않습니다. 제가 만약 클라이언트라면, 다시는 G사에 일을 맡기지 않을 것입니다. 아무리 비용이 저렴해도(인건비를 후려치는 덕분) 퀄리티나 납품 기한을 보장받을 수 없다면 소용없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개판인 시스템으로 용케 10년을 버텼다, 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CEO도 회사가 위기라고 느꼈는지 면접 자리에선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G 회사에는 '기술적 혁신'과 '새 인력(기술자)을 통한 변화'가 필요하다고요. 하지만 실제 떠넘겼던 일감들을 보면 얼마나 사람을 기만하는 헛소리인지를 실감합니다.

덕분에 저는 G 회사에 들어간 첫날부터 CEO가 저질러둔 문제들을 파악하고 수습해야 했습니다. 개중에는 앞서 말했듯 2년 이상 묵은 프로젝트, 다른 회사에서 한참 전에 버렸던 프로젝트도 있었습니다. 심지어 전임 회사는 폐업한 지 몇 년이 지나 빠진 자료를 요청할 수도 없었습니다. 상태도 초보자가 했는지 엉망진창이었던 탓에 잘못된 걸 바로잡고 그나마 있는 자료로 복원하는 작업만으로도 꼬박 두 달이 넘게 걸렸습니다.


게다가 G 회사가 받아온 일감들은 하나같이 최저예산과 최저사양으로 견적을 잡아둔 것들이었습니다. 10만 원짜리를 100만 원짜리로 보이게 만들라고는 하는 데요. 기술 구사가 가능할 조건을 1도 갖추자 않은 상태인데 무엇을 기대합니까.

5개월 내내 이런 프로젝트들을 8건이나 처리했습니다. 보통 이런 프로젝트는 1건 당 2~3개월을 소요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말이 안 되는 속도고 업무량이었습니다. 도리어 속이 타들어 갈 법한 클라이언트는 가만히 있는데, 트러블메이커 본인인 CEO가 더 저를 더 쪼아댔습니다. G 회사에서 일하는 동안은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일만 했습니다. 이렇게 사람을 갈아대고도 급여는 최저임금이었다는 게 가장 화가 나는 부분이네요.


그런데 이 8건, 프로젝트들이 어느 정도 마무리될 무렵이었습니다. 급한 불은 껐고 슬슬 연봉협상을 앞두고 있을 바로 그 때. G 회사는 기다렸다는 듯이 저를 정리합니다. 권고사직이라 쓰고 해고라 읽는 바로 그것이었죠. 딱 5개월이었습니다.

물론 저도 G 회사가 답이 없음을 알고 환승을 시도하고 있던 건 사실입니다. 나가도 제 발로 나가야 했는데 CEO가 먼저 저를 해고했네요. 선제공격을 놓쳤다는 게 너무 억울하고 분했습니다. 며칠간 화가 가라앉지 않아 회사에서 한 마디도 하지 않았었죠.


돌이켜보면 G 회사는 처음부터 저를 오래 고용할 생각은 없어 보였습니다. 자신들이 수습할 할 수 없는 영역만 제게 떠넘겼습니다. 딱 5개월만 고용할 예정이었으니(연봉협상 뒤엔 급여를 더 줘야 하므로) 그리도 독촉해 댄 것이고요. 회사 PC 디렉터리를 정리하다 보니 이런 식으로 퇴사한 건 저뿐만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앞선 사람들도 저와 비슷한 방식으로 딱 몇 개월용으로 고용했다가 어느 정도 사태를 수습하면 쫓아냈겠죠. 

자신들의 능력 밖 일이라고 팔짱만 끼고 구경했으면서. 기껏 수습해줬더니 바로 토사구팽을 하네요. 팀 킬이라고 말해야 할지 애매하긴 합니다. 그들은 애초에 저를 팀원이라고 생각한 것 같지도 않거든요. 앞으로 새 사람 구하지 말고 망할 때까지 그들끼리만 놀다 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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