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 기간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영원히 오지 않을 것 같았던 금요일의 저녁도 지나가고 토요일의 아침이 밝았다. 남들보다는 클래식 음악을 듣는 시간이 많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클래식 전문가인 것은 아니다. 집에서 클래식 음악을 배경 음악으로 틀어 두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클래식을 접할 기회가 적지 않을 뿐이다. 그리고 내가 알기로 남자친구는 클래식 음악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다. 바흐, 베토벤 같은 작곡가의 이름은 음악 시간에 들어서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바흐가 작곡한 골드베르크 변주곡이나, 인벤션과 파르티타, 베토벤이 작곡한 소나타나 9번 교향곡—나는 새해가 되면 9번을 들으러 예술의전당에 갔다—에 대해서 그가 알고 있는 지식이란 없다. 그래서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을 듣기 전에 설명을 해 주려는 생각을 하고 나는 종이에 바이올린 협주곡에 대한 정보를 적어 왔다. 우리는 예정보다 20분 일찍 시청 앞 역에서 만났다.

“일찍 왔네?”

“그러는 너야말로. 기숙사에서 온 거지?”

“어. 기숙사에서 9시에 일어나서 씻고 버스를 타고 바로 도착했어. 주말이라서 그런가 차가 덜 막혔던 것 같아.”

내가 쥐고 있는 종이를 보더니 그가 말을 걸었다.

“종이에 뭐라고 적혀 있어?”

종이를 건네 주면서 나는 설명하였다.

“네가 클래식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는 이야기를 듣고 종이에 대략적인 설명을 적어 왔어. 한번 읽어 봐.”

“모차르트. 1756년에 태어나서 1791년에 사망했음. 어렸을 때는 신동으로 유명했고 그리고, 5살이던 시절부터 작곡을 시작했다. 수많은 명곡을 남기고 그 중에서도 피아노 협주곡과 소나타, 레퀴엠이 유명하다.”

“레퀴엠은 모차르트가 죽기 전에 작곡한 장송곡이야. 죽은 사람을 위해 연주하는 노래라고 할 수 있어.”

“…바이올린 협주곡 제1번은 모차르트가 19살이던 1775년에 작곡한 곡으로 그의 독특한 개성을 엿볼 수 있는 협주곡이다. 악장은 3개로 나뉘며 순서대로 1. 알레그로 모데라토, 2. 아다지오, 3. 프레스토로 나뉜다.”

“어때?”

“미안하지만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도무지 모르겠어. 악장은 뭐고, 알레그로, 아다지오는 또 뭐야?”

“알기 쉽게 설명을 해 줄게. 여기서 악장은 그러니까, 노래를 듣다 보면 1절 2절 3절… 이렇게 절이 나뉘어지잖아? 그걸 길게 뽑아서 한 절당 10분 정도라고 생각하면 클래식 음악에서 말하는 악장이 되는 거야. 그리고 알레그로는 빠르게라는 뜻인데, 알레그로 모데라토라고 적혀 있으니까 알레그로보다 약간 느리게 연주하라고 지시하고 있는 거고. 알레그로 모데라토, 알레그로, 비바체. 뒤로 갈수록 점점 더 빨라지는 거라고 이해하면 돼. 아다지오는 느리게 연주하라는 말이고, 프레스토는 음, 빠르게 연주하라는 말이긴 한데 비바체하고는 약간 다르다고 보면 돼.”

“대충 무슨 말인지 알겠어. 이제 자리를 잡으러 가 볼까.”

“종이는 너가 가져.”

“오케이.”

그가 앞장서고 나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 따라갔다. 남자친구와 연애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학교에서도 꽤 귀찮은 일이 될 테지만 주위를 둘러 본 바로는 우리 학교 학생들의 수가 많지 않았다. 음악부 부원과 그 부원들과 친한 아이들, 관현악부에서 온 친구들 몇 명이 다다.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내가 있는 B반에서 연주를 보러 온 사람은 음악부에 있는 여자애 한 명밖에 없었다. 하지만 모든 일은 주의가 필요한 법이다. 나는 그와 붙어 있지 않고 항상 거리를 두면서 자리에 앉기 전까지는 대화도 하지 않았다. 매정하다는 말을 누군가에게 들어도 할 말이 없지만, 고등학생의 연애는 성인의 연애보다 귀찮은 법이다.

공연은 예정 시각보다 10분 늦게 시작되었다. 음악부의 연주 준비가 늦어서 늦게 시작한 게 아니라 관객이 모두 자리에 앉기까지 시간이 그만큼이나 소요된 탓이다. 실내 공연장이라면 예정된 시각에 바로 시작하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야외에서 공연을 하기로 한 이상 감수해야 될 약점이 있을 것이다. 자리에 앉은 우리는 서로의 손을 잡았고, 서로의 체온을 느끼면서 바이올린이 말을 거는 목소리에 주의를 기울였다.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 뒤로, 축제가 끝나고 나서부터는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대체 시간이 흘러가기는 한 건지 도무지 기억이 나지를 않는다. 여름 방학부터 축제가 열릴 때까지의 연주가 아다지오라면, 그 이후부터는 악장이 달라지면서 갑자기 비바체로 연주를 시작한 것만 같다. 나의 눈 앞에서 연주를 시작하는 바이올린, 첼로, 비올라 연주자의 연주 속도가 워낙 빨라서 어디에 눈을 두면 좋을지도 모르겠고, 더불어 어느 시점에서 갑자기 연주를 시작하는 피아노의 속도는 얼마나 빠른지, 귀로도 멜로디를 따라갈 수 없을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억나는 일들을 몇 가지 이야기해 보기로 하겠다.


눈치가 빠른 독자라면 내가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고, 클래식 음악을 좋아할 뿐만 아니라 클래식에 대한 지식도 풍부하다는 사실을 알아챘을 거다. 너무 쉬운 문제인가? 아무튼, 나는 고등학교에 다닐 수 있는 3년간 최대한 취미가 맞는 친구를 사귀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친구를 찾았다. 하지만 한 학년 정원이 40명밖에 안 되는 이상한 고등학교에서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는 친구를 찾기란 모래사장에서 바늘을 찾고 나서, 바늘구멍에 실을 꽂아 넣는 것보다 어려웠다. 일반적으로 생각해서 만약 40명 중에 한 명이 클래식 애호가라면, 나머지 39명이 듣는 음악의 장르는 얼터너티브 록, 힙합, 케이팝, 재즈, 소울, 뭐 이런 식으로 다양하게 갈릴 것이다. 그러나 39명 중에서 클래식을 즐겨 듣거나 혹은 집에서 클래식을 들어서 미리부터—나의 경우처럼 말을 배우는 것보다 시기적으로 먼저—음악적 소양을 갈고닦은 사람은 없을 확률이 높다. 최대한 보수적으로 말하면 40명 중에서 한 명이 클래식 음악을 좋아한다는 게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KBS 93.1 라디오를 듣는 시청자의 모든 수를 분자에 놓고, 대한민국에서 음악을 듣는 모든 사람을 분모에 놓으면 그 비율이 얼마나 될지는 당신의 상상에 맡기겠다. 어차피 뻔한 결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학교에서 클래식을 좋아하는 친구를 찾아냈다. 그녀의 이름은 박나래라고 하는데, 나래는 낭만주의 시대의 피아노곡을 특히 좋아한다고 내게 고백했다. 우리는 수업이 끝나면 학교 식당 앞에 마련되어 있는 의자에서 만났다. 그녀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책을 펴고 아무 페이지에나 눈길을 던지고 있는 그녀는, 취주악부 연습에서 플룻 연주자를 기다리고 있는 오보에 연주자 같았다. 나는 식당 안에 있는 자판기에서 콜라를 한 캔 뽑은 뒤에 그녀와 함께 음악감상실로 향했다. 음악감상실에 들어가면 보이는 풍경은 따분하다고 표현할 정도로 단조로웠다. 커튼을 친 창문이 문의 정면에서 약간 왼쪽으로 비스듬하게 어긋난 자리에 위치하고, 감상실의 왼편에는 이제 사용하지 않는 장치들—LP 플레이어, CD 플레이어, 선을 꽂는다고 해도 제대로 작동할지 의심스러운 진공관 앰프, 그리고 무슨 용도로 감상실에 들어온 것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단단히 묶여 있는 케이블—이 과거(라는 게 존재한다면 말이지만)의 영광을 증거라도 하듯이 쌓여 있었다. 오른쪽에 있는 스피커와 앰프는 제법 좋은 물건이었다. 스피커는 탄노이의 오토그래프 미니 GR이었고, 앰프는 야마하에서 나온 R-N803이었다.

잠깐 탄노이 스피커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원래 이 스피커는 음악감상실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앞에서 말한 음악부에서 청음용으로 구매한 비싼 스피커였다. 그런데 음악부에서 천만 원이 넘는 B&W의 레퍼런스 스피커를 구매하면서 탄노이의 오토그래프는 음악실에서 하루아침에 자리를 잃게 되었다. 당시만 해도 부원이었던 그녀는 음악감상실에 탄노이를 두면 어떻겠냐는 이야기를 부장에게 전했고, 부장은 거기에 흔쾌히 동의했다. 스피커를 음악감상실에 두기는 했지만 이 스피커는 좋은 앰프가 없으면 작동할 수 없는 물건이다. 그녀는 집에 있는 앰프 중에서 가장 값이 저렴한 야마하의 앰프를 가져 와서 스피커에 연결했다. R-N803의 장점은 플레이어를 유선으로 연결하지 않더라도 블루투스를 연결하면 음악이 재생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주로 애플 뮤직에서 키스 자렛이 80년대에 녹음한 앨범을 찾아서 들었다. 그 중에서도 88년에 키스 자렛 트리오가 녹음한 “Still Live”를 가장 많이 들었던 것 같다. 키스 자렛이 지겨워지면 브래드 멜다우를 듣거나 저스틴 코플린을 들었다. 저스틴 코플린은 눈이 보이지 않는 맹인 피아니스트인데, 츠지이 노부유키처럼 눈이 보이지 않아도 피아노의 스케일을 파악하는 능력이 뛰어났다. 가끔 우리는 클래식을 듣기도 했다. 조성진이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은 단골 레퍼토리였다. 내가 나래에게 추천한 우치다 미츠코 연주의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와, 데카에서 녹음한 피아노 협주곡을 들을 때도 있고—새삼스러운 말이지만 탄노이의 오토그래프는 피아노의 모든 음을 또렷하게 구분해서 들려주었다—혹은, 잠시 갑갑한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는 알프레트 브렌델이 연주한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를 들으면서 가 본 적이 없는 오스트리아의 토지와 거기서 살고 있는 사람들을 상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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