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야~ 일어나면 연락 줘. 해장 같이 하자.

 

같이 알바하는 오빠로부터 온 연락이 도화선에 불을 붙였다. 무슨 도화선이냐 묻는다면 당연히 ‘C의 질투’라는 도화선이었다.

 

“K야 이 사람 누구야?”

“누구?”

 

C가 입을 댓 발 내민 채 K 앞에 휴대전화를 들이밀었다. K는 숙취에 찌든 머리를 부여잡고, 헝클어진 머리를 대충 정리하며 미간을 찌푸리곤 환한 휴대전화 잠금화면을 뚫어져라 봤다. 그리곤 하품을 하며 웅얼거렸다.

 

“아, 같이 일하는 오빠. 우리 어제 회식했잖아.”

“....”

 

K의 간단한 해명에 돌아오는 대답이 없자 K는 괜히 C의 눈치를 슬쩍 봤다. 아니나 다를까 C는 단단히 삐친 것처럼 보였다. 눈동자를 위로 치켜뜨고 입을 삐죽 내민 C를 본 K는 괜히 눈을 바닥으로 피했다.

 

“왜 눈을 피해?”

“어? 뭐가?”

“이 사람이 너 데려다준 거야?”

“어... 뭐, 그랬지?”

“왜?”

“아니, 어제 시간도 늦고 했으니까 나 혼자 보내긴 위험하다고....”

 

K가 말을 흐리며 대답하자, C는 K가 앉아 있는 침대에 같이 앉았다. 정적이 길어지자 K는 더 긴장했다. 화를 내면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하나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그 정적을 깬 건 누구의 목소리가 아니라 어떤 행동이었다. C가 K의 어깨에 고개를 기댔다. 어깨 위로 부드런 무게감이 느껴졌다. 얼굴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C가 웅얼거렸다.

 

“다음에는 안 그러면 안 돼?”

“... 그럼 나 혼자 와?”

“... 다른 남자가 데려다주는 건 싫어.”

 

나보다 나이가 몇 살이나 더 많다고 오빠 노릇을 하는 건지. 뭣도 아닌 연상이 이런 짓을 했다면 기분 더럽고 짜증 날 일이었지만 C가 그러니까 귀여웠다. K는 몸을 돌려 양 손으로 C의 얼굴을 붙잡았다. 손바닥 사이로 C의 볼이 꾹 눌렸고, 입술이 비죽 나와 있었다. C는 지금 이게 뭐 하는 상황인가 싶은 불만 섞인 눈빛으로 K를 바라봤다.

K는 그런 풍경을 보며 괜히 웃음이 나왔다. C가 그런 K를 보고 어어? 하더니 불만 섞인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야아, 너 왜 웃어? 나 진지한데 왜 웃냐구.”

“귀여워서 웃는다, 귀여워서. 앞으론 다른 남자가 바래다준다고 할 때 거절할게. 그럼 뭐, 다음 회식 땐 오빠가 데리러 올래?”

 

웃으면서 한 K의 말에 C의 표정이 마치 ‘간식?’ 또는 ‘산책?’ 따위의 말을 들은 강아지마냥 완전히 바뀌었다. K는 그 얼굴을 보고 아차 싶었는지 웃던 표정을 굳히고 농담이야, 했고 결국 C는 실망한 강아지 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날의 작은 사건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 된 줄 알았다. 문제는 K의 농담과 ㅊ의 상상력에 있었다. 그날 이후로 C는 종종 가능성 없는 상상을 했다. 아이돌인 C가 여자친구 회식 자리에 나타나는 일. 이건 드라마나 영화가 아니라 현실이었으니까 절대 가능성이 있어선 안 될 일이었다. 그러나 상상은 어떤 힘을 갖고 있다. 자꾸 하다 보면 가능성이 없는 것이라도 가능성이 있는 일처럼 생각이 들게 만든다.

 

-오빠, 나 오늘 회식.

회식 안 가면 안 돼? 어쨌든 거기 다른 남자도 있잖아.-

-어디서 또 이상한 거 배워 왔지.

 

회식 날짜가 기어코 다가왔고, C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나갈 채비를 했다.

 

*

 

K의 동료들은 술에 취해 벌게진 얼굴로 식당 앞에서 헤롱거렸다. ‘그 사건’이 있던 날 C에게 약속했던 건 진심이었다. 같이 일하는 다른 여성 직원에게 집에 바래다줄 수 있냐고 물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K는 그날 술을 덜 마셨다. 상대적으로 멀쩡한 정신 상태로 택시 어플을 열어서 택시를 부르려는 찰나, 누가 제 어깨를 툭 쳤다. 고개를 돌려 얼굴을 보니 그 오빠였다. C를 삐치게 한 원인. 그 남자가 웃으며 K의 손에 아직 뜯지 않은 아이스크림 하나를 쥐어 주었다. K는 제 손의 아이스크림을 쳐다봤다가 다시 그 동료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아....”

“먹어. 술 마시면 아이스크림 먹고 싶지 않아?”

“나 오늘은 술 많이 안 마셔서 괜찮아. 오빠 먹어.”

“... 집 데려다줄까?”

“아, 집. 남자친구가 다른 남자가 데려다주는 거 싫다더라. 나 혼자 가도 돼.”

“야, 그래도 이 시간에 여자 혼자 가면....”

“괜찮다니까 자꾸 그러네. 오빠도 얼른 택시 잡아. 시간 늦어서 잘 안 잡힐 거 같은데.”

 

계속되는 K의 거절에 남자는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한숨을 푹 내쉬었고 K는 그 모습을 보며 택시 호출 버튼을 눌렀다. 로딩 화면이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었고, 어플은 기사님을 찾는 범위를 점점 넓혔다. 한참을 그러더니 로딩이 뚝 끊기곤, ‘범위 내에 운행 가능한 차량이 없습니다.’라는 문구가 뜬다. 남자는 가자미눈으로 그 화면을 보곤 웃으며 말을 이었다.

 

“진짜 택시 안 잡히네. 그러게 오빠가 데려다 준다니까....”

“아, 남자친구가 싫다고 했다는데 자꾸 왜 그러지?”

 

슬슬 K가 짜증이 날 때쯤 누군가 K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말했다. 그 대상이 누군지 몰라서 놀랐던 K는 익숙한 감촉을 느끼곤 더 놀란 채 얼굴을 휙 돌아봤다. 마스크를 쓰고 캡모자에 후드까지 뒤집어 쓰고 있었지만 딱 알 수 있었다. C이다. K의 얄쌍한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

 

K는 C를 데리고 도망치듯 나왔다. 이 오빠는 어쩌자고 여기까지 온 거야? 누가 알아보면 어쩌려고.... 차가 달리는 내내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술을 얼마 마시지도 않았는데 숙취가 오는 것 같았다. K가 말도 없이 조수석 창에 기대 앉아 있자 C는 눈치를 보다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 화났어?”

“머리 아파.”

“... 술 많이 마셨구나.”

 

K는 조용히 고개를 젓기만 했다. 정적 끝에 집에 도착했을 때, K는 곧바로 내리지 않았다. 정적 속에서 먼저 입을 연 건 K였다.

 

“누가 알아보면 어쩌려고 그랬어?”

“... 그냥 닮은 사람이라고 하려구....”

 

잔뜩 기가 죽어 웅얼대는 모습과 그 대답이 어이없으면서도 귀여워서 웃음이 피식 나왔다. K는 C가 그 웃음을 보고 제 화가 풀린 줄 알까 봐 표정을 금세 굳혔는데, C는 오히려 그 웃음에 기가 더 죽어 버렸다. C는 손을 꼼지락거리더니 유진의 손을 조심스럽게 잡았다. 넓직한 손이 부드럽게 감싸는 촉감에 K는 C를 슬쩍 흘겨봤다. 곁눈질로 본 수심이 가득한 얼굴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나는 그냥 다른 남자가 너 데려다주는, 아니... 너 걱정돼서....”

“말할 거면 내 얼굴 보고 얘기해야지, 오빠.”

 

K의 말에 고개를 든 C의 표정이 가관이었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이 벌겋게 된 눈가, 울음을 참느라 앙다문 입, 울 것 같은 표정을 들키지 않으려고 힘을 잔뜩 준 눈썹. 저보다 나이가 더 많다는 사실이 믿기질 않았다. 아무리 봐도 스물넷은 아닌 거 같은데.

 

“내가아 진짜 다음엔 이런 짓 안 할게, 응? 이번만 봐주라, K야....”

“알았어, 진짜 하지 마. 나도 오빠가 데리러오면 좋지. 좋은데 들키면 둘 다 힘들잖아.”

 

C는 고개를 끄덕였다. K는 그 얼굴을 보며 제 손을 감싸 쥐고 있던 손에 깍지를 껴 잡았다.

 

“저번에 그 오빤 진짜 아무것도 아니야.”

“... 아까 그 남자지? 얼굴 보니까 질투 괜히 한 거 같더라.”

 

C의 말에 K는 마구 웃었다. K가 다시 고개를 들고 애정 어린 눈으로 C를 보았을 때, C도 같은 눈으로 K를 봤다.

 

“사랑해, C.”

장르 부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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