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 재재







나 김태형. 나이는 스물일곱.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란 서울촌놈. 그런 내가 차 타고 2시간 반을 달려 강원도 시골로 휴양을 왔다. 젊은놈이 무슨 휴양이냐고? 병명은 천식. 기억도 나지 않는 아주 어릴 적 천식이 너무 심해 부모님과 함께 휴양을 간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 이후 훨씬 나아져 서울로 돌아와 살았지. 그러니까 내 기억으로는 계속 서울에서 자랐다 이말씀. 아무튼 이놈의 서울은 공기가 너무 탁하고 좋지 않아 집 안에 공기청정기가 방마다 몇 개씩 설치가 되어 있었다. 한여름에도 미세먼지 최악으로 환기하는 일이 적었으니 말 다했지. 그런 환경에서 20년을 넘게 살아왔으니 내 약한 기관지가 더이상 버텨주질 못했다. 기침이 끊이질 않고 숨이 넘어가는걸 부모님이 보고 나서야 나는 휴양을 오게 되었다.





슬프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No! 나는 옛 미국 드라마에서 나올법한 시골에서 못살아 빼애액!! 하는 그런 약한 애가 아니라고! 뭐든지 잘 먹고 적응도 잘하는 나는 이 호흡기만 있으면 어디든 무섭지 않았다. 분명 나랑 동갑인 애가 마중을 나온다고 했는데..





"네가 태형이야?"


"어, 마침 왔네."


"반갑다. 나는 박지민이야. 너랑 같이 지내게 됐어."


"응, 안녕."





첫 만남부터 말 놓은 거 대학때 이후로 처음이네. 근데 얘.. 사투리 안쓰네..? 지방 나오면 다 사투리 쓰는 거 아니었나..? 태형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지민을 빤히 바라보았다. 지민은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태형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 내 얼굴에 뭐 묻었어? 아니, 사투리를 안 쓰길래 신기해서. 시골 산다고 다 사투리 쓰는 줄 알아? ...경기도 말고는 다 쓰는 거 아니었어..? 어르신들은 사투리 좀 쓰는데 우리 부모님 세대부터는 안써. 서울이랑 가까운데 뭔 사투리. 나 2시간 넘게 걸려서 왔는데.. 2시간이면 가깝지. 아무튼 가자.





"여기서 걸어서 좀 걸리는데 힘들면 말해."


"헉...지금 힘든데.."


"응?"





태형은 빠른 지민의 발걸음을 따라잡다가 포기했다. 숨이 찼기 때문이었다. 공기가 맑으면 뭐해. 내가 뛰게 생겼는데. 지민은 거리감이 느껴지는 거리에서 태형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뒤를 돌아보았다.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헥헥거리며 땀을 삐질 흘리는 것이 들었던 것보다 훨씬 약한 모양이었다. 업어줄까? 하아.. 아니아니, 좀, 쉬면, 돼 헤엑.. 아직 한참 가야돼서 그래. 후.. 그럼 좀만 하아.. 쉬었다가, 업어주던가, 흐.. 나 죽을 거 같아. 지민은 빠르게 태형에게 다가가 태형을 부축했다. 지민은 태형을 길가에서 조금 벗어나도록 한 후 바닥에 털썩 주저 앉았다. 태형은 지민을 보고 지민의 옆에 함께 주저 앉았다.





"서울애가 바닥에 털썩털썩 잘 앉네."


"후으.. 그럼 죽을 거 같은데, 가려가면서 앉냐."


"... 아무튼 우리 동네 가면 불편한 거 많을 거야."


"뭐?"


"거름 냄새도 날거고, 편의 시설도 한참 나가야 하고, 그 햄버거 뭐 이런 것도 시내로 나가야 있어. 와이파이 뭐.. 그런것도 이장님 댁에 가야 있고.."


"....."





태형이 대답을 안 하자 지민은 태형이 불편해서 말이 없는 거라고 생각했는지 뒷머리를 긁적였다. 불편해도 익숙해지면 괜찮을 거야, 쩝.. 지민은 대답없는 태형에 민망한지 입맛을 다셨다. 사실 태형은 불편한 곳에 왔다고 기분이 나빠 입을 다문 것이 아니었다. 그럼 왜 답을 안 하냐고? 할 말이 없어서였다. 숨이 차기도 하고. 뭐.. 와이파이 없는 건 데이터가 무제한이니 전혀 상관 없고, 미세먼지 가득한 하늘보다는 거름냄새가 훨씬 쾌적할 것이었다. 그리고 편의시설이 주변에 없는 게 뭐 어때서? 어차피 집 주변에 널렸어도 집 밖으로는 잘 안 나왔던 태형이기에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그래서 그냥 별 말 않고 있던건데 지민이 오해를 해도 단단히 오해를 한 모양이었다. 아직도 계속 태형을 힐끔 쳐다보며 눈치를 보는 게 꽤나 귀여워 보인 태형은 지민을 골려줄까? 하는 생각이나 하고 있었다. 태형은 지민의 반응을 보기 위해 시골에서 못 살겠어 빼액!! 하는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어보기로 했다. 아, 생각만 해도 재밌네.





"집에 컴퓨터는 있지?"


"당연하지!"


"6코어 12스레드로 동작하는 CPU에 라이젠 5 프로세서까지 문제없이 사용하는 메인보드, 그리고 메모리는 16GB에 SSD는 넉넉하게 500GB로."


"....."


"500GB는 없어..? 그럼 300..?"


"....."


"240...?"


"....."





태형은 속으로 미친 듯이 웃어댔다. 컴퓨터 있냐는 말에 당당하게 있다고 외친 지민은 태형의 말에 당황하며 입을 다물었다. 당연히 없겠지. 우리 집에도 없고 PC방이나 본격 게임만 하는 애들한테나 있을 사양의 컴퓨터가 있을 리가.





"그.. 미안.."


"... 진짜 없어..?"


"...응."


"그럼 거기서 어떻게 살아..?"


"나름 살만한데.."


"거름냄새나고 주변에 편의시설도 없고, 그럼 배달도 안될 거고, 와이파이도 안 되는데 컴퓨터는 정말 인터넷만 된다..?"


"...그래도 공기는 좋아.."


"....."


"....."





푸핫!! 침묵을 유지하던 태형은 지민의 표정을 보고 결국 웃음을 터트렸다. 지민의 얼굴에 물음표가 떠올랐지만 태형은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숨쉬기가 어려울 때까지 웃은 태형은 지민이 등을 두들겨주어야 겨우 멈출 수 있었다.





"큭큭.. 흐.. 푸흐흐. 후아.."


"...괜찮아?"


"아, 응. 하아, 고마워."


"근데 왜 웃은 거야..?"





태형은 또다시 웃음이 터져 나오려 하는 입을 막았다. 그만 웃자 김태형. 오늘 초면인 사람한테 뭐 하는 거야. 그만 김태형 그만! 태형은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지민을 마주 보았다. 장난친 거야. 응? 장난친 거라고. 나 와이파이나 편의시설, 그런 고기능 컴퓨터 다 필요 없어. 아, 거름냄새도 상관없고. 진짜..? 응. 지민은 태형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건넸다. 안믿겨? 너 서울에서 태어나서 서울에서 자랐다며. 응. 근데 정말 다 괜찮다고? 응 괜찮아. 지민이 태형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자 태형은 지민의 어깨를 두드렸다.





"도시 사람이 시골와서 적응 못하고 그러는 거 다 옛날 드라마에서나 그러는거야. 요즘 시골이라고 다 시골이냐? 인터넷도 된다며."


"응.."


"난 그거면 돼. 내가 작가라. 인터넷은 꼭 써야 하거든."


"작가?"


"응. 나 아프다고 부모님돈 받아먹으면서 인생 연명하는 그런 애 아니다~ 나 내 능력으로 돈 많이벌어~ 내 글 인기 많거든."


"대단하네.. 내가 생각한 애랑 전혀 다르구나."


"날 어떻게 생각했는데?"


"아프고 예민한 서울친구."





흐흐, 원하면 그렇게 지내줄 수도 있어. 아니야, 왜 굳이. 아프고 예민한 서울친구 기대한 거 아니야? 기대에 부응해줄게. 됐다니까. 지금 이 모습이 좋아. 지금 이 모습이 뭔데? 쾌활하고 맑은 능력 있는 친구? 푸하하!! 너 진짜 웃긴다.




*




"지민아~ 나랑 산책가자!"


"잠깐만~"


"너 뭐하는데!"


"옆집 아주머니가 콩 떨어진거 줍게 봉지 좀 달라 하셔서 가져다 드리고 올게!"


"바보야, 봉지가 없어서 달라는 거겠냐?"


"그럼..?"


"봉지 주러 온김에 줍는 것좀 도와달라고 하시겠지!"


"그런가..? 쥐눈이 콩 뭐 그거 밭 크기 얼마나 된다고. 좀 도와드리고 오지 뭐. 산책은 좀 이따 가자. 금방 줍고 올게. 미안해."





에휴. 지민이와 함께 지내기 시작하면서 깨닳은 것이 있었다. 바로 지민이는 착해도 너무 착하다는 것. 뭐 그덕에 놀리는 맛이 있기는 하지만 가끔 보면 너무 바보같이 착하다. 이 시골에 워낙 젊은 사람이 없다보니 주변에서 다 지민이를 못불러서 안달인데 지민이는 늦게와서 죄송하다고 다 사과를 하고 다니면서 모두 도와준다. 이렇게 바보같이 착해서 이 험난한 세상 어떻게 살아가나 걱정이 많았지만 지민이도 나름 제 이득 보면서 살더라.





"할머니~ 이거 갈치 제가 한 마리만 가져가도 돼요?"


"이 산골에서 갈치가 얼마나 비싼데! 가져갈거면 돈 주고 사가!"


"에이~ 할머니~~ 제가 오늘 하루종일 할머니 밭에서 땀 흘렸는데~ 네? 안그러면 저 제 일한 값 다 받아요~?"


"고놈, 말하는거 하고는. 그래, 알았다. 지민이 너니까 주는거야!"


"감사해요 할머니!!"





잠깐, 이렇게 받아온 갈치를 결국 나에게 가시까지 발라서 다 줬으니 제 이득 못챙기는건가? 배부른건 오롯이 나 김태형이 었는데. 뭐 어떠리 이 갈치가 맛있으면 되는거지. 결국 승자는 김태형이구만.





지민이가 밥에 얹어준 갈치를 밥과 함께 푹 떠서 김치와 함께 와암- 하고 입에 넣고 움냠냠 씹고 있는데 지민이 이녀석 진짜 갈치를 하나도 안먹고 다 나한테 줄 생각인가? 자기는 김치와 김으로만 밥을 먹으면서 갈치는 발라놓는 족족 김태형 밥그릇으로 옮긴다. 그러다 이따금 턱을 괴고 태형이 먹는 모습을 빤히 바라보기까지 한다. 매번 먹을 때마다 의도치 않은 먹방을 하니 슬쩍 민망해진 태형이.





"먹는걸 왜 자꾸 봐."


"귀엽게 잘 먹길래."


"...그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냐?"


"왜? 하면 안되는 말이야?"


"아니, 하면 안되는 말은 아니지만.. 남자끼리 간지럽잖아."


"귀여운걸 귀엽다고 하는건데 뭐. 귀여운걸 어떡해."





켁켁. 커다란 깍두기가 목에 걸릴 뻔 한걸 겨우 넘긴 태형은 지민이 태형의 앞으로 민 물컵을 잡아 벌컥벌컥 마셨다. 뭐지? 내가 친구를 잘 안사귀어봐서 모르는건가? 아니 그래도 거의 나가지 않던 학교에 다닐 때 잠깐 같이 다니던 친구는 이러지 않았던 것 같은데. 귀엽다는 말 서로 주고 받는건 상상도 못하는 일이었는데.





그러고보니 지민이는 내가 시골에 내려왔을 때 부터 항상 끔찍히도 나를 챙겼다. 우리 부모님한테 돈을 좀 받고 있다지만 챙김의 수준이 도를 넘는달까. 태형의 usb가 고장나자 버스타고 멀리까지 나가 고작 손가락 반절 크기의 usb를 사오기도 하고, 산책을 갈 땐 항상 느린 태형의 걸음을 맞춰 아주 천천히 걸어주기도 했다. 그 뿐인가? 태형의 글을 밤새 다 읽어 보고는 하루종일 본인 앞에서 주접을 떨어대기도 했다. 사실 이런 것들 말고도 너무 많이 챙겨준다. 정말 너무 많이. 성인 남성을 대하는 것 같지 않은 지민의 태도에 태형은 합리적 의심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지민아."


"응? 왜 태형아?"


"진짜 진지하게 물어보는 건데.."


"응, 응."


"너, 나 좋아하냐?"





좋아하지 그럼. 생각보다 너무 쉽게 떨어져 나온 지민의 대답에 태형은 잠시 굳었다. 쟤 지금 다른 뜻으로 받아드린거 같은데. 아니, 내 말은 그게 아니라... 태형아. 응? 밥 식겠어. 어, 응.. 지민은 태형의 밥 위로 반찬을 올려주었다. 태형은 볼을 긁적이며 지민이 주는 대로 받아먹는데, 어.. 지민이 귀 빨갛다..





태형은 마음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왜 거기서 귀가 빨개지는데? 왜?? 머리를 싸매고 침대를 굴러다녀도 나오는 답은 하나였다. 쟤 진짜 나 좋아하나? 사실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면 누가봐도 좋아하는거라고 말할테지만 태형은 헷갈릴 수 밖에 없었다. 지민은 누구에게나 다정했고, 태형이 그 '누구나' 범주에 들어갈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또 무엇보다 자신의 마음도 정확히 모르는 태형이 지민의 마음을 알 수 있을리 없었다.





어릴적부터 아팠던 태형은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했다. 친구나 애인또한 있을리 만무했다. 형제도 없고, 부모님은 태형을 너무나도 사랑하셨지만 자신의 일도 사랑하시는 바쁜 분들이었다. 이런 태형에게 다정한 지민의 존재는 새로웠다. 늘 씩씩하게 살아왔기에 부모님조차도 필요 이상 챙겨주는 일은 없었다. 태형이는 씩씩하니까, 혼자 있을 수 있지? 혼자 할 수 있지? 조금만 기다릴 수 있지? 그럼 태형의 답은 하나였다. 그럼, 알잖아 나 괜찮은거. 또 태형이 바라지도 않기도 했다. 자기 일도 바쁜데 다 큰 아들 언제까지 뒷바라지할 수는 없었으니 말이다.





지민이의 다정함이 처음에는 좀 낯설었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 했던가 지민의 챙김과 다정에 익숙해진건지 태형은 묵묵히 지민의 챙김을 받았고 이러한 익숙함이 그동안 태형 스스로 챙겼던 것들을 챙기지 못해 일이 발생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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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에 올렸던 연성을 가져왔습니다~ 야아악간 수정됐어요ㅎㅎ


민뷔는 역시 다정지민이죠ㅎㅎㅎ

다음화는 병원으로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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